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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멸치와 소금인데… 왜 이탈리아는 '살려두고' 한국은 '녹여버렸을까'?

애들빙자여행러 · 2026년 8월 21일

4월 끝자락, 이탈리아 남부 아말피 해안의 작은 어촌 체타라를 상상해보겠습니다.

새벽 배가 항구로 들어옵니다. 그물 안에는 멸치가 가득합니다. 어부들은 서두릅니다. 이 생선은 몇 시간만 지나도 조직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머리를 떼고 내장을 걷어낸 멸치를, 밤나무로 만든 통 안에 소금과 함께 켜켜이 쌓습니다. 한 켜는 멸치, 한 켜는 소금. 맨 위에는 무거운 돌을 얹습니다. 이제 이 통은 짧으면 몇 달, 길게는 몇 년을 그대로 있을 겁니다.

같은 계절, 지구 반대편 한국의 남해안 어느 항구를 상상해보겠습니다.

늦가을, 이 지역 바다에 멸치 떼가 몰려드는 시기입니다. 이곳 사람들도 서두릅니다. 갓 잡은 멸치를 항아리에 넣고, 소금을 뿌리고, 다시 멸치를 얹습니다. 한 켜는 멸치, 한 켜는 소금. 위에는 돌을 얹어 누릅니다. 이 항아리도 몇 달을 그대로 있을 겁니다.

여기까지는 거의 같은 장면입니다. 생선, 소금, 시간, 그리고 누르는 무게.

그런데 몇 달 뒤, 두 통을 열면 완전히 다른 것이 나옵니다.

체타라의 통에서는 멸치가 그대로 걸어 나옵니다. 살은 단단해지고 색은 짙어졌지만, 여전히 한 마리의 생선입니다. 사람들은 뼈를 발라내고 필레로 만들어 올리브유에 담급니다.

한국의 항아리에서는 멸치가 나오지 않습니다. 멸치는 사라지고 없습니다. 대신 짙은 갈색의 액체가 고여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국자로 떠서 김치와 국과 찌개에 넣습니다.

같은 생선, 같은 소금, 같은 시간. 그런데 한쪽은 몸을 남겼고, 한쪽은 몸을 지웠습니다.

오늘은 이 두 개의 통 이야기를 합니다. 멸치라는 작은 생선 하나가, 두 문명을 만나면서 왜 이렇게 다른 결말을 갖게 됐을까요.

탐험을 시작합니다.

몸을 남긴 멸치, 몸을 지운 멸치

이탈리아의 멸치 가공을 조금 더 들여다보겠습니다.

체타라를 비롯한 아말피 해안 마을의 전통 방식은 매우 정교합니다. 3월 말부터 7월 사이, 가장 좋은 멸치가 잡히는 시기에만 작업합니다. 잡은 멸치는 그날 안에 손질합니다. 머리와 내장을 제거하고 밤나무 통에 소금과 번갈아 쌓은 뒤, 무게로 눌러 숙성시킵니다. 소금에 절인 멸치는 짧으면 몇 달, 길게는 일 년 이상 숙성됩니다. 숙성이 끝나면 사람들은 손으로 하나하나 뼈를 발라내 필레를 만들고, 올리브유에 담가 보관합니다.

결국 이 과정 끝에 남는 것은 멸치의 살입니다. 소금과 시간이 맛을 바꿔놓았지만, 멸치는 끝까지 생선의 형태를 유지합니다.

한국의 멸치젓은 다른 길을 갑니다. 멸치와 소금을 켜켜이 쌓아 발효시키는 것은 같지만, 소금의 비율이 훨씬 높습니다. 대체로 멸치 무게의 20에서 30퍼센트에 이르는 소금을 씁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멸치의 조직은 점점 허물어집니다. 몇 달을 더 두면, 살은 완전히 분해되어 액체가 됩니다. 이것이 멸치액젓입니다.

이탈리아는 멸치를 살려두는 쪽으로 갔고, 한국은 멸치를 녹이는 쪽으로 갔습니다. 같은 질문 앞에서, 두 문명은 서로 다른 답을 내놓은 셈입니다.

