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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빵집에서 한국 약과를 만났다?튀르키예 바클라바와 약과의 기막힌 평행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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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낯선 도시의 진열장 앞에서 멈춰 선 순간

이스탄불의 아침을 떠올려 봅니다. 골목 어귀에서는 방금 구워낸 시미트(Simit)의 고소한 참깨 냄새가 바람을 타고 불어오고, 머리 위에 넓적한 빵 쟁반을 얹은 청년이 바지런히 지나갑니다. 햇볕이 잘 드는 가게 셔터 앞은 이미 길고양이 한 마리가 차지했군요. 어디선가 튤립 모양의 작은 유리잔들이 달그락거리며 홍차를 돌리는 정겨운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 골목 안쪽에 위치한 작은 빵집의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였습니다. 유럽의 빵집이니 당연히 바게트나 크루아상이 반길 것이라 생각했지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전혀 다른 세계였습니다. 한쪽에는 종잇장처럼 얇은 납작빵이 키 높이로 쌓여 있고, 유리 진열장 너머에는 시럽을 머금어 불빛 아래 번들거리는 과자, 초록빛 피스타치오가 눈처럼 뿌려진 과자, 가느다란 실타래를 새 둥지처럼 틀어놓은 디저트들이 빽빽하게 자리를 채우고 있었지요. 구운 버터와 뜨겁게 졸여진 설탕 냄새가 공기 중에 밀도 높게 감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구리 쟁반 앞에서 저는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습니다.

반들반들 윤이 나는 갈색 마름모꼴 과자.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눈에 알아보는 '약과'의 형상이었습니다. 분명 처음 보는 타국의 음식인데 어딘가 깊이 익숙한 모습이었지요. 하지만 이름도, 맛도 알 수 없어 한참을 서성이다 결국 빈손으로 가게를 나와야 했습니다.

동쪽 끝 고려의 개경에서부터 서아시아의 오스만 궁전, 그리고 중앙아시아의 초원에 이르기까지—이 낯선 진열장에서 시작된 호기심은 우리를 '단맛의 문명사'라는 거대한 여정으로 안내합니다. 서로 닮은 듯 다른 디저트들이 걸어온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하나씩 펼쳐보겠습니다.

02길 위에서 탄생한 종잇장 반죽, 유목민의 지혜 '유프카'

진열장 한편에 높다랗게 쌓여 있던 얇디얇은 빵의 정체는 바로 '유프카(Yufka)'입니다. 튀르키예의 시장과 가정에서는 지금도 '옥라바(Oklava)'라 불리는 가늘고 긴 밀대로 반죽을 미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어요. 손바닥만 했던 반죽은 장인의 손길을 거치면서 아래에 깐 천의 무늬가 훤히 비칠 정도로 얇아집니다.

이 반죽을 '사즈(Saz)'라는 볼록한 둥근 철판 위에 올리면 부풀어 오를 새도 없이 불과 몇십 초 만에 바삭하게 익어 나옵니다.

이 특이한 형태는 유목 식문화의 직관적인 산물입니다. 중앙아시아 초원에서 가축을 몰며 이동하던 튀르크 유목민들에게는 웅장한 화덕을 지을 공간도, 반죽이 발효되어 부풀기를 기다릴 시간도 없었습니다. 반죽을 최대한 얇게 펴서 빠르게 구워내는 방식은 귀한 연료를 절약해 주었고, 바짝 말린 반죽은 장기 보관과 이동에 더할 나위 없이 유리했지요. 그야말로 '길 위에서 완성된 지혜'였습니다.

