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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뇌의 기술

Curated byMatMatch T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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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치과를 가서 처음으로 스케일링을 받았는데 처음 느껴보는 고통이 느껴졌지만 그 고통은 오래가지 않았다. 나에겐 고통을 승화시키는 나만의 스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바로 내가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 파라솔에 파란 하늘을 보며 누워있는 상상이었다. 당시 가장 즐거운 생각을 해보기로 했는데 바로 떠오른 것이 바로 하와이였던 것 같다. 그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인생에서 고통스러운 순간에 가장 행복한 생각을 한다면 어떨지. 인생의 모든 순간을 다른 무엇으로 세뇌시킨다면 그 인생은 어떻게 흘러가게 될까. 세뇌란 부정적인 단어가 아닌 어쩌면 우리를 구원할 새로운 뜻으로 쓰여야 하지 않을지. (2025년 브런치 연재)

# 멘탈갑# 긍정적사고# 행복론# 세뇌의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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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뇌의 기술 1화] 당신도 멘탈甲이 될 수 있다

최근들어 인간의 몸과 마음은 더욱더 나약해지고 병들어 가고 있음을 느낀다. 풍부한 먹거리에 우리의 몸은 과다 영양으로 신음하고 있다. 기술의 급격한 발달로 인하여 인간성 상실, 물질 만능주의 그리고 과격한 경쟁에 마음이 점점 병들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날카롭고 차디 찬 현대 사회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인지. 태풍 같은 외부 시련에 방향성을 잃지 않고 나아가는 자신만의 노하우는 무엇인지 궁금했다. 나도 이러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음에도 번번이 쓰러지지 않고 한 발 한 발 앞으로 전진했던 나만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었다.나는 심리 전문가는 아니다. 그 흔한 심리학 책 한 번 읽어보지 않았다. 너무 이론적인 얘기를 읽으면 바로 싫증이 나기도 했다. 크게 성공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나는 그냥 ‘멘탈 부여잡기’가 취미이자 특기였다. 멘탈 부여잡기의 핵심은 강함이 아니라 유연함이라고 생각한다. 강하면 꺾이기 쉽다. 오뚝이처럼 벌떡벌떡 일어날 수 있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병원을 멀리했던 것 같다. 크게 아프거나 입원을 했던 적도 한 번 없었다. 아주 튼튼하거나 건강하지도 않은데 말이다. 오래전 치과를 가서 처음으로 스케일링을 받았는데 처음 느껴보는 고통이 느껴졌다. 나중에 입속 가득 고여있는 이물질을 뱉었을 때 많은 피가 섞여 나왔다. 그런 것에 비하면 나의 고통은 그리 크지 않았었다. 나에겐 고통을 승화시키는 나만의 스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나는 당시 고통을 즐거움으로 승화시킬 무엇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건 바로 내가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 파라솔에 파란 하늘을 보며 누워있는 상상이었다. 그 해변에서 차갑고 청량한 하와이안 맥주 한 모금을 쭉 들이키는 상상까지 했다. 당시 가장 즐거운 생각을 해보기로 했는데 그때 떠오른 것이 바로 하와이였다. 치과의 창문을 통해 볕이 내 얼굴을 간지럽혔다. 여긴 하와이다. 고통보다 더 한 꿈의 세계로 나아가 갔다. 