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세계 참치 시장을 지배한 진짜 이유: 맛이 아니라 '언어'를 선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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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세계 참치 시장을 지배한 진짜 이유: 맛이 아니라 '언어'를 선점했다

1. 새벽 경매장의 기묘한 열기매년 1월 새벽, 도쿄 도요스 시장의 차가운 형광등 아래에는 원초적인 욕망과 자본의 논리가 교차하는 기묘한 긴장감이 흐릅니다. 꼬리가 잘린 채 서늘하게 누워 있는 거대한 참치들, 그리고 그 단면을 손전등으로 비추며 지방의 결을 수술하듯 읽어내는 구매자들의 날카로운 시선.이윽고 경매가 시작되면 숫자는 현실 감각을 마비시키는 단위로 치솟고, 마침내 수억 원이라는 낙찰가와 함께 단호한 망치 소리가 공간을 가릅니다. 하지만 이 경이로운 숫자를 단순히 '맛의 가격'으로만 해석한다면 우리는 그 이면의 본질을 놓치게 됩니다. 이 가격표 안에는 한 나라가 수백 년에 걸쳐 공고히 쌓아 올린, '무엇이 최고인가'를 정의하는 보이지 않는 권력이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2. 바다의 최상위 포식자가 에너지를 비축하는 방식우리가 '최고'라 칭송하는 참다랑어(블루핀 튜나)는 생물학적으로 하나의 경이로운 기록물입니다. 몸길이 3미터, 체중 600킬로그램에 달하는 이 거구는 시속 70km 이상의 속도로 대양을 횡단하는 바다의 최상위 포식자입니다.참다랑어가 특별한 미각적 가치를 지니는 비결은 그들의 독특한 '열정적 대사'에 있습니다.생물학적 기적: 대부분의 물고기와 달리 참다랑어는 체온을 주변 수온보다 높게 유지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차가운 심해에서도 맹렬하게 움직이기 위해 근육 대사를 통해 열을 생산하는 것입니다.지방의 기록: 이 막대한 에너지 소모를 뒷받침하기 위해 참다랑어는 근육 사이에 지방을 켜켜이 비축합니다. 강한 조류를 거슬러 오르고 수천 킬로미터를 주파하는 그 처절한 생존의 여정은 고스란히 고기의 마블링으로 기록됩니다.바다의 정수: "참다랑어는 자신이 헤엄쳐온 바다를 몸에 담는다"는 말은 수사적 표현이 아닙니다. 그들이 헤쳐온 해류의 온도와 속도가 고기의 밀도와 지방의 질을 결정한다는 생물학적 사실의 발현입니다.3. 참치를 대하는 네 가지 시선: 자연, 기술, 경험, 그리고 언어참치는 전 세계 바다에서 포획되지만, 이를 바라보는 미학적 철학은 지역마다 확연히 다른 궤적을 그립니다.스페인(자연의 미학): 안달루시아의 바르바테(Barbate)에서는 2000년 전 페니키아인으로부터 전수된 '알마드라바(Almadraba)' 어법을 고수합니다. 길목에 그물을 쳐 참치가 스스로 들어오길 기다리는 이 방식은 자연의 흐름에 순응합니다. 그들은 잡은 참치를 소금에 절여 말린 **'모하마(Mohama)'**나 오일 통조림으로 만들어 재료 본연의 풍미를 시간 속에 숙성시킵니다.호주(설계된 안정성): 포트 링컨의 가두리 양식장에서는 자연의 불확실성을 기술로 극복합니다. 포획한 참치에게 고등어와 정어리를 집중 공급하여 체중의 30% 이상이 지방이 되도록 정교하게 설계합니다. 이는 자연산의 변동성을 배제하고 '계산된 품질'을 제공하는 공학적 접근입니다.한국(경험의 철학): 수산 물류의 허브인 부산을 중심으로 발달한 '참치 해체 쇼'는 독특한 공유 문화를 형성했습니다. 거대한 참치를 대중 앞에서 해체하며 부위별 미감을 시각적으로 전달하고, 귀한 재료를 함께 나누는 '축제적 경험'에 가치를 둡니다.일본(기준의 수립): 쓰가루 해협의 차가운 물살을 견딘 오마(Oma) 참치처럼 최고의 산지를 정의하고, 이를 바탕으로 전 세계가 거부할 수 없는 엄격한 품질의 '표준'을 확립했습니다.4. 일본이 세계 참치 시장을 지배한 진짜 비결: '언어의 권력'일본이 세계 참치 시장의 정점에 선 이유는 단순히 좋은 참치를 많이 잡아서가 아닙니다. 그들은 맛을 평가하고 분류하는 **'언어의 표준'**을 장악함으로써 전 세계의 미각 체계를 식민지화했습니다.오늘날 스페인의 어부도, 호주의 양식업자도 자신들의 참치를 팔기 위해 **'토로(Toro, 지방이 풍부한 뱃살)'**나 **'아카미(붉은 살)'**라는 일본어를 사용합니다. 이는 단순히 부위 명칭을 빌려 쓰는 것이 아니라, 일본이 구축한 가치 평가 시스템 안으로 편입되었음을 의미합니다."이 가격은 맛의 가격이 아닙니다. 이 숫자 안에는 한 나라가 수백 년에 걸쳐 구축한 것, 즉 무엇이 최고인가를 정의하는 권력이 들어 있습니다."참치를 해체하는 정교한 칼놀림인 '오로시', 단백질이 감칠맛 나는 아미노산으로 변하는 찰나를 읽어내는 **'숙성'**의 미학까지. 일본은 '무엇이 맛있는 것인가'를 정의하는 사전(Dictionary)을 만들었고, 그 사전을 소유한 자가 결국 시장의 경제적 권력을 독점하게 된 것입니다.5. 가격과 맛의 불만족스러운 상관관계흥미로운 반전은 수억 원에 낙찰된 신년 첫 참치가 반드시 그만큼의 미각적 극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수억 원의 낙찰가는 사실 맛의 대가라기보다, 식당의 위상을 드높이기 위한 '상징적 마케팅 비용'에 가깝습니다.진정한 맛의 차이는 경매장의 확성기 소리가 아닌, 선상에서의 '침묵하는 정교함'에서 결정됩니다.포획의 스트레스: 그물로 대량 포획된 참치는 극심한 공포 속에서 아드레날린을 뿜어내고 근육에 젖산이 축적되어 산미가 탁해집니다.외과적 정밀함: 반면, 낚싯줄로 한 마리씩 낚아 올린 참치를 즉시 뇌사시키고 피와 신경을 제거하는 '이케지메(Ikejime)' 처리를 단 몇 분 만에 완벽히 수행해야만 최상의 맛이 보존됩니다. 결국 가장 비싼 참치가 아닌, 가장 '품위 있게' 다루어진 참치가 최고의 맛을 내는 것입니다.6. 최고를 향한 욕망이 불러온 생태적 대가일본이 정립한 '토로가 최고'라는 기준이 전 세계적 욕망의 표준이 되면서, 참다랑어는 비극적인 역설에 직면했습니다. 폭발적인 수요는 무분별한 남획으로 이어졌고,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참다랑어를 심각한 멸종 위기 단계로 분류해야 할 만큼 생태계는 처참히 파괴되었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최고'라는 기준이 역설적으로 그 재료의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고 있는 셈입니다.7. 당신이 소비하는 '최고'는 누구의 기준인가?도요스 시장의 망치 소리와 함께 결정되는 수억 원의 가격에는 어부의 시간, 숙련된 해체 기술, 그리고 일본이 수백 년간 구축한 문화적 권위가 모두 녹아 있습니다. 그러나 '최고'라는 수식어는 단 하나의 정답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장소에서, 어떤 철학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가치일 뿐입니다.최고를 추구하는 우리의 욕망은 지금 무엇을 대가로 요구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소비하는 그 화려한 기준이 누구의 언어로 만들어진 것인지, 그리고 그 탐닉의 끝에서 무엇이 사라지고 있는지 한 번쯤 진지하게 되물어야 할 때입니다.

