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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cily] 미스테리한 타오르미나 레스토랑 영수증의 비밀
Culture4/30/2026

[sicily] 미스테리한 타오르미나 레스토랑 영수증의 비밀

비수기 썰렁한 타오르미나시칠리아의 둘째날이 밝았다. 어제는 새벽에 도착하여 긴하루를 보냈고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밤새 내리던 비도 얼추 멈추면서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다. 2월의 비가 그친 시칠리아 아침은 약 10도 정도로 가벼운 옷차림은 피해야했다.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주변도 돌아볼겸 이 도시를 어찌 공략해야 할지 전체적인 구도를 파악해 볼 필요도 있고. 참, 새벽 에스프레소도 빠질 수 없을 것이다.어제 호스트는 타오르미나의 공원(Villa Comunale di Taormina)을 추천했고 레스토랑도 추천했다. 레스토랑은 워크인은 안되고 예약이 필요한데 필요하면 예약을 해주겠다고 했다. 나는 굳이 내가 이미 체크해 놓았던 곳도 많았기에 건조한 답변만을 했었다. 오전 7시전에 집을 나갔다. 타오르미나란 도시는 언덕위에 작은 성처럼 오밀조밀 모여있었다. 지도를 보면서 우리가 낮에 가야할 장소들을 머리에 그리면서 다녔다. 아직은 문을 연 카페는 보이지 않았고 이곳에서 그리니따로 가장 유명한 Bam Bar는 문이 굳게 다쳐있었다. 비수기에 장기 여행을 떠난 아쉬운 장소들. 니들도 살아야겠지.그렇다. 비수기 시칠리아 아침은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는데. 생각해 보면 1년내내 365일 미어 터지는 손님을 상대하긴 힘들께다. 이들도 휴가가 필요할 것이다. 휴가는 최소 1~2달은 가는듯 싶었다. 꼭 사보고 싶었던 치즈가게(La Bottega del Formaggio)도 문을 닫았다. 이곳은 구글지도에서는 영업을 한다고 했는데 장기휴가를 떠나 있었다. 한국인 리뷰도 좋고 비싼 레스토랑에 지칠 때 동네 반찬가게에서 이것저것 샐러드나 플레이트 등을 사다 먹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아쉬움이컸다. 정원도 7시쯤엔 문이 닫혀있는데 근처에서 구수한 커피향이 났다. 7시가 넘으니 이른 카페가 문을 열기 시작한 것 같았다. 근처 카페에 가서 에스프레소보다 위보호를 위해 카푸치노와 간단한 빵을 먹었다. 주변 노동자(?)들이 가볍게 와서 커피 한 잔씩하고 가고 있었다.누가 뭐래도 타오르미나하면 하면 가장 유명한 레스토랑은 Osteria da Rita일 것이다. 구글리뷰도 훌륭하고 한국 유튜버들의 필수코스이자 현장 예약만 가능하여 긴 대기를 해야한다는 전설의 식당. 다행히 비수기에도 열심히 영업중이었다. 일단 위치를 파악하고 이따 점심에 올려고 했는데 바로 옆 뭔가 포스가 느껴지는 식당을 발견하다. 매우 모던하고 품위있어 보이고 격식을 차려서 가야하는 곳으로 보였는데 갑자기 이탈리아에서 파스타만 먹기는 아쉬울 듯하여 이곳에 꽂히고 말았다. 이름은 Bistrot du Monde. 근데 자세히보니 이곳은 호스트가 추천한 곳이 아닌가! 우리가 바로 예약해도 될 듯한데 지인찬스를 쓰면 더 잘해주지 않을까해서. 당일이었지만 이곳에 가기로 하고 숙소에 들어와 호스트에게 예약을 부탁했다. 이게 좋은 선택인지 나쁜 선택인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이 동네 가장 핫하다는 식당. 비수기에도 문을 열었지만 대기가 길지는 않았다.미스터리 영수증본 식당의 야외 좌석. 밤엔 더욱 운치있어 보인다. 계산하는 법만 빼면 말이다.오후 12시 오픈시간에 맞춰 찾아갔다. 물론 아무도 없었다. 야외에서 먹고 싶었지만 약간은 추위가 있어 안쪽으로 안내받았다. 들어가는데 직원들이 보여줄 것이 있다며 우리를 끌고 주방으로 갔다. 오늘 방금 도착한 생선들을 보여주겠다고 아우성이다. 너무 먹음직스럽지 않냐고. 사실 생선을 먹을 생각은 없었는데 저리 열심이니 안 먹을 수도 없었다. 메뉴판을 보니 오늘의 생선은 킬로당 90유로. 몇 킬로인지는 모르겠지만 5명이 먹을 수 있냐고 하니 가능할 수 있다고. 어차피 애덜은 스테이크랑 파스타를 시켜줄 생각이니 어른 3명이 먹기엔 충분하다고 한다. 어떻게 나오는지는 몰랐다. 점심이니 가볍게 화이트 와인을 추천받았다. 60유로짜리로 선택했는데 맛은 깔끔하니 생선이랑 잘 어울릴 듯 싶었다. 주방까지 끌고 들어가 보여준 생선. 이중에 뭘 먹었는지도 모르긴하다. 지금보니 민어?아이들은 까르보나라 파스타를 2개로 나워달라고 했고 안티파스타로 앤쵸비샐러드를 시켰다. 짜지 않고 상큼하니 입맛을 돋구었다. 갑자기 주방장이 헐레벌떡 나오더니 생선에 엄청난 생선알이 있다고 난리가 났다. 혹시 이걸로 파스타 먹을래 물어보는 것이 아닌가. 우린 당연히 좋다고 했는데. 이게 가격에 포함되는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1개만 주문해서 나눠먹겠다고 했다. 근데 생선알 파스타도 두 접시가 나왔다. 이것도 나눠주는 건지 두 접시 양은 상당했다. 성게알 파스타처럼 약간 비린 맛이 있었지만 걸쭉하니 먹을만했다.이제 요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첫번째 요리는 세비체처럼 올리브유에 듬북담겨 채소랑 같이 나왔는데 상큼하니 깔끔했다. 이후 생선이 통째로 나오더니 살을 바르기 시작했고 5 접시로 나눠 담아 그위에 구운 감자, 시금치빵? 두부?  등을 올린 후 소스를 뿌려서 주었다. 소스는 생선알 파스타처럼 생선알, 올리브, 과일 등을 넣고 푹 끓인 것으로 담백하고 달짝지근해서 텁텁한 생선의 맛을 잘 잡아주었다.앤쵸비 셀러드와 파스타 그리고. 이날 이후로 시칠리아에서 파스타를 먹지 않았다.파스타의 양이 대단했던지 5명이 먹어도 충분한 양이었다. 빵으로 소스 마지막까지 잘 닦아 먹고 와인도 한 병 비우니 레스토랑 주인이 인사를 하러왔다. 매우 깔끔하게 옷을 입고 맛은 어땠는지 묻기도 했다. 그리고 식당 벽에 붙은 자신의 사진을 설명했다. 본인도 해외여행을 좋아한다며 이스탄불에서 아내와 찍은 사진을 가르키며 설명을 해주었다. 때마침 아내도 식당에 들어오고 옆 테이블에서 함께 식사를 같이했다. 다른 손님들도 한 두 명씩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주인은 식당에서 식사-파스타를 먹고 있었다-를 하면서 전반적으로 식사의 맛과 서비스를 경험하고 있어 보였다.맞지도 않는 계산서는 왜 주는거니.얼마가 나올까 궁금했는데 200유로는 충분히 넘어보였다. 마지막에 아내가 계산을 하고 나왔는데 290유로를 지불했다고. 잉? 계산서를 보고 싶다고 했는데 아내가 다시 들어가 계산서를 가져나왔다. 뭔가 이상했다. 와인은 분명 60유로였는데 75유로로 써있고 스테이크는 계산서에 없고 생선알 파스타는 2개로 적혀있었다. 다시 가서 얘기할까 하다가 결국 스테이크 값을 고려하면 와인과 파스타에 붙은 금액이랑 비슷해보여 그냥 말았다. 가끔은 이들이 왜 이렇게 계산서를 엉터리로 작성했을까 고민해 보기도 했다. 291유로에서 1유로 깎아준 걸로 고맙다고 해야할까. 맛있는 식사로 이 미스테리한 의심은 접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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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cily] 라구사(Ragusa)의 맛을 찾아서
Culture4/30/2026

[sicily] 라구사(Ragusa)의 맛을 찾아서

맛에 대한 집념 - La Capinera구글의 알고리즘인지 언제부터 구글맵에서 레스토랑을 검색하여 리뷰를 보면 한국인 리뷰가 제일 높은 순위로 뜬다.한국인 리뷰는 믿음직스러울 뿐 아니라 어떤 메뉴를 먹어야 하는지까지 친절하게 안내해주는 같은 민족의 친절함과 연대의식이랄까. 나는 여행지에서 식당을 정할 때 현지에서 검색을 딱히 하지 않는다. 미리 인터넷으로 한국인 유튜버나 블로거들이 이미 검증한 식당을 표시해 두곤 하는데 그럼에도 그것 중에서만 고르는 것이 아니라 실제 동선을 통해 근처에 있는 곳들을 하나하나 클릭해 본다. 이럴경우 뜻밖의 월척을 낚기도 한다. 바로 이 식당이 그랬다.시칠리아의 식당 중에는 저녁 장사만 하는 곳도 많이 있었다. 일요일에는 많은 식당들이 문을 닫기 일 수 였는데 라구사 시골에서 일요일 문 연 식당을 찾아 헤메일 생각을 하니 걱정이 되었다. 이곳은 일요일 점심에 문을 여는 아주 소중한 공간이었다. 나의 동선상 급하게 카타니아에서 라구사에 들려 다시 노토 숙소로 이동하는 동선에서 점심을 라구사 근처에서 해야했는데 이미 표기한 식당은 비수기이자 일요일에 문을 닫는다고 해서 근처 식당을 하나하나 찍어보고 있었다. 혹시나하고 찍어본 식당은 La Capinera. 라구사 한적한 외곽에 위치한 곳이었는데 구글평점이 4.5점이나 됐고 일요일 점심 영업을 한다는 것이 아닌가. 시칠리아 전통 식당으로 보였는데 매우 세련되어 보였다. 그리고 리뷰에서 발견한 단 한 명의 한국인의 극찬. 지금도 리뷰에 있는 그의 코멘트는 너무나 믿음직스러웠다.리뷰를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찾기도 매우 어려웠다. 차 한 대 간신히 들어갈만한 내리막길에 여기가 맞나 하고 들어간 곳에는 이미 주차한 차가 여러대였고 식당은 매우 고풍스러웠고 실내는 매우 넓었다. 우리는 거의 오픈과 동시에 예약없이 들어갔는데 주인이 매우 난감해 하고 있었다. 이 넓은 곳이 거의 예약으로 가득찬 것으로 보였다. 그럼에도 주인은 우리에게 자리를 만들어 주어 안내하였다. 놀라웠던 것은 이곳은 이 동네에서 가장 핫한 식당으로 보였고 입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정장이나 맵시를 뽑내면서 들어오고 있었다. 마치 대가족이 일주일에 일요일에 모여 가족 식사를 하는 모습이었다.갈증이 나서 맥주를 시켰는데 시칠리아에서 메시나 맥주와 쌍벽을 이루는 'Seme dorato' 맥주가 나왔다. 무난하고 청량한 맛이었다. 시칠리아에서는 대부분 (소금맛) 메시나 맥주를 마시라고 들었는데 식당에는 이 맥주도 점유율이 높았던 것 같다. 안티파스타를 고민하다 시칠리아 전통 세트 메뉴가 있어 주문했다. 이름하야 '시칠리아 시골 음식 혼합 샘플러'. 다양한 맛을 간단하게 맛보는 것이 좋았다. 콜드 컷 살라미류와 수제 잼과 함께 나온 치즈 그리고 가지나 시금치류를 케이크형태로 만들거나 깊게 조려 파이 형태로 먹기 좋게 구성했다. 문어 스테이크 밑에 샐러드가 함께 나왔는데 드레싱이 보라빛으로 상큼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일요일 점심에는 피자는 안된다고 아마도 손님이 많아서 그런듯 보였다. 웃긴 것은 아이들이 몇 일 파스타를 먹었다고 파스타는 절대 안 먹겠다고 선언하는 바람에 탄수화물이 아닌 단백질을 취하기로 하여 바베큐류를 시켰다. 진짜 아일랜드산인지는 모르겠으나 토마호크를 킬로 단위로 시켰고 이외 양고기 스테이크와 등심 스테이크까지 주문했다. 양고기에는 약간 냄새가 나긴 했다.어느새 식당 안은 만석이었고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면서 느꼈던 점은 이 동네분들은 레드와인 한 잔씩을 마시며 식사를 하는데 식구들이 와인을 몇 병째 까는 가족은 보지 못했다. 점심엔 이들도 간단하게 마시나 보다. 이들은 간단한 안티파스타와 다음 코스로 파스타류를 많이 드셨다. 거하게 스테이크를 산처럼 쌓아놓고 먹는 가족은 없었는데. 대부분 2대에서 3개 가족들이 함께 있었고 자리를 비운 가족들을 보니 밖에서 모두가 담배를 피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 사진은 홈페이지와 구글맵 리뷰에서 퍼왔습니다맛있는 아몬드 파르페 디저트와 에스프레소를 먹었는데 에스프레소는 따로 돈을 받지 않았다. 나중에 계산을 했는데 자리세(Coperto)가 인당 2.5유로였고 5인 가족 총 200유로정도가 나온 것 같다. 중소도시라 그런지 거하게 스테이크류를 많이 먹었음에도 음식의 단가는 높지 않았다.La Capinera          C.da Arancelli, SS194, 97100 Ragusa 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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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cily] 시칠리아 와인에 대한 기억
Culture4/27/2026

