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 무렵,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의 도시 루앙입니다.
사순절이 시작된 지 며칠이 지난 회색빛 아침, 대성당 앞 광장에 비계가 높이 올라가 있습니다. 성당의 남서쪽 모퉁이에서 새 탑이 올라가는 중입니다. 석공들이 누르스름한 석회암 덩어리를 도르래로 끌어 올리고, 망치 소리가 좁은 골목 사이로 울립니다. 광장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무언가를 내고 있습니다. 동전입니다.
이 동전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부활절 전 40일 동안 이어지는 사순절에 가톨릭 신자들은 고기와 함께 달걀, 우유, 버터 같은 동물성 식품을 멀리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노르망디 사람들에게 버터 없는 40일은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었습니다. 교회는 한 가지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일정한 돈을 헌금하면 사순절에도 버터를 먹을 수 있도록 허락해주는 관면이었습니다. 그렇게 모인 돈이 이 탑을 짓는 데 쓰였다고 전해집니다.
1487년에 공사를 시작해 1507년에 완성된 이 탑을 루앙 사람들은 지금도 '버터 탑', 투르 드 뵈르라고 부릅니다.
같은 사순절, 남쪽으로 800킬로미터 넘게 떨어진 프로방스의 마을에서는 아무도 그런 돈을 낼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부엌에는 올리브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식물에서 짜낸 기름은 금지 목록에 없었습니다. 같은 교회, 같은 규칙 아래에서 한 도시는 탑을 쌓았고, 다른 마을은 평소처럼 저녁을 지었습니다.
이 차이는 신앙의 깊이에서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땅에서 자라는 것이 달랐을 뿐입니다.
요리에서 지방이 하는 일부터 보겠습니다.
지방은 칼로리가 가장 높은 영양소이지만, 부엌에서 지방의 진짜 역할은 따로 있습니다. 맛과 향을 실어 나르는 것입니다.
한 입 과학 — 향을 싣는 배
음식의 향을 이루는 분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물보다 기름에 잘 녹습니다. 마늘이나 허브를 기름에 볶으면 그 향 성분이 기름으로 옮겨가고, 기름은 그 향을 요리 전체로 퍼뜨립니다. 그래서 지방이 빠진 음식은 맛이 밋밋하게 느껴집니다. 지방은 또 온도를 옮기는 매개이기도 합니다. 물은 100도에서 끓어 그 이상 올라가지 않지만, 기름은 그보다 훨씬 높은 온도까지 올릴 수 있습니다. 이 높은 온도가 재료 표면을 바삭하게 만들고, 갈색의 풍미를 만들어냅니다.
지방마다 견딜 수 있는 온도는 다릅니다. 버터는 순수한 지방이 아니라 유지방에 약간의 수분과 우유 단백질, 유당이 섞인 혼합물입니다. 가열하면 이 우유 단백질과 당이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 갈색으로 변하며 고소한 견과류 향을 냅니다. 프랑스 요리에서 '뵈르 누아제트', 개암색 버터라고 부르는 향입니다. 반면 조금만 더 가열하면 쉽게 타버립니다. 올리브유는 올리브 열매를 짜낸 과일즙에 가까운 기름으로, 풀 향과 쌉쌀한 맛을 가지고 있고, 버터보다 높은 온도를 견딥니다.
어떤 지방을 쓰느냐는 그래서 단순히 재료 하나를 고르는 일이 아닙니다. 그 지방이 어떤 향을 싣고, 몇 도까지 견디는지에 따라 요리법 전체가 달라집니다. 버터의 부엌은 낮은 불에서 천천히 녹이고, 소스에 섞어 부드러운 질감을 만드는 쪽으로 발달했습니다. 올리브유의 부엌은 생으로 뿌려 향을 살리고, 채소와 생선을 가볍게 익히는 쪽으로 발달했습니다. 두 부엌의 차이는 결국 지방이라는 배가 싣고 가는 화물의 차이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남쪽에는 올리브가 있고, 북쪽에는 버터가 있었을까요.