한국 편의점 음료 꿀조합이 외국인에게 특별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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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편의점 음료 꿀조합이 외국인에게 특별한 이유

한국 사람인 저는 가끔 편의점 앞에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아니, 왜 다들 굳이 여기 와서 음료를 섞고 있을까?”바나나우유에 커피를 붓고, 환타에 아이스크림을 올리고, 심지어 솔의눈 같은 호불호 강한 음료까지 섞어 마시는 모습은 처음 보면 꽤 엉뚱합니다. 그런데 외국인 여행자들에게는 그 엉뚱함 자체가 한국 여행의 매력으로 읽히는 것 같아요. 한국의 편의점은 그냥 물건을 사는 곳이 아니라, 여행자 스스로 조합을 만들고 실험해보는 작은 놀이터가 됩니다.여행에서만 만나는 재미여행의 묘미는 원래 “아는 것”보다 “처음 보는 것”에 있습니다.익숙한 브랜드도 한국에서는 다른 형태로 보이고, 평소엔 생각하지 못한 조합도 여기서는 자연스럽게 시도해볼 수 있죠. 외국인들이 한국 편의점 음료 꿀조합에 빠지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낯선 나라에서, 낯선 진열대를 둘러보다가, 내 손으로 직접 음료를 만들고, 그 결과를 바로 맛보는 과정이 일종의 여행 콘텐츠가 되는 겁니다.그 과정이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경험이 되기 때문에 더 재미있습니다.“이게 정말 어울릴까?” 하는 의문이 “어? 생각보다 괜찮은데?”로 바뀌는 순간, 그건 그냥 음료가 아니라 여행의 기억이 되거든요.외국인이 열광하는 이유외국인들이 이런 조합에 반응하는 건 맛만의 문제가 아닙니다.한국 편의점은 선택지가 정말 다양하고, 내부도 깔끔하며, 바로 앉아서 먹고 마실 수 있는 환경이 잘 갖춰져 있어서 이런 시도를 하기에 아주 좋습니다. 게다가 레시피가 복잡하지 않아서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고, 결과가 예상 밖일수록 더 큰 재미가 생깁니다.또 하나 중요한 건 공유하기 좋은 이야기라는 점입니다.“한국 편의점에서 이런 걸 만들어 마셔봤다”는 경험은 영상으로도, 사진으로도, 친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로도 잘 남습니다. 여행은 결국 기억을 남기는 일인데, 이런 음료 조합은 그 기억을 아주 선명하게 만들어 주죠.한국인의 시선한국 사람 입장에서 보면, 이런 조합은 사실 꽤 익숙한 놀입니다.어릴 때부터 바나나우유, 탄산음료, 아이스크림, 커피 같은 재료를 가까이 접하다 보니 “이걸 섞어보면 어떨까?” 하는 발상이 그리 낯설지 않거든요. 그래서 외국인들이 그걸 처음 발견하고 신기해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에게는 평범했던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아주 특별한 여행 장면이 된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됩니다.그 차이가 재미있습니다.한국 사람에게는 익숙한 편의점이, 외국인에게는 새로운 모험의 공간이 되는 거예요. 같은 장소라도 누가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이 됩니다.새로움의 가치결국 이런 바이럴 꿀조합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맛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새로운 맛을 시도한다는 건 낯선 나라를 이해하는 방식 중 하나이고, 예상 밖의 조합을 받아들이는 건 여행자에게 꽤 중요한 즐거움입니다. 익숙한 기준을 잠시 내려놓고 “일단 한 번 해보자”라고 마음먹는 순간, 여행은 훨씬 더 생생해집니다.그래서 저는 이런 현상이 참 한국답다고 느낍니다.빠르고, 간단하고, 즉흥적이고, 무엇보다 직접 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요. 편의점 하나만으로도 여행자들은 작은 발견을 하고, 그 발견은 결국 “한국에서만 해볼 수 있었던 경험”으로 남습니다.마무리바로 그 점 때문에 외국인들은 한국 편의점 음료 꿀조합에 열광하는 것 같습니다.맛이 궁금해서 시작하지만, 결국에는 여행의 새로움과 스스로 만들어낸 경험을 즐기게 되는 거죠. 한국인인 제 눈에는 조금 우스꽝스러워 보여도, 그 우스꽝스러움이야말로 여행을 특별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재료일지도 모릅니다.

제주 흑돼지가 ‘인생 고기’가 될 수밖에 없는 과학적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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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흑돼지가 ‘인생 고기’가 될 수밖에 없는 과학적 이유

1. 왜 제주의 삼겹살은 서울과 다를까?제주도 여행의 기억 중 많은 이들이 첫손에 꼽는 순간은 아마도 연탄 화덕 앞에 앉아 두툼한 흑돼지 삼겹살을 마주했을 때일 것입니다.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기름이 녹아내리며 불꽃이 튀고, 투박하게 잘라낸 고기 한 점을 소금에 살짝 찍어 입에 넣는 그 찰나 말입니다.처음 한 입을 씹는 순간,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대화를 멈춥니다. 씹을수록 터져 나오는 육즙과 고소함은 말문을 막히게 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놀라운 점은 그 풍부한 지방이 전혀 느끼하지 않고, 오히려 입 안을 깔끔하게 코팅하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서울에서 먹던 맛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느끼는 것은 단순히 기분 탓이나 신선도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제주라는 섬이 지닌 기후와 땅, 그리고 시간이 빚어낸 정교한 과학적 차이입니다.2. 첫 번째 발견: 바닷바람이 고기 맛을 설계한다 (해풍과 산패의 상관관계)제주 흑돼지의 풍미를 결정짓는 첫 번째 설계자는 역설적이게도 돼지 자체가 아닌 제주의 '바람'입니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제주는 연중 강한 해풍이 쉬지 않고 불어오는데, 이 바람은 섬의 습도를 조절하며 돼지의 생체 리듬에 직접적으로 개입합니다.과학적으로 볼 때, 해풍은 지방의 산화(산패) 속도를 늦추는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지방이 산화되면 고기 특유의 불쾌한 비린내가 발생하게 되는데, 제주의 특수한 해풍 환경은 이 과정을 지연시켜 비린내를 잡고 고소함을 극대화합니다. 이는 단순히 느낌이 아니라 측정 가능한 환경적 개입입니다."이 해풍이 지방의 산패를 늦춥니다. 지방이 산화되면 고기에서 비린내가 납니다. 그런데 해풍이 많은 환경에서 자란 돼지는, 그 지방의 산화 속도 자체가 다릅니다. 이것이 제주 흑돼지의 기름이 유독 고소하고 깔끔하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3. 두 번째 발견: ‘느끼하지 않은 기름’의 비밀, 올레산(Oleic Acid)제주 흑돼지가 일반 백돼지와 궤를 달리하는 가장 큰 과학적 근거는 지방의 '양'이 아닌 '구조'에 있습니다. 흑돼지의 지방에는 올리브오일의 주성분으로 잘 알려진 '올레산(Oleic Acid)'의 비율이 일반 돼지보다 현저히 높습니다.불포화지방산인 올레산의 비중이 높다는 것은 지방의 융점(녹는점)이 낮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때문에 흑돼지의 지방은 사람의 체온에서 훨씬 쉽게 녹아내리며 입 안 전체에 부드럽게 퍼집니다. 상온에서 딱딱하게 굳어 텁텁함을 주는 포화지방산과 달리, 흑돼지의 기름이 마치 액체처럼 가볍고 고소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이 분자 구조의 차이에 있습니다.4. 세 번째 발견: 3개월의 기다림이 만든 밀도 높은 식감흑돼지의 독특한 식감은 '시간'이 고기 조직에 남긴 기록입니다. 일반 백돼지는 도축 체중까지 약 6개월이 걸리지만, 흑돼지는 9개월에서 12개월이라는 긴 사육 기간을 거칩니다. 육지의 돼지보다 최소 3개월 이상을 더 기다려야 비로소 우리 식탁에 오를 수 있는 셈입니다.성장이 느리다는 것은 근육 섬유가 그만큼 조밀하고 탄탄하게 쌓인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렇게 형성된 밀도 높은 조직은 씹을 때 기분 좋은 저항감을 주면서도, 어느 순간 부드럽게 끊기는 독특한 질감을 완성합니다. 흑돼지의 조직 안에는 단순히 단백질의 결합이 아니라, 섬에서 느리게 흘러간 '시간의 밀도'가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습니다.5. 네 번째 발견: 소금과 불, 재료에 대한 절대적 신뢰제주 흑돼지 요리법의 핵심은 '단순함'입니다. 복잡한 양념이나 소스 없이 소금과 직화만으로 요리되는 이 방식은 재료의 완결성에 대한 강력한 신뢰를 바탕으로 합니다. 인문학적으로 볼 때, 화려한 양념은 종종 재료의 결함을 가리기 위한 가면으로 쓰이지만, 흑돼지처럼 완벽한 재료는 소금 하나만으로도 그 본질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특히 연탄불의 사용은 과학적으로 탁월한 선택입니다. 연탄은 가스불보다 훨씬 강력한 '고온 복사열'을 내뿜는데, 이는 두꺼운 고기 표면에 단시간에 높은 열을 전달하여 '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action)'을 극대화합니다. 표면은 빠르게 갈색으로 변하며 수백 가지 향미 화합물을 만들어내고, 그 사이 속살은 육즙을 머금은 채 촉촉하게 익어갑니다. 고온의 불과 두꺼운 고기의 온도 차(Delta-T)가 만드는 이 조화는 단순함이 도달할 수 있는 미식의 정점을 보여줍니다.6. 다섯 번째 발견: 테루아(Terroir), 장소가 빚어낸 고유성와인에서 토양과 기후의 조화를 뜻하는 '테루아(Terroir)' 개념은 제주 흑돼지에게도 완벽히 유효합니다. 제주의 화산 토양은 미네랄이 풍부하며, 여기서 자란 식물과 물을 먹고 자란 흑돼지는 육지의 돼지와는 다른 체질을 갖게 됩니다.여기에 과거 제주만의 독특한 생태 순환 시스템이었던 '통시(전통 변소 겸 돼지우리)'의 역사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다양한 유기물을 섭취하며 순환 구조 안에서 자란 과거의 경험은 흑돼지의 내장을 튼튼하게 만들고 면역력을 강화하는 유전적 특성을 형성했습니다. 제주 흑돼지는 단순히 특정 품종의 산물이 아니라, 화산재 흙과 해풍, 그리고 제주 사람들의 생태적 삶이 합쳐져 만들어낸 '장소의 합산'입니다.7. 우리가 음식을 먹는다는 것의 의미결국 제주 흑돼지가 우리에게 '인생 고기'가 되는 이유는 그 한 점의 고기 안에 제주라는 섬의 장소성과 시간이 응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스페인의 이베리코나 헝가리의 망갈리차가 저마다의 땅을 대표하듯, 제주 흑돼지 역시 그 땅이 아니면 도저히 재현할 수 없는 독보적인 가치를 지닙니다.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제주로 향하는 진짜 이유는 단순히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닐 것입니다. 그 섬의 바람과 흙, 그리고 느린 시간이 공들여 빚어낸 '결정체'를 경험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음에 다시 제주의 식탁에서 흑돼지를 마주한다면, 그 고기 한 점에 담긴 섬의 기록과 시간의 밀도를 천천히 음미해 보시길 바랍니다.

