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Collection

판교 직장인 제주 집짓기

Curated by네모네AIM Team
8 Stories Included

당신의 꿈과 희망은 무엇인가요.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가장 하고 싶었던 은퇴 후 ‘제주 집 앞마당에서의 커피 한 잔’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건축의 ‘건’자도 모르던 작가가 좌충우돌 10년간 제주에 집을 짓는다. 처음엔 도전이었던 것들이 어느새 즐거움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미래란 지치지 않고 두드리는 자들의 몫이 아닐지. 제주와 건축이 만났다. <쇼생크탈출>의 앤디처럼 교도소 아니 직장을 탈출해 낭만과 희망의 섬 제주에 꿈을 실현하기 위해 그곳에 자신만의 공간을 짓는 판교 직장인의 판타지 아닌 초리얼리티 이야기. 10년간의 여정은 마무리될 수 있을까. (2025년 브런치 연재)

# 제주라이프# 제주집짓기# 판교직장인# 와랑스튜디오
1
Culture

[판제집1] 집 짓기가 인생 챌린지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

“내가 잘리는 날이 온다면 그때가 제주로 떠나는 날 일 것이다”2016년. 그러니깐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 제주에 땅을 얼떨결에 계약하고 우스개 소리로 이렇게 지껄였다.이런 생각에 미래가 든든하기도 했고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 대상이기도 했는데 농담처럼 하던 말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영화 &lt;쇼생크 탈출&gt;을 좋아한다. 감옥의 죄수들이 야외 근로를 나와 어느 건물 지붕 위에서 주인공 '앤디'의 활약으로 땡볕아래 시원한 맥주를 마시게 된다. 몇 년만일지도 모를 일이다. 앤디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정작 앤디는 맥주를 마시지도 않는다. 영화 말미에 앤디가 감옥을 탈출하여 비를 맞으며 만세를 부르는 자유의 장면. 그리고 마지막 멕시코 어느 해안가에서 절친 '레드'를 기다리며 차분하게 배를 수리하고 있었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어쩌면 회사라는 감옥에서 자유를 향한 나의 갈망과도 같았다. 나도 제주의 어딘가에서 앤디처럼 인생의 후반부를 맞이할 수 있을까.엄청난 노력과 자금이 뒷받침된 것은 아니었다. 평범하다면 평범할 것이다. 그냥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부딪히니 문이 열였다고나 할까. 혼자였으면 절대 이루지 못했을 것도 같다. 출근길 버스 안에서 또는 판교의 눈부신 야근 빌딩을 바라보며 인생의 덧없음을 간간히 깨달을 때마다 더욱 박차를 가했던 것도 같다. 코로나 기간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란 스스로 물음에 나의 제주집 앞마당에서 한 잔의 커피를 마시겠다고 답했다.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집을 짓는 것이 익숙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생에 집 한 번 짓기가 쉬운 일인가. 누구나 건축주는 처음이니깐. 집을 짓는 꿈의 과정이 고통이 아니라 즐거움의 연속이었으면 했다. 삶에 파동이 있듯이 그 과정도 롤러코스터 같았다. 솔직히 고백한다. 몇 번이고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이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같이 나에겐 힐링의 순간이 되기도 한 것 같다. 어느덧 나는 &lt;오즈의 마법사&gt;를 만나러 가는 주인공 '도로시'가 되어 있었다. 나의 친구들은 어디에 있을까.이 스토리는 집을 짓기 위한 지식을 얻기에는 부족할 수 있다. 집을 짓기에 충분한 이론적 기술적 지식이 담겨 있지는 않다. 이것은 꿈에 대한 이야기다. 그렇다고 판타지는 아닌 지독한 현실 고증 리얼리티다. 건축 지식이 전무했던 판교 IT 직장인이 지난 10년간 제주에 나만의 공간을 짓기 위해 좌충우돌했던 그 과정의 기록을 통해 한 번쯤 자신의 꿈을 위해 세상에 도전하고 푼 사람들에게 작은 용기와 희망을 주었으면 좋겠다.

