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름 슈퍼마켓에는 왜 거대한 사탕 벽이 있을까?북유럽 단맛의 문명사
🎧 LISTEN
스톡홀름의 한 슈퍼마켓, 과일과 채소 코너의 알싸한 향을 지나면 매장 한쪽 면을 온통 차지한 거대한 투명 벽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바닥 근처에서 눈높이 너머까지 단단히 줄지어 선 플라스틱 통 속에는 빨강, 노랑, 초록, 분홍빛의 알록달록한 젤리와 갈색 카라멜이 수북하게 쌓여 있습니다. 고래와 자동차 모양 젤리부터 사각거리는 설탕 가루를 묻힌 신맛 젤리까지 그 스펙트럼도 화려합니다.
가게 안에는 얇은 바스락거림을 내며 비닐봉투를 펼치는 소리, 그리고 손에 쥔 금속 집게가 투명한 통 테두리에 탁탁 부딪히는 맑은 타격음이 건조하게 울려 퍼집니다. 아이는 물론 어른들까지 진지한 표정으로 통 앞에 서서 집게를 움직입니다. 개별 포장된 과자는 눈에 띄지 않습니다. 이곳에서 사탕은 개수가 아니라, 집 집게의 무게와 저울의 수치로 가치가 매겨집니다.
이 낯설고도 생생한 풍경을 마주하면 자연스레 질문이 솟구칩니다. 단지 이 나라 사람들이 단것을 유난히 좋아하는 국민성을 가졌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이 거대한 사탕 벽은 단순한 간식 코너가 아닙니다. 그 유리 벽 너머에는 입안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분자 반응, 노예무역과 대량생산이 얽힌 산업사, 지적장애인을 대상으로 감행되었던 어두운 의학 잔혹사, 그리고 사회적 규칙과 유통 구조가 촘촘하게 결합되어 있습니다. 스웨덴 슈퍼마켓의 사탕 벽 뒤에 숨겨진 4가지 진실을 따라가 봅니다.
사탕 벽의 가장 보기 좋은 눈높이를 점령하고 있는 주인공들은 쉽게 부서지는 딱딱한 캔디가 아니라, 쫀득하게 씹히는 젤리와 끈덕지게 늘어나는 카라멜입니다. 제과 과학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두 사탕은 전혀 다른 분자 구조와 제조 원리를 지니고 있습니다.
카라멜의 본질은 유제품과 당의 열화학적 결합입니다. 설탕과 물엿을 130도 가까이 끓인 뒤 크림과 버터를 첨가해 다시 120도 안팎까지 졸여내는데, 이때 특유의 갈색과 고소한 풍미를 만들어내는 것은 설탕이 태워지는 캐러멜화 반응이 아닙니다. 바로 우유 단백질과 당이 만나 일으키는 '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action)'입니다. 정교하게 구워낸 스테이크 표면에서 풍부한 감칠맛이 자라나듯, 유제품의 단백질과 지방은 설탕이 거친 결정으로 자라나는 것을 막아줍니다. 그 덕분에 카라멜은 캔디처럼 깨지지 않고 체온에 서서히 녹아내리며 치아 표면에 진득하게 달라붙는 질감을 얻게 됩니다.
반면 젤리는 동물의 콜라겐에서 추출한 단백질인 '젤라틴'이 형성하는 단단한 그물 구조를 기반으로 합니다. 뜨거운 설탕 시럽에 젤라틴을 풀어 식히면 긴 단백질 사슬들이 얽히고설켜 촘촘한 그망을 만들고, 그 공간 사이에 달콤한 수분을 가두어 놓습니다. 젤리를 씹을 때 튕겨 나오는 특유의 탄력은 바로 이 단백질 그물에서 비롯되며, 체온 언저리에서 그물이 천천히 풀려나감에 따라 가둬두었던 단맛을 입안 가득 지속적으로 내보냅니다. 전분 가루 판에 홈을 파서 모양을 찍어내고 뜨거운 반죽을 부어 굳히는 대량생산 방식 역시 젤라틴 구조의 뛰어난 성형성 덕분에 가능해졌습니다.
제작 방식은 판이하게 다르지만, 카라멜과 젤리는 결정적인 치의학적 공통점을 공유합니다. 바로 **"입안에 오래 머무르고 치아에 오랜 시간 달라붙는 성질"**입니다.