[판제집] 챌린지가 아닌 힐링이 될 수 있도록 - 아이들이 무엇을 느꼈을까
Culture

[판제집] 챌린지가 아닌 힐링이 될 수 있도록 - 아이들이 무엇을 느꼈을까

사실 제주도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있었다. 그건 바로 아내의 공감과 승낙이었다. 아내는 언제나 나를 존중하면서 많은 부분 동의해 주었지만 제주 건축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당장 그 많은 건축비는 어떻게 충당할 것이며 설령 집을 짓더라도 내려가서 살지도 않을 텐데 왜 무리를 해서 추진하느냐였다. 사실 아내의 동의 없이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나는 나의 바람이자 로망의 실현임을 설득했는데 아내는 그건 알겠는데 그걸 지금 당장 추진하는데 회의적이었다. 나는 아내와 제주 땅에도 가보고 가족 제주 여행 때 관련자들도 만나면서 차근차근 마음을 열도록 하였다. 나중에 아내에게 언제 건축에 대해 마음을 열었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몇 년 전 건축에 대해 물어보려고 아이들과 함께 옆집에 방문한 적이 있잖아. 거기에 쿠팡 배달이 오고 유치원 통학차량도 오는 것을 보고 여기가 오지는 아니구나 싶어서 집을 지어도 될 것 같다고 생각했어”때로는 작은 사유 및 현장감이 타인의 마음을 바꾸는데 의외의 역할을 할 때도 있다. 아내에게 역할을 부여했다. 나는 전체적인 콘셉트와 인허가 그리고 공사비를 담당하고 세부 디테일한 부분은 아내에게 일임했다. 특히 인테리어에 대한 부분을 전적으로 일임했는데 아내는 마다하지 않았다. “블랙계열의 차가운 느낌보다는 따뜻한 밝은 색깔의 인테리어나 가구가 좋을 것 같아. 비용 이슈도 있으니 전체는 아닌 일부 포인트에는 좋은 원목을 사용했으면 해. 당신의 로망인 자쿠지는 관리 이슈로 히노끼를 깔 수는 없을 테고 이태리제의 히노끼 스타일 타일을 깔아주도록 하지. 힐링의 최고봉인 1인 암체어는 어떤 제품으로 할까. 한정된 예산에서 가장 알맞은 제품을 찾아봐야지!”외국계 IT 기업을 다니고 있는 아내는 여기에 ‘사물인터넷 (IOT)’ 기능까지 도입하여 서울에서도 집을 제어할 수 있는 부분까지도 고민을 하였다. 아무래도 세컨드하우스가 된다면 원격으로 방범, 온도, 습도 등 공간을 원격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었는데 이 부분도 나보다 훨씬 뛰어났다. “중국산 제품들은 가격은 저렴하지만 우리나라 규격이나 시스템 연동에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 그래서 국내 업체를 찾다가 괜찮은 업체가 있어서 장비 협찬을 해달라고 요청해 놓았어!”아내는 이를 위해 부랴부랴 공간에 대한 우리 인스타 계정을 개설하여 집 짓는 과정을 업데이트하기로 했다. 당시 팔로우 숫자는 한 자리 숫자였는데. 기대했던 협찬을 이뤄지지 않아 실망한 기색이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전투적인 모습은 결혼 전에만 볼 수 있었는데 그 모습으로 변신하기도 했다. 아내 회사는 당시 스트레스 강도가 높아진 듯 보였다. 많이 지쳐 있다 생각했는데 인테리어 관련 자료 수집이나 검토 때는 눈이 반짝거렸다. 많이 피곤해도 알맞은 콘셉트이나 자료를 검색할 때는 밤을 새우기 일 수였다.고통스러울 것 같고 멀게만 보였던 제주의 프로젝트가 점점 구체화되어 가면서 우리는 이것을 통해 감히 해방감과 힐링을 느낄 수 있었다. 생활의 각종 현실에서 미래의 우리 보금자리를 꿈꾸며 설계하는 순간엔 다른 어느 걱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우리 집은 EBS의 ‘건축탐구 집’을 보고 건축 기법과 인테리어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것이 일상이 됐다. 건축 비용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유튜브에는 스스로 집을 수리하고 작은 공사도 구체적으로 할 수 있게 하는 동영상이 넘쳐나고 있다. 외장재 시행은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 단열재는 일체형인지 분리형인지. 전혀 몰랐던 건축기법 등을 우리 설계도와 비교하면서 무엇이 최신 트렌드인지도 비교해 보았다.  아이들과도 자신이 원하는 공간과 또 다른 대안인 제주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곤 한다. 나 : “제주의 공간은 어떤 부분이 반영됐으면 좋겠어?”초등 딸 : “동물들과 함께 살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어”중등 아들 : “잠을 자는데 방해받지 않았으면 좋겠어. 마당에서 충분히 생활할 수 있으면 해”물론 이들의 제안이 충분히 반영하기엔 현실적 제약이 많이 따랐다.나 : “만약 우리가 제주로 이사 간 다면 기대되는 부분은 무엇이야?”초등 딸 : “학원을 안 다녀도 되지 않을까. 방과 후에 바다에 나가서 놀면 좋겠어.”중등 아들 : “제주에 학원이 없어? 놀거리가 많았으면 하는데”경쟁 위주의 교육 현실에서 꿈을 실현시키고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이야기하는 기회는 아이들에게도 많은 고민을 할 수 있게 하지 않을까 한다. 첫째가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 강남으로 이사 왔는데 강남의 학구열은 무섭기까지 했다. 최대한 강남의 시스템에 도전해 보겠지만 꼭 이 방식이 유일한 방식이 아님을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다. 특히나 이를 통해 꿈을 실현해 나가는 것이 남들의 기준에 맞춰진 삶을 사는 것보다 더 가치 있음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어쩌면 우리는 이 과정을 통해서 구성원 간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으며 가족이 함께 한다는 건은 무엇인지 자기만의 독립된 공간은 어떠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사회가 하나의 방향으로 무작정 흘러가고 있을 때 우리는 한 발 떨어져서 무엇이 더 중요한지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길 바랐다.

