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명종과 공민왕은 왜 약과를 금지했을까?약과에 숨겨진 800년 수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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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대 서울의 어느 아늑한 골목길, 오전 9시가 되면 조용한 한과 가게 문앞으로 2030 세대를 중심으로 스무 명 남짓의 사람들이 기다란 줄을 서기 시작합니다. 두꺼운 외투를 입은 이들의 손에는 오늘 판매될 한정 수량이 적힌 휴대전화 화면이 켜져 있고, 문틈 사이로는 새벽부터 반죽을 지지고 꿀에 담가 갓 구워낸 고소하고 살짝 그을린 기름 냄새와 그윽한 달콤함이 피어올라 기다리는 이들의 코끝을 스칩니다. 현대인들에게 이 달콤한 한 조각을 얻기 위한 '오픈런'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닙니다.
하지만 시계를 800년 전 고려 시대로 돌려보면 지극히 역설적인 장면과 마주하게 됩니다. 고려 조정은 같은 과자를 두고 사려는 사람이 아닌, '만들려는 사람'을 막기 위해 1192년과 1353년 두 차례에 걸쳐 강력한 금지령을 내렸습니다.
한때는 만들지 못하게 국가가 법으로 가로막던 과자가 어떻게 지금은 구하지 못해 줄을 서는 디저트가 되었을까요? 밀가루와 참기름, 꿀이라는 단순한 재료로 시작해 800년의 세월을 건너온 약과의 역사와 조리 과학적 비밀을 파헤쳐 봅니다.
약과 특유의 바삭하면서도 겹겹이 부서지는 식감 뒤에는 지극히 치밀한 물리적·화학적 원리가 숨어 있습니다. 일반적인 빵이나 떡과 달리 약과가 쫄깃함 대신 다층의 결(켜)을 형성하는 비밀은 재료의 조합과 반죽, 지짐, 집청으로 이어지는 3단계 연쇄 반응에 있습니다.
- 재료의 역할 (밀가루·참기름·꿀)
- 밀가루와 참기름: 일반적인 빵 반죽은 밀가루에 물을 넣고 치대어 단백질이 엉겨 붙는 '글루텐' 그물을 형성해 쫄깃함을 만듭니다. 그러나 약과는 밀가루에 물보다 **기름(참기름)**을 먼저 섞습니다. 기름이 밀가루 입자를 먼저 코팅하듯 감싸면 수분이 단백질에 닿는 것을 방지하여 글루텐 그물이 길게 이어지지 못하므로, 쫄깃함 대신 부서지는 결이 생깁니다.
- 꿀·생강즙·청주: 반죽에 들어가는 꿀은 단맛을 더함과 동시에 수분을 붙들어 두며, 생강즙과 청주는 기름의 느끼함을 잡고 특유의 정갈한 향을 더해줍니다.
- 3단계 조리 과정의 과학 (반죽·지짐·집청)
- 1단계 (반죽): 글루텐 그물이 과도하게 생기지 않도록 반죽을 치대지 않고 가볍게 모아 모양을 잡습니다.
- 2단계 (지짐): 반죽을 기름에 지지면 속의 수분이 증발하며 빠져나가고, 그 자리에 미세한 틈새가 생겨납니다. 표면에서는 꿀의 당과 밀가루의 단백질이 반응하여 색이 깊어지는 **'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action)'**이 빠르게 일어납니다.
- 3단계 (집청): 지져서 식힌 약과를 꿀이나 조청 시럽에 담그면, 수분이 빠져나간 미세한 틈새로 시럽이 깊숙이 스며듭니다. 당 농도가 높은 시럽은 수분을 끌어당겨 과자가 쉽게 마르지 않게 하고 미생물 증식을 억제하여 뛰어난 보존성을 확보합니다.
