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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콩, 다른 그릇 ]후무스가 사막을 건너며 잃은 것과 얻은 것

애들빙자여행러 · 2026년 8월 30일

모로코 페스, 메디나의 새벽을 상상해보겠습니다.

해가 채 뜨지 않은 골목, 좁은 가게 앞에 벌써 사람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안쪽에서는 커다란 구리 냄비가 숯불 위에서 뭉근하게 끓고 있습니다. 병아리콩입니다. 하룻밤 불려서 몇 시간을 삶은 콩이 냄비 안에서 물러지고 있습니다. 상인은 콩을 완전히 곱게 갈지 않습니다. 절반은 으깨고, 절반은 그대로 남겨둡니다. 여기에 커민을 볶아 넣고, 절인 레몬 껍질을 다져 넣고, 마지막에 올리브유를 두릅니다.

한 손님이 뜨거운 그릇을 받아 듭니다. 숟가락으로 떠먹습니다. 빵을 찍어 먹는 것이 아니라, 국물 있는 요리처럼 떠먹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레바논이나 이스라엘의 식당에서 후무스를 먼저 접했다면, 이 장면이 낯설 겁니다. 그곳의 후무스는 차갑고, 매끄럽고, 얇게 펴 발라 먹는 딥입니다. 그런데 지금 페스의 골목에서 나오는 이것은 따뜻하고, 뭉텅하고, 숟가락으로 퍼먹는 음식입니다.

같은 이름, 같은 재료에서 시작했는데, 완전히 다른 그릇에 도착했습니다.

오늘은 이 병아리콩 한 그릇이 어떻게 서로 다른 두 얼굴을 갖게 됐는지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어느 쪽이 원조인지, 어느 쪽이 더 맛있는지는 오늘의 질문이 아닙니다. 조건이 다르면 결과가 다르다는 것, 그 조건을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탐험을 시작합니다.

콩 한 알에 담긴 화학

먼저 병아리콩이라는 재료 자체를 들여다보겠습니다.

병아리콩은 단백질 함량이 높고, 동시에 전분도 풍부한 콩과 식물입니다. 삶으면 전분 입자가 물을 흡수하며 부풀고, 세포벽이 무너지면서 뭉개지기 시작합니다. 이 상태에서 그대로 으깨면 거칠고 텁텁한 퓌레가 됩니다. 맛있게 먹으려면 뭔가가 더 필요합니다.

여기서 타히니, 참깨를 갈아 만든 페이스트가 들어갑니다. 타히니의 지방 성분이 병아리콩의 전분 입자들 사이로 스며들면서 입자들을 분리시킵니다. 물과 기름이 섞이지 않으면서도 골고루 퍼지는 상태, 화학적으로 유화라고 부르는 현상입니다. 이 유화가 일어나야 후무스 특유의 부드러운 질감이 만들어집니다.

레몬즙은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합니다. 강한 산성이 콩 단백질의 구조를 느슨하게 풀어서 소화를 돕고, 동시에 미생물이 자라기 어려운 산성 환경을 만들어서 냉장 시설 없이도 음식을 더 오래 보존하게 해줍니다.

커민은 여기에 향으로 개입합니다. 커민 씨앗을 볶으면 정유 성분이 열을 받아 휘발되면서 특유의 흙 내음과 매운 향이 살아납니다. 이 향은 콩 자체의 밋밋함을 덮어주는 동시에, 소화를 돕는 것으로 알려진 성분을 함께 내놓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병아리콩은 단백질과 전분을, 타히니는 질감을, 레몬은 보존과 소화를, 커민은 향을 맡습니다. 각 재료가 저마다의 화학적 역할을 하며 하나의 그릇을 완성합니다. 문제는, 이 조합을 얼마나 곱게 갈고, 얼마나 뜨겁게 먹고, 무엇을 더 넣느냐는 지역마다 완전히 다른 답을 내놓았다는 것입니다.

초승달 지대에서 카이로까지

이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겠습니다.

병아리콩이라는 작물 자체는 약 만 년 전, 지금의 튀르키예 남동부에서 시리아 북부에 걸친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처음 재배되기 시작한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습니다. 밀, 보리, 렌틸과 함께 인류가 가장 먼저 길들인 작물 중 하나였습니다. 이후 병아리콩은 서쪽으로는 지중해와 북아프리카로, 동쪽으로는 인도까지 퍼져나갔습니다.

