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신이 먹은 음식의 주인은 누구인가?》우리가 몰랐던 커피 한 잔 뒤의 주인들
2018년 5월, 스위스 브베를 상상해보겠습니다.
레만 호수를 낀 작은 도시, 세계에서 가장 큰 식품기업의 본사가 있는 곳입니다. 이날 이 회사의 임원실에서 서류 하나에 서명이 이뤄집니다. 금액은 71억 5천만 달러. 상대는 미국 시애틀의 커피 회사, 스타벅스입니다.
이 계약으로 무엇이 넘어갔을까요. 스타벅스 매장은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원두를 볶는 방식도, 초록색 로고도, 매장 안의 그 특유의 냄새도 그대로 스타벅스의 것입니다. 이 계약으로 넘어간 것은 딱 하나입니다. 마트와 편의점 진열대에서 팔리는 스타벅스 이름의 커피, 캡슐, 병입 음료를 전 세계에 팔 수 있는 권리. 그 권리를 브베의 이 회사, 네슬레가 사들였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지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 계약이 발표된 뒤, 네슬레 쪽에서 나온 이야기가 있습니다. 소비자가 이 거래를 보고 스타벅스를 네슬레라는 더 큰 가족의 일부로 여기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바꿔 말하면 이렇습니다. 소유권은 넘어갔지만, 그 사실을 소비자가 몰라야 이 거래가 성공한 겁니다.
우리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그 이름을 믿습니다. 스타벅스에서 마셨으니 스타벅스 커피, 네스카페를 마셨으니 네슬레 커피. 이름과 주인이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브베의 서명 하나만으로도, 그 믿음이 얼마나 단순화된 그림인지가 드러납니다.
오늘은 커피 한 잔 뒤에 있는 이 소유의 그물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그리고 이 그물이 지금, 이 대본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다시 짜이고 있다는 사실까지 보겠습니다.
값과 원가는 다른 숫자다
커피 한 잔의 가격표를 보면 숫자가 하나 적혀 있습니다. 하지만 그 한 잔이 만들어지기까지 거치는 단계는 숫자 하나로 요약되지 않습니다.
커피나무에서 딴 열매는 농장에서 가공을 거쳐 초록색 생두가 됩니다. 이 생두가 무역상을 거쳐 로스팅 회사로 넘어가고, 로스팅 회사는 이것을 볶고 갈아 브랜드를 붙입니다. 그 브랜드가 유통망을 타고 마트나 카페로 갑니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에서 우리가 컵 하나를 받아 듭니다.
이 긴 사슬의 각 단계마다 비용이 붙고, 이윤이 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불하는 가격은 농부가 받는 몫과 정확히 같지 않습니다. 이것 자체는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어떤 상품이든 원산지 가격과 소비자 가격 사이에는 유통과 가공의 몫이 끼어 있습니다.
다만 커피는 이 사슬이 유난히 깁니다. 그리고 이 사슬의 각 구간을 실제로 누가 쥐고 있는가. 이 질문을 따라가면, 우리가 흔히 아는 커피 브랜드의 이름 뒤에 전혀 다른 규모의 회사들이 서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3퍼센트를 사는 회사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커피 브랜드부터 보겠습니다. 스타벅스입니다.
스타벅스는 30개가 넘는 나라, 40만 명이 넘는 농부로부터 원두를 사들입니다. 2004년부터는 카페와 농부 형평성 실천, 줄여서 카페 프랙티스라는 자체 기준을 만들어 이 농부들의 노동 환경과 거래 조건을 점검해왔습니다. 국제환경단체와 함께 만든 이 기준은 커피업계에서 가장 이른 시도 중 하나로 꼽힙니다.
그런데 이렇게 방대한 조달망을 갖추고도, 스타벅스가 사들이는 커피는 전 세계 커피 생산량의 약 3퍼센트에 그칩니다.
숫자만 보면 작아 보입니다. 하지만 이 숫자를 뒤집으면 다른 질문이 나옵니다. 나머지 97퍼센트는 누가 사들이고 있을까요. 스타벅스만큼, 혹은 그보다 훨씬 크게 커피를 다루는 회사가 따로 있다는 뜻입니다.
카페 없이 세계 최대가 된 회사
그 회사 중 하나가 네슬레입니다.
네슬레라고 하면 초콜릿이나 생수, 분유를 먼저 떠올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회사가 스스로 밝히는 사업 구조를 보면, 커피는 부수적인 사업이 아닙니다. 네슬레 전체 매출의 3할에 가까운 몫을 커피 한 부문이 차지하고 있고, 회사는 이 부문을 가장 큰 사업으로 소개합니다.
이 부문을 떠받치는 세 개의 브랜드가 있습니다. 인스턴트커피의 대명사 네스카페. 캡슐커피 시장을 만들어낸 네스프레소. 그리고 앞서 말한 그 계약으로 들어온 스타벅스.
