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금하는 이슬람 국가에서 맥주가 맛있었던 이유카사블랑카 맥주에 숨겨진 100년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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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블랑카 옛 메디나의 성벽에 기대 선 하얀 저택입니다.
1930년에 지어진 모로코식 대저택을 고친 건물입니다. 안으로 들어서면 하얀 아치들이 안뜰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야자수 화분 사이로, 스테인드글라스 갓을 쓴 램프들이 노란 빛을 테이블 위에 떨어뜨립니다. 한쪽 구석에서는 피아니스트가 〈As Time Goes By〉를 칩니다.
이곳의 이름은 Rick's Café입니다.
네, 그 릭의 카페입니다. 1942년 영화 〈카사블랑카〉에서 험프리 보가트가 운영하던 바로 그 술집.
그런데 저는 이 자리에 앉아서, 제가 앉은 곳이 한 번도 존재한 적 없는 장소의 복제품이라는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영화 〈카사블랑카〉는 카사블랑카에서 찍지 않았습니다. 캘리포니아의 할리우드 스튜디오에서 촬영됐습니다. 영화 속 릭의 카페는 세트였습니다. 나무와 합판과 조명으로 만든 가짜 술집.
그런데 영화가 너무 유명해지자, 사람들이 이 도시에 와서 없는 카페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찾아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60년이 넘게 흘렀습니다.
그러다 미국 대사관의 상무관으로 이 도시에 부임했던 캐시 크리거라는 사람이, 메디나 성벽 옆의 낡은 저택을 사들여 2년 동안 고쳤습니다. 그리고 직접 만들어버렸습니다. 2004년 3월 1일. 영화가 나온 지 62년 만에, 가짜였던 카페가 진짜가 됐습니다.
저는 그 카페에서 영화 속 사람들처럼 술을 한잔 주문하려고 했습니다.
그때 조금 늦게, 이상한 생각이 하나 들었습니다.
여기는 이슬람 국가 아닌가.
사실 그 생각은 조금 전 마트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진열대에 맥주가 있었습니다. 와인이 있었습니다. 술을 금하는 종교의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술이 아무렇지 않게 놓여 있었습니다.
메뉴판을 보던 저에게 직원이 말했습니다.
"하이네켄 어때요? 근처에 공장도 있어요."
하이네켄. 네덜란드 맥주. 그런데 모로코에, 그것도 근처에 공장이 있다고 합니다.
저는 여행을 왔으니 이곳의 맥주를 마셔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직원이 가져온 갈색 병에는 이 도시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Casablanca.
한 모금 마셨습니다. 좋았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그리고 그 순간부터 이 병 하나가 질문 덩어리가 됐습니다. 술을 금하는 나라에서 누가 이 맥주를 만들었을까. 왜 네덜란드 맥주가 이웃 공장에서 나오고 있었을까. 그리고 왜 하필, 이 맥주에는 도시의 이름이 붙었을까.
오늘은 평소와 조금 다르게, 제가 직접 앉았던 자리에서 출발하는 편지를 써보려고 합니다. 카사블랑카에서 고른 한 병을 따라가는 이야기입니다.
탐험을 시작합니다.
▶ 1장 — 금기와 진열대 사이
먼저 제가 마트에서 느낀 당혹감부터 정리해보겠습니다.
이슬람의 전통은 사람을 취하게 하는 음료를 금합니다. 이것은 분명한 원칙입니다. 그리고 모로코는 인구의 대부분이 무슬림인 나라입니다.
모로코의 법도 이 원칙을 담고 있습니다. 1967년에 내려진 왕령은 무슬림에게 술을 팔거나 건네는 것을 금지합니다. 어기면 최대 6개월의 징역형까지 가능합니다. 법의 문장만 놓고 보면, 술은 외국인과 비무슬림을 위한 상품입니다.
그런데 현실의 풍경은 다릅니다.
대도시의 대형 마트에는 주류 코너가 있습니다. 도시의 바들은 술을 파는 일을 굳이 숨기지 않습니다. 법과 풍경 사이에 넓은 간극이 있고, 그 간극은 수십 년 동안 유지되어 왔습니다. 라마단 같은 종교적 기간에는 많은 곳에서 판매가 멈추기도 합니다. 금지와 존재가 한 도시 안에서 동시에 숨 쉬고 있는 셈입니다.