그런데 병아리콩을 곱게 갈아 참깨 페이스트와 섞어 먹는, 지금 우리가 아는 후무스에 가까운 요리의 가장 오래된 기록은 훨씬 후대인 13세기에서 14세기 사이, 카이로에서 나타납니다. 이집트에서 편찬된 요리책 《칸즈 알 파와이드》에는 병아리콩을 삶아 곱게 찧은 뒤 식초와 절인 레몬, 향신료, 견과류를 넣는 조리법이 여러 개 실려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타히니를 넣고 하룻밤 재워서 굳히는 방식으로, 지금의 후무스와 상당히 가깝습니다. 다만 마늘은 들어가지 않았고, 질감도 지금보다 훨씬 되직했습니다.

이 시기 카이로는 지중해와 홍해, 아라비아와 북아프리카를 잇는 교역의 중심지였습니다. 콩, 참깨, 향신료가 모두 이 도시를 거쳐 갔고, 요리책이라는 형태로 레시피가 기록되고 퍼져나갈 수 있는 여건도 갖춰져 있었습니다. 후무스가 왜 하필 이 시기, 이 도시에서 문서로 남았는지를 설명하는 배경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을 것이 있습니다. 이 요리가 레반트, 그러니까 지금의 레바논과 시리아,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지역 어디에서 처음 시작됐는지는 지금도 명확히 답하기 어렵습니다. 병아리콩과 참깨, 레몬 모두 이 넓은 지역 전체에서 오래전부터 흔했던 재료였기 때문입니다. 후무스는 특정 국경 안에서 태어난 음식이 아니라, 여러 지역이 공유해온 식문화의 산물에 가깝습니다.

사막을 건넌 향신료, 마그레브의 대답

이제 이 요리가 어떻게 모로코까지 갔는지를 보겠습니다.

정확히는, 카이로의 레시피가 그대로 서쪽으로 옮겨간 것이 아닙니다. 병아리콩이라는 재료와 타히니, 레몬이라는 기본 문법은 마그레브, 그러니까 지금의 모로코와 알제리, 튀니지를 포함하는 북아프리카 서쪽 지역에도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이 지역은 지중해 교역로와 사하라를 가로지르는 대상 교역로가 동시에 만나는 지점이었습니다. 향신료와 소금, 곡물이 이 길을 따라 오갔고, 커민과 파프리카, 시나몬 같은 향신료들이 이 지역 식문화 깊숙이 자리 잡았습니다.

모로코의 병아리콩 요리가 카이로나 레반트의 것과 다른 길을 간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첫째, 향신료의 구성이 다릅니다. 커민과 훈제 파프리카, 때로는 시나몬까지 들어가는 향신료 조합은 마그레브 요리 전반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문법입니다. 라스 엘 하누트라는, 수십 가지 향신료를 섞은 모로코 특유의 혼합 향신료 전통도 같은 뿌리에서 나옵니다.

둘째, 조리 방식이 다릅니다. 모로코식 병아리콩 요리는 콩을 완전히 곱게 갈지 않고 일부러 알갱이를 남겨둡니다. 콩을 매끄럽게 만드는 대신, 콩 자체의 식감을 살리는 쪽을 택한 것입니다. 그리고 차갑게 식혀 먹는 딥이 아니라, 따뜻하게 데워서 국물처럼 떠먹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파스, 즉 아침 시장에서 뜨겁게 파는 콩 수프 문화와 같은 계보에 있습니다.

이 차이를 만든 것이 취향만은 아니었습니다. 모로코의 아틀라스 산맥 인근 지역은 아침저녁 기온차가 크고, 겨울에는 쌀쌀합니다. 차가운 딥보다는 뜨거운 한 그릇이 몸을 데우는 데 더 유용했습니다. 그리고 시장에서 노동자들이 아침 일찍 든든하게 먹고 나가야 하는 식사 문화에서는, 얇게 발라 먹는 애피타이저보다 숟가락으로 퍼먹는 한 끼가 더 맞았습니다.

같은 콩, 같은 참깨, 같은 레몬에서 출발했지만, 기후와 무역로와 노동의 리듬이 다르게 흐르면서 완전히 다른 그릇에 도착한 것입니다.