Read Full Story
2
Culture

[판제집2] 숙명적 결정 장애자

처음 집을 짓겠다고 했을 때 그리 특별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건축 지식은 전무했지만 주변에 집을 직접 짓는 사람이 여럿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땅을 샀으니 당연히 집을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실 일생에 우리 주변에서 실제로 집을 짓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꼬마빌딩이나 리모델링 등 곳곳에 공사현장은 많이 보이는데 도심에서 단독주택 건설현장을 보는 건 쉽지 않다. 실제 내가 만나봤던 건축사들을 봐도 단독주택 포트폴리오가 그렇게 많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건축사들은 주택이 건물보다 더 까다롭다고 했다. 아무래도 건물은 일하는 곳이고 주택은 생활하는 곳이니 디테일하게 신경 쓸 것이 많다고. 그래서 건물 평수보다 주택이 작다고 설계비가 비례하여 작아지지 않는다고 했다.&nbsp;그렇게 집을 짓겠다고 건축사들을 만나 상담을 할 때 가장 처음에 듣는 질문은 바로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가”&nbsp;또는 “어떤 집을 짓고 싶은가”였다.&nbsp;언젠가 추운 겨울 눈 내리는 일본의 홋카이도 어느 지역에 빵 냄새 솔솔 나던 오두막집을 지나갈 때 너무나 평온하고 따뜻해 나도 언젠가 저런 집을 짓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시작이 아니었나 싶다. 핀터레스트나 월간지에서 차갑고 스틸로 된 검은 인테리어를 보면서 세련된 무엇을 마음에 담기도 했던 것 같다. 가족이 행복한 집, 목가적 분위기의 조용한 집, 햇빛이 비치는 집, 아니 고급스러운 분위기도 좋고요. 넓었으면 좋은데 좁아도 상관없어요. 하늘이 보였으면 좋겠어요. 바닥엔 물이 흐르고요. 지붕도 열리면 좋겠네요. 또.십중팔구 건축사들은 당황한다. 어떤 건축사는 A4 수십 장으로 된 설문용지를 보내온 적도 있었다. 우리 가족의 형태를 치밀하게 관찰하려는 목적으로 보였다. 가족의 행태와 사람의 로망은 다를 진데 어떻게 맞춰가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난 그냥 집을 지으면 재미있겠다는 생각만 했지 꼭 집을 지어야 한다는 사명감 따위도 없긴 했다.나도 나를 모르겠어요집을 짓는다고 하면 주변에서 많은 의견을 접수하게 된다. 2층은 필요 없어요. 활용도가 매우 떨어져요. 목조주택은 방음이 안되고 2층에서 삐그덕 소리가 나요. 집 크게 지을 필요 없다. 관리하기 힘들다. 잔디 깔지 말아라. 보기엔 좋아도 그거 중노동이다. 일생에 한 번 짓는 집 제대로 지어야 한다 등등. 모두 뼈가 되고 살이 되는 내용들이다. 이러한 의견들을 모두 취합하다 보면 집은 너덜너덜 해질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정리가 안되어 집 짓는 일을 중단한 적도 있다.두 번째로 많이 받는 질문은 예산에 대한 부분이다. "얼마 예산으로 지으려고 하느냐"&nbsp;또는 "몇 평짜리 집을 지으려고 하느냐"인데. 통장엔 돈이 한 푼도 없었다. 얼마나 돈이 필요한지 알고 싶기도 했는데.&nbsp;궁금한 점은 실제 다른 건축주는 가지고 있는 현금으로 집을 지을까? 몇 평을 원하는지 본인이 알고 있는 건축주는 얼마나 될까? 그런 걸 전혀 모르니 상담하고 협의하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이런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고 쫓아내지는 않는다.&nbsp;세 번째로 많이 받은 질문은 구조, 재료, 공법에 대한 부분이었다. "어떤 재료의 집을 짓고 싶은지". 즉, 기본적으로 철근콘크리트, 목재, 철골 중 말이다. 나는 그저 춥지 않으면 좋겠어요. 이 또한 3가지 장단점에 대해서 명확하게 모르니 선호도를 말할 순 없었다. 가장 흔하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블로그나 유튜브 등에서 살펴보아도 너무 다양한 의견들이라 결론적으로 전문가가 결정해 주길 바랐다.가끔은 AI가 나를 인터뷰해서 예산과 평수 콘셉트 등 모든 것을 제안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건축사를 만날 때마다 난 더욱 작아져 있었다. 너무나 명쾌하게 콘셉트와 실행 안을 갖고 있는 건축주를 보면 부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건축주의 운명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자리라는 것을 안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이것은 단지 설계 단계에서 뿐 아니라 건축의 전 과정에서 벌어진다.&nbsp;나는 회사나 일상생활에서 결정장애를 갖고 있지 않다고 자부했으나 건축에 있어서는 무색무취였던 것 같다. 한 때는 공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들어가서 사는 사람이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부족하고 불편한 것이 있다면 그때그때 바꾸어 나가면 되지 않겠느냐란 생각. 그저 내 한 몸 누을 공간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언젠가 이런 얘기를 건축사에게 했는데 허탈한 웃음을 지으셨던 기억도 있다. 아마도 건축에 대한 지식이 없다 보니 비교분석 자체가 힘들어 결정을 내리기 힘들다고 볼 수 있겠다. 지식이 없다고 집을 짓는 것이 범죄는 아니지 않은가. 전문가만 집을 지으란 법도 없을 테니 말이다.&nbsp;지식이 풍부하고 명확한 목적으로 효율적으로 집을 짓는다면 축복이겠지만 나처럼 이 혼돈의 과정을 해학과 웃음으로 잘 극복하고 즐길 수 있다면 그 또한 해볼 만한 작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결정장애는 부끄러운 것이 아닌 또 하나의 콘텐츠라 생각하기로 했다.나도 내가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제주라는 섬에 집을 지을 수 있을지 궁금하긴 했다.