[판제집] 내가 4년만에 제주를 떠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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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제집] 내가 4년만에 제주를 떠난 이유

이미 나는 제주에서 살아본 적이 있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2003년 전격적으로 제주 본사 이전을 결정했다. 당시 메일과 카페로 유명한 IT기업에 다니고 있었는데. 어느 날 우리 부서 보스가 모든 인원을 다 불러 모아 어차피 가야 된다면 제일 먼저 가자며 본사 이전의 프런티어가 되자고 독려했다. 벌써 20년도 더 지난 일이니 기억이 가물가물하기도 한데 그때 몇몇 여성 동료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던 것 같기도 하다. 난 이게 무슨 상황인지 한동안 얼떨떨하기도 했는데 시간이 좀 지나서 걱정보다는 말 그대로 아직은 혼자(싱글)이니 재미있는 도전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회사는 파격적이고 진심 어린 지원을 해주었다. 갑자기 바다 건너 섬에서 근무를 해야 한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정확한 의미를 알지 못했다. 누구도 경험 못한 일이었을테니. 간단한 짐을 가지고 내려갔던 제주에서의 첫날밤을 잊지 못한다. 저녁 달빛이 무척이나 밝았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도 모르겠다. 회사 근방이긴 했는데 회사가 어느 방향에 있는지도 몰랐고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하기만 했다. 잠은 오지 않았으나 머리는 맑고 상쾌했던 걸로 기억한다.아침에 윈드서핑을 하고 출근하기도 했다업무 집중도는 매우 높았다. 딱히 일 이외에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밤에는 아는 사람도 아는 곳도 없기에 회사 동료들과 끼리끼리 모여 술을 마시는 것이 일상이었다. 팀원들은 가족과 같았다. 회사가 사전에 좋은 계약조건을 협상-회사는 직원들에게 체류비에 해당하는 지원금을 매월 지급하였다. 사실 회사에서 세끼 식사를 제공했기에 이 금액으로 한 달 생활이 가능할 정도였다-하여 모두들 같은 동네의 2~3군데 원룸에 분산되어 살았다. 마치 기숙사에 있는 것 같은 느낌으로 각자 방을 돌아다니며 매일 밤 술자리가 이어졌다. 제주의 정보는 주로 제주 이전 후 신규 채용된 동료를 통해 얻곤 했는데 휴식 시간이면 동료들을 둘러싸고 질문을 쏟아내곤 했다. “현지 사람들이 자주 가는 가장 핫한 술집은, 제주 젊은 사람들이 주로 소개팅하는 장소는, 저렴한 가족들이 자주 가는 바닷가 횟집은, 제주엔 없어 보이는 패밀리 레스토랑 느낌이 나는 식당은, 중고가전 및 가구를 구하는 방법은?” 각자 제주에서의 생활정보 등을 찾고 교환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재료를 함께 구매해 나눠 갖기 일 수였다. 솜씨 좋은 동료는 직접 반찬을 만들어 나눠주기도 했다. 당시에 위키나 공동 작업할 수 있는 작업도구들이 발달했다면 더욱 효과적이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결혼을 한 동료들은 대부분 일단 혼자 내려와 있었다. 당장 가족이 내려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점차 가족이 내려오면서 회사 사택이 부족해졌고 제주 시내 아파트 전세에서 자리를 잡는 가족도 늘어났다. 당시 회사는 제주 빈집이 2000여 채나 된다며 집을 구매하는 것은 보수적으로 임하라고 제안했다. 이때 전혀 적응을 못 하거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극소수의 동료는 부서를 옮기거나 퇴사를 하기도 했다.제주는 참 추었다제주 이전 초기에 시내 영어회화학원에 등록했다. 공부에 대한 열망보다는 사실 제주 분들을 만나고 싶다는 의지가 더 강했다. 관광산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많아서인지 면세점에 근무하는 분들이 많아 보였다. 더욱이 젊은 제주 친구들을 사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아침반을 선택한 후 기대는 여지없이 깨졌다. 아침반에 젊은 친구들은 거의 없었다. 실망도 잠시 아침반에서 너무나 좋은 제주 분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처음엔 무뚝뚝하고 차가워보였던 사람들이 마음을 여니 너무나 따뜻한 분들이셨다. 그들은 내가 제주에 잘 적응할 수 있겠끔 저녁 모임을 자주 가져주셨다. 독특한 제주만의 지인 결혼식에도 초대해 주셨고 한라산 등반도 같이 해 주시고 겨울이 춥다고 하니 집에 있던 난로까지 가져다 주셨다. 집 구하는데 제주의 역사적 풍수지리까지 설명해 주셨다. 지금도 그들의 친절과 배려를 잊을 수 없다. 나는 거의 유일하게 퇴근 후 약속이 있는 직원이 됐다. 간혹 제주가 예전의 귀향지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누구에게나 여기서 평생 살게 되는 걸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나중에는 제주에서 근무하고 싶은 사람들이 줄을 섰지만 당시 처음만 해도 그렇지 못했다. 몇 년이 지나서 적응하고 정보가 충분하게 쌓이고 그리고 가족들의 새로운 삶이 펼쳐지면서 만족도가 높아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솔로들에게 제주는 거친 곳이기도 했다. 정보와 트렌드에서 소외되고 뒤쳐지는 느낌이 나기도 했고 당시까지 스타벅스는 제주에 없었다. 어느 날 야근하다 스타벅스 커피가 너무나 먹고 싶어 당시 중문에 유일하게 있었던 ‘시애틀’ 에스프레소 전문점에 야근하다가 1시간가량 차 몰고 가 팀원들 커피를 배달해 오기도 했었다. 제주시내에도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 한 곳 있었는데. 기본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시럽이 들어가 있어 충격 먹었었다. 내가 시럽 빼달라고 안 했다는 이유로. 당시 여긴 시럽이 디폴트였다.6개월쯤 제주시내 원룸에 살다가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영화에서만 보던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었다. 이때부터 모험심 있는 직원은 산으로 바다로 이사를 떠났다. 허나 그 수가 많지는 않았다. 주말마다 집을 보러 다녔는데 제주의 특성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이사하는 연초 ‘신구간’이 아니면 물량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서귀포 등도 알아보기도 했는데 회사가 제주시라니 집주인이 말리기도 했다. 여기 살던 사람이 제주시에 직장을 얻어 나갔다고 어찌 제주시까지 출퇴근을 하냐고 하셨다. 서울에서 출퇴근은 왕복 2시간 넘는 게 기본이었는데. 제주는 한라산을 넘는다는 게 정신적으로 물리적으로도 큰 벽으로 느껴지나 보다. 물론 나도 이제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만. 내가 구한 집은 동쪽 조천의 단독주택이었다. 중산간에 위치했는데 주변은 귤밭이었고 조용하고 경치 좋은 곳이었다. 주인집은 옆에 함께 살았고 과거 펜션을 했던 4개 동을 ‘연세’-제주의 가장 일반적인 주거계약형태. 전세나 월세가 아닌 1년 치를 한꺼번에 낸다-를 주고 운영하고 있었다. 저녁때면 다른 동에 사는 분들과 술자리도 이어졌는데 하나 같이 육지를 떠나온 사연들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렇게 서로의 사연을 듣고 치유하고 한 분씩 다시 자신의 자리로 떠나곤 했다.당시 살던 중산간 조천집. 지금은 재건축으로 남아있지 않다.꿈같은 1년이 지나고 나도 중산간과 제주의 매서운 겨울을 경험하고 살기가 너무 험난하여 바닷가 쪽으로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눈이 많이 오는 날에는 집에도 못 가고 집에 있으면 나올 수 없는 날도 있었다. 이후 바닷가 쪽이 중산간보다 상대적으로 따뜻하다는 것을 깨닫고 나는 함덕해수욕장에 자리를 틀었다. 이곳에서는 주인집 할머니가 사시고 맞은편 별채에 내가 살았는데 손자처럼 너무 잘 대해 주셨다.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앉고 나는 가스보일러가 있는 제주시 삼양해수욕장으로 옮겼다. 제주는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고 LPG 가스보일러를 쓰는데 이는 도심이나 신축의 경우고 아직 시골 쪽에는 기름보일러가 일반적이었다. 남들은 작은 기름차가 와서 한 드럼씩 넣는다고 하던데 왠지 큰돈 나가는 것이 싫었던 것 같다. 20리터 통 하나를 넣으면 1주일 정도 지낼 수 있었다. 처음에 한 통을 넣고 냉방에 이빠이 보일러를 틀고 다음날 새벽에 엔꼬가 나서 놀란 적도 있다. 이때부터 겨울에 집을 비울시에는 보일러를 끄기보다는 제일 약하게 틀고 간다.  겨울에 주말마다 기름통을 들고 한밤중에 기름 사러 다니는 것이 너무 애처로웠다. 추억이라면 추억이지만 제주의 겨울은 언제나 힘겨웠다. 제주살이 4년째 시내로 들어오니 시골 같은 낭만과 인연은 없었던 것 같다. 생활은 편리해졌지만 나는 단절되었다. 바다를 홀로 걷곤 했는데 그맘때쯤부터 바닷가에 새로운 카페들이 새로 생겨났던 것 같다.주말이면 제주 동쪽의 깊은 오름을 등반하며 바람과 대화하고 바닥에 누워 하늘을 보곤 했다. 어느 날이었다. 매서운 태풍이 지나간 다음날 그날도 홀로 오름에 올랐다. 나비가 살포시 내 어깨에 앉는 것이 아닌가. 그때의 충격은 또 잊을 수 없었다. 자연과 동화가 된 나는 이대로 결혼도 못하고 지구 표면에 찰싹 달라붙어 사라질 것 같은 공포감 같은 것을 느꼈다. 뒤처지는 건 아닌지. 아직 젊다고 생각했는데 생활에 안주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같이 근무했던 직원의 죽음 소식이 들려왔다. 회사에서 가장 어린 직원이었다. 당시 역사적인 태풍의 위력으로 급격하게 불어난 하천물에 자동차채로 휩쓸려 갔단다. 자연의 공포를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제주는 살기엔 힘겹고 가끔 와서 만끽해야 하는 곳이라 생각했다. 젊은 땐 치열하게 살고 늙어서 다시 돌아오기로. 그것이 내가 제주에 대한 감정이었다. 제주를 떠나 서울 조직으로 부서를 옮겼다. 2006년 겨울 제주로 이주한 지 4년 만이었다.

