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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스ンドゥブ(순두부)' 열풍의 반전 과거: 임진왜란 포로 박호인이 일본에 남긴 위대한 유산

애들빙자여행러 · 2026년 7월 2일

요즘 일본에서 꽤 핫하다는 한식 메뉴가 있습니다.

도쿄나 오사카 같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전문점이 속속 생겨나고, 일부 팬들 사이에선 "한국 본토 맛을 뛰어넘었다"는 열광적인 반응까지 나오고 있죠. 바로 '순두부'입니다. 이름도 한국어 발음 그대로 ‘스ンドゥブ’(슨두부)로 불리면서, 건강과 미용에 좋은 음식으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 현대적인 유행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두부 이야기가, 그것도 400년도 더 전에 일본에 뿌리내렸다면 어떨까요? 전쟁과 눈물의 역사 속에서 태어난 또 다른 두부 이야기. 그 비밀은 일본 시코쿠 남쪽 끝, 고치현에 숨어있습니다.

그곳에는 밧줄로 묶어도 형태가 흐트러지지 않을 만큼 단단하다는 ‘가타두부(堅豆腐)’라는 특별한 두부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부의 역사가 시작된 곳으로 알려진 동네, '도진마치(唐人町)'. 이름만 보면 '당나라 사람들의 마을' 같죠.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아는 것과 전혀 다른 이야기라면 어떨까요? 만약 이 '도진마치'가 중국인이 아닌 조선인의 마을이었고, 이 단단한 두부의 시작에 400년 전 임진왜란의 비극과 함께 끌려온 한 조선인 장인의 눈물이 깃들어 있다면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한 조각의 두부에 숨겨진 역사의 흔적을 추적해 봅니다.

고치현의 미스터리, 단단한 두부와 '도진마치'

일본의 4대 섬 중 가장 작은 시코쿠, 그 남쪽에 자리한 고치현. 이곳의 식탁에는 아주 특별한 명물이 오릅니다. 바로 ‘가타두부’. 우리가 아는 부드러운 두부와는 정반대의, 아주 단단한 식감을 가진 두부입니다. 그 단단함을 보여주는 황당한 지역 전설도 있는데요, 이 두부로 친구 머리를 쳤더니 머리가 깨져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입니다.

지역 사람들은 이 두부가 고치성 근처의 '도진마치'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이름만 들으면 당연히 중국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이라 생각하기 쉽죠. 하지만 고치현의 일부 향토 사학자들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당연하게 여겨졌던 이름 뒤에, 왜곡된 역사가 숨어있다는 겁니다. 그들은 이곳이 '중국인 마을'이 아니라, 바다 건너온 또 다른 이방인들, 바로 조선인들의 집단 거주지였다는 가설을 제기합니다.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요? 실마리를 찾으려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모든 비극과 새로운 문화가 시작된 그곳, 16세기 말의 한반도로 말입니다.

역사의 소용돌이, 임진왜란과 조선인 포로들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으킨 임진왜란은 7년간 조선 전역을 참혹한 비극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이 전쟁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을 뿐만 아니라, 적게는 수만 명에서 많게는 1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인들이 포로, 즉 '피로인(被虜人)'으로 일본에 끌려갔습니다. 여기에는 도공, 의원, 유학자 등 각 분야의 뛰어난 기술과 지식을 가진 이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시코쿠의 유력 다이묘였던 쵸소카베 모토치카 역시 임진왜란에 참전했습니다. 한때 시코쿠를 거의 통일할 뻔했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항복한 뒤 그의 휘하 장수로 전쟁에 동원된 것이죠. 지역의 여러 기록과 구전에 따르면, 쵸소카베 군대 역시 전쟁이 끝난 후 자신들의 영지인 도사번(오늘날의 고치현)으로 돌아오면서 조선인들을 포로로 끌고 온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는 당시 전쟁에 참여했던 여러 다이묘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조선인 포로는 전리품이자, 선진 기술을 확보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던 셈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끌려온 조선인들 가운데, 오늘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한 인물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전설 속의 장인, 박호인 이야기

고치 지역의 향토사와 구전에 따르면, 그 피로인들 가운데 박호인(朴好仁)이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어떤 기록은 그를 경주성을 지키던 군관이라 하고, 다른 기록은 진해현감의 손자였다고도 합니다. 그의 출신에 대한 이야기는 제각각이지만, 공통적으로 그가 '두부 만드는 기술'을 가진 장인이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포로의 신분으로 고치 땅을 밟은 박호인은, 그곳에서 조선의 방식으로 두부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만든 두부는 새끼줄로 묶어 들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하면서도 콩의 깊은 맛을 간직하고 있었죠. 당시 일본의 두부가 일부 상류층만 맛볼 수 있었고 지금처럼 단단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보관과 운반이 쉬운 박호인의 두부는 그야말로 혁신적인 음식이었습니다.

일부에서는 메이지 시대 문헌인 『가이잔슈(皆山集)』에 '조선의 피로인 박호인이 처음으로 두부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는 주장을 근거로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기록의 해석과 신뢰성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명확히 검증되지 않은 상태로, 확인된 사료라기보다는 지역에 강하게 전해 내려오는 신념과 전설의 일부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박호인이라는 인물의 구체적인 행적 역시 동시대의 공식 기록보다는 후대의 기록이나 구전에 더 많이 의존하고 있죠. 그럼에도 박호인의 이야기는 고치현에서 400년간 끈질기게 살아남아, 두부의 역사와 함께 전해지고 있습니다.