숫자로 보면 이 간극의 크기가 보입니다. 한 국제 홉 공급업체의 보고서에 따르면, 모로코는 2024년 한 해 동안 약 81만 8천 헥토리터의 맥주를 생산했습니다. 리터로 바꾸면 8천만 리터가 넘습니다. 관광객의 목만 축이는 규모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 간극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모로코 사회 안에서도 오래된 질문입니다. 오늘 제가 따라가려는 것은 그 논쟁이 아닙니다. 그 간극 안에서 백 년 넘게 살아남은 음료, 맥주 그 자체입니다.
그러려면 한 세기를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 2장 — 황새를 달고 온 양조장
1912년, 모로코는 프랑스의 보호령이 됩니다.
항구도시 카사블랑카로 프랑스인과 유럽인이 들어옵니다. 그들과 함께 유럽식 도시가 들어오고, 유럽식 식탁이 들어옵니다. 그 식탁에는 와인과 맥주가 있었습니다.
1919년, 카사블랑카에 '브라스리 뒤 마록', 모로코 양조회사가 세워집니다. 세운 곳은 프랑스 회사 BGI였습니다. 이 회사의 이름을 풀어보면 '국제 양조장과 제빙소'라는 뜻입니다. 이름 안에 맥주와 얼음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이 조합이 왜 중요한지는 잠시 뒤에 이야기하겠습니다.
이 양조장이 초기에 만든 맥주의 이름은 '라 시곤', 황새였습니다.
황새는 프랑스 동쪽 알자스 지방의 상징입니다. 알자스는 프랑스에서 맥주 양조로 이름난 지역이고, 그래서 프랑스의 여러 양조장이 황새를 간판으로 썼습니다. 그런데 이 새에게는 또 다른 얼굴이 있습니다. 알자스의 황새는 겨울이면 남쪽으로 날아가고, 그 길목에 모로코가 있습니다. 그리고 모로코에서 황새는 복을 부르는 길한 새입니다.
맥주는 식민 정착민을 위한 것이었지만, 병에 그려진 새는 양쪽 땅 모두에서 반가운 새였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일이 벌어집니다.
1929년, 이 양조회사는 같은 '라 시곤'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음료를 내놓습니다. 레몬 맛 탄산음료, 레모네이드였습니다. 목적은 분명했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는 무슬림 모로코인을 손님으로 만드는 것.
이 레모네이드는 모로코의 국민 음료가 됩니다. 두툼한 유리병은 동네 가게로 돌아가 다시 채워졌고, 무더운 여름이면 사람들이 기다리다 못해 공장에 직접 빈 병을 들고 가서 채워 오기도 했다고 기억됩니다.
생각해보면 묘한 장면입니다. 금기 앞에서 양조장이 선택한 방법은 금기를 바꾸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음료를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황새가 한쪽 병에서는 맥주를, 다른 쪽 병에서는 레모네이드를 담았습니다.
술을 금하는 사회에서 양조장이 살아남는 첫 번째 방식은, 술만 만드는 곳이 아니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 3장 — 라거는 얼음을 먹고 자란다
이제 병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맥주는 곡물을 발효시킨 음료입니다. 보리를 싹 틔워 말린 것이 맥아입니다. 맥아를 뜨거운 물에 담그면 맥아 속 효소가 녹말을 당으로 쪼갭니다. 이 달콤한 액체에 효모를 넣으면, 효모가 당을 먹고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만듭니다. 여기까지는 모든 맥주가 같습니다.
차이는 효모와 온도에서 갈립니다.
제가 카사블랑카에서 마신 맥주는 라거였습니다. 라거 효모는 발효통의 아래쪽에서, 낮은 온도로 천천히 일합니다. 대략 섭씨 10도 안팎의 서늘한 환경입니다. 발효가 끝나면 다시 차가운 곳에서 몇 주를 재웁니다. '라거'라는 말 자체가 독일어로 '저장하다'에서 왔습니다.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발효하면, 효모가 만드는 과일 향 같은 부산물이 적어집니다. 그래서 라거는 맑고, 깔끔하고, 청량합니다. 대신 조건이 까다롭습니다. 일정하게 차가운 온도가 오래 유지되어야 합니다.
자, 여기서 앞의 회사 이름이 다시 등장합니다.