이처럼 얇은 반죽을 굽고 나누는 납작빵 문화는 오늘날 중앙아시아에서 코카서스, 아나톨리아 반도에 이르기까지 넓게 퍼져 있으며, 그 유래와 공동체적 가치를 인정받아 여러 나라가 함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하기도 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 반죽이 보여주는 놀라운 변신입니다. 종잇장 같은 얇은 반죽 한 장은 그저 끼니를 채우는 소박한 빵일 뿐이지만, 이 반죽을 마흔 겹 가깝게 겹겹이 쌓아 올리고 층과 층 사이에 녹인 버터와 으깬 견과류를 듬뿍 넣는 순간, 빵은 제국의 가장 화려한 디저트인 '바클라바(Baklava)'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033대 문명의 만남, 페르시아의 향과 아랍의 시럽 그리고 오스만 '헬바하네'

초원의 거친 납작빵이 궁정의 우아한 제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거대한 문명의 융합이 필요했습니다.

  1. 중앙아시아 튀르크: 이동과 보관이 용이한 얇은 반죽(유프카) 기술 제공
  2. 페르시아: 장미수, 사프란, 피스타치오 등을 활용해 단맛에 정교한 색과 향을 덧입히는 미학 전수
  3. 아랍 세계: 구운 반죽이나 튀긴 반죽을 달콤한 시럽에 푹 적셔 깊은 풍미를 내는 조리 기법 융합

이 세 갈래의 유산이 완벽하게 만난 지점이 바로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정복하고 도읍으로 삼은 이스탄불이었습니다. 제국 전역에서 최고의 요리사와 희귀한 재료들이 모여들었지요.

오스만 궁전 내에는 **'헬바하네(Helvahane)'**라는 단 음식 전담 전문 공간이 존재했습니다. 이곳에서는 참깨와 세몰리나 등으로 만드는 '헬바'를 비롯해 갖가지 과자와 시럽, 보존식을 제조했습니다. 오스만 제국에서 단맛은 단순히 식후에 즐기는 간식을 넘어, 의학적 효능과 궁정 의례가 결합된 매우 전문적이고 격조 높은 분야로 대우받았습니다.

0441겹 바클라바와 예니체리의 충성 심사, '바클라바 알라이'

오스만 제국의 톱카프 궁전 주방에는 높은 굴뚝 아래로 아궁이 불길이 쉼 없이 타오르고, 벽면을 따라 구리 쟁반들이 번쩍였습니다. 1470년대 메흐메트 2세 시절의 궁정 주방 장부 기록을 보면, 금식 달인 라마단 기간 동안 **'마흔한(41) 겹의 바클라바'**를 매일 구워냈으며 일손이 모자랄 지경이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하루 종일 물 한 모금 마시지 않는 엄격한 금식을 마치고 해가 진 뒤 맞이하는 첫 식사인 '이프타르'의 순간, 오랜 허기를 달래고 빠르게 기력을 회복시켜 줄 고칼로리의 버터와 견과류, 시럽이 응축된 41겹의 바클라바는 필수 불가결한 존재였습니다.

나아가 이 디저트는 제국의 정치를 움직이는 상징이 되기도 했습니다.

[역사 속 한 장면] 바클라바 행렬 '바클라바 알라이(Baklava Alai)'

라마단 15일째가 되면 술탄은 직속 정예 군단인 '예니체리' 병사들에게 바클라바를 하사했습니다. 병사 10명당 쟁반 1개씩, 쟁반을 비단천으로 감싸 장대에 꿰어 어깨에 메고 이스탄불 시내를 행진했습니다.

이 의식은 술탄의 관대함에 대한 감사이자 군대의 충성을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만약 병사들이 쟁반 받기를 거부하고 돌려보낸다면, 이는 조정이나 급료에 대한 심각한 불만이자 반란의 신호로 해석되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이 전통적인 바클라바 행렬은 1826년 예니체리 군단이 공식 해체되기 불과 두 달 전까지 이어졌습니다.)

05고려의 '약과'와 오스만의 '바클라바', 피 한 방울 안 섞인 닮은꼴 해법

이제 시선을 동쪽으로 6,000킬로미터 떨어진 고려의 수도 개경으로 돌려볼까요?

불교를 국교로 숭상하던 고려에서는 육식을 멀리하는 대신 곡식과 참기름, 꿀을 활용한 최고급 유밀과 문화가 꽃피었습니다. 그중 단연 으뜸이 바로 **'약과(藥果)'**였습니다. 당시 귀한 약재 대접을 받던 꿀을 아낌없이 넣었기에 '약' 자가 붙었지요.

