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는 척박함이었을까, 풍요였을까?알래스카 원주민의 혹한 생존 식탁
7월의 어느 날 밤 11시, 해가 스러지지 않고 하늘에 낮게 걸려 있는 알래스카 서부 쿠스코큄 강가. 한 유픽족 할머니가 손에 칼을 쥐고 연어 등뼈를 따라 미끄러지듯 살을 가릅니다. 붉은 살코기 위로 바람이 잘 통하도록 촘촘하게 가로 칼집을 내어 나무 건조대에 줄지어 겁니다. 그 아래에서는 장작이 느리게 연기를 피워 올립니다. 이 연어는 오늘 밤의 야식이 아닙니다. 강물이 완전히 얼어붙을 한겨울 1월을 위한 생존의 약속입니다.
같은 시각, 이곳에서 1,300km 이상 떨어진 남동부 해안 글레이셔 베이. 거대한 대형 크루즈선이 장엄한 빙하 앞을 천천히 지납니다. 따뜻하고 쾌적한 선상 식당 창가 자리에 앉은 승객들은 하얀 접시 위에 깔끔하게 얹힌 연어 구이를 즐기고 있습니다. 창밖으로 빙벽이 무너져 내리자, 사람들은 일제히 휴대전화를 들어 사진을 찍습니다.
같은 바다, 같은 강에서 자란 연어이지만 두 식탁의 풍경은 완전히 다릅니다. 누군가에게 추위는 매년 찾아오는 생존 조건이고, 누군가에게는 돈을 내고 보러 오는 풍경입니다. 얼음과 바람의 땅 알래스카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살아남았을까요? 알래스카 식문화 속에 숨겨진 가장 놀랍고 반전 있는 지혜들을 탐구해 봅니다.
알래스카를 단지 하나의 거대한 얼음 덩어리로만 바라본다면 북극 식문화의 본질을 결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광활한 땅에는 지리적 환경과 식생에 따라 저마다 전혀 다른 문법을 가진 5개 이상의 전통 식탁이 존재해 왔습니다.
- 틀링깃(Tlingit): 비가 많이 내리고 숲이 짙은 남동부 해안에서 연어, 청어, 조개류를 주로 먹었습니다.
- 유픽(Yup'ik): 서부와 남서부의 강과 바다에서 연어, 민물고기, 물개, 물새, 야생 열매를 얻었습니다.
- 이누피아트(Iñupiat): 북극 해안에서 고래, 물개, 바다코끼리를 식탁의 중심에 두었습니다.
- 아타바스칸(Athabascan): 바다가 없는 내륙의 강과 툰드라를 누비며 물고기와 무스, 카리부를 추적했습니다.
- 우난간(Unangan): 알류샨 열도의 거친 바다를 읽으며 독자적인 식문화를 형성했습니다.
이 오래된 식탁들은 결코 과거의 유물이 아닙니다. 알래스카주 어류수렵국(ADF&G) 조사 수치에 따르면, 알래스카 농촌 지역 주민은 한 사람이 한 해 평균 276파운드(약 125kg)의 야생 식량을 직접 얻습니다. 도로가 닿지 않는 북극 지역으로 가면 이 수치는 402파운드까지 올라갑니다. (반면 도시 주민은 19파운드에 불과합니다.)
이 야생 식량 중 약 3분의 1을 차지하는 것이 연어입니다. 여름철 단 몇 주 동안 대거 회귀하는 연어의 수분을 빼 세균 번식을 막고, 연기 속 화합물로 산패와 벌레를 차단하여 여름의 풍요를 겨울로 데려가는 기술은 알래스카 식문화사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연어가 중요한 축일지라도, 연어 하나만으로 북극의 바다와 내륙 툰드라가 가진 다채로운 식탁 전체를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북극 해안으로 올라가면 식탁의 문법은 단백질에서 '지방'으로 이동합니다. 영하의 바람 속에서 사냥하고 노를 저어야 하는 몸에게 지방은 그램(g)당 9kcal라는 압도적인 에너지를 내는 가장 밀도 높은 생존 연료였습니다.
물개 지방을 녹여 만든 기름은 이 지역의 간장 같은 존재이자 보존 매개체였습니다. 유픽족은 카리부나 무스의 단단한 지방을 잘게 부수고 물개 기름과 '눈(Snow)'을 조금씩 더해 손으로 계속 휘저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지방 속에 미세한 공기층이 형성되며 하얗게 부풀어 오르는데, 여기에 블루베리와 클라우드베리를 접어 넣어 '아쿠타크(Akutaq)'(유픽어로 '섞은 것'이라는 뜻)를 만들었습니다. 우유는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는 이 음식은 단순한 후식이 아니라, 극지방의 밀도 높은 지방을 효율적으로 섭취하기 쉽도록 가공한 원주민 고유의 조리 과학 기술이었습니다.