소금 하나가 만드는 두 가지 과학

흥미로운 사실은, 이 두 가지 결과가 사실 거의 같은 원리에서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멸치에 소금을 뿌리면 가장 먼저 삼투압이 작동합니다. 생선 세포 안의 수분이 소금 쪽으로 빠져나갑니다. 수분이 줄어든 환경에서는 대부분의 부패균이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여기까지는 이탈리아와 한국이 똑같습니다.

그다음부터 갈라집니다. 이탈리아의 저염 방식에서는 생선 내부의 효소, 특히 단백질 분해 효소가 천천히 작동하면서 살의 질감과 향을 서서히 바꿉니다. 조직 자체는 크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반면 한국처럼 소금 농도가 높고 발효 기간이 긴 경우, 두 가지 작용이 동시에 일어납니다. 하나는 생선 스스로가 가진 효소가 제 몸의 단백질을 분해하는 자가소화 작용이고, 다른 하나는 고염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내염성 미생물의 작용입니다. 국내 발효 연구에 따르면, 멸치액젓 발효 과정에서는 테트라제노코쿠스속을 비롯한 내염성 미생물이 발효 후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미생물들이 단백질을 아미노산과 펩타이드로 잘게 쪼갭니다.

이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글루탐산을 비롯한 유리 아미노산입니다. 우리가 감칠맛이라고 부르는 그 맛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소금과 시간이라는 같은 도구를 썼지만, 소금의 농도와 발효 기간을 어느 지점에서 멈추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완전히 달라진 겁니다. 이탈리아는 그 시계를 살이 남는 지점에서 멈췄고, 한국은 살이 사라지고 감칠맛만 남는 지점까지 더 밀고 나갔습니다.

로마의 가룸, 그리고 사라지지 않은 액체

여기서 역사를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사실 지중해에도 생선을 액체로 만드는 전통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고대 로마에는 가룸이라는 생선 발효 액젓이 있었습니다. 생선 내장과 살을 소금에 절여 오랜 시간 발효시킨 뒤 걸러낸 액체로, 로마 전역에서 거래되던 조미료였습니다. 로마가 무너진 뒤 이 전통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완전히 끊기지는 않았습니다. 이탈리아 캄파니아의 콜라투라 디 알리치, 멸치를 소금에 재워 나온 액체를 걸러내는 이 조미료는, 중세 수도사들의 손을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진 가룸의 후예로 여겨집니다. 원산지 명칭 보호 규정에 따르면 콜라투라는 최소 아홉 달, 길게는 몇 년까지 숙성시킵니다.

그러니까 이탈리아 역시 생선을 액체로 바꾸는 기술을 갖고 있었던 겁니다. 다만 그 기술은 주류가 되지 못하고 체타라라는 작은 해안 마을에서 명맥을 이어가는 특산품으로 남았습니다. 반면 필레로 만들어 기름에 담그는 방식은 이탈리아 전역, 나아가 지중해 요리 전체의 표준이 됐습니다.

한국의 사정은 정반대입니다. 젓갈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 가운데 하나는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나옵니다. 신문왕 3년, 서기 683년, 왕비를 맞이하는 예물 목록에 젓갈로 추정되는 해醢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후 고려를 거쳐 조선에 이르면 젓갈의 종류는 더욱 다양해집니다. 조선시대 여러 문헌에 기록된 젓갈의 종류는 150여 종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같은 지중해 문명권 안에서도 액체로 만드는 기술은 있었습니다. 한반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차이는 그 기술이 만들어졌는지가 아니라, 그 기술이 각 식탁에서 얼마나 중심을 차지했는지에 있습니다.

