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남부 오악사카의 한 마을, 동이 트기 직전의 부엌입니다.
흙바닥 위에 작은 불이 지펴져 있고, 그 위에 둥글고 넓적한 토기 판이 달궈지고 있습니다. 한쪽 구석에는 어젯밤부터 물에 잠겨 있던 큰 냄비가 놓여 있습니다. 냄비 속 옥수수 알갱이들은 하얗게 불어 있고, 물은 뿌옇습니다. 그 물에는 석회가 풀려 있습니다.
여인은 옥수수를 건져 손으로 비빕니다. 누렇던 껍질이 미끄러지듯 벗겨집니다. 그녀는 알갱이를 평평한 돌판 위에 올리고, 원통형 돌 방망이로 밀고 당기며 갈기 시작합니다. 몇 번을 오가자 알갱이는 촉촉하고 차진 반죽이 됩니다. 그 반죽을 손바닥 사이에서 톡톡 두드려 얇고 둥글게 편 다음, 달궈진 토기 판 위에 올립니다. 잠시 뒤 반죽이 부풀어 오르며 구수한 냄새가 부엌을 채웁니다. 토르티야입니다.
이 부엌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는 옥수수가 아닙니다. 어젯밤 냄비에 풀어 넣은 한 줌의 석회입니다. 이 석회 한 줌이 없었다면, 옥수수 위에 세워진 아메리카의 문명들은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인류가 농사를 짓기 시작한 뒤, 대부분의 문명은 한두 가지 곡물을 중심에 두고 식탁을 짰습니다. 곡물은 탄수화물을 저장하는 가장 효율적인 창고였습니다. 말려두면 몇 년을 버티고, 운반하기 쉽고, 세금으로 거두고 배급으로 나누기 좋았습니다.
그런데 곡물은 사람에게 공짜로 에너지를 주지 않았습니다. 곡물마다 조건을 붙였습니다. 이렇게 다뤄야만 나를 먹을 수 있다는 조건입니다. 그 조건을 알아낸 사람들이 그 곡물 위에 문명을 세웠습니다.
이 장에서는 서로 다른 땅에서, 서로를 모른 채 독립적으로 길들여진 세 곡물을 따라갑니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밀, 멕시코의 옥수수, 그리고 아프리카 사헬의 수수입니다. 한국인의 식탁을 떠받친 쌀의 이야기는 4부에서 한 상 차림과 함께 다시 만나게 됩니다.
먼저 밀입니다.
밀은 약 1만여 년 전, 지금의 튀르키예 남동부에서 이라크와 시리아, 레반트로 이어지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재배되기 시작했습니다. 야생 밀은 이삭이 익으면 알곡이 저절로 흩어져 땅에 떨어졌습니다. 씨앗을 퍼뜨리기 위한 식물의 전략이었지요. 그런데 가끔 알곡이 잘 떨어지지 않는 돌연변이가 있었고, 사람들이 그런 이삭을 골라 거두고 다시 심기를 반복하면서 밀은 사람 없이는 번식할 수 없는 작물이 되었습니다.
밀이 사람에게 붙인 조건은 '가루'였습니다. 밀알은 단단한 겨에 싸여 있어서 통째로 삶아 먹기보다 빻아서 가루로 만들어야 제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리고 그 가루 안에는 다른 곡물에 거의 없는 특별한 성질이 숨어 있었습니다.
한 입 과학 — 글루텐이라는 그물
밀가루에는 글리아딘과 글루테닌이라는 두 종류의 단백질이 들어 있습니다. 가루에 물을 붓고 치대면 이 두 단백질이 서로 엉키면서 늘어나고 되돌아오는 탄력 있는 그물을 짭니다. 이것이 글루텐입니다. 반죽 속 효모가 당을 먹고 이산화탄소를 내뿜으면, 이 그물이 풍선처럼 기체를 붙잡아둡니다. 그래서 밀 반죽은 부풀어 오르고, 구우면 속이 폭신한 빵이 됩니다. 글루텐의 그물이 촘촘할수록 빵은 높이 부풀고, 쫄깃한 면은 길게 늘어납니다.
가루와 글루텐. 이 두 조건은 밀을 먹는 사회의 모습을 바꿨습니다. 곡물을 가루로 빻는 맷돌과 방앗간이 필요했고, 반죽을 굽는 화덕이 필요했습니다. 화덕은 한 집이 갖추기에는 부담스러운 설비였기 때문에, 많은 지역에서 빵 굽는 일은 마을 공동 화덕이나 전문 제빵사의 몫이 되었습니다. 앞 장에서 본 이집트의 제빵소도, 훗날 유럽 도시의 빵집 길드도 이 조건에서 나왔습니다. 밀은 곡물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산업이었습니다.