내 입속에 치료를 위한 물과 액체를 빨아드리는 호스가 시끄러웠지만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빨리 치료가 끝난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그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인생에서 고통스러운 순간에 가장 행복한 생각을 한다면 이 고통도 느껴지지 않을 수 있을까. 인생의 모든 순간을 다른 무엇으로 세뇌시킨다면 그 인생은 어떻게 흘러가게 될까. 나는 나를 끝임없이 세뇌시키기로 했다. 세뇌란 부정적인 단어가 아닌 어쩌면 우리를 구원할 새로운 뜻으로 쓰여야 하지 않을지. 나에게 체면을 걸듯 내가 살아가면서 되뇌이는 몇 가지 원칙을 정리해 봤다.지금 이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필자 본인이 연재하던 <브런치> 글을 제 편집해서 추가적으로 연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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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법칙 : 신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

사회 초년생 시절. 나는 벤처기업에서 공공기관이나 민간업체의 전산시스템을 구축해 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이때는 간절히 바라면 이루지 못할 일은 없다고 믿었다. 실제로 각종 경쟁 PT, 경쟁입찰 등 나는 내가 꼭 이루고 싶은 일에서 한 번도 미끄러진 적이 없었다. 오히려 승승장구했다. 그 후 몇 년이 지났다. 그때도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저 일을 꼭 수주하고 싶었다. 그 회사는 중견 무역회사였다. 지금까지는 대부분 전화나 팩스 등 수작업으로 업무를 진행했는데 이제는 인터넷으로 업무를 처리하고 싶다고 했다. 업무의 난이도가 높지는 않았지만 상품의 종류가 다양했고 실제 자금의 입출금을 확인해야 하는 등 까다로운 부분도 존재했다. 당시 다니던 회사가 어렵기도 했는데 수주한다면 회사에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당연히 나의 승리가 될 줄 알았는데 그만 최종 선정에서 탈락했다. 순간 어지러울 정도의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상대방 회사에서 저가로 밀고 들어와 수주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나는 신-나는 당시 별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을 원망했던 것 같다.“하늘이시여, 진정 이렇게 최선을 다하고 간절히 바라도 안 되는 일이 있는 건지요?”그리고 얼마간 시간이 지났다. 그 날은 어려운 회사의 돌파구가 보이지 않아 무작정 길을 걸었다. 걷다가 우연히 상대방 경쟁 회사의 담당자를 만나게 되었다. 나는 그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고 안부를 물었다. 그의 얼굴은 까맣고 긴 한숨이 배어 있었다. 그는 내게 그 프로젝트를 수주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프로젝트 범위가 매우 넓어 그 비용으론 적자가 불가피하다고 했다. 오히려 나에게 그때 수주하지 않은 것이 행운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는 비아냥이나 가식적인 면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깊은 빡침과 나에 대한 부러움이 느껴졌다. 그리고 혼자 되뇌었던 것 같다.“하늘이시여, 당신은 내가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게끔 나를 희망의 세계로 인도하신 건가요? 당신은 진정 저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선견지명으로 그 거대한 위험으로부터 저를 구원해 주신 건가요?”몇일만에 신에 대한 나의 태도가 이렇게 극과 극으로 바뀌다니 한편으론 내가 한심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 참으로 우스운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내가 처음부터 이런 태도를 취하고 냉정하게 대처했다면 타격감에 휘청이지도 답답한 마음에 길거리를 헤매지도 그리고 술이나 담배에 의존하지도 않았을 것이다.