[sicily] 시칠리아 와인에 대한 기억

반전의 시칠리아 와인나는 와인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엄청난 전문가는 아닌 것 같고. 난 와인으로 유명한 산지로 여행을 다녔다. 그동안 다녔던 프랑스 보르도, 스페인 리오하나 리베라 델 두에로, 이탈리아 키안티, 몬테풀치아노 등 토스카나와 바롤로 같은 북쪽 지방 등. 와인을 찾아 애덜을 앉고 업고 다녔다. 그러다 이탈리아를 좋아하게됐고 올해 쉽게 가기 힘들 것 같은 시칠리아 섬으로 여행지를 정했을 때 와이프는 거기 와인도 유명하냐고 물어봤다. 와이프는 술을 거의 마시지 못 했으나 결혼 이후 술이 조금 늘어 와인 반 잔 정도를 마시면 취하는 가성비 좋은 사람이다. 허나 시칠리아를 정한 건 사실 와인 때문이 아니라 풍성한 식재료와 광활한 자연이 좋았을 뿐. 시칠리아 와인을 접해 본 적은 없었다. 오히려 남쪽의 습하고 더운 지역이라 내가 싫어하는 드라이하지 않은 와인일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해 보기도 했다.비수기 와이너리 투어가 좋은 점은 관광객이 적거나 없어 스폐셜 경험을 할 수도 있다는 건데. 나의 최애 와이너리인 스페인 리베라 델 두에로에 위치한 'Emilio Moro'을 잊을 수 없다. 예약도 없이 그냥 구경이나 해볼량으로 문을 열고 머리를 빼꼼 내밀었는데 담당자가 놀라는 것이다. 어떻게 왔냐고 해서 걍 구경이나 해볼까 해서 왔다고 했다. 보통 와이너리 투어 예약을 하면 소요시간은 1시간 정도이고 30유로 안팎의 투어비에 마지막 3~4잔을 시음할 수 있다. 난 특히나 오크통 저장공간이나 포도밭 투어는 사실 힘들기도 하고 거기서 거기 같아서 바로 시음하는 것을 원하기에 최근에는 예약보다는 그냥 예약없이 Shop으로 바로 가서 시음하는 것을 선호했다. 담당자는 처음엔 당황하다가 들어오라며 인생 와인이 된 'Malleolus'를 맛보게 해주었다. 생전 그런 향은 처음 맡아봤다. 가죽, 후추 그리고 담배(?) 향이 뒤섞인 그 특유의 고급스런 향이었다.비수기에 이 모든 시음이 꽁짜였다.와이너리 투어의 꽃은 해당 와이너리에서 운영하는 호텔 숙박 또는 그들의 레스토랑에서 와인페어링하며 먹는 식사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뭐 수익을 바라지 않는 사업을 없겠지만은 진정 본인들의 와인 스피릿(?)에 가장 적합한 식사나 건축을 보여주는 경험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이번 시칠리아 여행에서는 와이너리 식사를 예약하고 싶었고 검색을 하고 있었는데 글쎄 2월에 문을 아예 닫아서 예약을 받지 않는 와이너리들이 많았다. 순간 당황했는데 시칠리아를 대표하는 와이너리로 화산섬인 에트나 화산 근방에 대표 와이너리는 3곳정도로 추려볼 수 있었다. 'Donnafugata', 'Tenuta', 'Benanti'. 시칠리아 서쪽지방에도 와이너리들이 많이 있긴 했는데 동선상으로 애매했고 더군다나 찾아보니 마르샬라 지역 주정 강화 와인이 유명했는데 나는 이런 강한 도수의 '포르투 와인' 스타일의 걸쭉한 와이도 별로 였기에. 특히나 포도밭에 화산재의 역학 관계가 궁금하기도 했다.  이들 중 순서대로 들어가다가 2월 예약을 받는 와이너니에 예약하게 되었는데 그곳은 'Benanti' 와이너리. 점심 식사와 와인페어링은 90유로에서 200유로까지 종류가 있었는데 난 그 중간인 120유로 상품을 예약을 했다. 와인 없이 그냥 식사만 하면 60유로였다. 우린 어른3명에 아이2명이었는데 어른 1명은 운전을 해야했기에 풀코스는 2명으로 예약했다. 총 420유로였고 당일 취소는 안된다는데 결재를 하지 않았는데 노쇼 수수료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몇 가지 궁금증이 있어서 메일로 문의했는데 답변이 2월초에 와서 의아했는데 이곳도 1월에는 문을 닫았다가 2월초부터 다시 오픈하여 답변이 늦었다고 알려왔다.와이너리는 에트나 화산 아래에 위치해 있었는데 에트나 화산을 한 번 경험코자 올라가다가 활화산이란 소식에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가지 말자고 울려고까지 했다. 자욱한 안개에 매우 위험해 보이기도 하여 차를 돌릴 수 밖에 없었다. 한 시골 마을에 위치했던 와이너리는 구글 네비를 찍고 갔음에도 입구가 너무나 작고 도로변에 위치하여 몇 번을 돌다가 간신히 발견했는데 들어가선 본 풍경은 너무나 고즈넉했다.원래 일정은 13시30분에 시작하여 2시간 코스였는데 우리는 이보다 앞선 13시전에 도착하게 되었다. 주변을 둘러보다가 대기실에 앉아 있었는데 잠시만 기다리라고 화이트와인과 아이들을 위한 음료를 내왔다. 혹시나 했는데 해당 프로그램에는 우리 가족만 참여하게 되었다. 배가 고픈데 포도밭 투어를 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우리 표정이 너무 배고파 보여 바로 식사를 시작하겠다고 했다.와인은 순서대로 5가지로 페어링하는데 첫번째 스파클링 와인은 치즈와 햄으로 구성된 플레이트로 시작되었다. 설명은 본인을 이 와이너리 가문의 아들이라며 매우 자랑스러워하던 남자였다. 특히 치즈는 3가지가 나왔는데 염소젖으로 직접 만든 치즈로 1년, 2년, 5년 치즈를 맛볼 수 있게 해주셨다. 치즈가 오래될수록 진하고 향도 녹진한 것이 오래된 치즈가 왜 맛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더군다나 이곳에서는 쓰는 식재료는 모두 근처 또는 직접 농사짓는 것들이라니 시칠리아에서 맛 본 음식들 중 단연 최고일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도 지루하지 않게 설명을 해주셨고 아이들을 위한 쥬스와 햄을 따로 준비해 주시는 등 배려해 주셨다. 가지를 좋아하지 않는 우리들도 이들의 가지요리 '카포타나'가 이렇게 맛있는건지 처음 알았고 돼지구이인 '포르케타'는 레드와인과 마셔야 한다는 등 설명을 이어갔다. 특히나 2병의 레드 와인이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숙제를 내주시고 잠시 휴식 시간을 갖는 등 식사 시간 2시간이 금방 흘러가고 있었다. 레드와인의 미세한 차이. 그리고 와인이 열리면서 맛의 차이가 어떻게 변하는지까지 완벽한 체험을 경험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와인은 현지에서 가장 맛있을 때 먹는 것이 최고가 아닐까. 마지막에 손수 만든 시칠리아 전통 디저트와 디저트 와인까지 페어링하고 마지막에는 자칭 '미슐랭 출신'이라는 세프들까지 나와서 인사해 주셨다. 와이너리 투어는 사양했는데 마지막 코스는 와인샵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식사비와 와인 구입비로 엄청난 금액을 썼지만 시칠리아에서의 경험 중에 최고였다고 말할 수 있었다.시칠리아 네추럴 와인의 정신검색을 하다보면 팔레르모에 유명한 네추럴바(dal Barone)가 있다고 해서 지친 몸을 이끌고 가보았다. 네추럴 와인은 나도 그리 익숙하지는 않다. 나는 안정적이고 가격이 합리적인 일반 상업적 와인을 더 선호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일단 주인에게 와인 추천을 요청했고 이미 저녁 식사를 하면 한 병을 먹고 왔기에 가벼운 화이트 와인으로 요청했다. 첫 와인은 매우 샤우어한 와인이었는데 이 와인도 맛이 나쁘진 않았다. 두 번째 추천한 와인이 너무도 괜찮아서 한 병(24유로정도했다) 사오기까지 했는데 너무 괜찮아서 다음날 해당 와이너리를 찾아가려고까지 했다. 비가 추적추적오던 팔레르모의 작은 골목길 차가운 겨울밤에도 와인마니아들은 야외 좌석이 꽉찰만큼 분위기있게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와인의 맛은 거칠지만 이들의 마음은 뜨거워 보였다. 매일매일 하루에 와인 1병을 먹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1주일정도 지나면 몸에서 잘 받지 않는다. 그럼에도 현지의 저렴한 와인을 놓치고 갈 수도 없으니 어찌하란 말인가. 아그리젠토에 가다가 점심시간이 되어 근처 시골의 한적한 식당(사실 미치 찾아 놓긴 한 곳)에 들어가 이 집에서 제일 좋은 와인을 추천해 달라고 했는데 한동안 고민하던 주인은 20유로짜리 귀한(?) 와인을 추천해줬는데 그 맛이 상상을 초월하는거다. 여행에서 우연하게 맞나는 새로운 와인은 날 언제나 행복하게 만든다. 이후 아그리젠토 와인도 믿음을 갖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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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4/23/2026

[sicily] 오래된 건축물을 어떻게 보존하고 활용하는가

자연의 재료 - 돌로 만든 집난 건축쪽 종사자는 아니나 주거 생활에 관심이 있기에 정리차원에서. 우리는 수백년에 걸쳐 목재 위주로 건축하여 거대한 건축물(성 빼고)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유럽의 주요 거주형태는 석축이기에 몇 백년 동안 유지될 주거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층고가 높았던 카타니아 주택이번 여행에서 주로 도시의 중심지+주차장보유로 숙소를 정했는데 주택들도 대부분 100년은 족히 넘은 집들이었다. 특히, 카타니아의 집은 층고가 매우 높았는데 아마도 에어비앤비(?)를 하면서집의 일부를 복층으로 만들어 방과 욕실을 추가한 것으로 보였다.특히, 팔레르모의 주택은 큰 대문을 통해 들어가면 중앙에 주차장이 있었는데 예전엔 정원이 놓여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주차장으로 큰 대문은 예전에 마차가 지나가야해서 2층 높이로 크지만 사람이 지나는 문은 한쪽에 작게 나아 있었다. 대부분의 집 앞에는 ‘Palazzo’라는 문패가 걸려있었는데 이는 왕궁 근처 귀족들이 살던 곳으로 한때는 궁이었을텐데 현재는 하나의 주택을 최소 8개로 쪼게어 8가구가 쓰고 있는 다세대(?)주택으로 변모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중 몇몇 집은 주인이 살던 큰 방을 가지고 있을테고 다른 가구는 하인(?)이나 일꾼이 쓰던 방이었을텐데. 이곳도 리모델링을 하면서 화장실이나 방들을 추가로 공사한 흔적이 많았다. 일부 저렴한 에어비엔비의 오래된 주택을 보면 싱크대와 화장실이 함께 있는 곳들도 보이는데 이는 아마도 수전 등 수도를 분배하는 공사가 어렵거나 오래되어 쉽지 않음을 알 수도 있다.여름의 시칠리아는 매우 더운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기후는 그늘에서는 시원하거나 서늘한데 우리는 더울수록 창문을 열지만 유럽 특히 시칠리아는 창문을 닫고 돌집으로 들어간단다. 에어컨도 없는 곳에서는 창문에 햇빛 가리게까지 닫고 나면 나름 시원했다고 한다. 시칠리아 주택들의 대부분의 창문에 나무로 된 햇빛차단 가리게가 달려 있는데 단순 프라이버시를 위한 것만은 아니라고 한다.단열재가 없는 나라지중해의 도시이자 아마도 영하로 내려가지 않을 시칠리아에는 단열재라는 것을 쓰지 않을 것이다. 겨울의 시칠리아는 내가 여행했을 때 영상 15도정도 됐지만 겨울의 시칠리아는 습하고 으슬으슬했다. 햇빛이 비치는 15도는 반팔도 가능했지만 그늘에 들어서면 서늘했다. 특히 밤이나 새벽에는 10도 이하로 떨어졌는데 쉽지 않았다. 우리는 작은 전기장판과 핫팩으로 무장했는데 당연하게도 온돌은 존재하지 않았다. 겨울는 일명 ‘라디에이터’가 설치되어 있거나 온풍기 겸용 에어컨이 설치되어 뜨거운 바람으로 난방을 하니 실내는 매우 건조했다.예전에 귀족의 중정이었을 팔레르모 주택특히나 팔레르모 숙소에 도착했을 때 주인장이 “내가 너희들을 위해 따뜻하게 보일러 켜 놓았어!”라고 얘기해서 기대했으나 너무 썰렁하여 온도를 보니 ’21도’로 맞춰놓았었다. 그들은 21도가 매우 높다고 생각하나 본데 우리집 겨울 보일러 온도는 평균 26도(우리집 보일러 안틀어도 의외로 따뜻하다). 근데 이놈의 시칠리아 보일러는 아무리 높혀도 24도를 넘어가지 않는다. 물론 한겨울에도 반팔로 생활하는 우리는 좀 더 에너지를 절약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극기훈련을 한 듯한 노토의 집이번 여행에서 한 번은 도시를 벗어나 자연속에서 편안한 일상으로 생활할 집을 구했다. 예전 아그리투리스모 같이 오래된 성이나 고택을 경험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더욱 춥고 고생이었지만 지나고 나면 추억이었었다. 이번에도 그 고생을 기억하지 못하고 추억만 생각했다가 매우매우 당혹스러운 상황을 맞았다.노토(Noto)로 검색했지만 결국 노토와 40분 떨어진 산 꼭대기였고 어느 정도 올라가니 포장된 길이 아닌 돌길(아마도 이때 타이어가 찢긴게 아닐까 한다)이 쿵쾅쿵광. 숙소에 근접하자 전화기 신호음이 잡히지 않는 산속이었다. 그리고 도착한 집엔 소와 말들을 풀어놓고 기르고 있었다. 산속에 올라오니 무지 춥고 무서웠다. 주인장에게 가장 먼저 난방을 물었는데 벽난로를 가르킨다. 아. 거실이야 그렇다치면 방은? 주인장은 방문을 열어 보였다. 문을 열고 있으면 거실의 열기가 들어간다고. 가족들의 일그러진 얼굴이 선명했다. 이곳은 태양열로 전기를 만들기에 밤에는 특히나 전기를 아껴야 한다고 했다. 세탁기나 식기세척기가 있긴하나 대낮에 햇빛이 잘 드는 날에만 사용가능하다고 했다.바닥은 돌이고 인터넷 및 TV도 안되고. 전화도 안되고 불빛은 어둠컴컴하고 너무너무 춥다. 환경운동가의 집처럼 쓰레기를 타는 것과 타지 않는 것으로만 분리한다고 했고. 이 집도 백년은 족히 넘는 한때 마굿간(?)으로 쓰던 곳을 리모델링하지 않았을까 했다. 다행히 뜨거운 물은 나왔는데 3명이 연속으로 사용하지 않도록 조심했다. 우리는 밤늦게까지 벽난로 앞에 앉아있었다. 언제나 유튜브나 SNS을 보곤했던 우리 가족은 멍하니 벽난로 불멍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아이들이 불놀이하는 것은 좋아한 것 같다. 밤에 씻는 건 불가능했다. 첫 날은 악몽이었고 그냥 나머지 숙박을 포기하고 떠나려고 했는데. 둘째날은 적응이 됐는지 나쁘지 않았다. 밤하늘 별빛은 반짝였고 이틀간의 전화와 인터넷이 없는 세상은 또다른 세상이었다. 옆에 살던 주인장은 프랑스 사람이었다. 매우 건강하게 보였다. 인터넷이 터지지 않아 떠날때도 인사도 못했네. 불편하면 왓츠앱으로 연락하라고 했는데 연락이 되야 말이다. 이곳을 떠난 후 1주일 이상까지 외투에서 장작의 그을린 스모크향이 계속 됐다는 슬픈 얘기가.세컨하우스 전문 타오르미나시칠리아의 꽃이라는 타오르미나 주택에서도 2박을 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발코니. 물론 겨울이라 한 번 앉아보지도 못했다. 비교적 최근에 지은 집으로 추측되면서 철근콘크리트가 아닐까 생각된다. 바다를 향하여 많은 주택들이 즐비해 있었는데 한겨울 불이 켜진 집은 주변에 우리집 뿐이었고 대부분은 사람이 안 사는 것 같았다. 이 모든 집들이 세컨하우스로 에어비앤비를 운영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아마도 차없이 타오르미나를 온다면 버스나 기차역에서 이 동네까지 걸어서 올텐데 큰 언덕(?)이나 계단은 없을 수도 있지만 바닥이 돌이라 큰 가방은 무척이나 바퀴에 충격은 가해지겠다. 노출배관 팔레르모 몬레알레 대성당 이미 수백년전에 건축된 유럽의 성당은 언제나 황홀하다. 많은 유럽의 성당을 다녀봤지만 이렇게 화려하고 웅장한 성당을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언제나 궁금했던 오래된 건축물에 전기나 수도 및 난방은 어찌하는지 늘 궁금했다. 몬레알레 대성당에서 눈으로 그 현장을 본 것 같다.수도와 같은 배관이 천장 등지에 노출형태로 놓여있었다. 아마도 나중에 수도를 넣어야하니 현대와 같은 벽체 일체형 배관은 아니였겠지. 보기에 흉하지 않고 이탈리아스럽게 예쁘게 노출되어 있었다. 겨울에 영하로 떨어지지도 않으니 얼어서 터지지도 않겠지. 전기배선도 지붕이나 외부로 둘러서 놓여있었는데 막히거나 끊어져도 수리하고 보완하는게 수월해 보이기도 했다.별 대단한 글은 아닌데. 건축이나 주거는 그 나라의 역사나 환경을 말해주겠지? 이탈리아의 풍부한 돌을 사용한 흔적을 많이 보았다. 아마도 주변의 자연을 활용한 건축을 추진했을텨. 우리처럼 모든 재료를 다 수입에 의존하지 않는 점은 부러웠고. 우리에게는 춥고 불편하게 보이는 그들의 주거 생활도 나름의 이유와 어쩌면 이제는 나름 편안한 상태로 바뀌어 있을수도. 그럼에도 우린 30년만 지나면 재건축에 난리인데 수백년간 수리하고 관리하면서 건물을 잘 보존하는 그들이 대단하게 보였고 어려서부터 예술적이고 낭만적인 건축물을 보고 자란 이유로 세계적인 건축가를 지속적으로 배출하는 이탈리아의 힘을 봤다면 오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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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cily] 팔레르모 운전해 봤니?
Culture4/21/2026

[sicily] 팔레르모 운전해 봤니?

