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맛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오직 당신의 '순간'에 있을 뿐 | 시칠리아 미식 탐험
— 《맛의 문명사》 100화를 준비하며
몬레알레의 아침이었다.
팔레르모 근교, 대성당 앞 골목의 작은 바. 관광객이 갑자기 몰려들어 좁은 가게 안이 순식간에 꽉 찼다. 디저트 진열장이 화려했지만 그걸 구경할 여유는 없었다. 일정에 쫓겨 에스프레소 한 잔만 급하게 주문했다.
정신없는 그 틈에, 커피를 내리던 스무 살 남짓한 직원이 잔을 건네며 한마디를 했다.
"안녕하세요."
한국말이었다. 서툴지만 또박또박한 발음. 시칠리아 시골 마을에서 한국어를 조금 배운 젊은이를 만난 것이다. 그리고 그 에스프레소를 한 모금 마신 순간,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진하고 걸쭉했다. 고소함과 단맛이 끈적하게 오래 남았다. 며칠 전 피렌체의 유명한 카페에서 마셨던, 그때까지 최고라고 여겼던 에스프레소보다 좋았다.
이 커피는 유명하지 않다. 어떤 평가지에도 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세계 어디서 마신 커피보다 좋았던 커피로 남아 있다.
왜 그랬을까. 이 질문 하나를 붙잡고, 100번째 이야기를 준비했다.
아흔아홉 번 던진 질문, 백 번째 질문
이 채널은 하나의 질문에서 출발했다. 음식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가. 매운 음식을 먹는 민족, 저장 음식을 발달시킨 민족, 면을 먹는 문화, 빵을 먹는 문화. 이 차이를 좋고 나쁨으로 나누는 순간 음식 이야기는 편견이 된다. 그래서 처음부터 다른 질문을 던지기로 했다. 무엇이 더 나은가가 아니라, 무엇이 이렇게 만들었는가.
기후, 지형, 역사. 아흔아홉 번의 탐험을 거치며 가장 자주 도착한 결론은 이거였다. 조건이 다르면 맛이 다르다. 다른 것은 틀린 게 아니다.
그런데 백 번째를 준비하다가, 좀 더 개인적인 질문이 남았다. 지역과 지역 사이의 큰 조건 말고, 한 사람의 삶 안에서 최고의 음식은 대체 뭘로 결정되는 걸까. 그날의 피로,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예상 못 한 우연 같은 것들.
이 질문에 답을 찾으려고, 가장 개인적인 여행이었던 가족과의 시칠리아로 돌아갔다.
혀가 아니라 상황이 맛을 본다
미각 연구자들은 우리가 맛을 혀로만 느낀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단맛, 짠맛, 신맛, 쓴맛, 감칠맛이라는 다섯 가지 기본 정보에 후각, 촉각, 시각, 그리고 그 순간의 심리 상태까지 더해져서 뇌가 종합적으로 맛을 구성한다. 배고픈 상태와 배부른 상태, 편안한 자리와 긴장된 자리에서 같은 음식이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다.
여기에 기억이 더해진다. 특정한 맛이 특정 순간의 기억과 함께 저장되면, 나중에 그 맛을 다시 만났을 때 뇌는 미각 정보만이 아니라 그때의 감정과 상황까지 함께 불러온다. 그래서 같은 커피라도 누군가에게는 그냥 커피고, 누군가에게는 특정한 하루 전체를 소환하는 맛이 된다.
몬레알레의 그 에스프레소를 다시 생각해본다. 며칠간 쌓인 여행의 피로, 시간에 쫓겨 급하게 들어간 낯선 가게, 그리고 예상 못 한 순간 이역만리에서 받은 서툰 한국말 인사. 이 모든 조건이 커피 한 모금과 동시에 도착했다. 커피의 성분 자체는 아마 다른 좋은 에스프레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그 순간에 도착한 조건들의 총합은, 다른 어떤 커피와도 같지 않았다.
맛이 혀에서 완성되지 않는다면, 최고의 음식이라는 것도 절대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최고는 음식 자체의 속성이 아니라, 그 음식이 누군가의 삶 속 어떤 순간과 만났는가의 결과다.
한 섬 안에도 최고는 여러 개였다
시칠리아는 그리스, 로마, 9세기부터 11세기까지는 아랍 세력, 이후 노르만과 스페인이 차례로 지나간 섬이다. 이 섬의 음식은 그 모든 지배자의 흔적을 한 접시에 쌓아 올린 결과다.
쌀을 뭉쳐 튀긴 아란치니는 유럽 대부분 지역이 쌀을 주식으로 쓰지 않는데도 시칠리아에서 발달했다. 아랍 지배기에 쌀 농업과 사프란 조미법, 튀김 기법이 함께 들어왔기 때문이다. 재밌는 건 팔레르모의 아란치니는 둥글고, 카타니아의 아란치니는 뾰족한 원뿔 모양이라는 점. 같은 섬 안에서도 도시마다 받아들인 방식이 달랐다.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 지역마다 다른 최고가 있었던 거다.