[판제집] 길거리에 돈 버리는 세컨드하우스 - 공간에 대한 만족감과 끝없는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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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제집] 길거리에 돈 버리는 세컨드하우스 - 공간에 대한 만족감과 끝없는 욕망

내가 제주에 집을 짓겠다고 하면 대부분 질문이 제주에 내려가서 살 것이냐고 묻는다. 아내 하고도 이 문제에 대해 논의했는데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가족 전체가 내려가긴 어려울 것이라 판단했다. 제주 공간은 일명 세컨드하우스로 자주 오가는 공간이 될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주변 사람들은 길거리에 돈을 버리는 행위다. 전원주택이 얼마나 팔기 어려운지 아느냐. 두 집 살림은 비용이 두 배로 든다는 둥 걱정을 말하곤 했다. 하지만 나에게 롤모델이 존재한다.회사가 합병으로 판교로 옮기기 전 한남동에 있었는데 바로 직전 H대 서울캠퍼스에 일부 사무실이 있었다. 이곳에는 마케팅과 디자인 부서 등 말랑말랑한 부서가 있었는데 난 마케팅 직군이라 당시 새롭게 건축한 이 대학 건물에 입주했었다. 당시 상암동 쪽에 살고 있어서 출퇴근 시간이 줄어들어 개인적으론 만족스러웠다. H 대는 입점업체 직원들에게 교직원에 준하는 다양한 혜택을 주었는데 교수식당도 애용할 수 있고 체육시설도 이용할 수 있었다. 지금은 없어진 학교 수영장을 입점업체 할인을 받아 이용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운동을 마치고 수영장을 나오는데 도사 같은 직원 어르신께서 갑자기 말을 붙이셨다.“자네 혹시 검도를 해 볼 생각이 있는가”검도? 그렇게 나의 검도인생이 시작되었다. 이 대학 사무실은 그 후 회사가 한남동에 큰 건물을 임대하면서 양재동과 대학 사무실을 통합하여 모두 이전하게 되었지만 H대 교검회 인연은 2010년부터 현재까지 약 15년 이상을 이어져오고 있다. 특히, 교검회는 이 학교 교수 및 직원 등이 소속되어 매일 아침 합동 운동을 했는데 이곳에 건축과 교수님들은 물론 졸업생들도 있어 자연스럽게 건축을 접하고 이들과의 교류가 가능하여 나에겐 행운이었다. 나는 검도도 열심히 수련했는데 3단 승단 시험을 앞두고 회사에서 안식휴가 4주 동안 매일 수련하여 승단에 통과하기도 하였다. 나중에 회사 합병 후에도 거의 매일 운동하고 판교까지 출근하는 일은 여간 고역이 아니었는데 많은 사람이 놀라긴 했던 것 같다. 출근 시간이 비교적 자유스러워서 가능했을 수 있다. 검도회 교수님들 중에는 세컨드하우스를 가지고 계신 분들이 있어서 이 분들의 라이프 스타일이 언제나 부러웠던 것 같다. 특히 한 교수님은 서울, 강원도, 남해안에 개인 공간을 두시고 세 곳을 번갈아 다니며 생활하셨다. 미술을 전공하신 분 답게 세컨드하우스 모두 감각이 대단하였다. 내가 제주에 세컨드하우스를 짓는다고 하니 교수님과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직접 본인의 세컨드하우스로 초대도 하셔서 가족들과 함께하기도 했다. 교수님은 “한 곳에서 사는 것보다 계절에 따라 다양한 곳에서 사는 삶이 나름 행복하다”고도 하셨다. 물론 단점도 존재한다고. 커피 머신도 최소 4개 - 교수님 작업실도 따로 있으시다-를 갖춰야 하는 등 생활비가 최소 2~3배가 더 들기도 한다. 또한 몇 시간씩 운전을 하며 이동하는 것이 약간 부담이긴 하지만 -요즘엔 KTX도 잘되어 있어 자주 애용하신다고-언젠가 자율주행이 현실화되면 물리적 거리는 큰 문제가 안 될 것이며 보다 만족할 만한 공간에서 사는 것이 더 중요한 때가 올 것이라고 하셨다. 특히 최근 지구 온난화가 심해지고 있는데 강원도 용평은 서울보다 10도 이상이 온도가 낮아 미래의 주거 대안이 될 수도 있다고 하셨다. 강원도의 자연환경과 평창 동계 올림픽 인프라를 저렴하게 활용할 수 있는데 겨울엔 크로스컨츄리, 여름엔 골프 등 끊임없는 자기 수행이 가능하다고 자랑이 끊이지 않으셨다. 집 앞마당에서 남해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교수님의 세컨드하우스 전경교수님의 남해안 주택은 멀리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의 집이다. 내가 전 세계에서 본 집들 중 최고의 경치를 자랑한다. 교수님은 정원도 손수 가꾸시고 내부 인테리어 가구도 조립하시는 등 하루하루가 허투루 지나치는 날은 없어 보였다. 은퇴 후에는 더욱 집 가꾸기에 매진하고 계셨다.“자네 제주 프로젝트 다음은 강원도 용평이네. 여름에 지낼 곳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공간에 대한 만족감과 끝없는 욕망. 어쩌면 나의 제주 프로젝트는 마지막이 아니라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판제집] 가장 건축하기 적절한 시기에 대한 만화가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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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제집] 가장 건축하기 적절한 시기에 대한 만화가의 가르침