Read Full Story
3
Culture

[판제집] 좋은 건축가를 만난다는 것

좋은 건축사를 만나는 팁은 없다고 본다. 실제로 일해 보지 않고 자신과 맞는 건축사를 만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집을 짓는데 건축사는 필수이다. 일단 건축허가를 낼 때 건축사 자격증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나는 집을 짓기로 한 후 6명 건축사를 만났다. 물론 내 운동커뮤니티에 유독 건축 설계 쪽 분들이 많긴 했는데 나는 지인과 일하는 것이 부담이라 일부러 피했다. 6명을 동시에 만나 그중에 한 명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최근 2년간의 기간 동안 상담한 건축가들의 숫자다.&nbsp;주변에서 건축사를 찾는 건 단순하기도 하고 단순하지 않기도 하다. 사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을 수도 있지만 주변에 건축 관련 종사자 한 명쯤은 있지 않겠는가. 변호사를 찾는 일과 비슷할 것 같다. 보통은 땅이나 건물을 계약한 부동산에서 많이 건축사를 추천해 주기도 한다고. 건축사를 고를 때 고민했던 부분 중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지역적인 부분이었다. 내가 서울에 거주하니 설계과정에서 건축주와 많은 소통이 가능한 서울 지역 건축사와 실제 제주를 잘 알고 내가 자주 갈 수 없기에 현장에서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제주 지역 건축사 중 고민이 컸다.&nbsp;나는 그중 설계의 디테일보다는 제주에서 원활한 활동이 가능한 현지 건축사를 먼저 만나보기로 했다.나는 실제 제주에서 집을 지은 지인에게 건축사 추천을 의뢰했다. 지인은 ‘허가방’이라고 해서 도면은 본인이 그리고 허가만 대행하는 건축사도 있다고 했다. 나는 실제 설계가 필요할 것 같아 지인 건축사 연락처를 받았다. 대략적인 설계비는 듣기도 했고 또 각종 건축 관련 책을 보면 평당 얼마라는 대략적인 단가가 나와있기도 했다. 해당 건축사와 연락 후 가족 여행을 핑계 삼아 제주에 가서 직접 사무실에 방문했다. 제주시내가 아닌 근교에 위치해 있었는데 사무실에 혼자 있었다. 자신의 포트폴리오도 대략적으로 설명하고 언제나 그렇듯 기본 3가지 질문에 대해 논의했던 것 같다. 나는 주로 듣는 입장이었는데 특히나 나의 땅이 권리관계가 복잡했는데 제주 건축사라 그런지 경험이 많아서 그런지 각종 법적 인허가 문제들을 능숙하게 해결할 수 있다고 말씀 주셨다. 그리고 본인은 더 많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직접 설계를 하지 않고 설계는 다른 곳에 외주로 요청한다고. 한 시간 정도의 미팅을 하고 나오면서 몇 가지 생각이 들었다. 홈페이지도 없는 이 설계사무소에서 했다는 그 포트폴리오는 실제 여기서 한 것일까. 나와 상담한 이 분은 실제 설계사 자격증을 갖고 있을까. 이 분을 뭘 믿고 수 억 원짜리 공사 계약을 할 수 있을까. 불안한 생각들이 엄습해 왔다.&nbsp;실제로 집을 지은 지인들은 건축사에게 아쉬운 소리를 많이 했다.그들은 본인들의 살 집을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하려고 해실제 건축사이면서 자신이 설계한 집에 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물론 건축사의 역할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다루기에 5년 이상을 대학에서 공부한 사람들이다. 건축사들 중에도 스타일이 있다고 듣긴 했다. 미적인 면을 강조하는 사람과 튼튼하고 실용적인 면을 강조하는. 그 중간을 추구하는 건축사를 어떻게 고를 수 있다는 말인가. 단 한두 시간의 미팅으로 말이다.그 후 나는 서울 건축사를 소개받아 만나기도 했다. 설계비란 것이 부동산 소개비처럼 정해진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내가 만난 6명의 설계사들과 논의한 설계비의 평균을 내보면 제주 설계비보다 서울 설계비가 최소 3배 이상이 비쌌다. 물론 내가 만난 건축사가 훌륭하신 분임은 분명할 것이다. 또한 세부적인 설계도 규모도 차이가 나긴 했다. 그럼에도 이러한 금액 차이가 나는 점은 선 듯 이해하기 힘들었다.사실 설계비가 비싸다는 건 문제가 아니다. 그 값을 지불할 때 충분히 합당한 것인가가 중요할 것이다. 어찌 보면 건축비에서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는, 아니 건축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설계를 좋은 사람과 함께하는 일은 건축의 성공에서 최소 50% 이상을 차지할 만큼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험난하고 난생 처음인 건축과정에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건축사를 만나는 건 축복이다. 설계비는 완공 후 만족감의 값어치이며 미래에 절약될 시행착오 비용까지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nbsp;한 때 난 ‘설계도는 내 머릿속에 들어있는데 건축가의 역할이 필요하나’하는 어리석은 생각도 한 적이 있다. 건축가는 최고의 전략가이자 등불 같은 존재이다. 내가 건축의 바다에서 길을 잃거나 좌초되지 않도록 방향을 잡아주고 즐거운 항해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건축가는 결코 선장은 아니다. 물론 선장 역할도 해줄 수 있겠지만 그렇다면 굳이 집을 스스로 지을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nbsp;훌륭한 건축가란 누구인가. 나는 나의 이 결정장애와 다양한 욕구를 잘 들어주기만 하는 것이 아닌 함께 상상의 나래를 그리고 그 속에서 잘못된 부분은 지적하여 하나하나 정리해 나가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는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사람에 따라 성향에 따라 경험에 따라 필요한 건축사의 역할은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가장 절대적인 것은 지나칠 정도로 충분히(깨알같이) 의견을 나누는데 열려 있는 건축사는 실패할 확률이 적다고 본다.나는 결국 두 곳 설계사무소와&nbsp;계약을 체결했다. 한 곳은 제주, 한 곳은 서울이었다.&nbsp;서로 역할을 나누어 협력하여 진행하기로 했다. 어쩌면 일생에 가장 도전적인 건축이라는 행위에 대해 실패를 최소화할 여러 개의 완충지를 마련한 셈이었다. 비용에 대한 부담보다 결코 실패하고 싶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뒤에서 자세히 들려 드릴 예정이다.

