새벽 다섯 시, 방콕 끌롱떠이 시장입니다.
해는 아직 뜨지 않았는데 공기는 벌써 눅눅합니다. 트럭에서 내린 얼음 자루가 콘크리트 바닥에 부딪히며 쪼개집니다. 상인은 그 얼음을 삽으로 퍼서 좌판 위에 깔고, 그 위에 새벽에 들어온 생선을 가지런히 눕힙니다. 옆 좌판에서는 라임이 산처럼 쌓이고, 고추와 레몬그라스와 생강이 묶음으로 팔려 나갑니다.
이 시장의 시계는 빠르게 돕니다. 해가 머리 위로 올라오면 기온은 30도를 넘깁니다. 얼음은 녹아 물이 되고, 그 물은 좌판 아래로 흘러내립니다. 정오가 되기 전에 생선은 팔려야 하고, 팔린 생선은 그날 안에 요리되어야 합니다. 이곳에서 음식은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같은 지구의 다른 쪽, 11월의 폴란드 시골 농가를 떠올려보겠습니다.
서리가 내린 아침, 할머니가 지하 저장실의 나무 문을 들어 올립니다. 차고 습한 공기가 계단을 타고 올라옵니다. 어둠 속에 항아리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소금물에 잠긴 양배추, 딜과 함께 절인 오이, 서까래에 매달린 훈제 돼지고기, 실에 꿰어 말린 버섯. 이 중 어떤 것도 오늘 저녁을 위한 음식이 아닙니다. 어떤 것은 3월까지, 어떤 것은 다음 겨울까지 이 어둠 속에 머뭅니다.
한쪽에서는 오늘을 위해 오늘을 먹습니다. 다른 한쪽에서는 내년 봄을 위해 오늘을 묻어둡니다.
같은 인류가, 같은 계절에, 음식을 전혀 다른 시간 위에 올려두고 있습니다. 이 책의 첫 질문은 여기서 시작합니다. 왜 어떤 땅의 음식은 서두르고, 어떤 땅의 음식은 기다리는가.
답의 절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생물에게 있습니다.
음식이 상한다는 것은 미생물이 음식을 먼저 먹는다는 뜻입니다. 세균과 곰팡이는 사람이 먹으려던 당분과 단백질을 분해하면서 번식하고, 그 과정에서 냄새와 독소를 남깁니다. 인류가 음식과 함께 해온 역사는 곧 이 보이지 않는 경쟁자와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경쟁자에게는 약점이 하나 있습니다. 온도입니다.
한 입 과학 — 미생물의 시계
식중독을 일으키는 세균 상당수는 사람의 체온과 비슷한 온도에서 가장 활발하게 자랍니다. 식품 안전 분야에서는 대략 5도에서 60도 사이를 '위험 온도대'라고 부릅니다. 이 구간 안에서, 조건이 좋은 세균은 20분 남짓마다 한 번씩 분열할 수 있습니다. 세균 한 마리가 20분 뒤 두 마리, 한 시간 뒤 여덟 마리, 다섯 시간 뒤에는 3만 마리를 넘깁니다. 반대로 온도가 떨어지면 이 시계는 급격히 느려지고, 영하에서는 사실상 멈춥니다. 사람이 느끼는 10도의 차이가 미생물에게는 전혀 다른 세계입니다.
방콕의 연평균 기온은 28도 안팎입니다. 미생물의 시계가 가장 빨리 도는 온도대 한가운데에 도시가 자리 잡고 있는 셈입니다. 반면 폴란드의 한겨울은 영하 안팎을 오갑니다. 11월부터 3월까지, 이 지역에서는 자연이 거대한 냉장고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그 냉장고는 공짜가 아닙니다. 땅이 얼면 아무것도 자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운 땅이 받은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음식이 몇 시간 만에 상하는 곳에서, 어떻게 안전하게 먹을 것인가.
추운 땅이 받은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다섯 달 동안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곳에서, 어떻게 굶지 않을 것인가.
더운 땅의 대답부터 보겠습니다.