왜 한쪽은 중심이 되고, 한쪽은 주변에 머물렀을까

이 차이를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단정하기는 조심스럽지만, 몇 가지 조건은 짚어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멸치라는 생선의 물성입니다. 멸치는 잡은 직후부터 급격히 상하는 약한 생선입니다. 신선한 상태의 살을 온전히 살려 상품으로 만들려면 매우 정교한 손질과 짧은 처리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말피 해안에서는 이런 조건을 갖춘 소규모 마을이 그 기술을 지켜왔습니다. 반면 소금을 많이 넣고 오래 발효시켜 아예 녹여버리는 방식은, 손질이 다소 거칠어도 결과물의 품질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둘째는 이미 갖고 있던 조미 체계입니다. 한국의 식문화에는 콩을 발효시켜 간장과 된장을 만들고, 곡물을 발효시켜 식초와 술을 만드는, 재료에서 맛을 뽑아내는 오랜 기술 체계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국, 찌개, 김치처럼 여러 재료의 맛이 서로 섞이는 음식 구조에서는, 생선을 통째로 두는 것보다 액체로 만들어 다른 음식에 스며들게 하는 쪽이 훨씬 자연스러웠을 겁니다. 이탈리아를 포함한 서유럽에서는 로마 이후 버터와 치즈처럼 유제품을 기반으로 한 조미 체계가 발달했습니다. 액젓이라는 선택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미 자리 잡은 유제품 조미 체계 옆에서 굳이 중심을 차지할 이유가 적었을 수 있습니다.

셋째는 어획과 소비의 규모입니다. 아말피 해안에서는 일정한 계절, 일정한 크기의 멸치만 선별해 소량으로 정교하게 가공하는 방식이 자리 잡았습니다. 반면 한반도 연근해에서는 멸치가 계절마다 대량으로 잡혔고, 국물용과 볶음용과 젓갈용과 액젓용으로 쓰임이 이미 다양하게 나뉘어 있었습니다. 멸치를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선택지 자체가 훨씬 많았던 겁니다.

감춰진 멸치, 드러난 멸치

이 차이는 식탁 위에서 흥미로운 풍경을 만들어냅니다.

이탈리아의 엔초비는 요리 안에서도 자신의 형태를 지킵니다. 피자 위에, 시저 샐러드 위에, 파스타 접시 위에 놓인 엔초비는 눈으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먹는 사람은 지금 자신이 멸치를 먹고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한국의 멸치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합니다. 멸치볶음처럼 형태가 남는 음식도 있지만, 육수를 낼 때는 멸치를 건져서 버립니다. 김치를 담글 때 넣는 멸치액젓은 완성된 김치 어디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먹는 사람은 멸치를 먹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한 채, 그 맛만 먹습니다.

한쪽 문명은 재료가 요리 안에서 자신의 정체를 지키기를 원했고, 다른 쪽 문명은 재료가 다른 음식의 맛을 밀어 올리는 역할에 만족하기를 바랐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는 재료를 보존하는 데 정교했고, 다른 하나는 재료에서 맛을 추출하는 데 정교했습니다. 둘 다 매우 다듬어진 기술의 결과입니다.

다시 만나는 두 개의 통

그런데 최근 두 세계는 다시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현대 요리에서 엔초비는 더 이상 필레의 형태로만 쓰이지 않습니다. 버터에 녹이고, 소스에 갈아 넣고, 드레싱에 풀어 넣습니다. 이 순간 엔초비도 자신의 몸을 버리고 맛만 남기는 쪽으로 움직입니다. 반대로 한국에서도 최근에는 멸치를 통째로 오래 숙성시켜 올리브유에 담그는, 엔초비에 가까운 방식을 시도하는 곳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두 문명이 각자 다른 길로 갈라졌던 지점에서, 다시 서로의 방향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셈입니다.

다시 두 개의 통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체타라의 나무통 안에는 여전히 한 마리 한 마리의 형태를 지킨 멸치가 기름 속에 잠겨 있습니다. 한국 남해안의 항아리 안에는 형태를 잃고 짙은 갈색 액체가 된 멸치가 고여 있습니다.

두 통 모두 생선과 소금과 시간으로 시작했습니다. 그 세 가지는 어디서나 똑같았습니다. 달랐던 것은 그것을 지켜본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했는가였습니다. 한 문명은 생선이라는 형태를 지키는 법을 완성했고, 다른 문명은 생선에서 맛을 뽑아내는 법을 완성했습니다.

소금과 시간은 멸치를 보존했고, 두 문명이 저마다 갖고 있던 필요는 그 보존을 서로 다른 음식으로 만들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콩 이야기를 합니다. 같은 콩 한 알을 두고, 어떤 문명은 액체로 만들어 간장을 완성했고, 어떤 문명은 덩어리로 만들어 두부를 완성했고, 어떤 문명은 곰팡이를 입혀 전혀 다른 것을 완성했습니다. 재료는 하나였는데 문명마다 왜 이렇게 다른 답을 내놓았는지, 그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오늘도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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