모로코의 여름은 뜨겁습니다. 라거가 원래 태어난 곳은 겨울 얼음을 동굴에 채워 넣던 중부 유럽이었습니다. 이런 음료를 북아프리카에서 만들려면 인공적인 냉기가 필요합니다. 19세기 후반 냉동 기술이 등장하면서, 비로소 라거는 기후를 넘어설 수 있게 됐습니다.
그래서 양조장과 제빙소가 한 회사의 이름 안에 함께 있었던 겁니다. 뜨거운 땅에서 차가운 맥주를 만든다는 것은, 얼음을 만든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차가운 라거는 뜨거운 기후와 유난히 잘 맞습니다. 차가운 온도는 쓴맛과 단맛에 대한 혀의 감각을 누그러뜨리고, 탄산은 입안을 씻어냅니다. 모로코 양조업계도 Casablanca를 더운 여름날에 어울리는 가볍고 청량한 라거로 소개합니다.
제가 한 모금에 좋다고 느낀 데에는, 어쩌면 이 과학도 조금 거들었을 겁니다.
▶ 4장 — 하이네켄이 수출한 것은 맥주가 아니었다
이제 직원의 그 말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근처에 공장도 있어요."
1956년, 모로코는 독립합니다. 식민지 시절의 양조장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1970년대에는 외국 자본이 소유한 기업을 모로코 쪽으로 넘기는 이른바 '모로코화' 정책이 진행되면서, 프랑스 회사가 가진 양조장 지분이 모로코의 국가 투자회사로 넘어갑니다. 이 시기에 모로코 양조 기술자들이 다시 짠 레시피로, 지금도 모로코 바의 대표 맥주로 꼽히는 '플래그 스페시알'이 나왔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1980년, 모로코 양조회사는 네덜란드의 하이네켄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습니다. 하이네켄과 암스텔을 모로코 공장에서 직접 만들게 된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네덜란드 맥주를 모로코에서 만들면, 그것은 같은 맥주일까요.
하이네켄은 이 질문에 아주 오래전에 답을 준비해두었습니다.
1886년, 하이네켄의 실험실에서 엘리온이라는 화학자가 순수한 맥주 효모 한 종을 배양해냅니다. 엘리온은 미생물학의 아버지 루이 파스퇴르의 제자였습니다. 이 효모에는 'A-효모'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맥주의 맛을 결정하는 요소는 많습니다. 물, 맥아, 홉. 하지만 발효 중에 어떤 향이 생기는지는 상당 부분 효모가 결정합니다. 그래서 하이네켄은 이 효모를 네덜란드에서 배양해, 하이네켄을 만드는 세계의 양조장으로 보냈습니다. 1980년 무렵에는 오렌지색 전용 상자에 담아 비행기 냉장칸으로 실어 보냈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효모만 보낸 것도 아니었습니다. 네덜란드 기술자가 현지에 설비를 설치하고, 현지 직원은 네덜란드에서 교육을 받고, 현지의 시음단이 결과물을 맛보며 기준을 지킵니다.
그러니까 하이네켄이 세계로 수출한 것은 맥주가 아니었습니다. 살아 있는 미생물 한 종과, 그 미생물을 다루는 규칙이었습니다.
어디서 마셔도 같은 맛. 그것이 하이네켄이 낯선 땅의 소비자에게 건넨 약속이었습니다.
▶ 5장 — 밖을 향해 붙인 이름
이 무렵 모로코의 양조장에서는 다른 종류의 약속이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1996년, 모로코 양조회사는 새 맥주를 내놓습니다. 이름은 Casablanca. 5도짜리 황금빛 라거입니다.
그런데 제가 자료를 찾다가 멈춰 선 대목이 있습니다. 이 맥주는 처음에 모로코 사람들을 위해 만든 맥주가 아니었습니다. 수출 전용이었습니다. 바다 건너 외국 시장을 겨냥한 맥주였습니다.
그러니 이름이 Casablanca일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카사블랑카는 포르투갈어로 '하얀 집'이라는 뜻입니다. 아랍어 이름인 다르 엘 베이다도 같은 뜻입니다. 하지만 모로코 밖의 사람들에게 이 이름은 무엇보다 영화의 제목입니다. 바다 건너 소비자가 모로코를 몰라도, 카사블랑카라는 이름은 압니다.