“신은 언제나 내가 잘 성장하게끔 때로는 시련을 때로는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도록 언제나 생각해 주시고 있는 것은 아닐지”모든 선택과 결과의 상황에서 나의 미래는 밝고 신은 언제나 나의 편이라고 생각한다면 실망할 일도 기뻐하고 자만할 일도 없을 것이란 생각. 언제나 자신을 이렇게 세뇌시킨다면 스스로를 자책하며 아파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이것이 세뇌의 제1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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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법칙 : 해답은 본인이 알고 있다

다시 나의 20대인 사회초년병 시절의 이야기다. 나는 당시 짝사랑하던 여인이 있었다. 예쁜 추억을 만들어 가고 있었으나 언제부턴가 급속도로 건강이 나빠지고 있었다. 음식을 먹으면 자꾸 구토를 했고 살이 계속 빠지고 있었다.  그녀는 정말 드라마처럼 급성 백혈병에 걸려 입원을 했고 나는 언제쯤 문병을 갈지 웃으면서 통화를 하기도 했지만 입원을 한지 채 2주도 안되어 하늘나라로 갔다. 당시 나름 처음 겪어보는 가까운 이의 죽음이었다. 그녀의 수첩에 나의 연락처가 적혀있지 않았다면 그 작은 수첩을 그녀의 친구가 발견하지 못했다면 난 그녀의 죽음에 대한 소식조차 들을 수 없었을지도 몰랐다. 그날 나의 삐삐 메시지에 그녀 친구의 음성이 남겨져 있었다. 그녀 죽음을 알리며 그녀의 친구는 흐느끼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절친을 알고 있었다. 물론 얼굴을 본 적은 없었지만 그녀가 제일 많이 언급하던 친구라 생각된다. 그녀의 친구도 나를 알고 있었을까.그녀의 장례식장을 찾아갔을 때 그녀의 영정사진을 봤다. 나에겐 사진 한 장 남겨지지 않았는데 그녀는 그곳에서 웃고 있었다. 현실에도 인터넷을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그녀는 나에게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는 존재가 됐다. 다음날 벽제 화장터까지 따라갔다. 그녀의 하얀 잿가루는 화장장에 위치한 ‘유택동산’이란 언덕에 뿌려졌다. 그 후 나는 가슴이 답답하거나 그녀의 기일인 1월이 되면 매년 그곳에 가곤 했다. 1월이라 언제나 추웠고 날씨가 매서워지면 그녀 생각이 나곤 했다. 참 이상했는데 그 언덕에 멍하니 홀로 서있으면 자연스럽게 그녀와 대화가 가능했다. 그곳도 이제 여러 번 리모델링을 거치며 많이 변했지만 주변 나무에 앉아 있던 새소리 등은 변함없이 재잘거리고 있었다.“오랜만이네. 어떻게 지냈어?”“응 오랜만이야. 하늘에서 날 계속 지켜본 거 아니야? 다 알 거 아니야”“하하. 나도 여기서 바빠. 여기서 만나는 고마운 사람도 많고 이렇게 새들이랑 꽃들과도 대화해야 하고”“바쁘구나. 이제 우리도 서로를 서서히 기억 못 하게 되겠지?”“오늘 왜 이래, 다시 센치해졌네, 무슨 일 있어?”그때는 항상 뭔가 가슴이 답답했던 것도 같다. 뭔가 약해 보이고 나 자신이 한심스러울 때도 많았던 것 같다. 언제나 중요한 선택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이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도 또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할지 몰랐던 것 같다. 차마 말을 못 했지만 나의 마음속에 한가득 있던 커다란 고민의 덩어리를 눈치챘을지도.“뭘 그렇게 고민해. 지나고 보면 별 것 아니겠구먼. 재미있어? 재밌을 것 같아? 그럼 된 거잖아!”그녀는 언제나 나에게 해답을 준 것 같다. 그곳에 있으면 그녀 특유의 억양과 말투가 느껴졌다. 그녀는 언제나 쿨했다. 그리고 항상 나에게 ‘재미있는지’를 물었다. 나는 그때마다 내가 잊고 있었던 그 ‘재미’에 대해 떠올리곤 하였다. 마음속에 한가득 갖고 간 큰 바위 같은 고민은 그 ‘재미’라는 관념에 산산조각이 났다. 모든 문제는 재미있냐 없냐로만 생각하면 됐다. 실제로 그녀가 하늘나라에서 대답을 해줬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그냥 그곳에 하염없이 서있으면 대화가 가능했다. 그녀의 대답이었는지 아니면 잊혔던 나의 가슴속에 가라앉었던 나의 해답이었는지 나도 모르겠다.“이제 자주 오지는 못 할 것 같아. 사랑하는 가족이 생겼고 곧 아이가 태어날 것도 같아. 예전처럼 당신을 생각하지는 못 할 것 같은데 이해해 줄 수 있지? 각자 자리에서 생활하다가 우린 곧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겠지. 그때까지 잘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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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법칙 : 노력이 아니라 운이다