코로나 시기에 재택근무를 하였다. 우리 회사가 그룹사 가운데 가장 빠르게 재택근무를 결정했다. 재택근무가 효율적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을 것 같다. 또한 과연 모든 직원이 전원 재택근무가 가능할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보다는 직원들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이유가 더 컸다. 고정관념을 바꿔보기로 한 것 같다. 안 되는 이유보다는 되기 위해서 무엇을 바꿔야 할지 논의해 보기로 했다. 신기하기도 절대 재택근무가 불가능하게 보였던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닭기도 했다. 어떤 부분에서는 매우 효율적이었고 어떤 부분에서는 아쉬웠지만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면 말이다.마치 세상이 망한 것처럼 모든 것이 공포였을 때 몇 가지 트렌드 변화가 감지됐다.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아내와 내가 함께 재택을 하다 보니 우리 네 식구가 함께 지내는 것이 여간 부담스럽지 않았다. 집에 사무환경을 만들다 보니 아내는 가구도 새로 구입하고 후다닥 을지로에 나가서 간접 조명 재료에 인부를 구해서 간단하지만 인테리어 공사도 수행했다. 이때였던 것 같다. 갑자기 내가 내일 죽는다면 가장 아쉬운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지구가 내일 멸망한다면 꼭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는데.바로 제주도 집 앞마당에서 아침 향 가득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모습이 떠올랐다. 땅을 구매한 지 꽤 되었는데 집을 언제쯤 지을 수 있을지 예측이 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건축 비용은 조만간 상장할 것으로 예측되는 회사 스톡옵션으로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을 했는데 문제는 건축이 완료 예정인 현재까지도 상장은 감감무소식이긴 하다. 당시엔 바로 건축사를 만나 상담하고 계약서도 오고 가고 했지만 치솟은 건축비와 결정장애로 몇 번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리고 건축비가 내려가거나 콘셉트가 보다 명확해지면 다시 추진하기로 했다. 혹자는 오른 자재 및 인건비는 다시 내려가지 않으니 바로 지금이 가장 저렴한 때라고 말하기도 하였다.나는 회사에서 지금껏 콘텐츠를 다루는 일을 수행해 왔다. 콘텐츠는 다양한 분야를 다뤄왔는데 근래 들어서는 웹툰을 담당하고 있어 창작자와의 접촉도 빈번했다. 특히나 내가 아주 존경하고 저명한 만화가님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겨울 때쯤 이 분이 지방으로 작업실을 이전하게 되셔서 겸사겸사 찾아뵙게 되었다. 작품 활동은 물론 다양한 사업 특히 서울에서 공간을 운영하시며 여러 후배들에게 더 좋은 환경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계셨다. 이런저런 말씀을 듣다가 요즘 내가 고민하는 질문을 드리게 되었다.“작가님, 제가 저의 로망인 제주에 집을 짓고 싶은데. 건설자재비도 많이 오르고 지금은 때가 아닌 것도 같기도 하고 언제 지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작가님은 본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서울의 해당 공간을 매입했을 시 부동산시장이 안 좋을 때라고 하셨다. 주변에서 만류하기도 하셨는데 본인이 가장 좋아했던 거리에 마침 좋은 매물이 나왔기에 바로 결정할 수 있었다고. 결과적으로도 그때 선택이 옳은 선택이 됐다 하셨다.“무엇인가를 간절하게 하고자 할 때가 가장 적절한 시기가 아닐까요?”그때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 있었다. 미래에 건축비가 내려갈지 오히려 올라갈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본인이 하고자 하는 마음이 충만하다면 당시의 결정이 어떻든 미래에 가치 있는 것으로 바꾸어 나가는 건 본인의 역량일 것이다. 그동안 마음속에 무겁게 자리 잡았던 무엇이 뚫리는 기분이었다. 결론적으로 작가님이 구입한 공간(건물)은 작가님의 로망대로 운영되고 있어 그 어떤 물질적 가치보다 더욱 값어치 있을 것이다. 작가님은 바램은 완성이 아닌 현재 진행중이었고 그 최종 꿈은 더욱 더 커 보였다.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고 그것을 실현할 용기가 있다면 미래도 나의 길을 올바르게 인도하지 않을까. 이때를 기점으로 제주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고통이라는 이름의 미식적 역설, '매운맛'이 그려낸 인류 문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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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이라는 이름의 미식적 역설, '매운맛'이 그려낸 인류 문명사