입안에 설탕이 들어오면 세균은 이를 먹어 치우며 산(Acid)을 배출합니다. 이로 인해 입안의 산도(pH)가 위험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치아 표면의 에나멜층이 녹아내리기 시작합니다. 타액이 산을 씻어내어 입안 환경을 중성으로 회복시키기까지는 일정한 시간이 걸리는데, 입안에 오래 머무르고 치아 틈새에 붙어있는 사탕은 산도가 내려간 치명적인 상태를 연장시킵니다. 그리고 이 '산도 하강 연장'이라는 과학적 기전은 훗날 스웨덴의 한 국립 병원에서 비극적인 실험의 결정적 도구로 악용되고 맙니다.
오늘날 마트 진열대에 지척으로 쌓여 있는 단맛은 인류 역사상 결코 흔한 풍경이 아니었습니다. 과거 유럽에서 설탕은 카리브해와 대서양 건너 사탕수수 농장의 참혹한 노예 노동에 의존해 들여오던 비싼 열대 수입품이었습니다. 북유럽의 식탁에서 설탕은 오직 왕족과 극소수 귀족만이 부를 과시하기 위해 누리던 사치품에 불과했습니다.
이 세계사적 공급 구조를 뒤흔든 전환점은 19세기 온대 작물인 사탕무(Sugar beet) 재배의 성공이었습니다. 스웨덴은 19세기 후반(1880년대 본격화) 사탕무를 통해 설탕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산업적 기반을 마련했고, 설탕 가격이 급락하면서 비로소 대중화의 수문이 열렸습니다.
설탕이 흔해지자 20세기 초 스웨덴 전역에는 100곳이 넘는 사탕 공장이 우후죽순 들어섰습니다. 인접한 덴마크나 핀란드의 사탕 공장이 서너 곳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압도적인 밀도였습니다. 공장들은 대량생산된 설탕에 다채로운 색상, 기발한 모양, 그리고 매혹적인 이야기를 입혀 상품화했습니다.
이 폭발적인 성장 배경에는 북유럽 고유의 풍부한 유제품 문화와 외부 제과 기술의 유입이 접목되어 있었습니다. 생크림과 설탕, 버터를 함께 졸여 만드는 스웨덴의 크리스마스 전통 과자 '크낵(Knäck)'이나 핀란드의 '알쿠(Alku)' 같은 크림 토피 전통은 카라멜이 뿌리내릴 풍요로운 토양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1920년대 독일 본의 하리보(Haribo)가 선보인 곰 젤리 제조 기술이 유입되고, 1934년 말뫼 감초 회사로 출발한 스웨덴의 '말라코(Malaco)'가 젤리 대량생산에 성공하면서, 씹는 사탕 문화가 완벽하게 만개할 수 있는 산업적 기틀이 완성되었습니다.
스웨덴의 사탕 벽을 형성한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화려한 공장이 아닌, 의학사의 어두운 현장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945년부터 1953년까지 스웨덴 보건 당국은 룬드 외곽의 비페홀름(Vipeholm) 국립 병원에서 지적장애인 입소자들을 대상으로 인체 충치 실험을 감행했습니다.
연구진은 피험자들을 여러 집단으로 나눈 뒤 설탕을 투여하는 방식을 다르게 설정했습니다. 식사 때 설탕을 제공받은 집단이 있었던 반면, 식간에 '이 실험만을 위해 치아에 가장 끈적하게 달라붙도록 특별 조제된 토피와 카라멜'을 지속적으로 제공받은 집단도 있었습니다. 1장에서 다룬 제과 과학의 원리가, 입안의 산도를 위험 수치 아래로 고정시켜 치아를 파괴하기 위한 정교한 수단으로 악용된 것입니다. 피험자들은 동의를 구할 수 없는 상태에서 심각한 치아 손상과 통증을 겪었으며, 제과업계의 자금 지원 및 연구 결과 발표 지연 논란까지 더해지며 이 연구는 오늘날 중대한 비윤리적 의학 잔혹사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결과가 공중보건에 쓰였다는 사실과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은 서로를 지우지 않는다."