여기서 정확히 짚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네슬레가 스타벅스라는 회사를 산 것은 아닙니다. 스타벅스 매장, 스타벅스라는 기업 자체는 여전히 독립된 미국 회사입니다. 네슬레가 가진 것은 카페 밖에서, 그러니까 마트와 사무실과 가정에서 팔리는 스타벅스 이름의 제품을 만들고 팔 수 있는 영구적인 권리입니다.
그러니까 카페 안에서 스타벅스를 마시는 것과, 마트에서 스타벅스 캡슐을 사는 것은 완전히 다른 두 회사의 손을 거친 결과물입니다. 이름은 하나인데, 그 이름 뒤에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주인이 있는 셈입니다.
또 하나의 거인, 그러나 카페가 없는 이름
네슬레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낯선 이름이지만, 커피업계에서는 또 하나의 거인이 있습니다. JDE Peet's. 야콥스, 로르, 피츠, 다우어 에흐버르츠 같은 브랜드를 거느린 회사입니다.
이 회사는 스스로를 세계 최대 규모의 순수 커피 전문 기업이라고 소개합니다. 카페 사업 없이 커피와 차만으로 백 개가 넘는 시장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고, 2025년 한 해 매출은 우리 돈으로 십수조 원에 이릅니다. 하루 24시간 동안 이 회사가 세계 어딘가에서 팔아치우는 커피와 차는 초당 약 4천4백 잔에 달합니다.
스타벅스라는 카페의 이름은 몰라도, JDE Peet's가 파는 커피는 이미 세계 곳곳의 식탁 위에 놓여 있습니다. 브랜드의 유명세와 실제 유통 규모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 회사가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 거인도 삼켜졌다
여기서 이 시리즈의 핵심 질문이 다시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이 거인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2025년 8월, 미국의 음료 회사 커어리그 닥터페퍼가 JDE Peet's를 인수하겠다고 발표합니다. 그리고 2026년 4월 1일, 이 인수는 실제로 마무리됩니다. 커어리그 닥터페퍼는 JDE Peet's 지분의 96퍼센트를 넘겨받았고, 우리 돈으로 20조 원이 넘는 금액을 지불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달 말, JDE Peet's는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에서 완전히 상장폐지됩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스스로를 세계 최대의 순수 커피기업이라고 소개하던 회사가, 그 소개 문구를 그대로 유지한 채 다른 회사의 자회사가 됐습니다. 그리고 이 커어리그 닥터페퍼는 이미 계획을 밝혀뒀습니다. 회사를 다시 둘로 나눠, 북미 음료 사업과 전 세계 커피 사업을 서로 다른 독립 회사로 분리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 분리 작업은 진행 중입니다.
밀카가 백 년에 걸쳐 다섯 번 주인을 바꿨다면, JDE Peet's는 세계 최대라는 타이틀을 손에 쥔 지 얼마 되지 않아 곧바로 다음 주인을 맞았습니다. 소유의 재편은 옛날 일이 아닙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일입니다.
진짜로 다투는 것은 커피가 아니다
여기까지 오면 이 산업이 무엇을 놓고 경쟁하는지가 조금 더 선명해집니다.
겉으로 보면 스타벅스, 네슬레, JDE Peet's는 커피 맛을 놓고 경쟁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이들이 정말로 다투는 것은 아침에 눈을 뜬 사람이 손을 뻗는 그 순간입니다.
집에서는 어떤 커피를 내릴 것인가. 사무실에서는 어떤 캡슐을 쓸 것인가. 밖에서는 어느 카페 문을 열 것인가. 이 각각의 순간마다 이름을 심어두는 것이 이 산업의 진짜 전략입니다. 카페와 인스턴트커피와 캡슐 시스템이 서로 다른 회사처럼 보여도, 실은 같은 소비자의 하루를 나눠 가지려는 시도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을 옳다거나 그르다고 말할 문제는 아닙니다. 다만 이 구조를 알고 나면, 아침에 마시는 커피 한 잔이 그저 취향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이 보입니다. 그 한 잔 뒤에는 누가 우리의 습관을 먼저 차지할 것인가를 두고 벌어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다툼이 있습니다.
다시 브베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2018년 5월, 그 서류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이미 다른 곳에서는 새로운 거래가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대본이 쓰이고 있는 지금, 세계 최대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던 또 다른 커피회사 하나가 막 다른 회사의 소유가 됐습니다. 이 재편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지금도 어딘가에서 계속되고 있는 일입니다.
이름은 우리가 마시는 순간에 머물렀고, 소유는 자본이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계속 옮겨갔습니다.
브랜드는 우리의 아침을 차지하려 했고, 자본은 그 브랜드의 주인을 계속 바꿔왔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이 사슬의 가장 처음, 커피나무를 심고 열매를 따는 농부에게로 내려가 보겠습니다. 우리가 커피 한 잔에 지불하는 그 돈 중 얼마가 실제로 그 농부의 손에 들어가는지, 그 질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오늘도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음식 인문학 도서 보러가기
이 링크는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COMMENTS
의견을 남기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