Read Full Story
4
Culture

[판제집] 내가 몰랐던 평당 건축비의 비밀/내가 몰랐던 평당 건축비의 비밀

‘평당 건축비는 의미 없다’란 얘기도 많이 들린다. 건축주가 어떤 재료 어떤 콘셉트를 차용하느냐에 따라 금액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당연한 얘기이다.처음 건축사 미팅을 할 때 예산을 물어보지만 당연 건축비를 예상할 수 없기에 대답할 수 없었다. 이때 준비해 간 워너비 콘셉트 사진들을 보여주면 그때 비로소 건축사는 본인의 포트폴리오 사례에서 비슷한 콘셉트의 사례를 들어 대략적인 평당 건축비를 말해준다. 참 신기한 광경이었다. 물론 모든 건축사가 이렇게 자판기처럼 건축비를 말씀해 주진 않는다. 건축주의 예산에 맞는 설계를 하겠다는 분도 계셨고 정확한 건축비는 시공사랑 협의하라는 분도 계셨다.내가 준비한 콘셉트 사진을 보고 건축사들은 모두가 평당 1000만 원 이상이 들 것이라 하였다. 나는 깜짝 놀랐는데 책에 있는 내용과 현저히 달랐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도서관 책을 참고하다 보니 출판된 지 꽤 지난 책들이 많았는데 책이란 매체는 실시간으로 현실을 반영하지는 못할 듯하다. 내가 본 책에는 평당 5~700만 원까지 다양했으나 건축사들은 입을 모아 최소 1000만 원을 이야기 했다. 이어 코로나 시기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자재비가 엄청나게 뛰었으며 인건비 또한 뛰었다고 입을 모았다. 더군다나 제주는 물류비가 추가로 든다고 하니 비용을 더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당시 만나 본 한 시공사는 30평 정도 주택에 콘크리트 치는데 1억은 든다고 해서 적잖이 충격을 먹기도 했다. “30평짜리 주택에 드는 시멘트 비용이 1억이라니!”여기서 건축비 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부 설계가 끝나고 시공사로부터 견적을 받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때 세부적인 건축비 내역이 나와있다. 물론 직영공사와 종합건설사를 통한 공사에는 여러 가지 차이가 있다. 나는 여러 리스크를 고려해서 비용이 더 들더라도 안전한 종합건설사를 시공사로 선정했는데 견적서를 보고 약간 당황했다. 일반적으로 공사비라 하면 자재비와 인건비가 거의 반반으로 보면 된다. 여기에 각종 공사 현장의 안전 등에 필요한 보험료가 10%가 추가되고 시공사의 이윤 10%가 추가된다. 다시 여기에 부가가치세 10%가 추가가 된다. 여기서 현타가 온 것은 공사비의 대부분은 재료비로 알고 있었던 나에게 재료비의 비중보다 인건비와 간접비의 비중이 더 크다는 데 있었다.공사비 = 재료비+인건비+간접비(재료+인건비의 10%)+이윤(재료+인건비의 10%)+부가세즉, 평당 1000만 원이라는 말속에는 재료비 400만 원, 인건비 400만 원, 간접비 80만 원, 건설사 이윤 80만 원 정도가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부가세 및 인허가비 등 각종 세금이나 설계비는 제외된 금액이다. 물론 직영 공사를 시행한다면 부가세는 내야하겠지만 간접비나 건설사 이윤은 재료비에 비례하여 올라가진 않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 견적서를 살펴보면 철근 콘크리트 공사비 1억여 원 중 재료비가 5천만 원, 인건비가 5천만 원이었는데. 재료비 5천 중에서 시멘트 비용은 채 2천만 원도 안되었다. 약 1.5천만 원이 철근, 나머지 비용은 거푸집 등 공사를 위한 부대비용이었다. 물론 간접비는 이 금액에 20~30%를 더 고려해야 한다. 즉, 총 철근콘트리트 기초타설 비용 1억 중 시멘트는 20%인 2000만 원정도였다.여기서 공사비를 줄인다는 것은 재료비만이 변수로 작용한다.&nbsp;즉, 재료비만 줄 일 수 있지 인건비를 마음대로 줄일 순 없다. 할 일의 양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실제 재료비 100만 원을 줄이면 인건비는 고정이고 간접비 30%인 약 30만 원 정도가 추가로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건축주의 딜레마가 시작되는데 면적을 줄이지 않는 한 줄일 수 있는 건 마감 재료비뿐인데 일반적으로 시공사 견적에 대해 협상과 ‘네고’를 하는 과정에서 건축주가 선택한 창호, 타일, 페인트, 가구 인테리어 비용 등을 놓고 우선순위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낮은 가격의 재료로 다운그레이드해야 한다. 그런데 눈물을 머금고 금액을 낮춰봐야 전체 공사비에서 재료비로 낮출 수 있는 한도는 매우 제한적임에 절망하곤 했다.

Read Full Story
5
Culture

[판제집] 가장 건축하기 적절한 시기에 대한 만화가의 가르침

코로나 시기에 재택근무를 하였다. 우리 회사가 그룹사 가운데 가장 빠르게 재택근무를 결정했다. 재택근무가 효율적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을 것 같다. 또한 과연 모든 직원이 전원 재택근무가 가능할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보다는 직원들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이유가 더 컸다. 고정관념을 바꿔보기로 한 것 같다. 안 되는 이유보다는 되기 위해서 무엇을 바꿔야 할지 논의해 보기로 했다. 신기하기도 절대 재택근무가 불가능하게 보였던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닭기도 했다. 어떤 부분에서는 매우 효율적이었고 어떤 부분에서는 아쉬웠지만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면 말이다.마치 세상이 망한 것처럼 모든 것이 공포였을 때 몇 가지 트렌드 변화가 감지됐다.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아내와 내가 함께 재택을 하다 보니 우리 네 식구가 함께 지내는 것이 여간 부담스럽지 않았다. 집에 사무환경을 만들다 보니 아내는 가구도 새로 구입하고 후다닥 을지로에 나가서 간접 조명 재료에 인부를 구해서 간단하지만 인테리어 공사도 수행했다.&nbsp;이때였던 것 같다. 갑자기 내가 내일 죽는다면 가장 아쉬운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지구가 내일 멸망한다면 꼭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는데.바로 제주도 집 앞마당에서 아침 향 가득한 커피를 마시며&nbsp;책을 읽는 모습이 떠올랐다.&nbsp;땅을 구매한 지 꽤 되었는데 집을 언제쯤 지을 수 있을지 예측이 되지도 않았는데&nbsp;갑자기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건축 비용은 조만간 상장할 것으로 예측되는 회사 스톡옵션으로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nbsp;생각을 했는데 문제는 건축이 완료 예정인 현재까지도 상장은 감감무소식이긴 하다.&nbsp;당시엔 바로 건축사를 만나 상담하고 계약서도 오고 가고 했지만 치솟은 건축비와 결정장애로 몇 번을&nbsp;포기해야만 했다. 그리고 건축비가 내려가거나 콘셉트가 보다 명확해지면 다시 추진하기로 했다. 혹자는 오른 자재 및 인건비는 다시 내려가지 않으니 바로 지금이 가장 저렴한 때라고 말하기도 하였다.나는 회사에서 지금껏 콘텐츠를 다루는 일을 수행해 왔다. 콘텐츠는 다양한 분야를 다뤄왔는데 근래 들어서는 웹툰을 담당하고 있어 창작자와의 접촉도 빈번했다. 특히나 내가 아주 존경하고 저명한 만화가님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겨울 때쯤 이 분이 지방으로 작업실을 이전하게 되셔서 겸사겸사 찾아뵙게 되었다. 작품 활동은 물론 다양한 사업 특히 서울에서 공간을 운영하시며 여러 후배들에게 더 좋은 환경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계셨다. 이런저런 말씀을 듣다가 요즘 내가 고민하는 질문을 드리게 되었다.“작가님, 제가 저의 로망인 제주에 집을 짓고 싶은데. 건설자재비도 많이 오르고 지금은 때가 아닌 것도 같기도 하고 언제 지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작가님은 본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서울의 해당 공간을 매입했을 시 부동산시장이 안 좋을 때라고 하셨다. 주변에서 만류하기도 하셨는데 본인이 가장 좋아했던 거리에 마침 좋은 매물이 나왔기에 바로 결정할 수 있었다고. 결과적으로도 그때 선택이 옳은 선택이 됐다&nbsp;하셨다.“무엇인가를 간절하게 하고자 할 때가 가장 적절한 시기가 아닐까요?”그때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 있었다. 미래에 건축비가 내려갈지 오히려 올라갈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본인이 하고자 하는 마음이 충만하다면 당시의 결정이 어떻든 미래에 가치 있는 것으로 바꾸어 나가는 건 본인의 역량일 것이다. 그동안 마음속에 무겁게 자리 잡았던 무엇이 뚫리는 기분이었다. 결론적으로 작가님이 구입한 공간(건물)은 작가님의 로망대로 운영되고 있어 그 어떤 물질적 가치보다 더욱 값어치 있을 것이다.&nbsp;작가님은 바램은 완성이 아닌 현재 진행중이었고 그 최종 꿈은 더욱 더 커 보였다.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고 그것을 실현할 용기가 있다면 미래도 나의 길을 올바르게 인도하지 않을까.&nbsp;이때를 기점으로 제주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Read Full Story
6
Culture