여기서 오래된 질문 하나가 풀어집니다. "채소가 거의 없는 식단에서 사람들은 왜 괴혈병에 걸리지 않았을까?"
그 비밀은 이누피아트 공동체 등에서 먹는 고래의 피부와 그 아래 지방층인 '막탁(Maktak)'에 있었습니다. 비타민 C는 콜라겐을 합성하는 데 쓰이기 때문에, 콜라겐이 풍부한 피부 조직에 비타민 C가 집중적으로 모입니다.
캐나다 북극권 식품을 분석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날 막탁 100g에는 비타민 C가 약 36mg 들어 있었습니다. 이는 괴혈병을 막는 데 필요한 하루 권장량인 약 10mg을 훌륭히 채우는 양입니다.
특히 익히지 않고 날것으로 먹거나 얼린 채로 먹는 식습관이 열에 약한 비타민 C의 파괴를 막아주었습니다. (다만 지역마다 영양 획득처가 달라 그린란드의 옛 식단을 다시 분석한 연구에서는 해조류의 몫이 더 컸던 것으로 나타납니다.) 동유럽에서 발효 양배추가 했던 역할을, 이 바다에서는 고래 껍질과 날고기, 해조류가 나누어 수행한 셈입니다.
하지만 추위와 자연이 늘 완벽하고 안전한 저장을 보존해 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얼음의 땅이라 할지라도 미생물의 세계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알래스카 서부에는 '냄새 나는 머리'라고 불리는 전통 발효 음식이 있습니다. 연어 머리를 땅에 판 구덩이에 넣고 몇 주 동안 삭히는 방식인데, 구덩이 바닥과 벽에는 풀을 깔아둡니다.
발효는 미생물을 다루는 섬세한 기술이지만, 이 기술에는 '보툴리누스균'이라는 위험한 손님이 따릅니다. 산소가 없는 환경에서 자라며 신경을 마비시키는 독소를 만드는 균입니다. 특히 알래스카의 보툴리누스 중독은 대부분 낮은 온도에서도 활동하는 E형 균에 의해 발생하므로, 차가운 땅이라고 해서 언제나 안전한 냉장고는 아니었습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데이터에 따르면 1950년부터 2017년까지 알래스카에서 350명 넘는 사람이 보툴리누스 중독에 걸렸고 24명이 사망했습니다. 이는 미국 어느 주보다 높은 수치이며, 대부분 전통 발효 음식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충격적인 반전이 드러납니다. 보건 당국과 연구자들이 밝혀낸 위험의 진짜 원인은 '전통 방식' 그 자체가 아니라, 현대의 밀폐 용기(플라스틱 통, 유리병, 비닐봉지) 도입이었습니다.
과거 조상들이 쓰던 풀을 깐 구덩이와 동물 가죽 자루는 공기가 미세하게 통했습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와 많은 가정이 편리함을 이유로 플라스틱 통과 유리병을 쓰기 시작했고, 뚜껑을 닫는 순간 그 안은 산소가 완벽히 차단된 밀폐 공간이 되어 보툴리누스균이 증식하기 가장 좋은 환경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이 때문에 현재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공식 안내문에는 다음과 같은 인문학적 반전의 권고가 적혀 있습니다.
"전통 방식을 따르라. 풀을 깐 구덩이를 쓰고, 플라스틱과 유리 용기를 쓰지 말라."
현대의 문물인 플라스틱이 오래된 음식을 치명적인 독으로 만들었고, 오히려 오래된 전통 방식이 그 위험을 줄여줍니다. '전통은 낡고 위험하며 현대는 안전하다'는 이분법적 선입견이 이 흙구덩이 앞에서 완벽히 깨어진 것입니다.
1896년, 알래스카 국경 근처 클론다이크에서 금이 발견되면서 골드러시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듬해부터 수만 명이 스캐그웨이와 다이아에 배를 대고 칠쿳 고개를 넘었습니다.
고개 위에서 이들을 기다리던 캐나다 북서기마경찰은 단 한 가지를 엄격하게 검사했습니다. 바로 1년 치 식량을 갖고 왔는가'였습니다. 캐나다 정부는 성인 한 사람당 하루 3파운드의 식량이 필요하다고 계산하여, 1년 치인 1,095파운드(약 500kg)의 식량을 가져올 것을 필수 규정으로 세웠습니다. 옷과 생존 장비를 더하면 개인이 짊어져야 할 짐은 약 1톤까지 늘어났습니다.
식량 목록에는 밀가루만 400파운드, 콩이 100파운드였고 베이컨, 귀리, 쌀,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가 더해졌습니다. 대부분 수천 킬로미터 남쪽에서 들여온, 오래 버티는 가공 식량이었습니다. 외지인들은 이 '1톤의 짐'을 수십 번 나눠 지고 눈 덮인 고개를 오르내렸습니다.