이 맥주는 지금도 미국 플로리다 디즈니 월드의 모로코 전시관에서 팔립니다. 도시의 이름이 병에 담겨, 그 도시를 가본 적 없는 사람들의 식탁으로 건너간 겁니다.
그리고 반전이 이어집니다. 수출용 맥주가 성공하자, 이번에는 모로코 안에서 이 맥주를 찾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결국 2000년대에 들어 Casablanca는 모로코 시장에서도 팔리기 시작합니다.
어디서 들어본 이야기 같지 않습니까.
밖에서 온 사람들이 영화 속 카페를 찾자, 이 도시에 그 카페가 생겼습니다. 밖을 향해 만든 맥주가 성공하자, 그 맥주가 이 도시로 돌아왔습니다.
제가 로컬 맥주라고 믿고 고른 그 병은, 사실 여행자의 눈을 위해 태어난 맥주였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정말로 이 도시의 맥주가 됐습니다.
▶ 6장 — 초록 병과 갈색 병
마트의 맥주 냉장고를 다시 떠올려보겠습니다.
초록색 하이네켄 병이 있고, 그 옆에 갈색 Casablanca 병이 있습니다. 둘 다 라거이고, 둘 다 차갑게 마십니다. 그런데 이 두 병은 유리 색깔부터 다릅니다.
병 색깔은 디자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과학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맥주의 쓴맛은 홉에서 옵니다. 홉의 쓴맛 성분은 빛에 약합니다. 특히 파란색 계열의 빛과 자외선을 받으면, 맥주 속 비타민의 일종인 리보플래빈이 그 빛 에너지를 홉 성분에 전달합니다. 그러면 홉 성분이 쪼개지면서 황을 품은 화합물이 생깁니다. 이 화합물은 사람의 코가 극히 적은 양으로도 알아챌 만큼 냄새가 강합니다. 흔히 스컹크 냄새라고 부르는, 빛을 맞은 맥주 특유의 냄새입니다.
갈색 유리는 이 빛을 대부분 걸러냅니다. 초록색 유리는 그보다 덜 걸러냅니다.
그렇다면 초록 병은 잘못된 선택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이네켄에게 초록 병은 세계 어디서나 한눈에 알아보게 하는 얼굴입니다. 그 얼굴을 지키는 대신, 빛을 막는 일은 포장과 유통과 보관의 과제로 가져갑니다.
두 병은 같은 질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낯선 손님에게 이 맥주를 어떻게 믿게 할 것인가.
하이네켄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어디서 열어도 같은 얼굴, 같은 맛이라고. 그래서 효모를 보내고, 규칙을 보내고, 초록 병을 지켰습니다.
Casablanca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이 도시에서 왔다고. 그래서 도시의 이름을 붙이고, 갈색 유리 위에 금색 장식의 라벨을 둘렀습니다.
한쪽은 장소를 지워서 믿음을 얻었고, 다른 쪽은 장소를 새겨서 믿음을 얻었습니다. 어느 쪽이 옳다고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같은 질문에 대한 서로 다른 두 개의 답입니다.
▶ 7장 — 제가 몰랐던 뒷이야기
그리고 이 편지를 쓰려고 자료를 뒤지다가, 저는 그 카페에서 몰랐던 이야기를 하나 알게 됐습니다.
"근처에 공장도 있어요." 그날 직원의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1980년부터 40년 넘게, 하이네켄은 정말로 이 도시의 공장에서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이제 사실이 아닙니다.
2023년 9월, 모로코 양조회사는 하이네켄과의 라이선스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발표합니다. 계약은 그해 12월에 끝났습니다. 2022년 기준으로 하이네켄 브랜드는 이 회사 매출의 17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작지 않은 비중입니다.
그 뒤로 모로코의 하이네켄은 카사블랑카의 한 유통업체를 통해 들어오는 수입 맥주가 됐습니다. 이웃 공장의 맥주가, 바다를 건너오는 맥주로 바뀐 겁니다.
그리고 2024년 9월, 모로코 양조회사는 새 파트너와 손을 잡습니다. 덴마크의 칼스버그입니다. 칼스버그와 1664를 모로코에서 직접 만들어 파는 계약이었습니다.