같은 밀이 동쪽으로 건너가자 전혀 다른 얼굴을 얻었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밀은 수천 년에 걸쳐 중앙아시아를 지나 중국 북부로 전해졌습니다. 그런데 동아시아의 부엌에서 밀가루는 주로 화덕에 굽는 빵이 아니라 물에 삶는 면과 솥에 찌는 만두와 찐빵이 되었습니다. 큰 화덕 대신 솥과 시루가 부엌의 중심이던 조리 문화, 연료를 아껴야 했던 사정 등 여러 설명이 나오지만, 어느 하나로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분명한 것은 글루텐이라는 같은 그물이, 서쪽에서는 기체를 붙잡는 풍선이 되었고 동쪽에서는 길게 늘어나는 면발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밀이 길을 따라 이동하며 어떻게 모습을 바꿨는지는 3부의 만두 이야기에서 다시 이어집니다.
다음은 옥수수입니다.
옥수수의 조상은 지금의 옥수수와 거의 닮지 않았습니다. 멕시코 남서부 발사스강 유역에 자라는 테오신테라는 야생 풀입니다. 테오신테의 이삭은 손가락 한 마디 정도 길이에, 딱딱한 껍질에 싸인 알갱이가 몇 개 달려 있을 뿐이었습니다. 약 9천 년 전부터 이 지역 사람들이 테오신테를 거두고 고르고 다시 심기를 수천 년 동안 반복한 끝에, 알갱이가 수백 개씩 촘촘히 박힌 지금의 옥수수가 태어났습니다. 인류가 식물을 바꿔놓은 사례 가운데 가장 극적인 변화로 꼽힙니다.
그런데 옥수수가 붙인 조건은 밀보다 훨씬 까다로웠고, 눈에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옥수수에는 니아신이라는 비타민 B군 영양소가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니아신은 대부분 다른 분자에 단단히 묶인 상태여서, 그냥 먹으면 사람 몸이 거의 흡수하지 못합니다. 옥수수만 먹고 살면 니아신 결핍이 오고, 그 결과가 펠라그라라는 병입니다. 피부염과 설사, 정신 착란이 차례로 찾아오고, 치료하지 않으면 죽음에 이릅니다.
메소아메리카 사람들은 이 병을 겪지 않았습니다. 오악사카의 부엌에서 본 그 한 줌의 석회 덕분입니다. 옥수수를 석회나 나뭇재를 푼 알칼리성 물에 삶고 불리는 과정을 이 지역 말로 '닉스타말화'라고 부릅니다. 알칼리 처리는 옥수수의 단단한 겉껍질을 벗겨내고, 묶여 있던 니아신을 풀어내 몸이 쓸 수 있게 만듭니다. 동시에 반죽이 서로 잘 뭉치게 해서 토르티야를 얇게 펼 수 있게 해줍니다. 영양과 요리가 하나의 기술 안에서 함께 해결된 것입니다. 이 기술과 관련된 조리 도구의 흔적은 적어도 3천 년 넘게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이야기에는 뒷면이 있습니다. 16세기 이후 옥수수는 대서양을 건너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로 퍼져 나갔습니다. 수확량이 많고 기르기 쉬운 이 작물은 금세 가난한 농민들의 주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배에 실린 것은 옥수수 알갱이였지, 석회 한 줌의 지혜가 아니었습니다. 1735년 스페인 아스투리아스의 의사 가스파르 카살은 옥수수를 주식으로 삼던 농민들에게서 기이한 피부병을 관찰해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펠라그라에 대한 가장 이른 의학적 기록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후 이 병은 이탈리아 북부와 발칸, 그리고 20세기 초 미국 남부의 옥수수 농민들 사이에서 대규모로 번졌습니다.
곡물은 바다를 건넜지만, 그 곡물을 먹는 법은 함께 건너지 못했습니다. 음식이 이동할 때 무엇이 따라가고 무엇이 남겨지는지는 3부에서 다시 들여다볼 질문입니다.
이제 아프리카로 가보겠습니다.
앞 장에서 이집트의 나일강 유역에는 비옥한 초승달에서 건너온 밀과 보리가 자랐습니다. 이 작물들은 겨울에 비가 오는 기후에 맞는 곡물입니다. 그런데 나일강 상류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기후가 달라집니다. 비는 여름에 몰아서 내리고, 나머지 계절은 길고 뜨겁고 건조합니다. 사하라 남쪽 가장자리를 따라 동서로 길게 뻗은 이 지대를 사헬이라고 부릅니다. 밀과 보리는 이곳의 조건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이 땅의 사람들은 자기 땅의 풀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수수와 진주조, 그리고 에티오피아 고원의 테프입니다. 2017년,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고고식물학자 도리안 풀러와 동료들은 수단 동부 카살라 인근 유적에서 나온 기원전 4천년기의 토기 조각을 분석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토기를 빚을 때 곡물 껍질을 섞어 넣었는데, 그 자국 속에서 야생 수수와 함께 재배화가 진행된 수수의 흔적이 확인되었습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다른 지역과 무관하게 스스로 곡물을 길들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였습니다.