나의 주변엔 성공한 사람이 한 명 있다. 정확히 말하면 그분은 아내의 가까운 친척이다. 옛날부터 집안에서 공부 잘하기로 소문난 분이셨고 젊은 시절 사업을 시작했는데 지금은 성공하시어 어엿한 코스닥 상장기업 대표님이 되셨다. 더군다나 나의 대학 1기 선배님이시니 가끔 맞이하는 가족행사 때마다 마주치면 인사를 드리곤 했다. 특히나 그분의 가까운 동기 친구가 나의 동아리 선배이기도 했으니 볼 때마다 다른 친척분들과는 다른 연대의식 같은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그분의 사무실이 같은 판교이기에 볼 때마다 밥이나 한 번 먹자는 얘기는 계속 나왔으나 그 말은 한국인들의 일반적인 특징인 인사치레 같은 것으로 생각했다.회사는 언제나 성장에 목말라 있었다. 회사가 역성장하지는 않았지만 너무나 높은 목표를 지향하고 있어 나는 일에 언제나 허덕이고 있었다. 회사는 무언가 특별한 전략을 요구했고 뼈를 깎는 노력과 열정을 요구하고 있었다. 특히나 내가 아는 한 우리 대표는 회사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분이셨다. 그분의 열정과 지략은 감탄을 자아냈고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그의 장점을 빠르게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그런 그의 모습과 나 자신을 비교해 보면 나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내 안의 열정은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어떤 회사던지 현상유지는 성에 차지 않는가 보다. 회사는 마른 수건을 짜내듯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기대했다. 내가 문제가 있는 건지 점차 지치며 고민이 많을 때였다. 그때 그 선배님이 생각이 났다. 그리고 바로 카톡으로 면담을 요청했고 그렇게 갑작스럽게 점심 회동이 성사된 것이다.점심시간이 거의 다 되어 슬슬 걸어서 선배님 회사 쪽으로 걸어갔다. 회사 안내데스크에서 안내를 받아 선배님의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선배님은 반갑게 반겨주셨고 차를 내오도록 요청을 하셨다. 이렇게 점심시간에 나름 대표의 방에 나란히 앉아 있으니 색다른 기분이 들었다. 여러 간단한 현황 토크가 오갔던 것 같다. 그러다 나는 갑자기 잡지사의 기자처럼 인터뷰 자리로 상황을 변모시켰다. 선배님도 재미있으셨는지 어떤 질문이라도 해보라고 하셨다.나는 지금의 나의 상황을 설명드렸고 결국 열정이 없는 사람은 성공할 수 없는건지. 왜 성공한 사람들의 자서전이나 인터뷰에는 뼈를 깎는 노력과 지치지 않는 열정 그리고 성공에 대한 욕망이 있어 보였는데. 당신의 성공의 비결은 무엇인지 물었다.“운이지 뭐.”너무나 싱거운 대답이었다. 나는 더 답변할 것이 없는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고 선배는 이어서 좀 더 설명을 해주셨다.“열정이 있다면 성공할 확률이 더 높을 순 있을 텐데. 열정이 있다고 성공할 수 있다면 성공하지 못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냥 내가 성공을 한 것 같은데 지나고 보니 내가 그 자리에 있더라고. 실력이 아무리 좋더라고 결국 좋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때를 만나는 건 열정과는 상관이 없는 것 같아”물론 운이란 것도 준비한 자만이 잡을 수 있다는 말을 알고 있다. 언제 성공을 잡을 수 있을지 모르는데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건지 기다리는 사람은 지칠 수도 있겠다. 그날은 평일 오후였던 것 같다. 업체와의 미팅을 위해 압구정 어디쯤을 걷고 있었다. 그때 난 그곳의 수많은 카페에 잘 차려입고 멋진 젊은 친구들이 유유자적 티타임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거리를 달리고 있는 값비싼 외제차들을 봤다.