1. 혀끝에서 시작되는 기분 좋은 고통의 역설수천 년 전, 멕시코시티 변두리의 어느 시장 풍경을 상상해 보십시오. 한 여성이 붉고 작은 열매를 따고 있습니다. 열매를 만진 손끝은 화끈거리고, 실수로 눈이라도 비비면 불에 덴 듯한 통증에 눈물이 쏟아집니다. 입에 넣는 순간 혀가 타오르는 듯한 고통이 밀려오지만, 그녀는 이 열매를 버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정성껏 수확하여 집으로 가져갑니다.오늘날의 풍경 역시 이 기묘한 과거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전 세계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매일 땀을 흘리고 눈물을 닦으며 매운 음식을 탐닉합니다. 심지어 더 큰 고통을 느끼기 위해 기꺼이 추가 비용을 지불하기도 하죠. 생존에 위협이 되는 자극을 오히려 유희로 즐기는 이 '미식의 역설'은 어떻게 인류 문명의 보편적인 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을까요? 혀끝에서 시작된 이 지적이고도 기묘한 고통의 역사를 추적해 봅니다.2. 매운맛은 '맛'이 아니라 '화상'이다우리가 흔히 '매운맛'이라 부르는 감각에는 놀라운 생물학적 반전이 숨어 있습니다. 사실 매운맛은 단맛이나 짠맛 같은 '미각'의 범주에 속하지 않습니다. 우리 혀에는 매운맛을 직접 감지하는 미각 수용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매운맛의 정체는 고추 속 캡사이신이라는 물질이 우리 몸의 통증 수용체인 TRPV1에 결합하면서 발생하는 '착각'입니다. 이 수용체는 본래 섭씨 43도 이상의 뜨거운 열기를 감지하여 뇌에 위험 신호를 보내는 경고 장치입니다. 캡사이신은 이 수용체를 속여, 온도가 전혀 올라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뇌가 '지금 입안이 불타고 있다'고 오판하게 만듭니다. 즉, 우리가 느끼는 매운맛은 미각이 아니라 **화상에 가까운 통각(Pain)**인 셈입니다.식물이 이토록 지독한 고통을 설계한 배경에는 정교한 진화적 생존 전략이 숨어 있습니다.식물의 생존 전략: 포유류 거부와 조류 수용 고추는 씨앗을 씹어 파괴하는 포유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캡사이신이라는 방어 기제를 고안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씨앗을 통째로 삼켜 멀리 퍼뜨려주는 새들은 이 통증 수용체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새들에게 고추는 그저 아무런 자극 없는 달콤한 열매일 뿐이며, 이를 통해 고추는 자신의 종족을 더 넓은 세상으로 번식시킬 수 있었습니다.3. 왜 우리는 이 고통에 중독되는가? (양성적 마조히즘)인간은 식물의 경고를 무시하고 오히려 그 고통을 유희로 승화시킨 유일한 종입니다. 핵심은 뇌의 보상 작용에 있습니다. 캡사이신에 의해 '화상' 신호를 받은 뇌는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천연 진통제인 엔도르핀을 분비합니다. 이때 발생하는 쾌감은 장거리 달리기 후에 느끼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와 그 궤를 같이합니다.심리학자들은 이를 **'양성적 마조히즘(Benign Masochism)'**이라 부릅니다. 실제적인 신체적 위협이 없는 안전한 상황임을 인지하면서도, 뇌가 느끼는 고통과 공포를 즐거움으로 치환하는 인간 특유의 본성입니다. 우리가 매운맛에 중독되는 기제는 다음의 활동들과 매우 흡사합니다.심장이 터질 듯한 공포를 카타르시스로 바꾸는 공포 영화 시청추락의 공포를 짜릿한 유희로 즐기는 롤러코스터 탑승혀의 통증 뒤에 찾아오는 엔도르핀의 파도를 만끽하는 매운 음식 섭취결국 매운맛을 즐기는 것은 타고난 능력이 아니라, 반복적인 노출을 통해 뇌가 이 자극을 '안전한 유희'로 받아들이게 된 문화적 학습의 결과입니다.4. 콜럼버스의 오해와 위대한 확산매운맛의 세계사에서 1492년은 인류의 식탁이 재편된 거대한 전환점이었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콜럼버스는 고추를 처음 보고 이를 귀한 '후추'의 일종으로 오해했습니다. 이 결정적인 착각 덕분에 고추는 스페인어로 '피미엔토(Pimiento)', 포르투갈어로 '피멘타(Pimenta)'라 불리며 후추의 이름을 빌려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당시 금값에 달했던 후추와 달리, 고추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강력한 번식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른바 **'콜럼버스의 교환'**을 통해 고추는 포르투갈과 스페인 상인들의 돛을 타고 아프리카, 인도, 동남아시아, 그리고 극동의 중국과 한국까지 순식간에 점령했습니다. 이 붉은 열매는 각 지역의 풍토와 만나며 인류 식문화 역사상 가장 극적인 확산을 일구어냈습니다.5. 같은 고추, 다섯 개의 철학: 지역별 매운맛의 미학고추라는 하나의 식물은 각기 다른 땅에 뿌리 내리며, 그 지역의 기후와 생존 방식을 담아낸 독특한 '미학'으로 변모했습니다.한국: 발효를 통한 기다림의 매운맛 한국의 매운맛은 고추를 젓갈, 채소와 함께 발효시켜 깊은 감칠맛을 끌어내며, 입안에서 즉각 폭발하기보다 삼킨 뒤 서서히 올라오는 '후착적 열기'가 특징입니다. [요약] 긴 겨울을 버티기 위한 저장과 발효의 지혜가 매운맛을 깊고 복잡한 풍미로 승화시켰습니다.중국 쓰촨: 감각을 해체하는 마라(麻辣) 고추의 통증과 화자오의 마비를 결합한 '마라'는 분지 지형의 덥고 습한 기후에서 체내의 습기를 내쫓기 위해 감각의 임계치를 건드리는 강렬한 자극을 추구합니다. [요약] 덥고 습한 지형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감각을 일시적으로 해체하는 강렬한 발한 작용을 선택했습니다.동남아시아: 생존을 위한 조화와 균형 태국의 똠얌꿍처럼 매운맛을 산미, 단맛, 짠맛, 허브 향과 정교하게 결합하여, 무더운 기후에서 식욕을 돋우고 음식의 부패를 방지하는 실용적인 도구로 사용합니다. [요약] 열대 기후의 부패를 막는 방부 효과와 더불어 여러 맛의 완벽한 균형을 통해 식욕의 평형을 맞추었습니다.인도: 의학적 체계 속의 설계된 맛 아유르베다(Ayurveda) 전통에 따라 수많은 향신료를 조합하는 '마살라' 체계 속에 고추를 흡수시켜, 몸의 열을 조절하고 생리적 균형을 잡는 의학적 설계로서의 매운맛을 보여줍니다. [요약] 고대 의학적 전통 아래 신체의 에너지 균형을 맞추기 위한 정교한 향신료 조합의 일부로 매운맛을 수용했습니다.멕시코: 재료 본연에 대한 언어적 이해 원산지답게 고추를 단순한 조미료가 아닌 주재료로 다루며, 안초(Ancho), 물라토(Mulato), 파시야(Pasilla), 치포틀레(Chipotle) 등 가공 방식에 따라 고유의 이름을 부여해 맛의 층위를 세분화했습니다. [요약] 고추에 대한 수천 년의 이해를 바탕으로 재료의 물리적 상태에 따른 고유의 맛을 언어적으로 정의하고 존중해 왔습니다.6. 당신이 오늘 먹은 매운맛에는 어떤 땅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까?매운맛은 단순한 미각적 자극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류가 각기 다른 척박한 환경에 적응하며 선택한 '지혜로운 생존의 도구'였습니다. 누군가는 겨울을 나기 위해 발효의 깊이를 더했고, 누군가는 습기를 쫓기 위해 감각의 마비를 택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매운맛의 차이는 단순히 개인의 기호 문제가 아니라, 수백 년간 축적된 인류의 적응과 문화적 해답이 담긴 결과물입니다.오늘 당신의 식탁 위에 놓인 매운 음식 뒤에 숨겨진 수천 년의 역사와 문화를 한번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 고통이 조금은 더 경이로운 미식의 경험으로 느껴지지 않으신가요?

[판제집] 내가 몰랐던 평당 건축비의 비밀/내가 몰랐던 평당 건축비의 비밀
Culture

[판제집] 내가 몰랐던 평당 건축비의 비밀/내가 몰랐던 평당 건축비의 비밀

‘평당 건축비는 의미 없다’란 얘기도 많이 들린다. 건축주가 어떤 재료 어떤 콘셉트를 차용하느냐에 따라 금액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당연한 얘기이다.처음 건축사 미팅을 할 때 예산을 물어보지만 당연 건축비를 예상할 수 없기에 대답할 수 없었다. 이때 준비해 간 워너비 콘셉트 사진들을 보여주면 그때 비로소 건축사는 본인의 포트폴리오 사례에서 비슷한 콘셉트의 사례를 들어 대략적인 평당 건축비를 말해준다. 참 신기한 광경이었다. 물론 모든 건축사가 이렇게 자판기처럼 건축비를 말씀해 주진 않는다. 건축주의 예산에 맞는 설계를 하겠다는 분도 계셨고 정확한 건축비는 시공사랑 협의하라는 분도 계셨다.내가 준비한 콘셉트 사진을 보고 건축사들은 모두가 평당 1000만 원 이상이 들 것이라 하였다. 나는 깜짝 놀랐는데 책에 있는 내용과 현저히 달랐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도서관 책을 참고하다 보니 출판된 지 꽤 지난 책들이 많았는데 책이란 매체는 실시간으로 현실을 반영하지는 못할 듯하다. 내가 본 책에는 평당 5~700만 원까지 다양했으나 건축사들은 입을 모아 최소 1000만 원을 이야기 했다. 이어 코로나 시기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자재비가 엄청나게 뛰었으며 인건비 또한 뛰었다고 입을 모았다. 더군다나 제주는 물류비가 추가로 든다고 하니 비용을 더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당시 만나 본 한 시공사는 30평 정도 주택에 콘크리트 치는데 1억은 든다고 해서 적잖이 충격을 먹기도 했다. “30평짜리 주택에 드는 시멘트 비용이 1억이라니!”여기서 건축비 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부 설계가 끝나고 시공사로부터 견적을 받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때 세부적인 건축비 내역이 나와있다. 물론 직영공사와 종합건설사를 통한 공사에는 여러 가지 차이가 있다. 나는 여러 리스크를 고려해서 비용이 더 들더라도 안전한 종합건설사를 시공사로 선정했는데 견적서를 보고 약간 당황했다. 일반적으로 공사비라 하면 자재비와 인건비가 거의 반반으로 보면 된다. 여기에 각종 공사 현장의 안전 등에 필요한 보험료가 10%가 추가되고 시공사의 이윤 10%가 추가된다. 다시 여기에 부가가치세 10%가 추가가 된다. 여기서 현타가 온 것은 공사비의 대부분은 재료비로 알고 있었던 나에게 재료비의 비중보다 인건비와 간접비의 비중이 더 크다는 데 있었다.공사비 = 재료비+인건비+간접비(재료+인건비의 10%)+이윤(재료+인건비의 10%)+부가세즉, 평당 1000만 원이라는 말속에는 재료비 400만 원, 인건비 400만 원, 간접비 80만 원, 건설사 이윤 80만 원 정도가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부가세 및 인허가비 등 각종 세금이나 설계비는 제외된 금액이다. 물론 직영 공사를 시행한다면 부가세는 내야하겠지만 간접비나 건설사 이윤은 재료비에 비례하여 올라가진 않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 견적서를 살펴보면 철근 콘크리트 공사비 1억여 원 중 재료비가 5천만 원, 인건비가 5천만 원이었는데. 재료비 5천 중에서 시멘트 비용은 채 2천만 원도 안되었다. 약 1.5천만 원이 철근, 나머지 비용은 거푸집 등 공사를 위한 부대비용이었다. 물론 간접비는 이 금액에 20~30%를 더 고려해야 한다. 즉, 총 철근콘트리트 기초타설 비용 1억 중 시멘트는 20%인 2000만 원정도였다.여기서 공사비를 줄인다는 것은 재료비만이 변수로 작용한다. 즉, 재료비만 줄 일 수 있지 인건비를 마음대로 줄일 순 없다. 할 일의 양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실제 재료비 100만 원을 줄이면 인건비는 고정이고 간접비 30%인 약 30만 원 정도가 추가로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건축주의 딜레마가 시작되는데 면적을 줄이지 않는 한 줄일 수 있는 건 마감 재료비뿐인데 일반적으로 시공사 견적에 대해 협상과 ‘네고’를 하는 과정에서 건축주가 선택한 창호, 타일, 페인트, 가구 인테리어 비용 등을 놓고 우선순위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낮은 가격의 재료로 다운그레이드해야 한다. 그런데 눈물을 머금고 금액을 낮춰봐야 전체 공사비에서 재료비로 낮출 수 있는 한도는 매우 제한적임에 절망하곤 했다.