이처럼 약과는 반죽에서 한 번, 지짐에서 또 한 번 기름이 들어가고, 반죽 내부에서 한 번, 집청에서 또 한 번 단맛이 스며듭니다. 곡식 한 가지, 기름 한 가지, 단맛 한 가지를 한데 모아 대량으로 쏟아붓는 이 고비용의 조리법은 훗날 이 과자가 역사 속에서 거센 사치 단속의 표적이 되는 결정적 원인이 됩니다.
고려 시대에 약과(유밀과)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배경에는 불교 문화가 깊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조선 시대 문헌인 『명물기략』은 유밀과가 본래 제사에 과일 대신 쓰려고 만든 음식이라고 전합니다. 불교의 살생 금지 계율로 인해 제상에 고기나 생선을 올리기 어려워지자, 이를 대신할 정갈한 제물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에 선조들은 밀가루와 꿀을 반죽해 대추, 밤, 배, 감 등 과일 모양으로 빚은 뒤 기름에 지져 만든 과자를 올렸으니, 이것이 바로 유밀과(油蜜果)이자 진짜 과일을 대신한다는 뜻의 '가과(假果)', 즉 **'헛열매'**였습니다.
그러나 과일을 대신하려 만들어진 헛열매는 곧 진짜 과일보다 훨씬 귀한 대접을 받게 됩니다. 당시 쉽게 구하기 힘들었던 밀가루, 꿀, 참기름을 막대하게 소비하는 음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연회나 의례 상차림에 유밀과를 더 높이 쌓아 올리는 경쟁이 과열되면서 이는 곧 권력과 사치의 상징으로 변모했습니다.
"과일을 대신하려고 태어난 과자가, 다시 과일에게 자리를 내주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1192년(명종 22년)과 1353년(공민왕 2년), 고려 조정은 "헛열매 대신 진짜 과일을 사용하라"는 금령을 연이어 내리며 유밀과 제조를 엄격히 통제했습니다. 이 단속의 역사는 조선 시대까지 이어져, 정조 때 제정된 법전인 『대전통편』에는 민간에서 혼례나 장례에 유밀과를 사사로이 쓸 경우 곤장 80대에 처한다는 조항까지 수록되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국내에서의 거듭된 법적 단속에도 불구하고, 약과가 가진 미학적·미각적 완성도는 한반도의 경계를 넘어 바다 건너까지 소문이 퍼졌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1296년 고려 충렬왕이 세자의 혼례 참석차 원나라를 방문했을 때 잔칫상에 유밀과를 선보였습니다. 입안에서 켜켜이 부서지며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풍미는 원나라 조정과 귀족들을 사로잡았고, 원나라 사람들 사이에서 이 과자는 **'고려병(高麗餠)'**이라 불리며 큰 인기를 끌었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조선 시대에 이르러 불교가 후퇴하고 유교적 제례가 정착하면서 제상에 다시 어육이 올라갔지만, 유밀과의 위상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탄생의 최초 원인이었던 불교적 이유는 사라졌으나 '귀한 과자'라는 문화적 쓰임새는 그대로 남아 용도와 크기에 따라 다채로운 형태로 변모하여 생존했습니다.
- 모약과: 제사상에 정갈하게 올리기 위해 모가 나게 네모 모양으로 커다랗게 빚은 약과
- 대약과: 상 위에 높이 괴어 쌓아 올리기 위해 크게 만든 약과
- 만두과: 대약과 위에 올리는 웃기용으로, 속에 달콤한 소를 채워 만두 모양으로 만든 약과
- 작은 약과와 다식과: 평소 다과상에 올리거나 일상적으로 즐기던 아담한 크기의 약과
곡물과 기름, 그리고 단맛을 한 입에 담아내려는 시도는 한국뿐만 아니라 이웃 나라 중국에서도 발견됩니다. 중국 남부의 전통 과자인 '젠두이(芝麻球)'와 한국의 '약과'는 '곡물 전분을 기름에 익히고 단맛을 어떻게 입힐 것인가'라는 동일한 조리법적 과제에 대해 각자의 풍토와 전분 특성에 맞춰 독자적인 해답을 제시한 훌륭한 비교 대상입니다.