“나는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나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도 없는데. 지금 이 시간에 외제차를 끌고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는 이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 거지”절망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나 역시 인생에서 한 번의 기회가 왔던 것 같다. 당시에는 그것이 기회였는지도 몰랐고 어쩌면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이 결과적으로 좋은 기회였는지도 잘 모르겠다.오래전 회사 주식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다니던 부서가 분사를 하고 나는 규모가 훨씬 작은 자회사로 옮겨지는 과정이었는데 당시 옮기는 회사 주식을 시세보다 10% 할인된 가격으로 살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나는 무척 실망했었다. 회사 직원들에게 아주 싸게 팔 수도 있을 텐데 10%밖에 안 깎아주다니. 회사는 열심히 일해서 회사의 가치를 올려보라며 회사의 가치가 올라가면 주식 가치도 따라 올라가게 돼있다고 설득했다. 또한 터무니없이 낮게 주식을 제공하면 그것도 법적인 문제도 있다고 얘기했던 것 같다. 분사 당시엔 주식 매수의 매력이 크게 다가오지도 않았을뿐더러 그것 때문에 자리를 옮긴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냥 더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 곳이라 판단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주식은 한동안 잊혀졌다. 결과적으로 그 주식의 가치는 그 후 엄청나게 상승했다. 주식 시장이 좋을 때는 나도 큰 돈을 벌었다고 생각했지만 이내 최근같이 주식 시장이 좋지 않을 땐 실망하기도 한다. 아직 현금화시키지 않았으므로 내가 좋은 기회를 가졌다고 단정짓긴 어렵긴하다.“운이란 이런 건가? 성공이란 잡으면 잡으려 할수록 더욱 멀어지고 마음을 비우고 그저 최선을 다 한다면 운 좋게 찾아오는 손님 같은. 그저 오늘을 살아야겠다”나는 사무실을 나오면서 선배에게 오늘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최근 들어 선배나 형님들께 고민을 상담할 수 있는 기회도 거의 갖기 힘든 세상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더구나 이런 개인적이고 민감한 주제는 특히나 더했다. 언젠가부터 우린 서로가 마음을 닫고 있는 건 아닐지. 그런데 돌아온 선배님의 답변은 굉장히 당혹스러웠다. “나는 오죽하겠니? 넌 나라도 있겠지만 난 나에게 조언해 줄 선배나 형님을 찾기도 힘들다” 우리 시대의 형님 누나들은 모두 어디에 계신가요.나부터 손을 내밀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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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뇌] 심심한 것보다 바쁜 편이 낫다

때는 바야흐로 대학 4학년. 다시 대학생으로 타임슬립을 해보자.일반적으로 대학 4학년의 학교생활은 조금 무료할 수 있다. 대부분은 취업 준비로 여념이 없을 테지만 우리 학교의 특성상 대부분은 대학원 입시 준비로 한창이다. 졸업 학점은 대부분 3학년까지 따두고 4학년은 학점도 최소한으로 신청했던 것 같다. 나도 남들 따라 대학원 입학서류를 냈던 것 같은데 그 떨어지기 어렵다는 서류전형에서 어처구니없이 미끄러진 것이다. 나는 솔직히 학업에 그다지 흥미가 없었기에 놀라지는 않았다.수업도 거의 없는 데다가 대학원 입시도 더 이상할 필요는 없으니 별달리 할 일은 없었다. 기숙사와 도서관을 어슬렁 거리기도 했고 그때 담배라는 것도 피우기 시작한 것 같다. 당시에는 건물 내에서도 마음껏 담배를 피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중앙도서관 1층 신문철을 한 넓은 공간이 있었는데 자판기 커피 하나에 담배를 물고 신문을 읽을 수 있었다. 기숙사방에 커다란 유리로 된 오렌지주스병에 수북하게 담배꽁초를 담아두기도 했다. 룸메이트는 우리 과에서 공부를 아주 잘하는 친구였는데 유학 준비를 했다. 