2월인 지난주 약 10일간 시칠리아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가장 매력적인 도시를 가장 매력없는 비수기 겨울에 다니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얘기해 보고자 한다. 도시별이 아닌 몇 가지 주제별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첫 번째 주제는 운전편. 우리는 카타니아 공항에서 픽업하여 팔레르모 공항에서 아웃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이미 다녀온 분들을 통해 시칠리아 운전에 대해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렌터카 운전이 초보자들에게 어렵다. 큰 차로 다니면 힘들다. ZTL 철저 준비해야 한다 등등이었다.1. 차선과 신호등이 없는 혼돈의 팔레르모한국에서 이미 운전은 산전수전 다 겪어봤고 유럽 렌터카 운전 및 이미 이탈리아 운전도 해봐서리 딱히 걱정은 안했는데. 팔레르모에서 털릴 줄 몰랐다. 제일 마지막 아웃 도시로 팔레르모를 선택했고 가장 큰 도시라 문명의 이기 및 도시의 안락함을 선사할 줄 알았는데 내 정신을 쏙 빼먹었다. 2월의 시칠리아는 오후 5시면 깜깜해지고 이후 퇴근 시간까지 겹쳐 트래픽이 장난이 아니였다. 찻길은 도로에 움푹 파인상처 난 길들이 즐비하여 차가 계속 쿵쾅거렸다. 찻길엔 딱히 차선은 없었고 큰 길이 아니면 신호등은 없었는데 각종 골목에서 쏟아져 나오는 자동차들이 서로 엉켜 난장판이었고 자동차 전용도로까지 오토바이들이 난데없이 출몰하는 가운데 일반 도로에선 사람들이 갑자기 튀어나오기도 했다. 처음엔 오히려 흥미진진하게 K운전의 실력을 보여주겠다며 양보의 미덕을 보여주기도 했으나 에어비앤비 주인장의 짜증 섞인 메시지(약속시간보다 1시간 반이나 늦었다)와 도무지 앞으로 갈 것 같지 않는 체증에 에라 모르겠다며 머리 내밀기 기술을 시전 하며 빠르게 전진하였다. 우회전 도로에 서있다가 뒤에 트럭이 너무나 빵빵거리는데 한국 같으면 버티겠으나 뭔가 이태리는 다른가 하면 슬며시 비켜주는데 엄청난 욕을 해대며 지나간다. 도로엔 딱히 카메라는 없어 보이니 무법이 따로 없어 보이긴 했다. 도시 중심가를 벗어나 숙소 근처로 오니 이젠 주차와의 전쟁이었다. 골목 하나하나 차 한 대만 들어갈 정도의 공간에 한쪽의 일자 주차가 들어져 있었다. 뭐 주차는 나의 특기 중 하나니 크게 게의치는 안았다. 숙소에 도착해서 갑자기 긴장이 풀리면서 피로가 몰려왔다. 밤이라 시야가 좁고 신경을 많이 써 더욱 스트레스를 받은 듯싶었는데. 누구에겐 도전해 볼 만한 경험.이 정도 도로는 양반이다2. 큰 차도 전혀 문제없음많은 블로거/유튜버들이 시칠리아 운전에서 큰 차는 불편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래서 고민했으나 우리 가족은 캐리어만 5개가 넘었기에 JEEP 7인승 SUV를 빌릴 수밖에 없었고 약간 긴장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에어비앤비 숙소의 리뷰엔 큰 차는 주차가 힘들다는 의견 또한 많아서 주인장들에게 미리 연락을 취했는데 한결같은 대답은 '함께 노력해 보자'는 답변이었다. 특히, 타오르미나의 산등성 숙소 주차장은 경차만이 주차가 가능하다는 리뷰가 많았는데 실제 도착해서 보니 언덕길에 작은 주차장에 차를 넣는 난이도가 있을 뿐 SUV 7인승을 넣기에 적지는 않았다. 단지, 뒤 트렁크를 열 공간이 없어서 미리 짐을 빼고 주차를 해야 했고 2층까지 무거운 짐을 들고 올라가는 건 애교. 팔레르모 숙소도 큰 차는 주차가 안된다고 했고 주인장도 집 내부가 아닌 외부 주차장을 소개해줬는데.나 : 알겠어. 근데 우리 마지막날 비행기가 오전 일찍이라 아침 7시 전에 출발해야 하는데 외부 주차장에서 차 뺄 수 있음? 거기 사람 나와 있음?주인장 : 사람이 없을 수도 있겠네. 마지막날은 집 마당에 주차해.나 : (그럼 왜 외부에 주차하라고 했을까나)공간이 있다면 모두 주차 구역으로 봐야한다.사진에서 처럼 주차를 하는데 문제는 없었다. 에어비앤비 숙소 선택 시 필터로 무료 주차장 보유를 기본으로 골랐다. 카타니아 역시 주차 문제가 심각했는데 체크인 전 주인장에게 주차 방법을 문의했는데 메시지를 보내왔다. 나중에 예약한 집 주소랑 주차장 집 주소가 달라 혹시 다른 예약으로 착각했나 문의했으나 주인장이 개인적으로 확보한 주차장으로 안내를 한 것으로 숙소와는 약 2~300미터 떨어져 있었으나 쾌적하게 주차할 수 있었다.3. ZTL은 할만한가 이탈리아 운전에서 가장 어렵다는 ZTL에 대해서는 이전 글에서 한 번 소개한 적이 있다. (이전글) 물론 아직 귀국한 지 며칠 되지 않았기에 언제 벌금 고지서가 날아올지 모를 일이긴 하다. 시칠리아에서 예약한 숙소 중 2곳이 ZTL 안 쪽에 있어 미리 주인장에게 ZTL 등록을 요청했는데. 타오르미나의 경우 주인장은 "실제로 ZTL은 작동하지 않으니 걱정 말라'라고 답했다. 잉? ZTL이 작동하지 않는 도시가 있다니. 찜찜했지만 괜찮다는데 어찌하겠는가. 그래서 타오르미나는 에라 모르겠다고 하고 마구 구석구석 다닌 것 같다.팔레르모 ZTL 등록서류팔레르모는 주인장에게 당일 오전에 차 번호를 알려주니 바로 등록했다며 15유로를 요구했다. 하루에 5유로 3일간이다. 근데 서류에는 6유로라고 나오는데. 시라큐스 오르티지아섬은 섬 내부가 대부분 ZTL이기 때문에 사전에 블로거들이 추천한 주차장이 유용했다. 특히 시칠리아 유료 주차장엔 이상한 아저씨들이 돈을 요구하고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타이어를 펑크 낸다는 댓글도 있어 긴장했는데 다행히 그런 아저씨들은 보이지 않았다. 주차장이 좀 외지고 실내라서 밤엔 좀 무서울 수도 있을 것도 같다. 그럼에도 바로 앞에 전 세계 방문객이라면 모두 다녀간다는 보더리 샌드위치(Caseificio Borderi) 가게가 근접해 있어 행운이었다.4. 비수기의 주차는 행운우리의 여행은 비수기라 어떤 주차장을 가도 주차하는데 문제는 없었다. 성수기 시칠리아의 주차 전쟁은 엄청나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럼에도 블로거들을 믿고 너무 안전한 주차장만을 찾아다니다 일부 도시에서는 너무 멀리 주차를 한 경우도 있었다. 사실 이탈리아의 주차장은 파란색 주차라인은 유료로 비용을 지불하고 주차를 하면 되는데 비수기에는 원하는 곳까지 근접하여 주차를 할 수 있을 듯하고 특히나 최근에는 'EasyPark'이란 앱이 있어서 이를 설치하여 유료주차 후 주차장 넘버만 입력하면 대부분 앱으로 결제가 가능하고 시간 조절도 가능하여 매우 편리하게 주차할 수 있었다.노토 숙소 도로. 100여 마리의 양 수를 셀 수 밖에 없었다.비수기 여행의 장점은 어디를 가도 붐비지 않고 어떤 식당을 가도 워크인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나 단점은 대부분의 식당이나 시설들이 휴가 중이거나 휴무인 경우가 많았다. 특히나 타오르미나 이솔라벨라로 가는 케이블카도 운행을 하지 않았다.5. 렌터카 반납 때 삥 뜯기 썰긴 여행을 마무리하며 9시 반 비행기를 위해 팔레르모 공항에 차를 반납하러 갔다. 나름 연료도 가득 채웠고 풀 보험을 들었다고 생각했다. 허나 가장 신경을 쓰이는 것은 노토 산속 숙소에 들어갈 때 길이 너무 좁은데 앞에 차가 와서 벽 쪽으로 차를 붙였다가 나무에 차옆을 쫙 긁힌 것이었다. 나무가 어찌 금속을 그리 긁어대는지 지금도 이해는 안 되나 열심히 헝겊으로 닦으니 좀 지워지는 것도 같았다. 문제는 팔레르모 AVIS 렌터카 구글 리뷰를 읽어보니 2명 중 1명은 이런저런 트집으로 돈을 뜯겼다는 얘기가 많았다. 흠집 난 것으로 1300유로를 토해냈다는 글. 가장 적은 것은 350유로였다. 연료는 오는 동안 풀에서 약간 눈금이 떨어져 있었다. 예전에 가득 안 채웠다고 50유로를 뜯긴 적이 있었는데 팔레르모 공항 가는 데에는 주유소가 없었다. AVIS 운영 시간이 오전 8시라 난 차를 던지고 무인키 반납을 이용할 참이었는데. 오전 7시 도착했는데 마침 직원이 딱 출근하는 게 아닌가.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아저씨. 타이어가 찢겼단다. 잉? 아니, 차를 처음 받을 때 타이어까지 꼼꼼히 보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나. 그러나 노토의 그 돌산을 지날 때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흠집은 넘어갔는데. 연료는 돈을 받아야겠단다. 우리는 풀보험을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든 보험은 "1800유로가 넘어갈 때 지원이 되고 그것이 안 넘으면 우리가 부담해야 한다"는 보험이었다. 보험은 와이프가 들었고 와이프도 자세히 보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 그들이 청구한 금액은 얼마냐? 타이어 235유로+연료 안 채운 거 15유로 해서 총 250유로. 난 흠집 난 거 넘어간 것이 행운이라 생각되고 타이어는 사실 시칠리아 운전이 터푸하고 도로도 음푹 파여 있어 흔하게 일어나는 것 같긴 한데. 액땜한 것으로 보고 금액에 합의했다. 지나고 보니 빨리 차를 버리고 싶었던 이유도 있었던 것 같았다.아몰라. 시칠리아에서는 흔한 일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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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제집] 챌린지가 아닌 힐링이 될 수 있도록 - 아이들이 무엇을 느꼈을까
Culture4/10/2026

[판제집] 챌린지가 아닌 힐링이 될 수 있도록 - 아이들이 무엇을 느꼈을까

사실 제주도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있었다. 그건 바로 아내의 공감과 승낙이었다. 아내는 언제나 나를 존중하면서 많은 부분 동의해 주었지만 제주 건축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당장 그 많은 건축비는 어떻게 충당할 것이며 설령 집을 짓더라도 내려가서 살지도 않을 텐데 왜 무리를 해서 추진하느냐였다. 사실 아내의 동의 없이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나는 나의 바람이자 로망의 실현임을 설득했는데 아내는 그건 알겠는데 그걸 지금 당장 추진하는데 회의적이었다. 나는 아내와 제주 땅에도 가보고 가족 제주 여행 때 관련자들도 만나면서 차근차근 마음을 열도록 하였다. 나중에 아내에게 언제 건축에 대해 마음을 열었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몇 년 전 건축에 대해 물어보려고 아이들과 함께 옆집에 방문한 적이 있잖아. 거기에 쿠팡 배달이 오고 유치원 통학차량도 오는 것을 보고 여기가 오지는 아니구나 싶어서 집을 지어도 될 것 같다고 생각했어”때로는 작은 사유 및 현장감이 타인의 마음을 바꾸는데 의외의 역할을 할 때도 있다. 아내에게 역할을 부여했다. 나는 전체적인 콘셉트와 인허가 그리고 공사비를 담당하고 세부 디테일한 부분은 아내에게 일임했다. 특히 인테리어에 대한 부분을 전적으로 일임했는데 아내는 마다하지 않았다. “블랙계열의 차가운 느낌보다는 따뜻한 밝은 색깔의 인테리어나 가구가 좋을 것 같아. 비용 이슈도 있으니 전체는 아닌 일부 포인트에는 좋은 원목을 사용했으면 해. 당신의 로망인 자쿠지는 관리 이슈로 히노끼를 깔 수는 없을 테고 이태리제의 히노끼 스타일 타일을 깔아주도록 하지. 힐링의 최고봉인 1인 암체어는 어떤 제품으로 할까. 한정된 예산에서 가장 알맞은 제품을 찾아봐야지!”외국계 IT 기업을 다니고 있는 아내는 여기에 ‘사물인터넷 (IOT)’ 기능까지 도입하여 서울에서도 집을 제어할 수 있는 부분까지도 고민을 하였다. 아무래도 세컨드하우스가 된다면 원격으로 방범, 온도, 습도 등 공간을 원격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었는데 이 부분도 나보다 훨씬 뛰어났다. “중국산 제품들은 가격은 저렴하지만 우리나라 규격이나 시스템 연동에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 그래서 국내 업체를 찾다가 괜찮은 업체가 있어서 장비 협찬을 해달라고 요청해 놓았어!”아내는 이를 위해 부랴부랴 공간에 대한 우리 인스타 계정을 개설하여 집 짓는 과정을 업데이트하기로 했다. 당시 팔로우 숫자는 한 자리 숫자였는데. 기대했던 협찬을 이뤄지지 않아 실망한 기색이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전투적인 모습은 결혼 전에만 볼 수 있었는데 그 모습으로 변신하기도 했다. 아내 회사는 당시 스트레스 강도가 높아진 듯 보였다. 많이 지쳐 있다 생각했는데 인테리어 관련 자료 수집이나 검토 때는 눈이 반짝거렸다. 많이 피곤해도 알맞은 콘셉트이나 자료를 검색할 때는 밤을 새우기 일 수였다.고통스러울 것 같고 멀게만 보였던 제주의 프로젝트가 점점 구체화되어 가면서 우리는 이것을 통해 감히 해방감과 힐링을 느낄 수 있었다. 생활의 각종 현실에서 미래의 우리 보금자리를 꿈꾸며 설계하는 순간엔 다른 어느 걱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우리 집은 EBS의 ‘건축탐구 집’을 보고 건축 기법과 인테리어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것이 일상이 됐다. 건축 비용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유튜브에는 스스로 집을 수리하고 작은 공사도 구체적으로 할 수 있게 하는 동영상이 넘쳐나고 있다. 외장재 시행은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 단열재는 일체형인지 분리형인지. 전혀 몰랐던 건축기법 등을 우리 설계도와 비교하면서 무엇이 최신 트렌드인지도 비교해 보았다.  아이들과도 자신이 원하는 공간과 또 다른 대안인 제주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곤 한다. 나 : “제주의 공간은 어떤 부분이 반영됐으면 좋겠어?”초등 딸 : “동물들과 함께 살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어”중등 아들 : “잠을 자는데 방해받지 않았으면 좋겠어. 마당에서 충분히 생활할 수 있으면 해”물론 이들의 제안이 충분히 반영하기엔 현실적 제약이 많이 따랐다.나 : “만약 우리가 제주로 이사 간 다면 기대되는 부분은 무엇이야?”초등 딸 : “학원을 안 다녀도 되지 않을까. 방과 후에 바다에 나가서 놀면 좋겠어.”중등 아들 : “제주에 학원이 없어? 놀거리가 많았으면 하는데”경쟁 위주의 교육 현실에서 꿈을 실현시키고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이야기하는 기회는 아이들에게도 많은 고민을 할 수 있게 하지 않을까 한다. 첫째가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 강남으로 이사 왔는데 강남의 학구열은 무섭기까지 했다. 최대한 강남의 시스템에 도전해 보겠지만 꼭 이 방식이 유일한 방식이 아님을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다. 특히나 이를 통해 꿈을 실현해 나가는 것이 남들의 기준에 맞춰진 삶을 사는 것보다 더 가치 있음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어쩌면 우리는 이 과정을 통해서 구성원 간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으며 가족이 함께 한다는 건은 무엇인지 자기만의 독립된 공간은 어떠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사회가 하나의 방향으로 무작정 흘러가고 있을 때 우리는 한 발 떨어져서 무엇이 더 중요한지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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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제집] 내가 4년만에 제주를 떠난 이유
Culture4/10/2026