2000년 스웨덴 장애인 옴부즈맨 보고서가 짚어냈듯, 공중보건상의 성과가 인간의 존엄을 짓밟은 과정을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 비극적인 실험을 통해 "설탕의 절대적인 총량보다 섭취 빈도, 그리고 끈적하게 치아에 붙어있는 시간"이 충치 발생의 절대적 원인임이 입증되었습니다.
1950년대 스웨덴 보건 당국은 이 임상 결과를 바탕으로 사탕을 전면 금지하는 대신, "원하는 만큼 먹되 일주일에 단 하루, 토요일에만 모아서 먹으라"는 파격적인 보건 지침을 발표했습니다. 토요일 저녁 온 가족이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함께 사탕을 나누어 먹도록 유도한 이 정책은, 섭취를 통제하려다 오히려 토요일만을 간절히 기다리게 만든 문화적 역설—즉 '토요일 사탕(Lördagsgodis, 뢰르다스고디스)'이라는 독특한 생활 리듬을 탄생시켰습니다.
토요일이라는 시간적 규칙이 정착한 지 수십 년이 지난 1984년, 유통 규제의 완화가 오늘날 거대한 사탕 벽의 물리적 형태를 완성했습니다. 스웨덴 식품청이 위생 요건 준수를 전제로, 소비자가 직접 집게를 들고 사탕을 골라 담는 셀프서비스식 낱개 판매(Lösgodis, 뢰스고디스)를 지방 당국에 권고 허용한 것입니다.
"50종에서 100종에 이르는 사탕이 진열되며 마치 수문이 열린 것 같았다."
당대 저술가의 증언처럼, 점원의 유리 진열장 뒤에 갇혀 있던 사탕들이 슈퍼마켓의 거대한 벽면 매대로 쏟아져 나오자 사탕 소비는 가파르게 폭발했습니다. 1960년대 스웨덴 사람들의 연간 1인당 사탕 소비량은 67kg 수준이었으나, 낱개 판매가 정착된 이후 급증하여 현재는 1617kg에 이릅니다. 이는 유럽연합(EU) 평균인 7kg 안팎의 두 배를 훌쩍 넘어서는 독보적인 수치입니다.
여기서 유통사학자들과 문화 연구자들은 부서지거나 서로 엉겨 붙지 않고 고유의 형태를 유지하는 젤리와 카라멜의 물리적 특성이 셀프서비스 낱개 매대 환경과 완벽한 결합을 이루었다고 분석하기도 합니다. 집게로 집어 봉투에 담고 통에 담아도 쉽게 손상되지 않는 유연함이 낱개 골라 담기 유통 구조와 뛰어난 상성을 보여주었다는 설명입니다. 이는 단정된 확정적 사실이라기보다, 제과 기술의 물성과 유통 시스템이 어떻게 서로를 견인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문화·유통적 해석입니다.
단맛을 다루는 한 사회의 기록
다시 토요일 오전, 스톡홀름 슈퍼마켓의 거대한 사탕 벽 앞으로 돌아옵니다. 아이가 진지한 표정으로 집게를 들어 투명한 통 속에서 고래 모양 젤리와 윤기나는 갈색 카라멜을 집어 자신의 비닐봉투 속으로 옮겨 담습니다.
70여 년 전, 룬드 외곽의 어두운 국립 병원에서 치아에 가장 끈적하게 달라붙도록 연구용으로 조제되었던 바로 그 질감의 사탕이, 오늘날에는 평일을 온전히 참아낸 아이들에게 주말의 설렘과 정당한 즐거움을 안겨주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스웨덴 슈퍼마켓의 사탕 벽은 단순히 단것을 즐기는 무의식적 취향의 산물이 아닙니다. 열대 수입품이었던 설탕의 대중화, 100여 개 공장의 산업사, 비페홀름 실험이라는 어두운 의학적 유산, 보건 당국의 정책적 개입, 그리고 1984년 유통 규제 완화가 겹겹이 쌓여 완성된 '단맛의 문명사'이자 한 사회가 단맛이라는 거대한 욕망을 다루는 법을 스스로 체득해 온 긴 기록입니다.
오늘 당신이 무심코 집어 든 달콤함 속에는 과연 어떤 역사와 사회적 규칙이 담겨 있나요?
음식 인문학 도서 보러가기
이 링크는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COMMENTS
의견을 남기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