여기서 저는 잠시 웃었습니다. 1664는 원래 프랑스 알자스, 스트라스부르의 맥주입니다. 지금은 칼스버그 그룹에 속해 있습니다. 백 년 전 황새를 달고 이 도시에 왔던 바로 그 알자스의 맥주가, 이번에는 덴마크 회사의 이름을 달고 다시 카사블랑카의 공장으로 들어온 겁니다.
그럼 이제 제가 마신 맥주의 국적을 한번 정리해보겠습니다.
공장은 모로코에 있습니다. 회사의 최대주주는 2003년부터 프랑스의 카스텔 그룹입니다. 같은 공장에서 덴마크 그룹의 라이선스 맥주가 나옵니다. 그 라이선스 맥주 중 하나는 알자스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제 손에 들린 병에는 이 도시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이 맥주는 어느 나라의 맥주일까요.
▶ 8장 — 맥주는 늘 자기가 선 땅의 모양을 닮았다
맥주는 아주 오래된 음료입니다. 메소포타미아의 점토판에 맥주가 기록된 것은 수천 년 전의 일입니다. 맥주는 오늘날의 어떤 종교보다 오래됐고, 어떤 국가보다 오래됐고, 어떤 브랜드보다 오래됐습니다.
그래서 맥주는 언제나 자신이 놓인 땅의 조건에 맞춰 모양을 바꿔왔습니다. 추운 보헤미아에서는 황금빛 필스너가 됐고, 네덜란드에서는 효모 한 종으로 세계를 묶는 브랜드가 됐습니다.
그리고 카사블랑카에서 맥주는 조금 더 복잡한 모양이 됐습니다.
이 양조장은 식민 통치와 함께 들어왔습니다. 그 사실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동시에 그 양조장은 독립 이후 모로코의 산업이 됐고, 모로코 기술자들의 레시피가 됐고, 이 도시의 이름을 단 맥주가 됐습니다. 이 두 사실 중 하나만 골라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밖에서 강요된 것이 시간이 지나 안의 것이 되는 과정은, 언제나 그 두 얼굴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금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금기는 이 도시에서 맥주를 없애지 않았습니다. 대신 맥주를 만드는 회사가 레모네이드를 만들게 했고, 법과 풍경 사이에 좁고 긴 틈을 만들었습니다. 맥주는 그 틈에서 백 년을 버텼습니다.
▶ 클로징 — 다시, 릭의 카페
다시 그 하얀 아치 아래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램프의 노란 빛이 테이블에 떨어지고, 피아니스트는 여전히 같은 노래를 칩니다. 제 앞에는 반쯤 남은 갈색 병이 있습니다.
그날 저는 제가 대단히 현명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디에나 있는 세계의 맥주를 두고, 이곳에만 있는 로컬 맥주를 골랐다고.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제가 앉은 카페는 한 번도 존재한 적 없는 장소의 복제품이었습니다. 제가 고른 맥주는 처음에 바다 건너 외국인을 위해 만든 맥주였습니다. 그 맥주를 만든 양조장은 식민지 시대 프랑스 회사가 세웠고, 지금은 프랑스 그룹이 최대주주이며, 같은 공장에서 덴마크의 맥주가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직원이 권했던 세계의 맥주는, 제가 떠난 뒤 오히려 이 도시의 공장을 떠났습니다.
로컬이라고 믿고 고른 한 병 안에는 세계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병은 분명히 이 도시의 맛이었습니다.
가짜로 시작한 카페가 진짜가 된 것처럼, 밖에서 온 것들은 이 도시에서 시간을 들여 진짜가 됐습니다. 그것이 제가 카사블랑카의 한 병에서 마신 것이었습니다.
식민의 역사는 이 도시에 양조장을 남겼고, 금기는 그 양조장에 또 다른 얼굴을 주었고, 시간은 밖에서 온 것을 이 도시의 맛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질문이 남습니다. 오늘 이야기에 등장한 이름들을 다시 떠올려보겠습니다. 하이네켄, 암스텔, 칼스버그, 1664, 카스텔. 우리가 마시는 맥주의 이름은 수백 개인데, 그 이름들의 주인은 생각보다 적습니다. 다음 편지에서는 그 질문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맥주의 주인은 누구인가.
오늘도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카사블랑카에서, 《맛의 문명사》 편집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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