'도진마치' 이름의 진짜 의미를 찾아서

그렇다면 박호인 같은 조선인 포로들이 살았다는 '도진마치'는 왜 '중국인 마을'이라는 뜻의 이름을 갖게 된 걸까요? 여기에도 또 하나의 흥미로운 역사적 해석이 존재합니다.

'당나라 사람'을 뜻하는 당인(唐人)이라는 단어는 본래 중국인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지만, 일부 학자들은 근대 이전 일본에서 이 단어가 단순히 중국인만이 아니라 바다 건너온 낯선 이들을 통칭하는, 즉 '외국인'에 가까운 개념으로 폭넓게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당시 일본의 입장에서 조선은 중국과 함께 선진 문물을 대표하는 존재였기에, 조선에서 온 이들을 '당인'이라 뭉뚱그려 불렀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해석에 따르면 '도진마치'는 중국인 마을이 아니라, 박호인을 비롯한 조선인 포로들이 모여 살던 '이방인들의 마을'이자, 원조 '코리안 타운'이었던 셈입니다. 지역 구전은 한 걸음 더 나아가는데요, 당시 영주였던 야마노우치 가문이 박호인 등 조선인들에게 성 주변에서 두부를 만들어 팔 수 있는 독점적인 권리까지 부여했다고 합니다. 물론 이 독점권에 대한 명확한 1차 사료는 부족하여, 이 또한 지역에 전해지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전설과 기록들은 한 가지 방향을 가리킵니다. 고치현의 단단한 두부, 그 문화의 중심에 조선에서 온 기술과 사람이 있었다는 가능성 말입니다.

현재에 남겨진 흔적들

400년이라는 긴 시간이 흐른 지금, 박호인의 직계 후손이 운영하는 가게를 찾기는 어렵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흔적은 고치현 곳곳에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고치 시내의 시장에 가면 지금도 ‘가타두부’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일부 가게에서는 '도진도후(唐人豆腐)', 즉 '당인 두부'라는 이름으로 제품을 판매하기도 합니다. 흥미롭게도 어떤 제품 포장지에는 한반도에서 고치까지 두부가 전래된 경로를 지도로 그려 넣기까지 했습니다. 이는 박호인의 이야기가 단순한 옛날이야기를 넘어, 이 지역의 정체성이자 자부심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일각에서는 고치 지역의 또 다른 향토 음식인 '가시도후'라는 도토리묵과 비슷한 음식을 거론하기도 합니다. 도토리로 묵을 쑤어 먹는 문화가 한반도 식문화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흔적으로 보기도 하죠. 하지만 도토리를 이용한 음식은 동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발견되므로, 이는 직접적인 증거라기보다는 흥미로운 정황 중 하나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겁니다.

제2의 물결, 현대 일본을 휩쓴 '순두부' 열풍

고치현의 단단한 두부가 전쟁의 상흔 속에서 태어나 400년의 역사를 이어온 깊고 묵직한 이야기라면, 오늘날 일본을 강타한 '순두부' 열풍은 전혀 다른 경로를 통해 시작된, 빠르고 뜨거운 현대사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순두부'는 콩물을 굳히기 전의 몽글몽글하고 부드러운 상태의 한국 고유명사입니다. 이 순두부가 들어간 맵고 뜨거운 순두부찌개는 2000년대 이전까지 일본에서 그리 대중적인 음식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의 순두부 열풍에 큰 영향을 미친 곳 중 하나는 뜻밖에도 미국이었습니다. 1990년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코리아타운에서 순두부찌개 전문점들이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죠. 매운맛을 조절하고 다양한 토핑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현지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았습니다.

이 'LA 스타일 순두부'가 2000년대 초반 일본으로 건너오면서, 일본의 순두부 역사는 새로운 장을 맞이합니다. '도쿄 순두부'와 같은 전문 체인점들이 생겨났고, 맵기 조절은 물론 치즈나 버터 같은 독특한 토핑을 추가하며 일본인들의 입맛에 맞게 현지화되었습니다. 이는 곧바로 큰 히트로 이어졌고, 이제 순두부찌개는 일본 전역에서 사랑받는 대표적인 한식 메뉴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결국 일본과 한국의 두부 이야기는 두 개의 다른 시간대에서 펼쳐집니다. 하나는 400년 전, 임진왜란이라는 비극적인 역사 속에서 한 조선인 장인이 고치현에 뿌리내렸다고 전해지는 단단한 두부의 전설입니다. 이는 지역의 구전과 희미한 기록 속에 숨겨진, 우리가 거의 잊고 있던 역사의 한 페이지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21세기,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서부터 시작된 뜨거운 순두부 열풍입니다. 이는 세계화와 문화 교류가 만들어낸 현대적인 성공 신화이죠. 포로의 눈물에서 시작되었다고 전해지는 단단한 두부부터, 도쿄의 트렌디한 레스토랑에서 즐기는 순두부찌개까지. 한 조각의 두부 안에는 이처럼 길고 복잡하며,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즐거운 한일 교류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을 넘어,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와 역사를 통해 더 깊은 맛을 냅니다. 다음에 일본에서 두부를 마주하게 된다면, 그 안에 깃든 400년의 시간과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의 잊혀진 숨결을 한번쯤 떠올려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 숨겨진 역사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고치현의 단단한 두부나 일본의 순두부찌개를 드셔보신 경험이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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