[판제집] 좋은 건축가를 만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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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제집] 좋은 건축가를 만난다는 것

좋은 건축사를 만나는 팁은 없다고 본다. 실제로 일해 보지 않고 자신과 맞는 건축사를 만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집을 짓는데 건축사는 필수이다. 일단 건축허가를 낼 때 건축사 자격증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나는 집을 짓기로 한 후 6명 건축사를 만났다. 물론 내 운동커뮤니티에 유독 건축 설계 쪽 분들이 많긴 했는데 나는 지인과 일하는 것이 부담이라 일부러 피했다. 6명을 동시에 만나 그중에 한 명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최근 2년간의 기간 동안 상담한 건축가들의 숫자다. 주변에서 건축사를 찾는 건 단순하기도 하고 단순하지 않기도 하다. 사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을 수도 있지만 주변에 건축 관련 종사자 한 명쯤은 있지 않겠는가. 변호사를 찾는 일과 비슷할 것 같다. 보통은 땅이나 건물을 계약한 부동산에서 많이 건축사를 추천해 주기도 한다고. 건축사를 고를 때 고민했던 부분 중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지역적인 부분이었다. 내가 서울에 거주하니 설계과정에서 건축주와 많은 소통이 가능한 서울 지역 건축사와 실제 제주를 잘 알고 내가 자주 갈 수 없기에 현장에서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제주 지역 건축사 중 고민이 컸다. 나는 그중 설계의 디테일보다는 제주에서 원활한 활동이 가능한 현지 건축사를 먼저 만나보기로 했다.나는 실제 제주에서 집을 지은 지인에게 건축사 추천을 의뢰했다. 지인은 ‘허가방’이라고 해서 도면은 본인이 그리고 허가만 대행하는 건축사도 있다고 했다. 나는 실제 설계가 필요할 것 같아 지인 건축사 연락처를 받았다. 대략적인 설계비는 듣기도 했고 또 각종 건축 관련 책을 보면 평당 얼마라는 대략적인 단가가 나와있기도 했다. 해당 건축사와 연락 후 가족 여행을 핑계 삼아 제주에 가서 직접 사무실에 방문했다. 제주시내가 아닌 근교에 위치해 있었는데 사무실에 혼자 있었다. 자신의 포트폴리오도 대략적으로 설명하고 언제나 그렇듯 기본 3가지 질문에 대해 논의했던 것 같다. 나는 주로 듣는 입장이었는데 특히나 나의 땅이 권리관계가 복잡했는데 제주 건축사라 그런지 경험이 많아서 그런지 각종 법적 인허가 문제들을 능숙하게 해결할 수 있다고 말씀 주셨다. 그리고 본인은 더 많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직접 설계를 하지 않고 설계는 다른 곳에 외주로 요청한다고. 한 시간 정도의 미팅을 하고 나오면서 몇 가지 생각이 들었다. 홈페이지도 없는 이 설계사무소에서 했다는 그 포트폴리오는 실제 여기서 한 것일까. 나와 상담한 이 분은 실제 설계사 자격증을 갖고 있을까. 이 분을 뭘 믿고 수 억 원짜리 공사 계약을 할 수 있을까. 불안한 생각들이 엄습해 왔다. 실제로 집을 지은 지인들은 건축사에게 아쉬운 소리를 많이 했다.그들은 본인들의 살 집을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하려고 해실제 건축사이면서 자신이 설계한 집에 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물론 건축사의 역할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다루기에 5년 이상을 대학에서 공부한 사람들이다. 건축사들 중에도 스타일이 있다고 듣긴 했다. 미적인 면을 강조하는 사람과 튼튼하고 실용적인 면을 강조하는. 그 중간을 추구하는 건축사를 어떻게 고를 수 있다는 말인가. 단 한두 시간의 미팅으로 말이다.그 후 나는 서울 건축사를 소개받아 만나기도 했다. 설계비란 것이 부동산 소개비처럼 정해진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내가 만난 6명의 설계사들과 논의한 설계비의 평균을 내보면 제주 설계비보다 서울 설계비가 최소 3배 이상이 비쌌다. 물론 내가 만난 건축사가 훌륭하신 분임은 분명할 것이다. 또한 세부적인 설계도 규모도 차이가 나긴 했다. 그럼에도 이러한 금액 차이가 나는 점은 선 듯 이해하기 힘들었다.사실 설계비가 비싸다는 건 문제가 아니다. 그 값을 지불할 때 충분히 합당한 것인가가 중요할 것이다. 어찌 보면 건축비에서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는, 아니 건축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설계를 좋은 사람과 함께하는 일은 건축의 성공에서 최소 50% 이상을 차지할 만큼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험난하고 난생 처음인 건축과정에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건축사를 만나는 건 축복이다. 설계비는 완공 후 만족감의 값어치이며 미래에 절약될 시행착오 비용까지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한 때 난 ‘설계도는 내 머릿속에 들어있는데 건축가의 역할이 필요하나’하는 어리석은 생각도 한 적이 있다. 건축가는 최고의 전략가이자 등불 같은 존재이다. 내가 건축의 바다에서 길을 잃거나 좌초되지 않도록 방향을 잡아주고 즐거운 항해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건축가는 결코 선장은 아니다. 물론 선장 역할도 해줄 수 있겠지만 그렇다면 굳이 집을 스스로 지을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훌륭한 건축가란 누구인가. 나는 나의 이 결정장애와 다양한 욕구를 잘 들어주기만 하는 것이 아닌 함께 상상의 나래를 그리고 그 속에서 잘못된 부분은 지적하여 하나하나 정리해 나가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는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사람에 따라 성향에 따라 경험에 따라 필요한 건축사의 역할은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가장 절대적인 것은 지나칠 정도로 충분히(깨알같이) 의견을 나누는데 열려 있는 건축사는 실패할 확률이 적다고 본다.나는 결국 두 곳 설계사무소와 계약을 체결했다. 한 곳은 제주, 한 곳은 서울이었다. 서로 역할을 나누어 협력하여 진행하기로 했다. 어쩌면 일생에 가장 도전적인 건축이라는 행위에 대해 실패를 최소화할 여러 개의 완충지를 마련한 셈이었다. 비용에 대한 부담보다 결코 실패하고 싶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뒤에서 자세히 들려 드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