[판제집] 내가 4년만에 제주를 떠난 이유

이미 나는 제주에서 살아본 적이 있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2003년 전격적으로 제주 본사 이전을 결정했다. 당시 메일과 카페로 유명한 IT기업에 다니고 있었는데. 어느 날 우리 부서 보스가 모든 인원을 다 불러 모아 어차피 가야 된다면 제일 먼저 가자며 본사 이전의 프런티어가 되자고 독려했다. 벌써 20년도 더 지난 일이니 기억이 가물가물하기도 한데 그때 몇몇 여성 동료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던 것 같기도 하다. 난 이게 무슨 상황인지 한동안 얼떨떨하기도 했는데 시간이 좀 지나서 걱정보다는 말 그대로 아직은 혼자(싱글)이니 재미있는 도전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회사는 파격적이고 진심 어린 지원을 해주었다. 갑자기 바다 건너 섬에서 근무를 해야 한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정확한 의미를 알지 못했다. 누구도 경험 못한 일이었을테니. 간단한 짐을 가지고 내려갔던 제주에서의 첫날밤을 잊지 못한다. 저녁 달빛이 무척이나 밝았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도 모르겠다. 회사 근방이긴 했는데 회사가 어느 방향에 있는지도 몰랐고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하기만 했다. 잠은 오지 않았으나 머리는 맑고 상쾌했던 걸로 기억한다.아침에 윈드서핑을 하고 출근하기도 했다업무 집중도는 매우 높았다. 딱히 일 이외에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밤에는 아는 사람도 아는 곳도 없기에 회사 동료들과 끼리끼리 모여 술을 마시는 것이 일상이었다. 팀원들은 가족과 같았다. 회사가 사전에 좋은 계약조건을 협상-회사는 직원들에게 체류비에 해당하는 지원금을 매월 지급하였다. 사실 회사에서 세끼 식사를 제공했기에 이 금액으로 한 달 생활이 가능할 정도였다-하여 모두들 같은 동네의 2~3군데 원룸에 분산되어 살았다. 마치 기숙사에 있는 것 같은 느낌으로 각자 방을 돌아다니며 매일 밤 술자리가 이어졌다. 제주의 정보는 주로 제주 이전 후 신규 채용된 동료를 통해 얻곤 했는데 휴식 시간이면 동료들을 둘러싸고 질문을 쏟아내곤 했다. “현지 사람들이 자주 가는 가장 핫한 술집은, 제주 젊은 사람들이 주로 소개팅하는 장소는, 저렴한 가족들이 자주 가는 바닷가 횟집은, 제주엔 없어 보이는 패밀리 레스토랑 느낌이 나는 식당은, 중고가전 및 가구를 구하는 방법은?” 각자 제주에서의 생활정보 등을 찾고 교환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재료를 함께 구매해 나눠 갖기 일 수였다. 솜씨 좋은 동료는 직접 반찬을 만들어 나눠주기도 했다. 당시에 위키나 공동 작업할 수 있는 작업도구들이 발달했다면 더욱 효과적이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결혼을 한 동료들은 대부분 일단 혼자 내려와 있었다. 당장 가족이 내려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점차 가족이 내려오면서 회사 사택이 부족해졌고 제주 시내 아파트 전세에서 자리를 잡는 가족도 늘어났다. 당시 회사는 제주 빈집이 2000여 채나 된다며 집을 구매하는 것은 보수적으로 임하라고 제안했다. 이때 전혀 적응을 못 하거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극소수의 동료는 부서를 옮기거나 퇴사를 하기도 했다.제주는 참 추었다제주 이전 초기에 시내 영어회화학원에 등록했다. 공부에 대한 열망보다는 사실 제주 분들을 만나고 싶다는 의지가 더 강했다. 관광산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많아서인지 면세점에 근무하는 분들이 많아 보였다. 더욱이 젊은 제주 친구들을 사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아침반을 선택한 후 기대는 여지없이 깨졌다. 아침반에 젊은 친구들은 거의 없었다. 실망도 잠시 아침반에서 너무나 좋은 제주 분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처음엔 무뚝뚝하고 차가워보였던 사람들이 마음을 여니 너무나 따뜻한 분들이셨다. 그들은 내가 제주에 잘 적응할 수 있겠끔 저녁 모임을 자주 가져주셨다. 독특한 제주만의 지인 결혼식에도 초대해 주셨고 한라산 등반도 같이 해 주시고 겨울이 춥다고 하니 집에 있던 난로까지 가져다 주셨다. 집 구하는데 제주의 역사적 풍수지리까지 설명해 주셨다. 지금도 그들의 친절과 배려를 잊을 수 없다. 나는 거의 유일하게 퇴근 후 약속이 있는 직원이 됐다. 간혹 제주가 예전의 귀향지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누구에게나 여기서 평생 살게 되는 걸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나중에는 제주에서 근무하고 싶은 사람들이 줄을 섰지만 당시 처음만 해도 그렇지 못했다. 몇 년이 지나서 적응하고 정보가 충분하게 쌓이고 그리고 가족들의 새로운 삶이 펼쳐지면서 만족도가 높아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솔로들에게 제주는 거친 곳이기도 했다. 정보와 트렌드에서 소외되고 뒤쳐지는 느낌이 나기도 했고 당시까지 스타벅스는 제주에 없었다. 어느 날 야근하다 스타벅스 커피가 너무나 먹고 싶어 당시 중문에 유일하게 있었던 ‘시애틀’ 에스프레소 전문점에 야근하다가 1시간가량 차 몰고 가 팀원들 커피를 배달해 오기도 했었다. 제주시내에도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 한 곳 있었는데. 기본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시럽이 들어가 있어 충격 먹었었다. 내가 시럽 빼달라고 안 했다는 이유로. 당시 여긴 시럽이 디폴트였다.6개월쯤 제주시내 원룸에 살다가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영화에서만 보던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었다. 이때부터 모험심 있는 직원은 산으로 바다로 이사를 떠났다. 허나 그 수가 많지는 않았다. 주말마다 집을 보러 다녔는데 제주의 특성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이사하는 연초 ‘신구간’이 아니면 물량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서귀포 등도 알아보기도 했는데 회사가 제주시라니 집주인이 말리기도 했다. 여기 살던 사람이 제주시에 직장을 얻어 나갔다고 어찌 제주시까지 출퇴근을 하냐고 하셨다. 서울에서 출퇴근은 왕복 2시간 넘는 게 기본이었는데. 제주는 한라산을 넘는다는 게 정신적으로 물리적으로도 큰 벽으로 느껴지나 보다. 물론 나도 이제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만. 내가 구한 집은 동쪽 조천의 단독주택이었다. 중산간에 위치했는데 주변은 귤밭이었고 조용하고 경치 좋은 곳이었다. 주인집은 옆에 함께 살았고 과거 펜션을 했던 4개 동을 ‘연세’-제주의 가장 일반적인 주거계약형태. 전세나 월세가 아닌 1년 치를 한꺼번에 낸다-를 주고 운영하고 있었다. 저녁때면 다른 동에 사는 분들과 술자리도 이어졌는데 하나 같이 육지를 떠나온 사연들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렇게 서로의 사연을 듣고 치유하고 한 분씩 다시 자신의 자리로 떠나곤 했다.당시 살던 중산간 조천집. 지금은 재건축으로 남아있지 않다.꿈같은 1년이 지나고 나도 중산간과 제주의 매서운 겨울을 경험하고 살기가 너무 험난하여 바닷가 쪽으로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눈이 많이 오는 날에는 집에도 못 가고 집에 있으면 나올 수 없는 날도 있었다. 이후 바닷가 쪽이 중산간보다 상대적으로 따뜻하다는 것을 깨닫고 나는 함덕해수욕장에 자리를 틀었다. 이곳에서는 주인집 할머니가 사시고 맞은편 별채에 내가 살았는데 손자처럼 너무 잘 대해 주셨다.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앉고 나는 가스보일러가 있는 제주시 삼양해수욕장으로 옮겼다. 제주는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고 LPG 가스보일러를 쓰는데 이는 도심이나 신축의 경우고 아직 시골 쪽에는 기름보일러가 일반적이었다. 남들은 작은 기름차가 와서 한 드럼씩 넣는다고 하던데 왠지 큰돈 나가는 것이 싫었던 것 같다. 20리터 통 하나를 넣으면 1주일 정도 지낼 수 있었다. 처음에 한 통을 넣고 냉방에 이빠이 보일러를 틀고 다음날 새벽에 엔꼬가 나서 놀란 적도 있다. 이때부터 겨울에 집을 비울시에는 보일러를 끄기보다는 제일 약하게 틀고 간다.  겨울에 주말마다 기름통을 들고 한밤중에 기름 사러 다니는 것이 너무 애처로웠다. 추억이라면 추억이지만 제주의 겨울은 언제나 힘겨웠다. 제주살이 4년째 시내로 들어오니 시골 같은 낭만과 인연은 없었던 것 같다. 생활은 편리해졌지만 나는 단절되었다. 바다를 홀로 걷곤 했는데 그맘때쯤부터 바닷가에 새로운 카페들이 새로 생겨났던 것 같다.주말이면 제주 동쪽의 깊은 오름을 등반하며 바람과 대화하고 바닥에 누워 하늘을 보곤 했다. 어느 날이었다. 매서운 태풍이 지나간 다음날 그날도 홀로 오름에 올랐다. 나비가 살포시 내 어깨에 앉는 것이 아닌가. 그때의 충격은 또 잊을 수 없었다. 자연과 동화가 된 나는 이대로 결혼도 못하고 지구 표면에 찰싹 달라붙어 사라질 것 같은 공포감 같은 것을 느꼈다. 뒤처지는 건 아닌지. 아직 젊다고 생각했는데 생활에 안주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같이 근무했던 직원의 죽음 소식이 들려왔다. 회사에서 가장 어린 직원이었다. 당시 역사적인 태풍의 위력으로 급격하게 불어난 하천물에 자동차채로 휩쓸려 갔단다. 자연의 공포를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제주는 살기엔 힘겹고 가끔 와서 만끽해야 하는 곳이라 생각했다. 젊은 땐 치열하게 살고 늙어서 다시 돌아오기로. 그것이 내가 제주에 대한 감정이었다. 제주를 떠나 서울 조직으로 부서를 옮겼다. 2006년 겨울 제주로 이주한 지 4년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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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제집] 길거리에 돈 버리는 세컨드하우스 - 공간에 대한 만족감과 끝없는 욕망
Culture4/10/2026

[판제집] 길거리에 돈 버리는 세컨드하우스 - 공간에 대한 만족감과 끝없는 욕망

내가 제주에 집을 짓겠다고 하면 대부분 질문이 제주에 내려가서 살 것이냐고 묻는다. 아내 하고도 이 문제에 대해 논의했는데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가족 전체가 내려가긴 어려울 것이라 판단했다. 제주 공간은 일명 세컨드하우스로 자주 오가는 공간이 될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주변 사람들은 길거리에 돈을 버리는 행위다. 전원주택이 얼마나 팔기 어려운지 아느냐. 두 집 살림은 비용이 두 배로 든다는 둥 걱정을 말하곤 했다. 하지만 나에게 롤모델이 존재한다.회사가 합병으로 판교로 옮기기 전 한남동에 있었는데 바로 직전 H대 서울캠퍼스에 일부 사무실이 있었다. 이곳에는 마케팅과 디자인 부서 등 말랑말랑한 부서가 있었는데 난 마케팅 직군이라 당시 새롭게 건축한 이 대학 건물에 입주했었다. 당시 상암동 쪽에 살고 있어서 출퇴근 시간이 줄어들어 개인적으론 만족스러웠다. H 대는 입점업체 직원들에게 교직원에 준하는 다양한 혜택을 주었는데 교수식당도 애용할 수 있고 체육시설도 이용할 수 있었다. 지금은 없어진 학교 수영장을 입점업체 할인을 받아 이용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운동을 마치고 수영장을 나오는데 도사 같은 직원 어르신께서 갑자기 말을 붙이셨다.“자네 혹시 검도를 해 볼 생각이 있는가”검도? 그렇게 나의 검도인생이 시작되었다. 이 대학 사무실은 그 후 회사가 한남동에 큰 건물을 임대하면서 양재동과 대학 사무실을 통합하여 모두 이전하게 되었지만 H대 교검회 인연은 2010년부터 현재까지 약 15년 이상을 이어져오고 있다. 특히, 교검회는 이 학교 교수 및 직원 등이 소속되어 매일 아침 합동 운동을 했는데 이곳에 건축과 교수님들은 물론 졸업생들도 있어 자연스럽게 건축을 접하고 이들과의 교류가 가능하여 나에겐 행운이었다. 나는 검도도 열심히 수련했는데 3단 승단 시험을 앞두고 회사에서 안식휴가 4주 동안 매일 수련하여 승단에 통과하기도 하였다. 나중에 회사 합병 후에도 거의 매일 운동하고 판교까지 출근하는 일은 여간 고역이 아니었는데 많은 사람이 놀라긴 했던 것 같다. 출근 시간이 비교적 자유스러워서 가능했을 수 있다. 검도회 교수님들 중에는 세컨드하우스를 가지고 계신 분들이 있어서 이 분들의 라이프 스타일이 언제나 부러웠던 것 같다. 특히 한 교수님은 서울, 강원도, 남해안에 개인 공간을 두시고 세 곳을 번갈아 다니며 생활하셨다. 미술을 전공하신 분 답게 세컨드하우스 모두 감각이 대단하였다. 내가 제주에 세컨드하우스를 짓는다고 하니 교수님과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직접 본인의 세컨드하우스로 초대도 하셔서 가족들과 함께하기도 했다. 교수님은 “한 곳에서 사는 것보다 계절에 따라 다양한 곳에서 사는 삶이 나름 행복하다”고도 하셨다. 물론 단점도 존재한다고. 커피 머신도 최소 4개 - 교수님 작업실도 따로 있으시다-를 갖춰야 하는 등 생활비가 최소 2~3배가 더 들기도 한다. 또한 몇 시간씩 운전을 하며 이동하는 것이 약간 부담이긴 하지만 -요즘엔 KTX도 잘되어 있어 자주 애용하신다고-언젠가 자율주행이 현실화되면 물리적 거리는 큰 문제가 안 될 것이며 보다 만족할 만한 공간에서 사는 것이 더 중요한 때가 올 것이라고 하셨다. 특히 최근 지구 온난화가 심해지고 있는데 강원도 용평은 서울보다 10도 이상이 온도가 낮아 미래의 주거 대안이 될 수도 있다고 하셨다. 강원도의 자연환경과 평창 동계 올림픽 인프라를 저렴하게 활용할 수 있는데 겨울엔 크로스컨츄리, 여름엔 골프 등 끊임없는 자기 수행이 가능하다고 자랑이 끊이지 않으셨다. 집 앞마당에서 남해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교수님의 세컨드하우스 전경교수님의 남해안 주택은 멀리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의 집이다. 내가 전 세계에서 본 집들 중 최고의 경치를 자랑한다. 교수님은 정원도 손수 가꾸시고 내부 인테리어 가구도 조립하시는 등 하루하루가 허투루 지나치는 날은 없어 보였다. 은퇴 후에는 더욱 집 가꾸기에 매진하고 계셨다.“자네 제주 프로젝트 다음은 강원도 용평이네. 여름에 지낼 곳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공간에 대한 만족감과 끝없는 욕망. 어쩌면 나의 제주 프로젝트는 마지막이 아니라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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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제집] 가장 건축하기 적절한 시기에 대한 만화가의 가르침
Culture4/10/2026