[판제집] 길거리에 돈 버리는 세컨드하우스 - 공간에 대한 만족감과 끝없는 욕망

내가 제주에 집을 짓겠다고 하면 대부분 질문이 제주에 내려가서 살 것이냐고 묻는다. 아내 하고도 이 문제에 대해 논의했는데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가족 전체가 내려가긴 어려울 것이라 판단했다. 제주 공간은 일명 세컨드하우스로 자주 오가는 공간이 될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주변 사람들은 길거리에 돈을 버리는 행위다. 전원주택이 얼마나 팔기 어려운지 아느냐. 두 집 살림은 비용이 두 배로 든다는 둥 걱정을 말하곤 했다. 하지만 나에게 롤모델이 존재한다.회사가 합병으로 판교로 옮기기 전 한남동에 있었는데 바로 직전 H대 서울캠퍼스에 일부 사무실이 있었다. 이곳에는 마케팅과 디자인 부서 등 말랑말랑한 부서가 있었는데 난 마케팅 직군이라 당시 새롭게 건축한 이 대학 건물에 입주했었다. 당시 상암동 쪽에 살고 있어서 출퇴근 시간이 줄어들어 개인적으론 만족스러웠다. H 대는 입점업체 직원들에게 교직원에 준하는 다양한 혜택을 주었는데 교수식당도 애용할 수 있고 체육시설도 이용할 수 있었다. 지금은 없어진 학교 수영장을 입점업체 할인을 받아 이용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운동을 마치고 수영장을 나오는데 도사 같은 직원 어르신께서 갑자기 말을 붙이셨다.“자네 혹시 검도를 해 볼 생각이 있는가”검도? 그렇게 나의 검도인생이 시작되었다. 이 대학 사무실은 그 후 회사가 한남동에 큰 건물을 임대하면서 양재동과 대학 사무실을 통합하여 모두 이전하게 되었지만 H대 교검회 인연은 2010년부터 현재까지 약 15년 이상을 이어져오고 있다. 특히, 교검회는 이 학교 교수 및 직원 등이 소속되어 매일 아침 합동 운동을 했는데 이곳에 건축과 교수님들은 물론 졸업생들도 있어 자연스럽게 건축을 접하고 이들과의 교류가 가능하여 나에겐 행운이었다. 나는 검도도 열심히 수련했는데 3단 승단 시험을 앞두고 회사에서 안식휴가 4주 동안 매일 수련하여 승단에 통과하기도 하였다. 나중에 회사 합병 후에도 거의 매일 운동하고 판교까지 출근하는 일은 여간 고역이 아니었는데 많은 사람이 놀라긴 했던 것 같다. 출근 시간이 비교적 자유스러워서 가능했을 수 있다.&nbsp;검도회 교수님들 중에는 세컨드하우스를 가지고 계신 분들이 있어서 이 분들의 라이프 스타일이 언제나 부러웠던 것 같다. 특히 한 교수님은 서울, 강원도, 남해안에 개인 공간을 두시고 세 곳을 번갈아 다니며 생활하셨다. 미술을 전공하신 분 답게 세컨드하우스 모두 감각이 대단하였다. 내가 제주에 세컨드하우스를 짓는다고 하니 교수님과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직접 본인의 세컨드하우스로 초대도 하셔서 가족들과 함께하기도 했다. 교수님은 “한 곳에서 사는 것보다 계절에 따라 다양한 곳에서 사는 삶이 나름 행복하다”고도 하셨다.&nbsp;물론 단점도 존재한다고. 커피 머신도 최소 4개 - 교수님 작업실도 따로 있으시다-를 갖춰야 하는 등 생활비가 최소 2~3배가 더 들기도 한다. 또한 몇 시간씩 운전을 하며 이동하는 것이 약간 부담이긴 하지만 -요즘엔 KTX도 잘되어 있어 자주 애용하신다고-언젠가 자율주행이 현실화되면 물리적 거리는 큰 문제가 안 될 것이며 보다 만족할 만한 공간에서 사는 것이 더 중요한 때가 올 것이라고&nbsp;하셨다.&nbsp;특히 최근 지구 온난화가 심해지고 있는데 강원도 용평은 서울보다 10도 이상이 온도가 낮아 미래의 주거 대안이 될 수도 있다고 하셨다. 강원도의 자연환경과 평창 동계 올림픽 인프라를 저렴하게 활용할 수 있는데 겨울엔 크로스컨츄리, 여름엔 골프 등 끊임없는 자기 수행이 가능하다고 자랑이 끊이지 않으셨다.&nbsp;집 앞마당에서 남해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교수님의 세컨드하우스 전경교수님의 남해안 주택은 멀리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의 집이다. 내가 전 세계에서 본 집들 중 최고의 경치를 자랑한다. 교수님은 정원도 손수 가꾸시고 내부 인테리어 가구도 조립하시는 등 하루하루가 허투루 지나치는 날은 없어 보였다. 은퇴 후에는 더욱 집 가꾸기에 매진하고 계셨다.“자네 제주 프로젝트&nbsp;다음은 강원도 용평이네.&nbsp;여름에 지낼 곳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공간에 대한 만족감과 끝없는 욕망.&nbsp;어쩌면 나의 제주 프로젝트는 마지막이 아니라 시작일지도 모르겠다.&nbsp;