답은 나무 한 그루에 있습니다. 올리브 나무는 지중해성 기후의 식물입니다. 여름은 덥고 건조하고, 겨울은 온화하고 비가 오는 기후입니다. 올리브는 뜨거운 여름 가뭄은 잘 견디지만, 겨울 혹한에는 약합니다. 기온이 영하로 깊이 떨어지는 날이 이어지면 나무가 얼어 죽습니다. 그래서 올리브 재배지는 지중해를 둘러싼 좁은 띠 안에 머물렀습니다. 이 띠를 벗어나 북쪽으로 올라가면, 아무리 공을 들여도 올리브는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이 선은 국경과 상관없이 그어졌습니다. 이탈리아가 좋은 예입니다. 남부의 풀리아나 시칠리아 부엌이 올리브유로 시작한다면, 알프스에 가까운 북부의 롬바르디아와 피에몬테 부엌은 오랫동안 버터로 시작했습니다. 밀라노식 리소토를 버터로 볶은 양파에서 출발해 버터와 치즈로 마무리하는 것도, 포 강 유역의 넓은 평야에서 소를 길러온 역사와 이어져 있습니다. 한 나라 안에서도 남쪽과 북쪽의 부엌은 서로 다른 지방으로 요리를 시작했습니다. 지방의 지도는 정치의 지도보다 기후의 지도를 더 충실히 따릅니다.
북쪽은 전혀 다른 땅이었습니다. 서늘하고 비가 자주 내리는 기후 덕분에 풀이 사철 무성하게 자랐습니다. 풀이 잘 자라는 땅은 소를 기르기에 좋은 땅입니다. 노르망디, 브르타뉴, 네덜란드, 덴마크, 아일랜드. 오늘날에도 유럽에서 손꼽히는 낙농 지대들이 이 선을 따라 늘어서 있습니다. 소가 있으면 우유가 있고, 우유가 있으면 크림이 있고, 크림을 저으면 버터가 됩니다. 북쪽 사람들에게 버터는 선택이 아니라, 땅이 내어준 유일하게 풍족한 지방이었습니다.
버터는 또한 저장의 기술이기도 했습니다. 우유는 하루 이틀이면 상하지만, 우유의 지방을 모아 굳힌 버터는 훨씬 오래 갑니다. 여기에 소금을 넉넉히 넣으면 몇 달을 버틸 수 있었습니다. 노르망디와 브르타뉴에 지금도 짭짤한 가염 버터의 전통이 남아 있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이탄 습지에서는 나무 통이나 가죽에 싸서 묻어둔 버터 덩어리가 수백 년, 길게는 수천 년 뒤에 발견되기도 합니다. 차갑고 산소가 적은 습지를 천연 저장고로 썼던 것으로 보입니다. 1장에서 본 추운 땅의 질문, 즉 풍요로운 계절의 음식을 어떻게 겨울 너머로 옮길 것인가에 대해 북유럽의 목초지는 버터라는 대답을 내놓았습니다.
남쪽의 올리브유도 사정은 비슷했습니다. 올리브 열매는 그대로 두면 금세 무르지만, 짜낸 기름은 항아리에 담아 1년 넘게 보관하고 배에 실어 먼 곳까지 보낼 수 있었습니다. 지중해 세계에서 올리브유는 빵, 포도주와 함께 식탁의 세 기둥이었고, 등잔을 밝히는 연료이자 몸에 바르는 화장품이며 교역의 화폐이기도 했습니다. 두 지방은 모두 계절을 건너게 해주는 저장 식품이었습니다. 다만 하나는 나무에서, 하나는 동물에게서 왔을 뿐입니다.
이 선은 기록에도 흔적을 남겼습니다. 올리브유를 쓰던 그리스와 로마의 저자들은 버터를 북방 이민족이 먹는 낯선 음식으로 기록했습니다. 1세기 로마의 학자 플리니우스는 버터를 이민족들 사이에서 가장 귀한 음식이라고 적었습니다. 지중해 사람들의 눈에 버터를 먹는다는 것은 자기들 세계의 바깥에 속한다는 표시였습니다.
그러나 그 선은 문명과 비문명을 가르는 선이 아니었습니다. 올리브 나무가 겨울을 견딜 수 있는 한계선이었을 뿐입니다. 로마인들이 이민족의 음식이라 불렀던 버터는, 천 년이 지나 바로 그 남쪽에서 온 종교의 대성당에 탑 하나를 세우게 됩니다.
사순절의 규칙은 이 선 위에서 흥미로운 모순을 드러냈습니다.