[판제집] 가장 건축하기 적절한 시기에 대한 만화가의 가르침

코로나 시기에 재택근무를 하였다. 우리 회사가 그룹사 가운데 가장 빠르게 재택근무를 결정했다. 재택근무가 효율적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을 것 같다. 또한 과연 모든 직원이 전원 재택근무가 가능할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보다는 직원들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이유가 더 컸다. 고정관념을 바꿔보기로 한 것 같다. 안 되는 이유보다는 되기 위해서 무엇을 바꿔야 할지 논의해 보기로 했다. 신기하기도 절대 재택근무가 불가능하게 보였던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닭기도 했다. 어떤 부분에서는 매우 효율적이었고 어떤 부분에서는 아쉬웠지만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면 말이다.마치 세상이 망한 것처럼 모든 것이 공포였을 때 몇 가지 트렌드 변화가 감지됐다.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아내와 내가 함께 재택을 하다 보니 우리 네 식구가 함께 지내는 것이 여간 부담스럽지 않았다. 집에 사무환경을 만들다 보니 아내는 가구도 새로 구입하고 후다닥 을지로에 나가서 간접 조명 재료에 인부를 구해서 간단하지만 인테리어 공사도 수행했다. 이때였던 것 같다. 갑자기 내가 내일 죽는다면 가장 아쉬운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지구가 내일 멸망한다면 꼭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는데.바로 제주도 집 앞마당에서 아침 향 가득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모습이 떠올랐다. 땅을 구매한 지 꽤 되었는데 집을 언제쯤 지을 수 있을지 예측이 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건축 비용은 조만간 상장할 것으로 예측되는 회사 스톡옵션으로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을 했는데 문제는 건축이 완료 예정인 현재까지도 상장은 감감무소식이긴 하다. 당시엔 바로 건축사를 만나 상담하고 계약서도 오고 가고 했지만 치솟은 건축비와 결정장애로 몇 번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리고 건축비가 내려가거나 콘셉트가 보다 명확해지면 다시 추진하기로 했다. 혹자는 오른 자재 및 인건비는 다시 내려가지 않으니 바로 지금이 가장 저렴한 때라고 말하기도 하였다.나는 회사에서 지금껏 콘텐츠를 다루는 일을 수행해 왔다. 콘텐츠는 다양한 분야를 다뤄왔는데 근래 들어서는 웹툰을 담당하고 있어 창작자와의 접촉도 빈번했다. 특히나 내가 아주 존경하고 저명한 만화가님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겨울 때쯤 이 분이 지방으로 작업실을 이전하게 되셔서 겸사겸사 찾아뵙게 되었다. 작품 활동은 물론 다양한 사업 특히 서울에서 공간을 운영하시며 여러 후배들에게 더 좋은 환경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계셨다. 이런저런 말씀을 듣다가 요즘 내가 고민하는 질문을 드리게 되었다.“작가님, 제가 저의 로망인 제주에 집을 짓고 싶은데. 건설자재비도 많이 오르고 지금은 때가 아닌 것도 같기도 하고 언제 지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작가님은 본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서울의 해당 공간을 매입했을 시 부동산시장이 안 좋을 때라고 하셨다. 주변에서 만류하기도 하셨는데 본인이 가장 좋아했던 거리에 마침 좋은 매물이 나왔기에 바로 결정할 수 있었다고. 결과적으로도 그때 선택이 옳은 선택이 됐다 하셨다.“무엇인가를 간절하게 하고자 할 때가 가장 적절한 시기가 아닐까요?”그때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 있었다. 미래에 건축비가 내려갈지 오히려 올라갈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본인이 하고자 하는 마음이 충만하다면 당시의 결정이 어떻든 미래에 가치 있는 것으로 바꾸어 나가는 건 본인의 역량일 것이다. 그동안 마음속에 무겁게 자리 잡았던 무엇이 뚫리는 기분이었다. 결론적으로 작가님이 구입한 공간(건물)은 작가님의 로망대로 운영되고 있어 그 어떤 물질적 가치보다 더욱 값어치 있을 것이다. 작가님은 바램은 완성이 아닌 현재 진행중이었고 그 최종 꿈은 더욱 더 커 보였다.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고 그것을 실현할 용기가 있다면 미래도 나의 길을 올바르게 인도하지 않을까. 이때를 기점으로 제주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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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제집] 내가 몰랐던 평당 건축비의 비밀/내가 몰랐던 평당 건축비의 비밀
Culture4/5/2026

[판제집] 내가 몰랐던 평당 건축비의 비밀/내가 몰랐던 평당 건축비의 비밀

‘평당 건축비는 의미 없다’란 얘기도 많이 들린다. 건축주가 어떤 재료 어떤 콘셉트를 차용하느냐에 따라 금액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당연한 얘기이다.처음 건축사 미팅을 할 때 예산을 물어보지만 당연 건축비를 예상할 수 없기에 대답할 수 없었다. 이때 준비해 간 워너비 콘셉트 사진들을 보여주면 그때 비로소 건축사는 본인의 포트폴리오 사례에서 비슷한 콘셉트의 사례를 들어 대략적인 평당 건축비를 말해준다. 참 신기한 광경이었다. 물론 모든 건축사가 이렇게 자판기처럼 건축비를 말씀해 주진 않는다. 건축주의 예산에 맞는 설계를 하겠다는 분도 계셨고 정확한 건축비는 시공사랑 협의하라는 분도 계셨다.내가 준비한 콘셉트 사진을 보고 건축사들은 모두가 평당 1000만 원 이상이 들 것이라 하였다. 나는 깜짝 놀랐는데 책에 있는 내용과 현저히 달랐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도서관 책을 참고하다 보니 출판된 지 꽤 지난 책들이 많았는데 책이란 매체는 실시간으로 현실을 반영하지는 못할 듯하다. 내가 본 책에는 평당 5~700만 원까지 다양했으나 건축사들은 입을 모아 최소 1000만 원을 이야기 했다. 이어 코로나 시기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자재비가 엄청나게 뛰었으며 인건비 또한 뛰었다고 입을 모았다. 더군다나 제주는 물류비가 추가로 든다고 하니 비용을 더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당시 만나 본 한 시공사는 30평 정도 주택에 콘크리트 치는데 1억은 든다고 해서 적잖이 충격을 먹기도 했다. “30평짜리 주택에 드는 시멘트 비용이 1억이라니!”여기서 건축비 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부 설계가 끝나고 시공사로부터 견적을 받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때 세부적인 건축비 내역이 나와있다. 물론 직영공사와 종합건설사를 통한 공사에는 여러 가지 차이가 있다. 나는 여러 리스크를 고려해서 비용이 더 들더라도 안전한 종합건설사를 시공사로 선정했는데 견적서를 보고 약간 당황했다. 일반적으로 공사비라 하면 자재비와 인건비가 거의 반반으로 보면 된다. 여기에 각종 공사 현장의 안전 등에 필요한 보험료가 10%가 추가되고 시공사의 이윤 10%가 추가된다. 다시 여기에 부가가치세 10%가 추가가 된다. 여기서 현타가 온 것은 공사비의 대부분은 재료비로 알고 있었던 나에게 재료비의 비중보다 인건비와 간접비의 비중이 더 크다는 데 있었다.공사비 = 재료비+인건비+간접비(재료+인건비의 10%)+이윤(재료+인건비의 10%)+부가세즉, 평당 1000만 원이라는 말속에는 재료비 400만 원, 인건비 400만 원, 간접비 80만 원, 건설사 이윤 80만 원 정도가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부가세 및 인허가비 등 각종 세금이나 설계비는 제외된 금액이다. 물론 직영 공사를 시행한다면 부가세는 내야하겠지만 간접비나 건설사 이윤은 재료비에 비례하여 올라가진 않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 견적서를 살펴보면 철근 콘크리트 공사비 1억여 원 중 재료비가 5천만 원, 인건비가 5천만 원이었는데. 재료비 5천 중에서 시멘트 비용은 채 2천만 원도 안되었다. 약 1.5천만 원이 철근, 나머지 비용은 거푸집 등 공사를 위한 부대비용이었다. 물론 간접비는 이 금액에 20~30%를 더 고려해야 한다. 즉, 총 철근콘트리트 기초타설 비용 1억 중 시멘트는 20%인 2000만 원정도였다.여기서 공사비를 줄인다는 것은 재료비만이 변수로 작용한다. 즉, 재료비만 줄 일 수 있지 인건비를 마음대로 줄일 순 없다. 할 일의 양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실제 재료비 100만 원을 줄이면 인건비는 고정이고 간접비 30%인 약 30만 원 정도가 추가로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건축주의 딜레마가 시작되는데 면적을 줄이지 않는 한 줄일 수 있는 건 마감 재료비뿐인데 일반적으로 시공사 견적에 대해 협상과 ‘네고’를 하는 과정에서 건축주가 선택한 창호, 타일, 페인트, 가구 인테리어 비용 등을 놓고 우선순위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낮은 가격의 재료로 다운그레이드해야 한다. 그런데 눈물을 머금고 금액을 낮춰봐야 전체 공사비에서 재료비로 낮출 수 있는 한도는 매우 제한적임에 절망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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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제집] 좋은 건축가를 만난다는 것
Culture4/5/2026

[판제집] 좋은 건축가를 만난다는 것

좋은 건축사를 만나는 팁은 없다고 본다. 실제로 일해 보지 않고 자신과 맞는 건축사를 만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집을 짓는데 건축사는 필수이다. 일단 건축허가를 낼 때 건축사 자격증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나는 집을 짓기로 한 후 6명 건축사를 만났다. 물론 내 운동커뮤니티에 유독 건축 설계 쪽 분들이 많긴 했는데 나는 지인과 일하는 것이 부담이라 일부러 피했다. 6명을 동시에 만나 그중에 한 명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최근 2년간의 기간 동안 상담한 건축가들의 숫자다. 주변에서 건축사를 찾는 건 단순하기도 하고 단순하지 않기도 하다. 사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을 수도 있지만 주변에 건축 관련 종사자 한 명쯤은 있지 않겠는가. 변호사를 찾는 일과 비슷할 것 같다. 보통은 땅이나 건물을 계약한 부동산에서 많이 건축사를 추천해 주기도 한다고. 건축사를 고를 때 고민했던 부분 중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지역적인 부분이었다. 내가 서울에 거주하니 설계과정에서 건축주와 많은 소통이 가능한 서울 지역 건축사와 실제 제주를 잘 알고 내가 자주 갈 수 없기에 현장에서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제주 지역 건축사 중 고민이 컸다. 나는 그중 설계의 디테일보다는 제주에서 원활한 활동이 가능한 현지 건축사를 먼저 만나보기로 했다.나는 실제 제주에서 집을 지은 지인에게 건축사 추천을 의뢰했다. 지인은 ‘허가방’이라고 해서 도면은 본인이 그리고 허가만 대행하는 건축사도 있다고 했다. 나는 실제 설계가 필요할 것 같아 지인 건축사 연락처를 받았다. 대략적인 설계비는 듣기도 했고 또 각종 건축 관련 책을 보면 평당 얼마라는 대략적인 단가가 나와있기도 했다. 해당 건축사와 연락 후 가족 여행을 핑계 삼아 제주에 가서 직접 사무실에 방문했다. 제주시내가 아닌 근교에 위치해 있었는데 사무실에 혼자 있었다. 자신의 포트폴리오도 대략적으로 설명하고 언제나 그렇듯 기본 3가지 질문에 대해 논의했던 것 같다. 나는 주로 듣는 입장이었는데 특히나 나의 땅이 권리관계가 복잡했는데 제주 건축사라 그런지 경험이 많아서 그런지 각종 법적 인허가 문제들을 능숙하게 해결할 수 있다고 말씀 주셨다. 그리고 본인은 더 많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직접 설계를 하지 않고 설계는 다른 곳에 외주로 요청한다고. 한 시간 정도의 미팅을 하고 나오면서 몇 가지 생각이 들었다. 홈페이지도 없는 이 설계사무소에서 했다는 그 포트폴리오는 실제 여기서 한 것일까. 나와 상담한 이 분은 실제 설계사 자격증을 갖고 있을까. 이 분을 뭘 믿고 수 억 원짜리 공사 계약을 할 수 있을까. 불안한 생각들이 엄습해 왔다. 실제로 집을 지은 지인들은 건축사에게 아쉬운 소리를 많이 했다.그들은 본인들의 살 집을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하려고 해실제 건축사이면서 자신이 설계한 집에 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물론 건축사의 역할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다루기에 5년 이상을 대학에서 공부한 사람들이다. 건축사들 중에도 스타일이 있다고 듣긴 했다. 미적인 면을 강조하는 사람과 튼튼하고 실용적인 면을 강조하는. 그 중간을 추구하는 건축사를 어떻게 고를 수 있다는 말인가. 단 한두 시간의 미팅으로 말이다.그 후 나는 서울 건축사를 소개받아 만나기도 했다. 설계비란 것이 부동산 소개비처럼 정해진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내가 만난 6명의 설계사들과 논의한 설계비의 평균을 내보면 제주 설계비보다 서울 설계비가 최소 3배 이상이 비쌌다. 물론 내가 만난 건축사가 훌륭하신 분임은 분명할 것이다. 또한 세부적인 설계도 규모도 차이가 나긴 했다. 그럼에도 이러한 금액 차이가 나는 점은 선 듯 이해하기 힘들었다.사실 설계비가 비싸다는 건 문제가 아니다. 그 값을 지불할 때 충분히 합당한 것인가가 중요할 것이다. 어찌 보면 건축비에서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는, 아니 건축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설계를 좋은 사람과 함께하는 일은 건축의 성공에서 최소 50% 이상을 차지할 만큼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험난하고 난생 처음인 건축과정에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건축사를 만나는 건 축복이다. 설계비는 완공 후 만족감의 값어치이며 미래에 절약될 시행착오 비용까지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한 때 난 ‘설계도는 내 머릿속에 들어있는데 건축가의 역할이 필요하나’하는 어리석은 생각도 한 적이 있다. 건축가는 최고의 전략가이자 등불 같은 존재이다. 내가 건축의 바다에서 길을 잃거나 좌초되지 않도록 방향을 잡아주고 즐거운 항해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건축가는 결코 선장은 아니다. 물론 선장 역할도 해줄 수 있겠지만 그렇다면 굳이 집을 스스로 지을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훌륭한 건축가란 누구인가. 나는 나의 이 결정장애와 다양한 욕구를 잘 들어주기만 하는 것이 아닌 함께 상상의 나래를 그리고 그 속에서 잘못된 부분은 지적하여 하나하나 정리해 나가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는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사람에 따라 성향에 따라 경험에 따라 필요한 건축사의 역할은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가장 절대적인 것은 지나칠 정도로 충분히(깨알같이) 의견을 나누는데 열려 있는 건축사는 실패할 확률이 적다고 본다.나는 결국 두 곳 설계사무소와 계약을 체결했다. 한 곳은 제주, 한 곳은 서울이었다. 서로 역할을 나누어 협력하여 진행하기로 했다. 어쩌면 일생에 가장 도전적인 건축이라는 행위에 대해 실패를 최소화할 여러 개의 완충지를 마련한 셈이었다. 비용에 대한 부담보다 결코 실패하고 싶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뒤에서 자세히 들려 드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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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은 왜 칭다오 산위에 비석을 세웠나: 량야각석 7대 유적지 방문기
Culture3/19/2026