첫 번째 대답은 속도입니다. 사고, 조리하고, 먹는 사이의 시간을 최대한 줄이는 것입니다. 동남아시아의 도시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시장이 열리고, 골목마다 불 앞에 선 노점이 있고, 사람들이 집 밖에서 갓 조리된 음식을 사 먹는 풍경은 이 대답과 맞닿아 있습니다. 음식을 오래 두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오래 둘 일을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두 번째 대답은 산미입니다. 라임과 타마린드, 덜 익은 망고의 신맛은 이 지역 음식의 뼈대를 이룹니다. 신맛을 내는 산은 음식의 산도를 낮추고, 많은 병원성 세균은 산성 환경에서 힘을 잃습니다. 톰얌의 시큼함, 쏨땀의 날카로운 라임 향은 입맛의 문제이기 이전에 환경을 통제하는 기술이었습니다.
세 번째 대답은 향신료입니다. 이 대답에는 흥미로운 연구가 하나 있습니다. 1998년, 미국 코넬대학교의 생물학자 폴 셔먼과 제니퍼 빌링은 36개국의 전통 요리책 93권에서 고기 요리 레시피 4,500여 개를 모아 분석했습니다. 각 나라의 기온과 강수량, 향신료 43종의 항균력을 함께 비교했더니, 더운 나라일수록 레시피 하나에 들어가는 향신료의 가짓수가 많고, 항균력이 강한 향신료를 더 자주 쓴다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마늘과 양파, 오레가노 같은 재료는 실험실에서 거의 모든 세균을 억제했습니다. 조사한 레시피의 90퍼센트 이상이 향신료를 적어도 한 가지는 썼고, 레시피 하나에 평균 네 가지 안팎의 향신료가 들어갔습니다. 향신료는 몇몇 요리의 장식이 아니라 거의 모든 부엌의 기본값이었습니다.
셔먼은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향신료를 즐긴 사람들이 더 건강했고, 더 오래 살았고, 그 요리법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었다. 맛있다는 감각 자체가 생존에 유리한 선택을 기억하는 방식이었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 가설은 아직 정답으로 굳어지지 않았습니다. 이후 여러 연구자들이 같은 상관관계가 기온보다 가난이나 보건 환경, 향신료 식물이 자라는 지리 같은 다른 요인으로도 설명된다는 반론을 내놓았습니다. 향신료가 세균과 싸웠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매운 음식의 유일한 이유인지는 여전히 논쟁 중입니다. 확실한 것은 하나입니다. 더운 땅의 부엌은 미생물과 매일, 매 끼니 협상해야 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추운 땅의 대답을 보겠습니다.
추운 땅에서 미생물은 급한 적이 아니었습니다. 급한 적은 시간이었습니다. 가을에 거둔 것으로 봄까지 버텨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땅의 사람들은 음식을 멈춰 세우는 기술을 발달시켰습니다. 소금으로 수분을 빼앗고, 유산균을 먼저 키워 산성의 벽을 쌓고, 연기와 바람으로 말렸습니다. 그 기술들의 정교한 원리는 2부에서 따로 들여다보겠지만, 목적은 하나였습니다. 오늘의 풍요를 다섯 달 뒤로 옮기는 것.
동유럽에서 이 기술이 얼마나 절박했는지는 반복된 기근의 기록이 말해줍니다. 흉년이 들거나, 저장에 실패하거나, 전쟁이 곳간을 비우면 사람들이 굶었습니다. 그래서 저장은 이 지역에서 부엌일이 아니라 집안 전체의 일이 되었습니다. 가을이면 가족과 이웃이 모여 양배추를 썰고 소금에 버무려 통에 밟아 넣었습니다. 그 계절의 노동이 겨울의 목숨을 결정했습니다. 폴란드의 오래된 시골 풍경 가운데에는 양배추를 채운 커다란 나무통 안에 사람이 들어가 맨발로 밟아 다지는 장면이 있습니다. 양배추 사이의 공기를 빼내고 소금물이 위로 올라오게 만드는 작업입니다. 공기가 남아 있으면 곰팡이가 피고, 소금물이 양배추를 덮지 못하면 썩습니다. 누가 봐도 수고로운 이 일에 가족 전체가 매달린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통 하나가 겨울 몇 주의 식탁이었기 때문입니다. 저장은 기술이면서 동시에 공동체의 연례행사였고, 한 해의 시간표가 이 작업을 중심으로 짜였습니다.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더운 땅은 서두르고, 추운 땅은 기다린다. 이 대비는 선명하지만, 선명한 만큼 위험합니다.