누구의 콩인가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역사적 사실을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2008년부터 2010년 사이, 레바논과 이스라엘 사이에서 이른바 후무스를 둘러싼 기록 경쟁이 벌어졌습니다. 시작은 2008년, 예루살렘의 요리사들이 만든 대형 후무스 요리가 기네스 세계기록에 오르면서였습니다. 이듬해인 2009년, 레바논이 이보다 훨씬 큰 분량의 후무스를 만들어 기록을 되찾았습니다. 당시 레바논 관광부 장관은 이 시도를, 후무스가 레바논의 음식이라는 것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2010년 초, 이스라엘의 아부 고쉬 마을에서 다시 더 큰 규모의 후무스를 만들어 기록을 가져갔고, 같은 해 5월 레바논이 약 만 킬로그램이 넘는 후무스로 다시 기록을 세우면서 경쟁은 일단락됐습니다.

이 사건은 흥미로운 질문을 남깁니다. 병아리콩을 삶아 으깨 먹는 방식은 이 지역 전체가 수천 년간 공유해온 문화입니다. 그런데 그 공유된 문화가 근래 들어 한 나라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다투어지게 됐습니다. 이 대본은 그 갈등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음식이 오래될수록, 그리고 널리 퍼질수록, 그 음식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명확히 답하기는 더 어려워진다는 것입니다.

모로코의 후무스는 이 경쟁의 중심에 서 있지 않습니다. 레반트의 후무스와 나란히 놓고 우열을 가릴 대상도 아닙니다.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또 하나의 답일 뿐입니다.

같은 콩, 다른 얼굴

여기서 오늘의 핵심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레반트의 후무스와 모로코의 후무스를 나란히 놓고 보면, 겉으로는 완전히 달라 보입니다. 하나는 차갑고 매끄럽고, 다른 하나는 따뜻하고 거칩니다. 하나는 딥으로, 다른 하나는 한 끼 식사로 먹습니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두 그릇은 정확히 같은 화학을 공유합니다. 병아리콩의 단백질과 전분, 타히니의 유화 작용, 레몬산의 보존력. 이 원리는 어느 쪽에서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바뀐 것은 그 원리를 어떤 조건 위에 얹었느냐입니다.

지중해 동쪽의 더운 기후는 차갑게 식혀 오래 두고 먹는 딥을 만들었습니다. 사하라를 마주한 아틀라스 산자락의 쌀쌀한 아침은 뜨겁게 데워 몸을 채우는 한 그릇을 만들었습니다. 카이로를 오간 지중해 교역로는 마늘과 매끄러운 질감을 남겼고, 사하라를 가로지른 대상의 교역로는 커민과 거친 식감을 남겼습니다.

어느 쪽이 더 원형에 가까운가, 어느 쪽이 더 정통인가를 묻는 것은 어쩌면 잘못된 질문일지 모릅니다. 두 그릇 모두 같은 재료가 각자의 조건에 정직하게 반응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페스의 골목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뜨거운 그릇을 받아 든 손님이 숟가락을 듭니다. 이 사람에게 후무스는 차갑게 발라 먹는 애피타이저가 아니라, 아침을 여는 한 끼입니다. 그에게 이 그릇은 낯선 변형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알던 원래 모습입니다.

병아리콩은 만 년 전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처음 사람의 손에 들어왔습니다. 그 콩이 카이로의 요리책에 기록되고, 지중해를 건너고, 사하라의 교역로를 타고 서쪽으로 이동하는 동안, 콩 자체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변한 것은 그 콩을 쥔 사람들의 기후와 아침과 노동이었습니다.

기후는 콩의 온도를 결정했고, 교역로는 콩의 향을 결정했습니다.

음식의 국적을 묻는 질문에는 끝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음식이 왜 지금의 모습이 됐는가를 묻는 질문에는, 언제나 답이 있습니다. 그 답은 늘 그 땅과 그 사람들의 삶 속에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같은 방식으로, 지중해를 사이에 둔 또 다른 콩 요리, 이탈리아의 파바콩 퓌레와 이집트의 풀 메다메스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콩 한 그릇이 국경을 넘을 때마다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는지, 그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오늘도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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