진시황은 왜 칭다오 산위에 비석을 세웠나: 량야각석 7대 유적지 방문기

랑야타이(琅琊臺)는 중국 산둥성 칭다오(靑島) 인근에 위치한, 진시황과 깊은 연관을 가진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기원전 219년,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은 이곳에 올라 크게 기뻐하며 3개월이나 머물렀고, 백성 3만 호를 이주시켜 대대적인 토목 공사를 벌여 낭야대를 축조했습니다 . 또한 자신의 공덕을 기리는 각석(刻石)을 세웠는데, 이는《사기》등의 문헌에 기록된 내용과 일치합니다 . 최근 고고학 발굴을 통해 진·한 시대의 고대 건축 기초와 배수 시설 등이 발견되면서 문헌 기록이 입증되어 더욱 주목받고 있는 유적지입니다 .랑야타이: 진시황의 꿈이 서린 불로초 전설의 땅중국 산둥반도 남단, 푸른 바다가 펼쳐진 곳에 2천 년 전 중국 최초의 황제가 남긴 거대한 꿈의 흔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바로 **랑야타이(琅琊臺)** 입니다. 이곳은 단순한 옛터를 넘어, 진시황의 제국에 대한 포부와 불로장생에 대한 염원, 그리고 동쪽 바다 너머로 향한 탐험의 출발점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 특별한 장소입니다.1. 유적지 소개랑야타이는 중국 산둥성 칭다오(靑島)시 황다오구(黃島區) 낭야진(琅琊鎭)에 위치한 해발 218m의 야산으로, 바다를 마주보고 우뚝 솟아 있습니다 . 이곳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절경을 자랑하며, 옛날부터 '해 뜨면 천 개의 깃발이 휘날리고 해 지면 만 개의 횃불이 휘황했다'는 시구처럼 번성했던 항구도시이자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유적지는 크게 주봉인 '대대(大台)'와 동쪽 바다에 인접한 '소대(小台)', 그리고 산 남쪽의 가마터 등 여러 지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2019년부터 국가문물국의 승인을 받아 체계적인 고고학 발굴이 진행 중이며, 그 결과 진나라 시대 고급 건축물의 기초와 배수 시설, 그리고 대규모 기와와 벽돌을 생산하던 가마터 등이 발견되었습니다 . 이는 이곳이 단순한 행궁(行宮)이 아닌, 국가적 역량이 동원된 대규모 국가 건축 공사였음을 보여줍니다 .2. 역사적 중요성랑야타이의 역사적 중요성은 중국 최초의 통일 제국을 세운 진시황(秦始皇)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기(史記)》에 따르면, 진시황은 천하 통일 후 자신의 위엄을 과시하고 불로장생을 염원하며 동쪽으로 순수(巡狩)를 떠났습니다. 기원전 219년, 그는 낭야에 도착해 그 아름다운 경관에 크게 감탄하여 석 달이나 머물렀습니다 .이곳에서 진시황은 자신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낭야대(琅琊臺)** 를 직접 쌓도록 명령했으며, 전국 각지에서 백성 3만 호를 이주시켜 12년 동안 대역사를 벌였습니다 . 이는 진시황이 세운 여러 대규모 토목 공사 중에서도 그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건축물로 평가됩니다 . 또한 그는 자신의 업적을 기리는 **낭야각석(琅琊刻石)** 을 세웠는데, 이는 진시황의 순수와 공덕을 기록한 중요한 금석문 자료입니다. 최근 고고학 발굴을 통해 진시황이 건설한 낭야대의 실체가 점차 드러나면서, 문헌 기록이 입증되고 중국 고대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3. 불로초 전설과 서복(徐福) 이야기랑야타이의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는 바로 서복(徐福)의 전설입니다. 진시황은 통일 후 죽음을 두려워하며 불로장생의 약초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의 명을 받들어 동방으로 떠난 인물이 바로 방사(方士) 서복입니다.랑야타이는 서복이 **불로초를 구하러 떠나는 배를 띄웠던 출항지** 중 하나로 전해집니다 . 유적지 내에는 서복이 진시황을 알현하던 장면을 재현한 조형물과 함께, 동쪽 바다를 향해 도약하려는 듯한 진시황의 웅장한 동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 전설에 따르면, 서복은 수천 명의 동남동녀와 기술자, 각종 곡식의 씨앗을 가득 실은 선단을 이끌고 동쪽 바다로 떠났지만, 불로초를 구하지 못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이야기는 한국과 일본에도 깊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제주도 서귀포(西歸浦)라는 지명은 '서복이 서쪽으로 돌아간 포구'라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으며, 실제로 서귀포에는 서복을 기리는 전시관이 세워져 있습니다 . 또한 일본 곳곳에는 서복의 사당이 남아 있어, 한중일 삼국의 문화적 교류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역사이자 전설의 장소로서 랑야타이는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4. 주요 볼거리랑야타이 유적지에는 진시황과 관련된 다양한 볼거리가 있습니다.진시황 동상과 제왕궁(帝王宮): 바다를 배경으로 우뚝 선 거대한 진시황 동상은 마치 "저 바다 건너를 모두 내 품에" 담겠다는 듯한 당당한 포스를 자랑합니다 . 동상 뒤로는 웅장한 제왕궁이 자리 잡고 있어, 진시황의 위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서불전(徐福殿): 서복이 진시황을 접견하던 모습을 재현한 공간으로, 서복의 동쪽 항해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습니다 .낭야대 유적 발굴 현장: 현재도 진행 중인 고고학 발굴 현장에서는 2천 년 전 진나라 사람들이 사용했던 건축 기초와 기와 조각 등 생생한 역사의 증거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낭야각석 : 비록 원석은 오랜 세월 풍화에 닳아 없어졌을지라도, 진시황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던 각석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습니다 .5. 찾아가는 법 및 여행 정보위치: 중국 산둥성 칭다오시 황다오구 낭야진 .대중교통: 버스가 다니는 듯 하나 포기. 디디타고 감. 단, 돌아오는 디디는 잡기 힘들어 당황했음. 칭다오는 중국을 대표하는 해양 도시로 항공편과 배편이 많아 접근성이 좋습니다. 칭다오의 아름다운 해변과 함께 여행 일정을 계획하면 알찬 여행이 될 수 있습니다 .  이 지역의 특산품으로는 랑야타이주(琅琊臺酒)가 유명합니다. 전통 방식으로 빚은 이 백주는 29도부터 무려 72도까지 다양한 도수로 판매되며, 현지에서 독특한 경험을 선사합니다 . 근처에는 온천으로 유명한 즉묵시(卽墨市) 온천진이 있어, 온천욕과 함께 여행의 피로를 풀기에도 좋습니다 .랑야타이는 진시황이라는 거인과 그의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신비로운 장소입니다. 2천 년 전, 황제가 바라보던 그 바다를 바라보며, 불로초의 꿈과 동쪽으로 떠난 서복의 항해를 상상해보는 것은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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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까지 <손자병법>의 저자를 몰랐다고? 은작산 한묘 죽간박물관에서 2천년 전 비밀을 만나다
Culture3/18/2026

1972년까지 <손자병법>의 저자를 몰랐다고? 은작산 한묘 죽간박물관에서 2천년 전 비밀을 만나다

은취산한묘죽간박물관은 중국 산둥성 린이에 위치한, 고고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발견 중 하나인 죽간 병서들을 소장한 곳입니다. 이번 여행에서 필자는 이곳을 방문했습니다.&nbsp;1972년에 발견된 이 죽간들은 《손자병법》과 《손빈병법》이 별개의 실존했던 인물에 의해 쓰였다는 사실을 증명하며, 그동안의 역사적 논란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 이 박물관은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고대 중국의 군사 문화와 사상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특별한 장소입니다.은작산한묘죽간박물관: 2천년 전 손자병법의 비밀을 만나다중국 산둥성 린이(临沂)에는 고고학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발견을 품은 박물관이 있습니다. 바로 은작산한묘죽간박물관(银雀山汉墓竹简博物馆)입니다. 이곳은 단순히 유물을 전시하는 공간을 넘어, 2천 년 동안 역사 속에 가려졌던 비밀을 세상 밖으로 꺼내놓은 성지와도 같은 곳입니다.1. 박물관 소개은작산한묘죽간박물관은 중국 산둥성 린이시 란산구(兰山区) 은작산 서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 1981년에 착공하여 1989년에 대중에게 공개된 이 박물관은 총면적 10,000제곱미터에 달하며, 중국에서 한나라 묘에서 출토된 죽간을 전문으로 전시하는 대표적인 박물관입니다 .박물관의 가장 큰 자랑은 1972년 4월 은작산에서 발굴된 서한(西汉) 시대의 1호와 2호 묘에서 나온 7,500여 매의 죽간입니다 . 이 발견은 당시 중국 고고학계에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으며, "신중국 30년 10대 고고학 발견" 및 "20세기 100대 고고학 발견"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박물관 내부는 크게 죽간 진열홀과 문물 진열홀로 나뉩니다. 1층 죽간 진열홀에서는 출토된 병서 죽간과 관련 유물들을 상세히 볼 수 있으며, 2층 문물 진열홀에서는 같은 지역에서 출토된 다양한 도자기, 칠기, 그리고 특히 호남 마왕퇴 백화(帛画) 다음으로 유명한 서한 시대의 백화 등 귀중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 박물관 중앙홀에는 실제 발굴 현장을 복원한 1, 2호 한묘의 모습이 재현되어 있어 마치 발굴 현장에 온 듯한 생생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2. 역사적 중요성이 박물관의 역사적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은작산 한묘의 발굴은 중국 고대사 연구, 특히 군사 사상사에 있어서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했습니다. 죽간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엄청난 중요성을 지닙니다.첫째, 죽간에서는 《손자병법(孫子兵法)》, 《손빈병법(孫臏兵法)》을 비롯해 《울료자(尉繚子)》, 《육도(六韜)》, 《안자(晏子)》 등 진나라 이전의 선진(先秦) 시대 병서와 고서들이 대거 발견되었습니다 . 이는 당시의 다양한 사상과 군사 전략을 연구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를 제공했습니다.둘째, 이 발견은 천 년이 넘는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역사서에는 손무(孫武)와 손빈(孫臏)이라는 두 명의 병법가가 등장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많은 학자들은 이 둘이 동일 인물이거나, 혹은 손무 자체가 실존 인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문을 제기해왔습니다 . 그러나 은작산 한묘에서 《손자병법》과 《손빈병법》죽간이 함께 출토됨으로써, 두 사람이 각기 다른 시대에 살았던 실존 인물이며, 각각의 병법서를 저술했다는 사실이 명백히 증명된 것입니다 .3. 손자병법에 대하여《손자병법》은 중국 춘추시대 말기, 오왕 합려를 섬기던 손무(孫武)가 지은 병법서로,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하고 오래된 군사 이론서 중 하나입니다. 총 13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쟁의 중요성과 승리의 전략, 지형, 화공, 첩보 등 전쟁의 거의 모든 측면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은작산에서 출토된 죽간본 《손자병법》은 현재까지 전해지는 판본과 비교하여 내용상의 차이를 보여주기도 하는데, 이는 2천 년의 세월 동안 문헌이 어떻게 변천해 왔는지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 박물관에는 이렇게 귀중한 《손자병법》 죽간의 실물과 함께, 그 내용을 현대어로 풀어놓은 해설 및 다양한 연구 성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4. 죽간과 묘소 주인 소개죽간(竹簡) 은 종이가 발명되기 전, 주로 전국시대부터 진·한 시기에 널리 사용되었던 기록 매체입니다. 대나무를 가늘고 길게 쪼갠 후, 불에 쬐어 수분을 제거하고(이 과정을 '살청(殺靑)'이라 합니다) 먹으로 글씨를 쓴 것입니다 . 은작산에서 출토된 죽간들은 2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묘 속에서 물에 잠겨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형태를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소중한 죽간을 부장품으로 묻은 묘소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아쉽게도, 현재까지 발굴된 정보만으로는 정확한 주인을 특정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출토된 유물과 죽간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당시 군사 전략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어느 지식인 혹은 하급 관리의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 묘소의 규모가 호화롭지 않다는 점에서 화려한 삶을 살았던 왕족이나 귀족의 무덤은 아니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한나라 시대의 평범한 지식인이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로서 더욱 큰 가치를 지닙니다. 그가 개인적으로 소장했던 병서들이 후세에 이렇게 큰 선물이 된 것입니다.5. 찾아가는 법은작산한묘죽간박물관을 방문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주소: 중국 산둥성 린이시 란산구 이멍로(沂蒙路) 219호.대중교통: 린이 시내에서 버스를 이용하거나 택시를 타고 방문할 수 있습니다. 시내 중심에 위치해 있어 접근성이 좋은 편입니다.운영 시간: 매일 09:00 - 17:00 (입장 마감은 16:00) .관람 소요 시간: 1시간에서 3시간 정도면 충분히 관람할 수 있습니다 .입장료: 무료입니다. 다만, 무료 관람을 위해 신분증(여권 등)을 지참해야 할 수 있습니다 .문의 전화 : +86 0539-8312649 .은작산한묘죽간박물관은 단순한 여행 코스 이상의 깊은 울림을 주는 곳입니다. 2천 년 전, 어느 무명의 인물이 묻었던 책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역사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를 선물했습니다. 중국 고대 역사와 철학, 그리고 병법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이곳에서 잊지 못할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치 죽간에서 풍겨날 법한 조용하고 깊은 책 냄새가 가슴 속에 오래도록 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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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서의 가족 렌터카 여행 이야기
Culture3/15/2026

스페인에서의 가족 렌터카 여행 이야기

(이 이야기는 2019년의 이야기를 재편집해 올리는 글이라 현재 시점과의 차이를 고려해야 합니다.)여행 중 대부분 렌트를 통해 이동을 하는 일이 많아졌다. 운전석이 오른쪽인 일본-동남아 국가의 난처함은 뒤로하고 각국마다 조금씩 시스템이 다른 부분에 대해 매번 당황하기 일쑤이다. 특히 이번 스페인의 경우는 거리 주차에서 난처함을 당해 이를 얘기해 보고자 한다.1. 렌트가실제 예약 내역으로 어디서 어떻게 했는지는 예약은 아내 담당이라 잘 모르겠다. 단지 예약은 이 가격으로 했으나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실제 차를 반납하고 최종 결재는 약 500유로정도로 낮아졌다. 그냥 땡큐지 뭐.실제 빌린 내역보험은 사고시 모든 것이 해결되는 보험을 선택했는데 사고가 아닌 운전자 실수의 경우는 물어내야 하는데 최대 금액은 약 200만원을 넘지 않는다는 조항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처음 차를 빌릴 당시 차 뒤쪽에 스크래치가 있고 약 5cm 이상 스크래치가 나면 물어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는데..결과적으로 문콕도 하나 났었고 옆에 심하게 긁힌 자국도 생겼으나 실제 반납시 별다른 신경을 안쓰더라. 유럽은 이런 정도는 그냥 넘어가는지도. 괜히 쫄았다.우선 3개의 큰 가방 유아 포함 5명의 차는 무조건 대형SUV가 필요하다. 특히 우리는 유모차와 쉬야통까지 들어가야 하니 말이다.정확한 차종은 공항 렌트카 픽업시 알 수 있다.간신히 뒤에 짐을 가득 싣고 미리 준비해둔 구글맵 네비로 주행. 스마트폰 거대치를 안 가져간게 아쉬웠다. 스마트폰 충전 usb만 가져가고 시거잭을 안가져 갔는데 usb 연결하는 곳을 다음날 간신히 찾았다. (그럼 요즘 차에 없을리가 없지)2. 바르셀로나 주차가장 애매한 부분이 바르셀로나의 주차였는데. 이 도시는 자체 주차시설을 갖춘 숙소를 찾기 힘들었고 대부분 사설을 이용하라고 안내받았다. 주변 사설 주차장의 주차비를 찾아보니 시간당 3유로, 하루 약 30~40유로라서 배보다 배꼽이 더. 이때부터 폭풍 검색을 시작했다. 해결은 역시 인터넷에 있었다. 10%할인권도 찾을 수 있었으나 주차 할인권으로는 해결할 수 없었고 시즌권(?)을 찾을 수 있었다. 이름하여 B:SM(http://parkingcard.cat)카드다.바르셀로나 시내에서 최대 7일간 미리 비용을 지불하면 시내 정해진 주차장에 출입이 가능하다. 나 같은 경우는 5일권 62유로에 끊었다. 뭘해도 이득이었고 실제 이용해 보고 너무 만족스러웠다. (지정된 주차장을 이용해야 하는데. 홈페이지에는 다른 지정된 주차장으로 변경 이용은 가능하다고 써있다.)내가 주차한 라 보케리아 근처의 주차장. 넘 접근성이 좋았다. 숙소와는 1.3킬로 떨어져 있었으나 람블라스 거리를 구경하며 걸어다닐 수 있었다.인터넷으로 예약 및 결재가 가능하고 일단 해당 주차장에 주차 후 (이게 중요하다. 어리버리하지 말고 있다 주차하고 주차 카드를 갖고 있어야 한다) 예약 번호와 주차 카드를 가지고 카운터로 가서 플라스틱 카드로 교환해야 한다. 별다른 영어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그냥 주면 5분 정도 마그네틱에 내 정보를 담아서 준다. 이후에는 그 카드로 출입을 하면 된다. (사람이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출입문도 출입시스템으로 되어 있어 이 카드로 체크하고 들어와야 한다.)3. 거리 주차시골 에어비엔비 주인이 '퍼블릭' 주차장이 주변에 있다고 자랑하기에 당연히 꽁짜 주차장으로 알았다가 90유로짜리 딱지를 떼었다.ㅠ이게 서리가 끼어 잘 안보였는데. 주말에는 꽁짜이고 이렇게 아침 10시부터는 시간당 0.65유로를 내야한다. 주말/주중 시간이 다르고 일단 자동차 앞유리 앞에 몇 시부터 주차했는지 해당 영수증을 끼어놓고 갔었어야 했다. 결론적으로 난 일요일 주차를 시작했고 월요일 아침 10시부터 유료가 시작되었기에 이때 영수증을 끊었어야 했던 것이다!! 눈물을 머금고 90유로를 내야하나 한숨을 쉬고 있는데 앞에 주차 관리인이 지나가는게 아닌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해당 딱지를 보여줬다.그런데 그 관리인은 스페인어로 뭐라뭐라하는데. 영어는 안 통하고. 5유로를 달라고 한다. 잉? 대충 느낌이 5유로를 내면 90유로를 안내도 된다는건데. 구글 번역앱까지 동원하여 대충 소통한 바에 의하면차에 유료 티켓을 끊지 않으면 5유로 벌금을 내고 30분 정도까지는 인정해준다. 불법 주차시 90유로다.오잉? 내가 나간 시간이 10시 15분이었는데. 말은 안통했지만 난 30분 이내 나갔다고 했더니 관리인은 5유로를 주차 기계에 넣고 영수증을 끊어 다시 영수증을 기계에 넣었다. 그리고 가라고 한다!! 와우!!이후에도 거리 주차를 할때는 거리에 주차 정산기가 있는데. 아직도 정확하게 이해되지는 않다. 바르셀로나는 이랬는데.여기보면 시간당 2.5유로이고 최대 2시간까지 주차 가능. 여기도 유료 주차 시간이 정해져 있어 낮시간에만 주차비를 내야한다. 결국 밤에는 주차를 위한 전쟁이 시작된다. 아란다 델 두에로에서 큰 일날뻔 했기 때문에 정확하게 주차비를 내기로 생각했다.또한 거리 주차에서 거주자와 유료 주차 구역이 나눠져 있는데. 파란색으로 그어진 곳이 유료 주차 구역이다.4. 고속도로사진을 못 찍었는데. 아직 유럽은 톨게이트에 현금을 낼 수 있는 공간이 꼭 있다. 신용카드나 무인 현금(동전을 동전 코너에 직접 넣으면 된다)이 그려진 톨게이트 라인으로 들어가면 된다.5. 주유계속 버벅됐었는데. 이건 나라마다 틀렸던 것 같음. 이탈리아나 프랑스나 스스로 했던 것 같은데 스페인은 도저히 어떻게 하는지 몰랐다. 특히 가솔린이나 경유 그 중에서도 어떤 걸 넣어야 하는지 (렌트카에서 당근 알아야 할테고..)결국 사람을 불렀는데. 시골 주유소라서 그런지 사람이 나왔다. 어떤 종류를 넣을지를 알려줬는데. 아마도 자동차 주요구에 써 있는 것 같았다. (우리와 달리 경유와 가솔린 입구 차이는 없었다.)실제 방법은 간단했다. 우선 주유구를 열고 알맞은 종류를 선택 주유기를 주유구에 넣으면.. 그냥 원하는 만큼 넣으면 된다. 25% 남았을때 75%를 넣으니 약 50유로가 나왔다. (가솔린 리터당 1.2~1.3유로정도했다)다 넣었으면 정산소(주로 고속도록 휴게소의 편의점)로 들어가 돈을 내면 된다. 결국 기름부터 넣고 후정산인데. 기름을 넣고 도망가면 어떻게 해결할지 궁금하긴했다.이러한 내용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으면 한다. 사진을 못 찍은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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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TL(zona a traffico limitato)에 관하여
Culture3/15/2026