동남아시아도 저장했습니다. 이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저장 음식은 바로 피시소스입니다. 생선을 소금에 묻어 몇 달, 길게는 1년 넘게 발효시킨 액체입니다. 더운 땅의 사람들도 시간을 붙잡는 법을 알았습니다. 다만 그들이 붙잡아 둔 것은 한 끼의 식량이라기보다 모든 음식에 스며들 맛의 원액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2부에서 동유럽의 양배추 항아리와 나란히 다시 만나게 됩니다.
동유럽도 서둘렀습니다. 짧은 여름 동안 나는 딸기와 버섯, 햇감자는 지금 먹지 않으면 사라졌습니다. 추운 땅의 사람들도 제철의 속도를 알았습니다.
그러니 둘의 차이는 방향이 아니라 무게중심입니다. 두 땅 모두 오늘과 내일 사이에서 저울질을 했고, 기후가 그 저울의 추를 한쪽으로 기울였을 뿐입니다.
이 저울을 가장 극적으로 흔든 땅 가운데 하나가 한반도입니다. 한반도의 여름은 장마와 함께 덥고 습해서 방콕의 한낮을 닮았고, 한겨울은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지는 날이 드물지 않아 동유럽의 겨울을 닮았습니다. 한 해 안에 두 개의 질문을 모두 받은 셈입니다. 그래서 한국의 부엌은 두 개의 시계를 함께 돌렸습니다. 늦가을이면 온 동네가 모여 김장을 담가 겨울을 통째로 저장했고, 여름이면 담가 둔 장과 젓갈에 기대면서도 겉절이와 냉국처럼 그날그날 무쳐 먹는 음식을 차렸습니다. 김장독과 겉절이 그릇이 한 부엌에 나란히 놓여 있는 풍경은, 한국인이 속도와 인내를 모두 배워야 했던 땅에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이 기울기가 맛을 만들었습니다. 속도의 부엌에서는 신선한 허브와 생 라임, 방금 빻은 고추처럼 날것의 향이 살아 있는 맛이 발달했습니다. 첫 숟가락에서 모든 것이 한꺼번에 터지는 맛입니다. 인내의 부엌에서는 발효가 만든 신맛, 훈연이 남긴 깊은 향, 오래 익어 둥글어진 짠맛이 발달했습니다. 천천히 올라와 오래 머무는 맛입니다.
어느 쪽이 더 나은 맛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둘은 서로 다른 질문에 대한 정답이기 때문입니다.
음식은 결국 시간을 다루는 방식입니다. 무엇을 지금 먹고, 무엇을 나중으로 미룰 것인가. 이 결정 앞에서 인류는 늘 자기가 서 있는 땅의 온도를 먼저 확인했습니다. 한 지역의 식탁을 보면, 그 사람들이 시간을 어떻게 느끼며 살았는지가 보입니다. 오늘이 확실한 곳에서는 오늘을 뜨겁게 먹고, 내일이 불확실한 곳에서는 내일을 위해 오늘을 아낍니다.
다시 방콕의 시장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정오가 가까워지면 좌판의 얼음은 거의 녹아 있습니다. 생선은 팔려 나갔고, 상인은 물기 어린 좌판을 씻어냅니다. 오늘 들어온 것은 오늘 끝났습니다. 내일 새벽이면 트럭은 다시 얼음을 싣고 올 것이고, 시장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될 것입니다. 이 도시는 매일 새로 태어나는 식탁을 가졌습니다.
같은 시각, 폴란드의 할머니는 저장실 문을 닫습니다. 항아리 속에서는 아무도 보지 않는 사이 유산균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 양배추는 12월에도, 2월에도, 눈이 녹는 3월에도 여기 있을 것입니다. 이 집은 한 번 차려서 반년을 버티는 식탁을 가졌습니다.
하나는 매일 다시 시작하는 식탁이고, 하나는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식탁입니다. 둘 다 살아남기 위해 고안된 가장 영리한 방법이었습니다.
더위는 속도를 만들었고, 추위는 인내를 만들었고, 그 둘은 각자의 맛을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