이 땅 위에서 두 가지 생존 방식이 명확히 대조를 이룹니다.
- 원주민의 방식: 계절의 흐름을 읽고 땅 안의 식량을 스스로 채집하고 읽어내는 방식.
- 외지인의 방식: 땅 안에서 식량을 구할 수 없다는 전제하에, 땅 밖의 식량을 1년 치 지고 들어오는 방식.
이 두 번째 외지인의 방식은 현대 알래스카 식탁의 또 다른 축으로 이어졌습니다. 주 정부 및 연방 기관 문서에 자주 인용되는 통계에 따르면 **"알래스카에서 구매하는 식품의 약 95%가 외부에서 들어온다"**고 합니다. (다만 이 수치는 1970년대 추정치에 뿌리를 두고 있어 금액 기준인지 무게 기준인지 불분명하다는 지적도 존재합니다.)
확실한 것은 상점에서 소비되는 음식 대부분이 바닷길과 하늘길에 의존한다는 점입니다. 폭풍으로 운송로가 끊기면 외딴 마을 마트의 진열대가 곧바로 비어버리는 취약성을 안고 있습니다. 현대 알래스카 식탁은 외부 공급망과 전통 야생 식량 채집이 아슬아슬하게 공존하는 역설을 보여줍니다.
알래스카에서 저장과 풍요가 완성되는 마지막 조건은 바로 '공동체의 나눔'입니다.
알래스카주 어류수렵국 담당자의 설명에 따르면, 농촌 공동체 주민의 단 30%가 전체 야생 식량의 70%를 생산합니다. 일부 숙련된 사냥꾼과 어부가 확보한 대량의 식량은 나눔을 거쳐 마을 전체의 식탁으로 퍼져나갑니다. 이곳에서 저장은 한 개인의 사적인 창고가 아닌 '마을 전체의 공동 창고'였던 셈입니다.
한편, 생존을 위해 견뎌내야 했던 추위는 역사적 변화를 거치며 전혀 다른 의미를 얻게 됩니다. 1881년 샌프란시스코 증기선 회사의 남동부 정기 항해를 시작으로, 1883년 여름 증기선 아이다호호가 글레이셔 베이로 운항하며 관광 항해가 본격화되었습니다.
과거 사람들에게 목숨을 걸고 견뎌내야 하는 생존 조건이었던 차가운 풍경과 빙하는, 오늘날 선상 식당에서 따뜻하게 연어를 먹으며 돈을 내고 경험하는 '럭셔리 관광'의 무대로 탈바꿈했습니다.
알래스카의 추위는 농사를 가로막는 척박함이었지만, 동시에 음식을 부패하지 않게 돕는 천연 저장고였습니다. 풍요는 자연 속에 이미 존재했지만, 그 풍요를 겨울까지 이어지는 생존의 식량으로 바꾼 것은 자연의 리듬을 읽어내는 지식과 나눔의 지혜였습니다.
7월의 쿠스코큄 강가, 건조대 앞에 선 유픽족 할머니는 손녀에게 연어 살에 칼집을 넣는 깊이를 가르칩니다. 칼집이 너무 얕으면 속 살이 마르지 않고, 너무 깊으면 건조 과정에서 살점이 떨어져 나갑니다. 이 미세한 손끝의 감각은 문자로 기록된 책이 아니라 오직 손에서 손으로 전수됩니다. 같은 시각, 글레이셔 베이 크루즈 식당의 승객은 창밖의 빙하를 바라보며 고급스럽게 요리된 연어를 맛봅니다. 승객들이 감탄하며 바라보는 그 해안은, 아주 오래전부터 틀링깃 사람들의 고향이자 부엌이었습니다.
두 식탁은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같은 바다에서 올라온 생명을 나누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연어는 여름을 즐기는 맛이고, 누군가에게는 엄혹한 겨울을 버티게 할 생명의 약속입니다.
이 차가운 땅이 우리에게 던지는 마지막 질문은 명확합니다.
"인간은 자연을 극복했을까, 아니면 자연을 이해하는 법을 배웠을까?"
'1톤의 짐'을 지고 눈 덮인 고개를 넘었던 금광 사냥꾼들도, 연어 살에 칼집을 넣던 오랜 주민들도 모두 이 땅에서 살아남고자 했습니다. 풍요는 자연이 저절로 내어주는 공짜 선물에 그치지 않습니다. 자연의 시계표를 정밀하게 읽어내는 인류의 지식과, 그 결실을 서로 나누는 공동체의 지혜가 더해질 때 비로소 인간의 삶은 완성되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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