ZTL(zona a traffico limitato)에 관하여

지난주 약 1주일간 이탈리아를 렌트카로 다녀왔습니다. 파리에서 피렌체로 들어가 차를 픽업하고 밀라노에서 반납 일정이었습니다. 사실 처음 이탈리아 렌트카 여행은 7여년전쯤 경험했고 당시에는 ZTL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는데 지난 여름 재도전을 결정하고 숙소까지 모두 예약한 상태에서 최근들어 ZTL의 존재를 알게되었습니다.더군다나 대부분의 숙소가 시내 중앙에 위치 ZTL 안쪽에 있음을 확인하고 부랴부랴 숙소에 연락하여 주차 방법을 문의했습니다. 약간 멘붕이 오기도 했는데 제가&nbsp;얻은 정보를 함께 나누고자 글을 적습니다.&nbsp;ZTL의 의미를 깨닫다.다른 유럽 나라에는 없는 이러한 것을 왜 시행해서 사람을 피곤하게할까. ZTL은 zona a traffico limitato의 준말로 이탈리아의 모든 지역 및 도시에&nbsp;결국 해당 지역의 문화재 보호는 물론 해당 존 안에 사는 사람의 편의를 도모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제도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정상적인 엑세스 권한을 획득한다면 불편함이 없는 상태가 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외지 사람들만 불편한 제도.볼로냐 ZTL 구역지도&nbsp;ZTL에 들어갈 수 있는 대상물론 ZTL을 인식하여 접근하지 못 하게 해주는&nbsp;네비가 있겠지만 그보다는 ZTL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안다면 더욱 수월한 여행이 될 것 입니다. 더군다나 요즘에 번역앱들이 많은지라 어렵게 않게 정보를 찾을 수 있는데요. 구글에서 검색하면 이탈리아 교통정보관련 사이트들이 있는데 이러한 내용들이 있었습니다.숙박 이용자 중 해당 숙소에서 허가를 대신해 준 자물건을 배달하러 잠깐 들어가는 자허가를 받은 관광버스 등 단기 이용자ZTL 운영 시간 외 접근자&nbsp;당연 내부 허가된 주민 등ZTL 내부 호텔, &nbsp;ZTL 엑세스 권한 받기일단 숙소에 연락해본 결과 몬테풀치아노 숙소였던 호텔의 경우는 그냥 차 가지고 들어오라고 답장이 왔습니다. 주차장은 없는데 오면 주차할 곳을 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ZTL 안쪽 에어비앤비 숙소는 당연 주차장 있는 곳은 없고 주인이 몇 가지 안내를 해주긴 했습니다. (아마도 에어비앤비는 호텔처럼 숙박객의 ZTL 엑세스 신청이 불가하거나 아니면 귀찮아서 안해주는지도 몰겠네요)엑세스 티켓받아 실제 사용시 오픈해야 한다따라서 짐을 내리고 근처에 주차를 하기위해서는 정식으로 ZTL접근티켓(?) 구매하면 되는데요. 처음 검색했을 때는 일단 들어가서 근처 담배가게(따박)에서 티켓을 사서 번호를 적어 문자메세지를 보내면된다고 해서 그렇게 알았다가 좀 더 검색해보니 최근들어 온라인 신청으로만 한다고 바꿨다고 써있네요. 참, 저는 피렌체는 일요일 방문이었고 일요일은 ZTL이 해제되어 들어갔고요. 볼로냐 엑세스가 필요해 찾아본 것인데. 이게 지역마다 엑세스 티켓을 구매해야 하는 것 같은데. 정확하게 시스템이 어찌되는지는 몰겠습니다. 일단 아래는 볼로냐의 사례입니다.1일권 : 6유로4일권 : 15유로티켓 구매처&nbsp;|&nbsp;티켓 구매 설명&nbsp;(볼로냐 사례)이탈리아어지만 번역기 돌리면서 충분히 하실 수 있을 겁니다. 막판에 무슨 회계코드를 넣으라는 것이 있는데 이도 네이버 검색하니 바로 방법이 나오고 그대로 하니 30초도 안걸렸네요.5. ZTL 권한없이 접근하기(볼로냐의 경우) ZTL안에 있는 실내주차장에는 하루 30유로 안팎의 주차료에 추가 금액으로 ZTL엑세스권한까지 발급해 준다고는 홈페이지에 써있는데요. 이렇게 일단 들어가서 비용을 지급하면 안되는건 없는 것 같습니다. 노상주차를 할 수 있다면 시간당 적게는 1유로에서 2~3유로로 더 저렴하게 주차를 할 수도 있는데요. 물론 노상주차는 보통 아침 8시 ~ 저녁 8시 정도만 주차요금을 내야하고 그 이외 시간을 무료입니다. (지역에 따라 시간이 조금씩 다르더라구요)(왼쪽) 볼세냐 주차 기계. 저렴함 (오른쪽) 볼로냐 노상 주차 기계사실 6유로 15유로가 적으면 적고 많으면 많을수도 있을겁니다. 구글에서 ZTL지도를 검색해서 해당 도시위에 올려보면 대부분 해당 도시의 ZTL입구 한 구석쪽에 공용주차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해당 주차장에서 시내까지는 걷는데 어른 걸음으로 10~15분정도 걸리는 정도입니다. 근데 저는 아이들이랑 함께 여행을 했는데 15분이란 거리가 사실 부담스럽긴 했습니다.모데나의 경우 Parcheggio del Centro(https://goo.gl/maps/8NsHvep2T4KHpyKb6)가 도시 중심으로 가기전에 주차하기 좋은 곳이라 판단했습니다. ZTL인 시내를 통과하면 안되고 외곽으로 크게 돌아 접근해야 하는데 구글맵도 충분히 ZTL을 피해서 안내해 주는 듯 싶었습니다.볼로냐의 경우 ZTL에 벗어나 있으면서 시내 중심과 가장 가까운 노상주차장인 Via Riva di Reno의 경우 시간당 2.4유로입니다. 일단 주차를 하고 근처 주차기계에서 주차 시간만큼 돈을 넣고 해당 티켓을 차 안에 유리 밑에 놓아두면 되는데요. 문제는 주차 자리가 없다는 거지요. 몇 번을 돌다가 근처 골목으로 들어가 마침 한 자리가 남아 주차를 했는데 보니깐 시간당 1.8유로 저렴했습니다. 나중에 보니 ZTL 안쪽 지역은 좀 더 저렴하게 노상주차를 운영하고 있는듯 보였습니다. 엑세스 티켓 구매로 편하게 숙소 바로 옆에 주차할 수 있었습니다.&nbsp;우리와 함께 했던 렌트카물론 파란색 주차구역을 찾아야 하는데. 자리가 없다면 일단 멀리라도 주차를 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주변을 돌아다니면 빈 자리가들이 더러 있어서 아침에 옮기는 것도 방법일 겁니다. 단지, 지금도 해결 못한 이슈는 주차 기계의 결재가 아무리해도 카드결제를 하면 계속 에러가 나서 현금(지폐도 안됨)만 가능하여 한 번에 7~8유로씩 결재하려고 동전을 많이 가지고 다니기도 했는데 이 부분은 불편했네요.&nbsp;마치며그냥 주저리주저리 썼는데요. 여행 후반 꼬모호수나 파도바 지역은 ZTL지역이 아닌 곳에 숙소를 잡았고 ZTL을 고려치 않고 다니니 쾌적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이탈리아 렌트카 여행은 이 ZTL이 변수사항이긴 하지만 극복하지 못할 대상은 아닌 것으로 보이구요. 이것때문에 이탈리아를 포기할 이유도 없으며 이만큼 더 이것을 피하기 위한 전략으로 또 하나의 즐길(?)거리가 생긴 것은 아닌지.&nbsp;(왼쪽) 페라리 박물관 (오른쪽) 거위가 돌아다니는 흔한 시골 마을 식당(왼쪽) 볼로냐 먹자 골목 (오른쪽) 피렌체의 흔한 티본스테이크집그럼에도 렌트카로 이탈리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묘미는 ZTL을 극복하고도 충분히 남을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nbsp;도전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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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cily] 호불호 갈리는 시칠리아 길거리음식
Culture3/14/2026

[sicily] 호불호 갈리는 시칠리아 길거리음식

난 음식에 관심이 많긴한데 미식가나 진심을 표하긴 좀 그렇고. 이번 여행에서의 시칠리아 음식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음식은 아마도 한 편으로 다루기 힘들겠지. 가기 전부터 각종 유튜브와 블로그들을 찾아보며 각종 공간을 구글맵에 표기하였다. 몇 가지 원칙을 정했는데 그 원칙은 여지없이 무너졌다.젤라또 맛집은 미저장. 왜냐면 어딜가나 맛있을 것임으로. 단, 시칠리아니깐&nbsp;젤라또보다 그라니따 위주로 아침은 숙소주변에서 간단하게.&nbsp;에스프레소 향연을 맛 볼 것. 아니 카푸치노와 꼬르네또로 현지인 처럼.하루 한 끼는 현지식으로 잘 먹는다. 이때 현지 시칠리아 와인 위주로&nbsp;하루 각 1병을 해치운다. 백종원 아저씨와 유명 유튜버들이 다녀갔던 곳에 대한 개인적인 리뷰를 해 본다비수기 여행에서 간과한 것이 있는데 그건 한 겨울에 시칠리아 사람들은 '그라니따'를 잘 먹지 않는 것이었다.&nbsp;그라니따는 사진과 같이 슬러시나 샤베트 느낌인데. 많은 바나 카페에서 그라니따를 팔지 않는 것이었다! 그라니따는 3월은 되야 판매한다는 곳이 많았다. 그렇다고 그라니따를 파는 곳도 종류가 다양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피스타치오는 있었지만 이외 다양한 과일맛은 없었다. 피스타치오, 커피, 레몬맛정도였다. 처음 1일 1개의 젤라또를 목표로 했는데 아이들도 그라니따의 맛에 빠져서 모두들 그라니따만 먹으러 다녔다. 특히나 둘째는 멀미가 날 때는 그라니따를 먹으면 씻은 듯이 멈추기도 했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유명한 집이라고 먹어본 그라니따보다도&nbsp;그냥 관광지 길거리에 사먹은 그라니따가 제일 맛있었다는 사실. 그라니따는 상향 평준화된 그런 음식이 아닐까 한다. 시칠리아에서 유명하다는 붉은오렌지 착즙쥬스도 여행으로 지친 심신을 충전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가능한 많이 먹으려 노력했던 것 같다.대충(?) 먹는 아침식사에 28유로가 나왔다현지인들과 같은 아침식사(?)를 해볼까했다. 이탈리아는 아침 일찍 문여는 카페들이 많이 있었다. 보통 빠르게 문을 여는 곳은 아침 7시. 보통 시차가 안 맞으니 일찍 일어날테고 이날도 4명이 함께 아침을 먹으러 갔는데. 먹고 싶은 것을 다 시켜보았다. 그라니따와 브리오슈, 피스타치오 꼬르네또(이탈리아에서는 크루아상을 이렇게 부르는듯), 초코빵, (사진에는 안 나오지만) 아란치니,&nbsp;그리고 오렌지쥬스 및 커피를 시켰다. 그라니따와 브리오슈는 각각이 하나의 완성된 음식으로 브리오슈는 따뜻하고 모닝빵처럼 부드럽고 잘 찢어지는 것이 함께 먹어서 더욱 시너지를 내는지는 잘 모르겠더라. 아란치니는 정말 먹어보고 싶지 않는 음식 중 하나였다. 밥 넣고 튀긴 음식을 그렇잖아도 먹을게 많은 이탈리아에서 굳이 먹어야 하나하고 맛이나 볼려고 시켰는데 둘째가 또 너무 좋아하는거다. 본고장에서 맛본 피스타치오는 그라니따, 꼬르네또 그리고 스프레드로 빵에도 발라 먹어봤는데. 뭐랄까. 매우 강하고 고소한 맛(베스킨라벤스 아이스크림에서 맛 봤으니)으로 기대했으나 매우 부드럽고 은은한 맛이었다. 담백하기까지 했는데 약간 땅콩맛. 마트에서도 피스타치오 말린 것을 파는데 싸진 않아 보였다. 가공되지 않는 것을 먹어봐도 땅콩 고소함에는 미치지 않은 은은하게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라고나 할까. 결국 앉아서 먹는다고 4명 자리세까지 받는데 총 28유로가 나왔다. 사실 아침에 이렇게 거하게 먹고 나니 점심을 맛있게 먹을 수 없어 이후에는 이런 거한 아침은 먹지 않았다.호불호가 갈리는 길거리 음식&nbsp;백종원의 '스푸파' 시칠리아편은 어쩌면 우리나라 여행객의 표준가이드라 할 만 할 것이다. 해당 프로그램에 나왔던 곳을 찾아가면 그곳 일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한국말로 "곱창!", "백종원" 정도는 능청스럽게 해댔다. 세계 어디서나 동물의 내장 요리는 그 나라의 음식 수준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사실 '내장' 버거의 경우 원조라면 소고기가 유명한 토스카나 지방의 피렌체가 아닐까 한다. 이미 피렌체에서 맛 본 적이 있기에 크게 기대를 하지는 않았는데 워낙 가족들이 좋아해서 이번에 백종원이 다녀간 곳을 방문했다. 시칠리아 팔레르모관련 유튜브 동영상에 거의 모든 유튜버가 다녀간 곳으로 일부는 한국 사람이라면 안 좋아할 수가 없다고 하고 다른 일부는 호불호가 갈리는 맛이라고 평가했다. 우리가 그랬다. 와이프나 아이들은 내장버거가 맛있다고 하는데 나는 -내장을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감동은 없었다.&nbsp;염통 정도를 아주 야들야들하게 오일베이스에 익혀 소금이나 후추 그리고 레몬으로 간을 한 햄버거? 빵의 종류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빵에 따라 맛이 큰 영향을 주지는 않았던 것 같다.백종원이 다녀가 유명해진 팔레르모 내장버거집'스티키올라(내장구이)'. 사실 내가 길거리음식에 대한 로망이 없어서 그런지 나에겐 그리 대단한 느낌은 아니었다. 백종원이 다녀간 팔레르모 부치리아 시장의 내장구이 가게 근처는 명물이었다. 온동네 내장 굽는 연기가 자욱한 와중에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 습한 연기라 더더욱 냄새가 장난이 아니었다. 와인보다 맥주가 어울리는 맛이었고. 가족들은 모두 맛에 넋이 나가 있었다. 삽겹살이나 내장을 숯불에 굽는데 안 맛있을 수도 있을까. 막창(?) 또는 대창으로 보이는 파 없이 구워주는 부위가 더 맛있었다는 전언이다. 가족들은 다음날도 또 가자고 해서 다시 갔으나 휴일이 아님에도 비가 오는 날은 영업을 하지 않는다고 주변 상인들이 알려주셨다.&nbsp;그리고 팔레르모 주변을 걷다가 언젠가 본 것 같은 아주 오래되고 깔끔한 내장버거집도 만났다. 1834년 이래로 계속된, 돈을 버셨는지 야외에서 장사하다가 버젓이 큰 가게를 갖게된 히스토리도 매장 주변에 잘 설명이 되어 있었다.리코타 치즈 베이스 디저트시칠리아 대표 디저트하면 '카놀리(Cannoli))'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바삭한 과자(아이스크림 콘 과자와 딱딱한 옛날 강정의 중간쯤 되는) 속에 '리코타' 치즈를 채워 놓은 간식이다. 이것도 워낙 유명하여 맛은 봐야할텐데 사실 단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엄선에 엄선을 거쳐 수녀원 교회에서 운영한다는 오래된 팔레르모의 과자점(I Segreti del Chiostro)에 들리게 되었다. 안에서는 먹을 수 없고 주문 즉시 제조한 것을 받으면 수도원 건물의 회랑에서 맛 볼 수 있다. 맛은 한 입 정도는 맛있게 먹을 수 있으나 한 개를 다 먹기는 매우 부담스러웠다. 안의 리코타 치즈는 치즈라기 보다는 일종의 화이트 초콜렛 맛으로 커피 없이 먹기는 쉽지 않았다. 시칠리아에서 이러한 하드한 디저트가 발달한 이유는 무엇일지. 우리와는 다른 인체 성분 분해 능력을 갖고 있는게 아닌가 생각했다.주문과 동시에 만들어주신다&nbsp;다시 만난 최고의 에스프레소커피의 나라는 당연 이탈리아일 것이다. 커피에 진심일진데 가격까지 저렴하니 눈물이 날 정도다. 에스프레소는 대부분 1유로를 간신히 넘을 뿐이다. 이탈리아의 역에서 또는 현지인이 넘쳐흐르는 바에서도 계산하는 곳에 달려가 "에스프레소 한 잔!"를 주문하고 애플페이(당연 다른 카드나 현금도 된다)로 결재하고 사람들 숲을 이리저리 뚫고 들어가 바테이블 빈 자리에 영수증을 놓고 엄청 기대하면서 기다리고 있으면 방금 내린 걸쭉한 에스프레소 한 잔이 나온다. 우선 한 모금으로 전체 쓴 맛을 감상하고 이후 설탕을 듬뿍 타서 달콤하게 먹는 나만의 방식.&nbsp;근래 이탈리아를 오고 가면서 많은 커피를 마셔보고 한국하고도 비교해 보기도 했다. 나의 스타일은 커피 원액 추출이 매우 적어서 진득하고 걸쭉한 맛을 좋아하는데 그렇지 못 한 곳도 이탈리아에 훨씬 많았다. 어떤 곳은 오히려 한국의 에스프레소가 더 맛있기도 했는데 그나마 내가 한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에스프레소는 '르사르 에스프레소'. 암턴, 이제까지 내가 맛 본 최고의 에스프레소는 피렌체 이딸리 1층 에스프레소바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기록을 갈아치웠다. 팔레르모 근교 '몬레알레' 대성당 근처에 있던 바였다. 디저트도 매우 포스있어 보였지만 갑자기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인하여 간단하게 에스프레소만 먹고 빠지기로 했는데. 그 정신없는 와중에 커피를 내려주던 20대초반으로 보이던 현지인 언니가 한마디 한다.&nbsp;"안녕하세요~" 내가 잘못 들었나. 그녀는 수줍게 자신이 한국사람에게 한국말로 인사했다는 사실에 뿌듯해 한 것 같다. 우리가 한국말 할 줄 아느냐며 놀라고 있으니 "조금요"라고 말했다. 시칠리아의 시골에서도 한국말을 배우는 젊은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가 내려 준 커피맛이 날 놀라게 했다. 뭐지? 이 끈적함은. 고소하고 진득한 에스프레소의 달콤함에 이 시골 변두리의 바가 나의 전세계 1위 자리에 등극하게 되었다. 우연은 가끔은 인생에 자극을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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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제집2] 숙명적 결정 장애자
Culture3/12/2026