약과의 인기는 사치스러울 정도여서 『고려사』에는 명종 22년(1192년)과 공민왕 2년(1353년)에 곡식과 꿀의 낭비를 막기 위해 '유밀과 금지령'을 내렸다는 기록이 전해집니다. 심지어 원나라로 수출되어 현지 왕족과 귀족들 사이에서 '고려병(高麗餠)'이라 불리며 베이징의 연회상을 사로잡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미식사적 질문이 피어납니다. '동서 교역로인 실크로드를 통해 고려병의 조리법이 서쪽으로 건너가 바클라바가 된 것은 아닐까?'

단호하게 팩트를 짚고 넘어가자면, 당대 교역로의 길은 열려 있었으나 약과가 서쪽으로 건너가 영향을 주었다는 문헌적 증거나 조리법 전래 기록은 일절 존재하지 않습니다. 두 과자는 직접적인 혈연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직접적인 교류가 없었기에 두 문명의 만남은 오히려 더 경이롭습니다. 두 과자를 손에 쥐고 잘라보면 그 질감과 풍미의 차이가 더욱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손끝으로 약과를 가만히 쪼개보면 결이 두툼하게 갈라지며 속까지 단물이 밀도 높게 베어 나오는 촉촉하고 묵직한 질감이 전달됩니다. 반면 바클라바를 한 입 베어 물면 마흔 겹의 얇은 반죽 레이어가 '사각' 하고 경쾌하게 부서지면서, 층층이 스며있던 뜨거운 버터와 피스타치오의 풍미가 시럽과 함께 터져 나오지요.

약과와 바클라바의 문명사적 단면 비교

서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공간에서 참깨를 재배해 참기름을 얻은 고려의 농경 부엌과, 가축의 젖을 짜내 버터를 얻은 서아시아의 목축 부엌. 두 문명은 교류 없이도 **"가장 흔한 곡물(밀가루)에 가장 귀한 기름과 단물(꿀/시럽)을 아낌없이 더해 특별한 날의 음식으로 탈바꿈시킨다"**는 동일하고 경이로운 해법을 각자의 방식으로 찾아냈던 것입니다.

06진열장에서 발견한 오래된 인사, 그리고 '설탕의 길'

다시 이스탄불 골목의 낯선 빵집 진열장 앞에서 멈춰 서 봅니다.

처음에는 이름도, 맛도 몰라 망설이다 빈손으로 돌아섰던 그 진열장이 이제는 완전히 다르게 보입니다. 종잇장 빵 한 장에는 초원을 달리던 유목민의 삶이, 초록빛 피스타치오에는 페르시아의 화려한 정원이, 달콤한 시럽에는 아랍의 지혜가, 그리고 마흔한 겹의 결 사이에는 라마단의 저녁과 병사들의 행렬이 겹쳐 보입니다. 그 곁에 서 있는 약과 닮은 과자는 동쪽 끝 개경에서 잔치를 빛내던 우리 과자의 시간과 다정하게 손을 잡고 있습니다.

낯섦으로 가득했던 과자 진열장은 실상 수천 년 인류가 각자의 부엌에서 빚어낸 **'오래된 인사'**였던 셈입니다.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인류는 부엌이라는 공간에서 밀가루와 기름, 꿀을 쥐고 동일한 행복의 형태를 빚어내고 있었던 게 아닐까요?

하지만 단맛의 문명사 탐구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유목민의 반죽과 고려의 튀김을 하나로 적신 마지막 열쇠, 바로 **'시럽'**의 주재료에 대한 이야기가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인도의 푸른 사탕수수밭에서 싹을 틔워 페르시아와 이집트를 거치고, 오스만 제국의 권력을 지나 마침내 지중해와 전 세계의 바다를 바꿔 놓은 '설탕의 역동적인 이동 역사'가 다음 이야기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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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애들빙자여행러 · 2026년 1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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