Read Full Story
7
Culture

[판제집] 내가 4년만에 제주를 떠난 이유

이미 나는 제주에서 살아본 적이 있다.&nbsp;내가 다니던 회사는 2003년 전격적으로 제주 본사 이전을 결정했다. 당시 메일과 카페로 유명한 IT기업에 다니고 있었는데. 어느 날 우리 부서 보스가 모든 인원을 다 불러 모아 어차피 가야 된다면 제일 먼저 가자며 본사 이전의 프런티어가 되자고 독려했다. 벌써 20년도 더 지난 일이니 기억이 가물가물하기도 한데 그때 몇몇 여성 동료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던 것 같기도 하다. 난 이게 무슨 상황인지 한동안 얼떨떨하기도 했는데&nbsp;시간이 좀 지나서 걱정보다는 말 그대로 아직은 혼자(싱글)이니 재미있는 도전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nbsp;회사는 파격적이고 진심 어린 지원을 해주었다. 갑자기 바다 건너 섬에서 근무를 해야 한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정확한 의미를 알지 못했다. 누구도 경험 못한 일이었을테니. 간단한 짐을 가지고 내려갔던 제주에서의 첫날밤을 잊지 못한다. 저녁 달빛이 무척이나 밝았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도 모르겠다. 회사 근방이긴 했는데 회사가 어느 방향에 있는지도 몰랐고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하기만 했다. 잠은 오지 않았으나 머리는 맑고 상쾌했던 걸로 기억한다.아침에 윈드서핑을 하고 출근하기도 했다업무 집중도는 매우 높았다. 딱히 일 이외에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밤에는 아는 사람도 아는 곳도 없기에 회사 동료들과 끼리끼리 모여 술을 마시는 것이 일상이었다. 팀원들은 가족과 같았다. 회사가 사전에 좋은 계약조건을 협상-회사는 직원들에게 체류비에 해당하는 지원금을 매월 지급하였다. 사실 회사에서 세끼 식사를 제공했기에 이 금액으로 한 달 생활이 가능할 정도였다-하여 모두들 같은 동네의 2~3군데 원룸에 분산되어 살았다. 마치 기숙사에 있는 것 같은 느낌으로 각자 방을 돌아다니며 매일 밤 술자리가 이어졌다. 제주의 정보는 주로 제주 이전 후 신규 채용된 동료를 통해 얻곤 했는데 휴식 시간이면 동료들을 둘러싸고 질문을 쏟아내곤 했다.&nbsp;“현지 사람들이 자주 가는 가장 핫한 술집은, 제주 젊은 사람들이 주로 소개팅하는 장소는, 저렴한 가족들이 자주 가는 바닷가 횟집은, 제주엔 없어 보이는 패밀리 레스토랑 느낌이 나는 식당은, 중고가전 및 가구를 구하는 방법은?”&nbsp;각자 제주에서의 생활정보 등을 찾고 교환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재료를 함께 구매해 나눠 갖기 일 수였다. 솜씨 좋은 동료는 직접 반찬을 만들어 나눠주기도 했다. 당시에 위키나 공동 작업할 수 있는 작업도구들이 발달했다면 더욱 효과적이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결혼을 한 동료들은 대부분 일단 혼자 내려와 있었다. 당장 가족이 내려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점차 가족이 내려오면서 회사 사택이 부족해졌고 제주 시내 아파트 전세에서 자리를 잡는 가족도 늘어났다. 당시 회사는 제주 빈집이 2000여 채나 된다며 집을 구매하는 것은 보수적으로 임하라고 제안했다. 이때 전혀 적응을 못 하거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극소수의 동료는 부서를 옮기거나 퇴사를 하기도 했다.제주는 참 추었다제주 이전 초기에 시내 영어회화학원에 등록했다. 공부에 대한 열망보다는 사실 제주 분들을 만나고 싶다는 의지가 더 강했다. 관광산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많아서인지 면세점에 근무하는 분들이 많아 보였다.&nbsp;더욱이 젊은 제주 친구들을 사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아침반을 선택한 후 기대는 여지없이 깨졌다. 아침반에 젊은 친구들은 거의 없었다. 실망도 잠시 아침반에서 너무나 좋은 제주 분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처음엔 무뚝뚝하고 차가워보였던 사람들이 마음을 여니 너무나 따뜻한 분들이셨다. 그들은 내가 제주에 잘 적응할 수 있겠끔 저녁 모임을 자주 가져주셨다. 독특한 제주만의 지인 결혼식에도 초대해 주셨고 한라산 등반도 같이 해 주시고 겨울이 춥다고 하니 집에 있던 난로까지 가져다 주셨다. 집 구하는데 제주의 역사적 풍수지리까지 설명해 주셨다. 지금도 그들의 친절과 배려를 잊을 수 없다. 나는 거의 유일하게 퇴근 후 약속이 있는 직원이 됐다.&nbsp;간혹 제주가 예전의 귀향지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누구에게나 여기서 평생 살게 되는 걸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나중에는 제주에서 근무하고 싶은 사람들이 줄을 섰지만 당시 처음만 해도 그렇지 못했다. 