두 과자 사이의 직접적인 계보나 인과관계를 단정할 근거는 부족하지만, 찹쌀 전분이 열을 받아 끈득해지는 성질을 이용한 젠두이와 밀가루 글루텐을 기름으로 제어해 결을 만든 약과는 전분의 과학을 다르게 해석한 한중 양국의 흥미로운 문화적 결과물입니다.
과거 명절이나 제례상에서나 접하던 약과는 2022~2023년을 거치며 청년 세대의 '할매니얼' 열풍과 만나 대중문화의 중심에 섰습니다. 온라인상에서 불과 수초 만에 약과가 품절되어 티켓팅을 방불케 한다는 '약케팅' 현상은 미학적·심리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 구조적 대비가 주는 감각적 미학 약과는 밀도가 높고 기름의 고소함과 시럽의 당도가 고밀도로 응축된 디저트입니다. 이를 차가운 바닐라 아이스크림이나 바삭한 쿠키, 스콘 등 현대적 요소와 결합하면 온도와 식감의 강렬한 대비가 형성되어 미각적 쾌감을 극대화합니다.
- 익숙함과 낯섦의 조화 및 경험의 소유 제사상에서 보던 고풍스러운 과자가 카페 진열장에 정갈하게 낱개 포장되어 놓일 때, 젊은 소비자들은 신선한 호기심을 느낍니다. 이제 약과 소비는 단순히 '달콤함을 섭취하는 행위'를 넘어, 희소한 디저트를 찾아내고 기다려 획득하는 '정성과 경험의 소유'로 확장되었습니다.
여기서 가장 인문학적인 반전은 **'귀함의 본질이 이동했다'**는 사실입니다. 800년 전 고려 시대에는 밀가루, 꿀, 참기름이라는 '재료 그 자체의 희소성' 때문에 약과가 귀했고 금지 대상이 되었습니다. 반면 마트에서 재료를 쉽게 구하는 현대에는, 반죽의 결을 살리고 기름 온도를 지키며 지루한 집청의 시간을 견뎌내는 **'만드는 손과 정성, 한정된 수량, 그리고 그 시간을 구해낸 경험'**이 새로운 귀함의 가치로 전환된 것입니다.
오전 10시, 골목길 한과 가게의 문이 열리고 긴 기다림 끝에 약과를 집어 든 손길이 그것을 반으로 갈라봅니다. 서걱거리는 정교한 결의 감촉과 함께 단면 사이로 스며든 맑은 집청 시럽이 불빛을 받아 반짝입니다.
그 한 조각의 결 안에는 800년 전 고려 조정이 사치를 막기 위해 그토록 아끼고자 했던 세 가지 핵심 재료—밀가루, 참기름, 꿀—와 조리법의 과학이 조금도 훼손되지 않은 채 고스란히 숨 쉬고 있습니다.
800년이라는 아득한 세월 동안 과자 본연의 레시피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변한 것은 오직 과자를 둘러싼 '줄의 방향'뿐입니다. 과거에는 국가가 사치를 경계하여 **'만들지 못하도록 가로막던 줄'**이었다면, 오늘날은 그 오랜 역사가 축적된 달콤함을 한 입 즐기기 위해 **'사려고 길게 늘어선 줄'**이 되었습니다.
설탕이 흔치 않던 시절, 우리 선조들은 곡식과 기름과 꿀의 연금술을 통해 이토록 깊고 그윽한 단맛을 완성해 냈습니다. 그렇다면 정교한 집청 시럽이 탄생하기 전, 설탕조차 없던 더 깊은 옛날의 우리 선조들은 과연 어디에서 또 다른 달콤함을 찾아내어 삶을 위로받았을까요? 곡식이 스스로 단맛을 빚어내는 조청과 엿의 세계로 떠날 다음 여정이 벌써부터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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