수수와 진주조가 사람에게 붙인 조건은 밀과 반대였습니다. 이 곡물들은 가뭄과 더위를 놀랍도록 잘 견뎠지만, 글루텐을 만드는 단백질이 거의 없었습니다. 반죽을 해도 부풀어 오르는 빵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곡물들은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가루를 물에 풀어 끓인 되직한 죽, 반죽을 얇게 펴서 굽는 납작한 빵, 그리고 발효입니다. 에티오피아의 인제라는 그 가운데 가장 정교한 대답입니다. 인제라의 재료인 테프는 에티오피아 고원에서 길들여진 곡물로, 낟알 하나의 지름이 1밀리미터 남짓에 불과할 만큼 작습니다. 워낙 작아서 한 줌만으로도 넓은 밭에 씨를 뿌릴 수 있고, 가볍게 지고 다닐 수 있으며, 비가 불규칙한 고원의 날씨에도 비교적 잘 견딥니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이 작은 곡물을 수천 년 동안 식탁의 중심에 두었습니다. 테프 가루를 물에 개어 며칠 동안 발효시키면 반죽 속에서 미생물이 기체를 만들어냅니다. 이 반죽을 넓은 철판에 얇게 부으면 표면에 수많은 작은 구멍이 뚫리며 스펀지처럼 익습니다. 글루텐의 그물이 없는 대신, 발효가 공기를 만들어준 것입니다. 시큼하고 촉촉한 이 빵은 접시이자 숟가락이 되어, 그 위에 올린 스튜를 떠 먹는 도구로도 쓰입니다. 수수와 진주조는 또한 오래전부터 맥주의 원료였습니다. 부풀지 않는 곡물은 발효를 통해 식탁의 다른 자리를 찾았습니다.
세 곡물을 나란히 놓으면, 흔히 빠지기 쉬운 함정이 하나 보입니다. 폭신하게 부푼 밀 빵을 '빵의 완성형'으로 놓고, 토르티야나 인제라, 수수 죽을 거기에 못 미친 무엇으로 보는 시선입니다.
그러나 인제라는 부풀지 못한 빵이 아닙니다. 글루텐 없는 곡물로 공기를 만들어낸 전혀 다른 설계입니다. 토르티야는 발효되지 않은 빵이 아닙니다. 알칼리로 영양을 풀어낸, 수천 년을 이어온 화학 기술입니다. 각자의 곡물이 내건 조건에 대한 각자의 정답일 뿐, 하나의 기준 위에 줄을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 곡물을 주식으로 삼는다는 것은, 그 곡물이 요구하는 노동과 지식을 통째로 받아들인다는 뜻이었습니다. 밀을 택한 사회는 방앗간과 화덕을 짓고 제빵사를 길렀습니다. 옥수수를 택한 사회는 매일 밤 석회수에 알갱이를 담그고 새벽마다 돌판 위에서 반죽을 갈았습니다. 수수와 테프를 택한 사회는 가뭄을 견디는 곡물을 얻는 대신 며칠의 발효를 기다리는 인내를 배웠습니다. 사람이 곡물을 길들인 만큼, 곡물도 사람의 하루를 길들였습니다.
다시 오악사카의 부엌입니다.
해가 뜨고, 토기 판 위에는 토르티야가 한 장씩 쌓여갑니다. 여인은 다 쓴 석회수를 버리고, 오늘 밤 담글 옥수수를 다시 냄비에 붓습니다. 한 줌의 석회를 풀어 넣고 휘젓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도, 그 어머니의 어머니도 매일 이렇게 했습니다.
그녀는 아마 니아신이라는 단어를 알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손길이 수천 년 동안 이 땅의 사람들을 병에서 지켜왔습니다. 그리고 이 손길을 따라가지 못한 옥수수들은 먼 대륙에서 병을 남겼습니다. 같은 곡물이 한쪽에서는 문명을 떠받쳤고, 다른 쪽에서는 사람들을 쓰러뜨렸습니다. 차이는 곡물이 아니라 곡물을 다루는 지식에 있었습니다.
땅은 곡물을 골랐고, 곡물은 조건을 내걸었고, 그 조건을 알아낸 사람들이 문명을 세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