몇 년이 지나서 적응하고 정보가 충분하게 쌓이고 그리고 가족들의 새로운 삶이 펼쳐지면서 만족도가 높아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솔로들에게 제주는 거친 곳이기도 했다. 정보와 트렌드에서 소외되고 뒤쳐지는 느낌이 나기도 했고 당시까지 스타벅스는 제주에 없었다. 어느 날 야근하다 스타벅스 커피가 너무나 먹고 싶어 당시 중문에 유일하게 있었던 ‘시애틀’ 에스프레소 전문점에 야근하다가 1시간가량 차 몰고 가 팀원들 커피를 배달해 오기도 했었다. 제주시내에도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 한 곳 있었는데. 기본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시럽이 들어가 있어 충격 먹었었다. 내가 시럽 빼달라고 안 했다는 이유로. 당시 여긴 시럽이 디폴트였다.6개월쯤 제주시내 원룸에 살다가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영화에서만 보던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었다. 이때부터 모험심 있는 직원은 산으로 바다로 이사를 떠났다. 허나&nbsp;그 수가 많지는 않았다. 주말마다 집을 보러 다녔는데 제주의 특성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이사하는 연초 ‘신구간’이 아니면 물량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서귀포 등도 알아보기도 했는데 회사가 제주시라니 집주인이 말리기도 했다. 여기 살던 사람이 제주시에 직장을 얻어 나갔다고 어찌 제주시까지 출퇴근을 하냐고 하셨다. 서울에서 출퇴근은 왕복 2시간 넘는 게 기본이었는데. 제주는 한라산을 넘는다는 게 정신적으로 물리적으로도 큰 벽으로 느껴지나 보다. 물론 나도 이제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만. 내가 구한 집은 동쪽 조천의 단독주택이었다. 중산간에 위치했는데 주변은 귤밭이었고 조용하고 경치 좋은 곳이었다. 주인집은 옆에 함께 살았고 과거 펜션을 했던 4개 동을 ‘연세’-제주의 가장 일반적인 주거계약형태. 전세나 월세가 아닌 1년 치를 한꺼번에 낸다-를 주고 운영하고 있었다. 저녁때면 다른 동에 사는 분들과 술자리도 이어졌는데 하나 같이 육지를 떠나온 사연들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렇게 서로의 사연을 듣고 치유하고 한 분씩 다시 자신의 자리로 떠나곤 했다.당시 살던 중산간 조천집. 지금은 재건축으로 남아있지 않다.꿈같은 1년이 지나고 나도 중산간과 제주의 매서운 겨울을 경험하고 살기가 너무 험난하여 바닷가 쪽으로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눈이 많이 오는 날에는 집에도 못 가고 집에 있으면 나올 수 없는 날도 있었다. 이후 바닷가 쪽이 중산간보다 상대적으로 따뜻하다는 것을 깨닫고 나는 함덕해수욕장에 자리를 틀었다. 이곳에서는 주인집 할머니가 사시고 맞은편 별채에 내가 살았는데 손자처럼 너무 잘 대해 주셨다.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앉고 나는 가스보일러가 있는 제주시 삼양해수욕장으로 옮겼다. 제주는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고 LPG 가스보일러를 쓰는데 이는 도심이나 신축의 경우고 아직 시골 쪽에는 기름보일러가 일반적이었다. 남들은 작은 기름차가 와서 한 드럼씩 넣는다고 하던데 왠지 큰돈 나가는 것이 싫었던 것 같다. 20리터 통 하나를 넣으면 1주일 정도 지낼 수 있었다. 처음에 한 통을 넣고 냉방에 이빠이&nbsp;보일러를 틀고 다음날 새벽에 엔꼬가 나서 놀란 적도 있다. 이때부터 겨울에 집을 비울시에는 보일러를 끄기보다는 제일 약하게 틀고 간다. &nbsp;겨울에 주말마다 기름통을 들고 한밤중에 기름 사러 다니는 것이 너무 애처로웠다. 추억이라면 추억이지만 제주의 겨울은 언제나 힘겨웠다. 제주살이 4년째 시내로 들어오니 시골 같은 낭만과 인연은 없었던 것 같다. 생활은 편리해졌지만 나는 단절되었다. 바다를 홀로 걷곤 했는데 그맘때쯤부터 바닷가에 새로운 카페들이 새로 생겨났던 것 같다.주말이면 제주 동쪽의 깊은 오름을 등반하며 바람과 대화하고 바닥에 누워 하늘을 보곤 했다. 어느 날이었다. 매서운 태풍이 지나간 다음날 그날도 홀로 오름에 올랐다. 나비가 살포시 내 어깨에 앉는 것이 아닌가. 그때의 충격은 또 잊을 수 없었다. 자연과 동화가 된 나는 이대로 결혼도 못하고 지구 표면에 찰싹 달라붙어 사라질 것 같은 공포감 같은 것을 느꼈다. 뒤처지는 건 아닌지. 아직 젊다고 생각했는데 생활에 안주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같이 근무했던 직원의 죽음 소식이 들려왔다. 회사에서 가장 어린 직원이었다. 당시 역사적인 태풍의 위력으로 급격하게 불어난 하천물에 자동차채로 휩쓸려 갔단다. 자연의 공포를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nbsp;제주는 살기엔 힘겹고 가끔 와서 만끽해야 하는 곳이라 생각했다. 젊은 땐 치열하게 살고 늙어서 다시 돌아오기로. 그것이 내가 제주에 대한 감정이었다.&nbsp;제주를 떠나 서울 조직으로 부서를 옮겼다. 2006년 겨울 제주로 이주한 지 4년 만이었다.