거의 기숙사에 들어오지 않았다. 새벽 일찍 나가서 늦게 잠잘 때쯤에만 들어왔다. 방에서도 계속 담배를 피웠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 보면 냄새를 어찌 감당했을지 궁금하긴 하다.기숙사는 2인 1실이었고 마음에 맞는 상대를 정해 신청하면 룸메이트가 될 수 있었다. 원래 3학년까지 친한 다른 동기랑 같이 살았지만 4학년 입시 준비를 핑계로 이별을 했다. 정말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아 우리 과에서 상대적으로 성적이 좋았던 동기에게 먼저 룸메이트 제안을 했는데 그 친구는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아주 성실하고 착실한 친구였다. 지금은 어느 학교에서 교수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것 같다.기숙사는 4층 꼭대기였다. 아는 사람은 아는 꼭대기층은 특히나 여름엔 쥐약이었다. 바로 뜨거운 태양에 직접적으로 맞닿은 지붕의 열기가 그대로 천장으로 전달되고 있는 듯했다. 당시 기숙사엔 별다른 냉방 장치는 없었다. 그저 작은 선풍기 한 대에 의지하고 있었다. 뜨거운 낮에는 도서관으로 피신했던 것 같은데 가장 뜨거운 한 낮이 지나 오후가 찾아오면 설렁설렁 기숙사로 들어갔다. 땀이 날 때마다 시원하게 샤워장에서 하루에 몇 번이건 샤워를 하기도 했고 아직은 뜨거운 열기가 있는 방에서 낮잠을 자기도 했던 것 같다. 무료하면 무료할수록 잠은 왜 그리 잘 오는지. 방에 멍하니 누워 천장만 바라보곤 했던 것 같다.“신이시여 무료함이 이렇게 고통스러운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설령 이 무료함이 바쁨으로 바꿔진다고 하더라도 당신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지금을 탈출하기 위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겠습니다.”4학년부터 나름 공부에 전념하겠다고 학생과외도 모두 그만두었다. 학비가 없는 학교생활에선 과외 아르바이트가 나름 나의 생활비였는데 무슨 바람이었는지 이 마저도 모두 끝냈다. 아마도 연말까지의 생활비까지는 확보했을 것이다. 찬바람이 슬슬 부는 가을쯤 됐을 것이다. 이제 남은 건 군대를 가거나 취업 그리고 5학년으로 졸업을 1년 미룰까 고민하고 있었다. 마침 과사무실에 다양한 취업 및 직원모집 공고가 몇 개 올라왔다. 대부분 대기업 정보였는데 한 곳이 벤처기업 공고였다. 그리고 이 업체는 병역특례업체로 약 3년을 근무하면 군복무를 대신할 수 있다고 했다.요즘 직장의 분위기는 - 우리 회사만 그런지 모르겠으나 - 야근을 하는 사람을 보기 힘들다. 하지만 사회 초년병인 당시에는 칼퇴근이란 건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어쩌면 집에 바로 가봤자 할 일이 없었을 수도 있지만 무언가 항상 일이 엄청나게 많았던 것 같다. 당시 친구들 모임만 생각해도 30살 정도까지 - 난 대학 졸업과 동시에 벤처기업체 취업했기에 당시 나이는 20대 초반이었다 - 약속시간에 한꺼번에 모인 적은 없었다. 아마도 과장급이 되기 전까지 친구나 동기들은 항상 야근이 일상이었다.그날도 그랬던 것 같다. 일이 뭐라고 그날도 밤을 새워서 일을 하였고 코피까지 터 진 날이었다. 거기에 시골에 계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연락까지 받았었다. 나는 주말에 고속도로를 운전까지 해서 시골 장례식장까지 가야만 했는데 운전을 하면서도 깜박 깜빡 졸았던 것 같다. 차가 너무 막혀 중간중간 휴게실에 자주 서서 쉬엄쉬엄 운전하고 있었다. 그럴 때 대학 4학년때의 그 모습이 떠올랐다.내가 자초한 일이다. 그때 내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다시는 무료하여 더운 방에 뜨거운 바람이 나오는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누워있기 싫다. 아무 할 일이 없는 것보다 비록 코피가 나더라도 정신없는 삶이 오히려 낫다. 그 후 나는 아무리 회사 일이 바쁘고 엄청나더라도 악마에게 영혼을 제대로 팔았던 그때를 떠올리곤 했다. 난 결코 지치지 않았다.“악마여 내가 그때를 후회하고 있을 줄 알지만 천만의 말씀. 나는 그때로 절대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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