[판제집2] 숙명적 결정 장애자

처음 집을 짓겠다고 했을 때 그리 특별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건축 지식은 전무했지만 주변에 집을 직접 짓는 사람이 여럿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땅을 샀으니 당연히 집을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실 일생에 우리 주변에서 실제로 집을 짓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꼬마빌딩이나 리모델링 등 곳곳에 공사현장은 많이 보이는데 도심에서 단독주택 건설현장을 보는 건 쉽지 않다. 실제 내가 만나봤던 건축사들을 봐도 단독주택 포트폴리오가 그렇게 많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건축사들은 주택이 건물보다 더 까다롭다고 했다. 아무래도 건물은 일하는 곳이고 주택은 생활하는 곳이니 디테일하게 신경 쓸 것이 많다고. 그래서 건물 평수보다 주택이 작다고 설계비가 비례하여 작아지지 않는다고 했다.&nbsp;그렇게 집을 짓겠다고 건축사들을 만나 상담을 할 때 가장 처음에 듣는 질문은 바로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가”&nbsp;또는 “어떤 집을 짓고 싶은가”였다.&nbsp;언젠가 추운 겨울 눈 내리는 일본의 홋카이도 어느 지역에 빵 냄새 솔솔 나던 오두막집을 지나갈 때 너무나 평온하고 따뜻해 나도 언젠가 저런 집을 짓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시작이 아니었나 싶다. 핀터레스트나 월간지에서 차갑고 스틸로 된 검은 인테리어를 보면서 세련된 무엇을 마음에 담기도 했던 것 같다. 가족이 행복한 집, 목가적 분위기의 조용한 집, 햇빛이 비치는 집, 아니 고급스러운 분위기도 좋고요. 넓었으면 좋은데 좁아도 상관없어요. 하늘이 보였으면 좋겠어요. 바닥엔 물이 흐르고요. 지붕도 열리면 좋겠네요. 또.십중팔구 건축사들은 당황한다. 어떤 건축사는 A4 수십 장으로 된 설문용지를 보내온 적도 있었다. 우리 가족의 형태를 치밀하게 관찰하려는 목적으로 보였다. 가족의 행태와 사람의 로망은 다를 진데 어떻게 맞춰가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난 그냥 집을 지으면 재미있겠다는 생각만 했지 꼭 집을 지어야 한다는 사명감 따위도 없긴 했다.나도 나를 모르겠어요집을 짓는다고 하면 주변에서 많은 의견을 접수하게 된다. 2층은 필요 없어요. 활용도가 매우 떨어져요. 목조주택은 방음이 안되고 2층에서 삐그덕 소리가 나요. 집 크게 지을 필요 없다. 관리하기 힘들다. 잔디 깔지 말아라. 보기엔 좋아도 그거 중노동이다. 일생에 한 번 짓는 집 제대로 지어야 한다 등등. 모두 뼈가 되고 살이 되는 내용들이다. 이러한 의견들을 모두 취합하다 보면 집은 너덜너덜 해질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정리가 안되어 집 짓는 일을 중단한 적도 있다.두 번째로 많이 받는 질문은 예산에 대한 부분이다. "얼마 예산으로 지으려고 하느냐"&nbsp;또는 "몇 평짜리 집을 지으려고 하느냐"인데. 통장엔 돈이 한 푼도 없었다. 얼마나 돈이 필요한지 알고 싶기도 했는데.&nbsp;궁금한 점은 실제 다른 건축주는 가지고 있는 현금으로 집을 지을까? 몇 평을 원하는지 본인이 알고 있는 건축주는 얼마나 될까? 그런 걸 전혀 모르니 상담하고 협의하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이런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고 쫓아내지는 않는다.&nbsp;세 번째로 많이 받은 질문은 구조, 재료, 공법에 대한 부분이었다. "어떤 재료의 집을 짓고 싶은지". 즉, 기본적으로 철근콘크리트, 목재, 철골 중 말이다. 나는 그저 춥지 않으면 좋겠어요. 이 또한 3가지 장단점에 대해서 명확하게 모르니 선호도를 말할 순 없었다. 가장 흔하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블로그나 유튜브 등에서 살펴보아도 너무 다양한 의견들이라 결론적으로 전문가가 결정해 주길 바랐다.가끔은 AI가 나를 인터뷰해서 예산과 평수 콘셉트 등 모든 것을 제안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건축사를 만날 때마다 난 더욱 작아져 있었다. 너무나 명쾌하게 콘셉트와 실행 안을 갖고 있는 건축주를 보면 부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건축주의 운명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자리라는 것을 안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이것은 단지 설계 단계에서 뿐 아니라 건축의 전 과정에서 벌어진다.&nbsp;나는 회사나 일상생활에서 결정장애를 갖고 있지 않다고 자부했으나 건축에 있어서는 무색무취였던 것 같다. 한 때는 공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들어가서 사는 사람이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부족하고 불편한 것이 있다면 그때그때 바꾸어 나가면 되지 않겠느냐란 생각. 그저 내 한 몸 누을 공간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언젠가 이런 얘기를 건축사에게 했는데 허탈한 웃음을 지으셨던 기억도 있다. 아마도 건축에 대한 지식이 없다 보니 비교분석 자체가 힘들어 결정을 내리기 힘들다고 볼 수 있겠다. 지식이 없다고 집을 짓는 것이 범죄는 아니지 않은가. 전문가만 집을 지으란 법도 없을 테니 말이다.&nbsp;지식이 풍부하고 명확한 목적으로 효율적으로 집을 짓는다면 축복이겠지만 나처럼 이 혼돈의 과정을 해학과 웃음으로 잘 극복하고 즐길 수 있다면 그 또한 해볼 만한 작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결정장애는 부끄러운 것이 아닌 또 하나의 콘텐츠라 생각하기로 했다.나도 내가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제주라는 섬에 집을 지을 수 있을지 궁금하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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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제집1] 집 짓기가 인생 챌린지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
Culture3/12/2026

[판제집1] 집 짓기가 인생 챌린지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

“내가 잘리는 날이 온다면 그때가 제주로 떠나는 날 일 것이다”2016년. 그러니깐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 제주에 땅을 얼떨결에 계약하고 우스개 소리로 이렇게 지껄였다.이런 생각에 미래가 든든하기도 했고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 대상이기도 했는데 농담처럼 하던 말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영화 &lt;쇼생크 탈출&gt;을 좋아한다. 감옥의 죄수들이 야외 근로를 나와 어느 건물 지붕 위에서 주인공 '앤디'의 활약으로 땡볕아래 시원한 맥주를 마시게 된다. 몇 년만일지도 모를 일이다. 앤디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정작 앤디는 맥주를 마시지도 않는다. 영화 말미에 앤디가 감옥을 탈출하여 비를 맞으며 만세를 부르는 자유의 장면. 그리고 마지막 멕시코 어느 해안가에서 절친 '레드'를 기다리며 차분하게 배를 수리하고 있었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어쩌면 회사라는 감옥에서 자유를 향한 나의 갈망과도 같았다. 나도 제주의 어딘가에서 앤디처럼 인생의 후반부를 맞이할 수 있을까.엄청난 노력과 자금이 뒷받침된 것은 아니었다. 평범하다면 평범할 것이다. 그냥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부딪히니 문이 열였다고나 할까. 혼자였으면 절대 이루지 못했을 것도 같다. 출근길 버스 안에서 또는 판교의 눈부신 야근 빌딩을 바라보며 인생의 덧없음을 간간히 깨달을 때마다 더욱 박차를 가했던 것도 같다. 코로나 기간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란 스스로 물음에 나의 제주집 앞마당에서 한 잔의 커피를 마시겠다고 답했다.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집을 짓는 것이 익숙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생에 집 한 번 짓기가 쉬운 일인가. 누구나 건축주는 처음이니깐. 집을 짓는 꿈의 과정이 고통이 아니라 즐거움의 연속이었으면 했다. 삶에 파동이 있듯이 그 과정도 롤러코스터 같았다. 솔직히 고백한다. 몇 번이고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이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같이 나에겐 힐링의 순간이 되기도 한 것 같다. 어느덧 나는 &lt;오즈의 마법사&gt;를 만나러 가는 주인공 '도로시'가 되어 있었다. 나의 친구들은 어디에 있을까.이 스토리는 집을 짓기 위한 지식을 얻기에는 부족할 수 있다. 집을 짓기에 충분한 이론적 기술적 지식이 담겨 있지는 않다. 이것은 꿈에 대한 이야기다. 그렇다고 판타지는 아닌 지독한 현실 고증 리얼리티다. 건축 지식이 전무했던 판교 IT 직장인이 지난 10년간 제주에 나만의 공간을 짓기 위해 좌충우돌했던 그 과정의 기록을 통해 한 번쯤 자신의 꿈을 위해 세상에 도전하고 푼 사람들에게 작은 용기와 희망을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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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돼지라는 이데올로기를 버리면 다른 제주가 펼쳐진다
Culture3/1/2026

흑돼지라는 이데올로기를 버리면 다른 제주가 펼쳐진다

제주 흑돼지가 맛있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제주 분들이 흑돼지를 먹는 경우를 나는 잘 보지 못했다. 아마도 제주 어느 마트에 가서 각종 돼지고기의 부위를 사다가 집에서 구워 먹어도 그 맛이 일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가격적으로도 충분히 메리트를 가지고 있다.물론 흑돼지 가격은 흑돼지만의 가치는 아닐 것이다. 가게의 임대료와 인건비 그리고 각종 맛있는 밑반찬까지의 비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말. 바다를 보는 풍경, 고소한 멜 젓 그리고 함께한 사람들의 양념까지. 흑돼지는 흑돼지만의 가치가 있다.&nbsp;그런데 내가 판단하기에 흑돼지 맛집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간단하게 검색만 해봐도 리스트가 뜰 것이고 해당 집의 인테리어, 뷰, 메뉴 사진까지 넘친다. 그리고 집마다의 차별성도 커 보이지 않는다. 제주에서 가장 웨이팅이 많은 브랜드 가게도 전국적인 체인이 생기면서 기다림의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고. 해당 가게를 따라 하거나 경쟁하는 다양한 가게들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서쪽 우리 동네는 바다가 바로 보이진 않기에 넓은 마당을 가지고 배드민턴은 물론 트램펄린까지 갖춘 잔디가 깔린 식당에서 맛보는 즉석구이는 특별했다.발리가든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신정로 216또 한 곳을 추가한다면 동네에서 아주 오래된 '명리동식당'이라 하겠다. 동네 주민이 강추한 집으로 '짜투리' 고기가 유명한 곳이라고. 굳이 비싼 목살이나 삽겹살 부위가 아니더라도 이들과 버금가는, 어쩌면 더 맛있었던 부위를 맛 볼 수 있는 곳은 아닐지. 수십년간 한 자리에서 로컬 주민들의 맛집으로 자리잡은 곳. 짜투리 고기와 함께 김치찌게는 이 집만의 시그니처라 할 만 하다.명리동식당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녹차분재로 498하지만 꼭 흑돼지를 먹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난다면 더욱 다양한 음식을 경험할 수 있다. 도민 맛집이란 곳이 있다. 여행객들은 잘 모르는 그래서 관광지 음식 가격보다는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곳인데. 이곳도 소위 도민 맛집이라는 수입 소고기를 파는 집이다.제주까지 가서 수입 쇠고기를 먹고 와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당신의 취향의 문제라고 답하고 싶다. 모슬포에 오래된 노포 같은 숯불구이 집. 수입 쇠고기지만 신선하고 저렴한 고기 러버라면 도전해 볼만하다. 숯은 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자신을 불태우고 이 집은 차돌박이와 양념갈비가 일품이다. 양도 푸짐하여 모둠 대자를 주면하면 성인 3명이 먹을 수도 있는 양이다. 기본 서비스로 나가는 육회도 달작 하지만 입맛을 돋우기는 부족하지 않다.모슬포명가숯불화로구이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로289번길 16-7 모슬포명가숯불화로구이2차로는 로컬 치킨은 어떨지. 숯불구이 집을 나와 배부른 배를 부여잡고 슬슬 걸어가다 보면 발견할 수 있는 옛날 통닭집이다. 가격도 저렴하여 내가 방문했을 때는 가게 가득 근방 군인들로 가득 찼었다. 통닭은 물론 떡볶이에 어묵까지 시골에서만 맛볼 수 있는 포스를 경험할 수 있다. 여유가 있는 여행객이라면 흑돼지와 함께 숨겨진 다양한 육류의 향연을 즐기길 빈다.남촌옛날통닭 모슬포점: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신영로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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