중세 교회의 금식 규칙은 대체로 지중해 세계에서 정비되었습니다. 올리브유가 흔한 땅에서라면 동물성 지방을 끊는 것이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식물성 기름으로 대신하면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이 규칙이 알프스 북쪽으로 올라가자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북쪽에서 올리브유는 먼 남쪽에서 실어 와야 하는 비싼 수입품이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버터를 끊으라는 것은 사실상 요리할 기름을 모두 포기하라는 말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북쪽 곳곳에서 버터를 허락받기 위한 청원이 이어졌습니다. 교회는 일정한 헌금을 받고 버터 섭취를 허락하는 관면을 내주었고, 그 돈은 성당과 공공 건축에 쓰였습니다. 루앙의 버터 탑은 그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기념물입니다. 이 탑의 이름이 정말 관면 헌금에서 왔는지, 아니면 탑을 지은 돌의 누르스름한 빛깔에서 왔는지를 두고는 다른 설명도 전해집니다. 하지만 사순절의 버터 문제가 북쪽 교회에 오랫동안 골칫거리였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합니다.
독일어권에서는 이런 허가증을 '버터 편지'라는 뜻의 부터브리프라고 불렀습니다. 버터를 돈으로 허락받는 이 관행은 곧 교회의 금전 문제와 얽혔고, 1520년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교회를 비판하는 글에서 버터를 먹는 허락을 돈으로 사고파는 관행을 직접 겨냥하기도 했습니다. 버터 한 덩이가 유럽 역사의 가장 큰 균열 가운데 하나에 작은 흔적을 남긴 셈입니다.
같은 교리가 올리브 나무의 북방 한계선을 넘자, 규칙이 땅에 맞춰 협상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종교는 사람의 식탁을 바꿀 수 있었지만, 땅이 무엇을 기르는지까지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유럽 밖으로 넓혀보면, 지방의 지도는 더 다채로워집니다.
한국의 부엌에서 가장 귀하게 쓰인 기름은 씨앗에서 짠 참기름과 들기름이었습니다. 이 기름들은 올리브유처럼 튀기거나 굽는 데 쓰기보다, 나물을 무치고 밥을 비비는 마지막 순간에 향을 입히는 데 쓰였습니다. 불 위에서 일하는 기름이 아니라, 불을 끈 뒤에 향을 완성하는 기름입니다. 중국의 부엌에서는 돼지기름과 땅콩기름이 센 불의 웍 요리를 떠받쳤습니다. 이 기름들이 어떻게 불의 철학과 이어지는지는 2부에서 다시 보겠습니다.
지방은 그 땅에서 무엇이 가장 흔하게 자라는지를 정직하게 보여줍니다. 올리브 나무가 자라는 곳에는 올리브유가, 소가 풀을 뜯는 곳에는 버터가, 깨와 들깨가 자라는 곳에는 참기름과 들기름이 있습니다. 한 지역의 요리가 어떤 맛을 내는지 알고 싶다면, 그 부엌이 어떤 기름으로 시작하는지를 보면 됩니다. 그 기름 안에 기후와 흙과 가축의 이야기가 함께 녹아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기름에 정체성을 실었습니다. 남쪽 사람들에게 올리브유는 자기 땅의 맛이었고, 북쪽 사람들에게 버터는 교회의 규칙과 협상해서라도 지켜야 할 자기 땅의 맛이었습니다. 지방은 영양소이기 이전에 소속의 표시였습니다.
다시 루앙 대성당 앞 광장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20년에 걸친 공사가 끝나고, 탑은 75미터 높이로 도시를 내려다보게 되었습니다. 노르망디 사람들은 사순절에도 빵에 버터를 바르고, 그 대가로 낸 동전들은 돌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이 탑은 신앙의 기념물이면서 동시에 땅의 기념물입니다. 올리브 나무가 넘지 못한 선, 그 선 너머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를 돌로 기록해 둔 것이니까요.
같은 봄, 프로방스의 누군가는 갓 짠 올리브유를 빵에 적셔 먹었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아무런 허락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같은 신에게 기도하고, 같은 절기를 지켰지만, 전혀 다른 지방으로 그 절기를 건넜습니다.
나무는 기름의 지도를 그렸고, 목초지는 버터의 지도를 그렸고, 사람들은 그 경계 위에 탑을 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