카놀로도 비슷하다. 바삭한 튀김 껍질에 리코타를 채운 이 디저트는,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아랍 지배기 궁정 여성들이 만들던 과자에서 시작해 수녀원을 거쳐 대중에게 퍼졌다고 한다. 팔레르모의 수녀원이 운영하던 오래된 과자점에서 즉석으로 받아본 카놀로는 분명 훌륭했다. 그런데 하나를 다 먹기 쉽지 않을 만큼 진했다. 이 단맛의 밀도를 즐기는 사람과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이 나뉠 수밖에 없다.
파스타 알라 노르마는 조금 다른 이야기다. 튀긴 가지와 토마토, 리코타로 만드는 이 요리는 '쿠치나 포베라', 그러니까 가난한 이들의 부엌 철학에서 나왔다. 아랍이 전한 값싼 채소로 서민들이 만들어 먹던 음식이, 지금은 시칠리아를 대표하는 요리가 됐다. 한때 가난 때문에 선택했던 음식이, 지금은 누군가에게 최고의 파스타로 꼽힌다. 조건이 바뀌면 같은 음식의 자리도 바뀐다.
같은 여행, 겹치지 않는 최고들
이건 역사 얘기만이 아니다. 같은 가족, 같은 여행 안에서도 최고는 하나가 아니었다.
시칠리아식 곱창구이 앞에서 아이들은 넋을 잃었다. 부모는 이미 다른 도시에서 비슷한 음식을 먹어본 터라 감동이 크지 않았다. 반대로 어른들이 감탄했던 향신료를 절제한 담백한 파스타 앞에서, 아이들은 며칠째 파스타는 그만 먹겠다고 선언했다. 여행 마지막 날 가족들이 각자 최고의 순간을 하나씩 꼽았을 때, 겹치는 답이 없었다. 그런데도 누구도 서로의 답을 틀렸다고 하지 않았다.
라구사 외곽의 한 식당을 찾아갈 때는, 낯선 이국의 지도 위에서 유일하게 의지가 됐던 게 그 자리에 먼저 다녀간 한국인 한 명이 남긴 리뷰였다. 같은 민족이라는 사실 하나가 낯선 땅에서는 가장 믿을 만한 나침반이 되기도 한다. 이것도 맛의 조건이다. 누가 먼저 그 길을 걸었는가.
성수기와 비수기라는 조건도 있다. 사람 하나 없는 이솔라벨라 해변에 발을 담그며 들었던 현지인의 한마디, 겨울 여행이 진짜 여행이라던 그 말은, 성수기의 화려함과는 다른 방식으로 진짜였다. 붐비는 여름의 최고와 고요한 겨울의 최고는, 서로를 부정하지 않고 나란히 존재한다.
최고라는 질문에는 답이 하나가 아니다
이 채널은 처음부터 어떤 음식 문화도 우열로 매기지 않으려 했다. 조건이 다르면 음식도 다르게 완성된다고 계속 말해왔다. 그런데 100번째를 준비하며 깨달은 건, 이 원칙이 지역과 지역 사이에서만 성립하는 게 아니라는 거였다. 한 사람의 삶 안에서도, 한 가족 안에서도 똑같이 성립한다.
아이들에게 최고의 음식은 곱창구이와 튀김, 1인 1판의 피자였다. 부모에게 최고의 음식은 낯선 바에서 우연히 만난 에스프레소 한 잔이었다. 어느 쪽도 더 고급스럽거나 더 진짜인 미식이 아니다. 각자의 조건, 각자의 나이, 각자의 하루가 다르게 완성한 최고일 뿐이다.
그렇다면 질문 자체를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무엇이 최고의 음식인가라고 묻는 대신, 이렇게 물어야 한다. 누구에게, 어떤 순간에, 무엇이 최고였는가.
이건 냉소가 아니다. 모든 게 상대적이니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모든 최고가 특정한 조건 속에서만 완성된다는 걸 알면, 그 조건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게 된다. 시칠리아의 가난한 부엌에서 나온 가지 요리를, 궁정에서 시작됐다는 디저트를, 관광객으로 붐비는 시장의 내장구이를, 서로 다른 층위에서 각각의 최고로 존중하게 된다.
다시, 몬레알레
정신없이 붐비던 실내, 서둘러 마셔야 했던 에스프레소, 그리고 서툰 발음으로 건네진 한마디.
지금 돌이켜보면 그 커피는 기술적으로 완벽한 에스프레소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더 정교한 원두를 쓴, 더 숙련된 바리스타가 세계 어딘가엔 분명 있을 거다. 그런데도 그 한 잔은 여전히 최고의 자리에 남아 있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그 순간이 다시 오지 않기 때문이다.
100번째 탐험이 도착한 자리가 여기다. 최고의 맛은 재료와 기술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가 아니라, 그 음식과 그 순간, 그 사람들이 겹쳐졌을 때 완성된다. 아란치니가 도시마다 다른 모양으로 완성됐듯, 한 가족의 여행에서도 최고는 한 사람마다 다른 얼굴로 완성됐다.
100화를 준비하면서 지난 99번을 돌아보니, 이 모든 이야기가 결국 이 채널을 함께 읽고 들어주신 분들 없이는 존재하지 않았을 거란 사실이 새삼 분명해진다. 다음 100편에서도, 각자 다른 조건 속에서 완성되는 맛들을 계속 찾아가 보려 한다. 함께해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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