Read Full Story
8
Culture

[판제집] 챌린지가 아닌 힐링이 될 수 있도록 - 아이들이 무엇을 느꼈을까

사실 제주도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있었다.&nbsp;그건 바로 아내의 공감과 승낙이었다. 아내는 언제나 나를 존중하면서 많은 부분 동의해 주었지만 제주 건축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당장 그 많은 건축비는 어떻게 충당할 것이며 설령 집을 짓더라도 내려가서 살지도 않을 텐데 왜 무리를 해서 추진하느냐였다. 사실 아내의 동의 없이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나는 나의 바람이자 로망의 실현임을 설득했는데 아내는 그건 알겠는데 그걸 지금 당장 추진하는데 회의적이었다. 나는 아내와 제주 땅에도 가보고 가족 제주 여행 때 관련자들도 만나면서 차근차근 마음을 열도록 하였다. 나중에 아내에게 언제 건축에 대해 마음을 열었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몇 년 전 건축에 대해 물어보려고 아이들과 함께 옆집에 방문한 적이 있잖아. 거기에 쿠팡 배달이 오고 유치원 통학차량도 오는 것을 보고 여기가 오지는 아니구나 싶어서 집을 지어도 될 것 같다고 생각했어”때로는 작은 사유 및 현장감이 타인의 마음을 바꾸는데 의외의 역할을 할 때도 있다. 아내에게 역할을 부여했다. 나는 전체적인 콘셉트와 인허가 그리고 공사비를 담당하고 세부 디테일한 부분은 아내에게 일임했다. 특히 인테리어에 대한 부분을 전적으로 일임했는데 아내는 마다하지 않았다.&nbsp;“블랙계열의 차가운 느낌보다는 따뜻한 밝은 색깔의 인테리어나 가구가 좋을 것 같아. 비용 이슈도 있으니 전체는 아닌 일부 포인트에는 좋은 원목을 사용했으면 해. 당신의 로망인 자쿠지는 관리 이슈로 히노끼를 깔 수는 없을 테고 이태리제의 히노끼 스타일 타일을 깔아주도록 하지. 힐링의 최고봉인 1인 암체어는 어떤 제품으로 할까. 한정된 예산에서 가장 알맞은 제품을 찾아봐야지!”외국계 IT 기업을 다니고 있는 아내는 여기에 ‘사물인터넷 (IOT)’ 기능까지 도입하여 서울에서도 집을 제어할 수 있는 부분까지도 고민을 하였다. 아무래도 세컨드하우스가 된다면 원격으로 방범, 온도, 습도 등 공간을 원격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었는데 이 부분도 나보다 훨씬 뛰어났다.&nbsp;“중국산 제품들은 가격은 저렴하지만 우리나라 규격이나 시스템 연동에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 그래서 국내 업체를 찾다가 괜찮은 업체가 있어서 장비 협찬을 해달라고 요청해 놓았어!”아내는 이를 위해 부랴부랴 공간에 대한 우리 인스타 계정을 개설하여 집 짓는 과정을 업데이트하기로 했다. 당시 팔로우 숫자는 한 자리 숫자였는데. 기대했던 협찬을 이뤄지지 않아 실망한 기색이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전투적인 모습은 결혼 전에만 볼 수 있었는데 그 모습으로 변신하기도 했다. 아내 회사는 당시 스트레스 강도가 높아진 듯 보였다. 많이 지쳐 있다 생각했는데 인테리어 관련 자료 수집이나 검토 때는 눈이 반짝거렸다. 많이 피곤해도 알맞은 콘셉트이나 자료를 검색할 때는 밤을 새우기 일 수였다.고통스러울 것 같고 멀게만 보였던 제주의 프로젝트가 점점 구체화되어 가면서 우리는 이것을 통해 감히 해방감과 힐링을 느낄 수 있었다. 생활의 각종 현실에서 미래의 우리 보금자리를 꿈꾸며 설계하는 순간엔 다른 어느 걱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우리 집은 EBS의 ‘건축탐구 집’을 보고 건축 기법과 인테리어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것이 일상이 됐다. 건축 비용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유튜브에는 스스로 집을 수리하고 작은 공사도 구체적으로 할 수 있게 하는 동영상이 넘쳐나고 있다. 외장재 시행은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 단열재는 일체형인지 분리형인지. 전혀 몰랐던 건축기법 등을 우리 설계도와 비교하면서 무엇이 최신 트렌드인지도 비교해 보았다. &nbsp;아이들과도 자신이 원하는 공간과 또 다른 대안인 제주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곤 한다.&nbsp;나 : “제주의 공간은 어떤 부분이 반영됐으면 좋겠어?”초등 딸 : “동물들과 함께 살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어”중등 아들 : “잠을 자는데 방해받지 않았으면 좋겠어. 마당에서 충분히 생활할 수 있으면 해”물론 이들의 제안이 충분히 반영하기엔 현실적 제약이 많이 따랐다.나 : “만약 우리가 제주로 이사 간 다면 기대되는 부분은 무엇이야?”초등 딸 : “학원을 안 다녀도 되지 않을까. 방과 후에 바다에 나가서 놀면 좋겠어.”중등&nbsp;아들 : “제주에 학원이 없어? 놀거리가 많았으면 하는데”경쟁 위주의 교육 현실에서 꿈을 실현시키고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이야기하는 기회는 아이들에게도 많은 고민을 할 수 있게 하지 않을까 한다. 첫째가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 강남으로 이사 왔는데 강남의 학구열은 무섭기까지 했다. 최대한 강남의 시스템에 도전해 보겠지만 꼭 이 방식이 유일한 방식이 아님을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다. 특히나 이를 통해 꿈을 실현해 나가는 것이 남들의 기준에 맞춰진 삶을 사는 것보다 더 가치 있음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어쩌면 우리는 이 과정을 통해서 구성원 간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으며 가족이 함께 한다는 건은 무엇인지 자기만의 독립된 공간은 어떠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사회가 하나의 방향으로 무작정 흘러가고 있을 때 우리는 한 발 떨어져서 무엇이 더 중요한지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길 바랐다.

Read Full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