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vs 빵 vs 토르티야: 세 가지 곡물의 '물성'이 설계한 인류 문명의 식탁
어느 유럽의 마을, 새벽의 빵집을 상상해보겠습니다.
제빵사가 밀가루 반죽에 물을 붓고 손으로 치대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뻑뻑하던 반죽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매끄러워지고, 손끝에서 늘어났다가 다시 돌아옵니다. 이 반죽은 몇 시간 뒤 오븐 안에서 부풀어 오를 겁니다.
같은 시간, 동아시아의 어느 부엌을 상상해보겠습니다.
솥 안에 씻은 쌀과 물을 넣고 불을 올립니다. 쌀은 반죽이 되지 않습니다. 대신 물을 빨아들이며 서서히 투명해지고, 부드러워집니다. 알갱이 하나하나가 원래보다 훨씬 커집니다.
또 같은 시간, 중앙아메리카의 어느 마당을 상상해보겠습니다.
한 여인이 마른 옥수수 알갱이를 잿물 섞인 물에 넣고 불 위에 올립니다. 옥수수는 밀가루처럼 치대도 늘어나지 않고, 쌀처럼 그냥 익혀도 부드러워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다른 방법을 씁니다. 옥수수 자체를 알칼리 용액에 담가 성질을 바꿔놓습니다.
세 개의 부엌, 세 가지 곡물, 그리고 완전히 다른 손동작.
밀은 그물처럼 늘어났고, 쌀은 물을 머금고 부풀었고, 옥수수는 아예 성질이 바뀌었습니다. 같은 탄수화물인데, 왜 인간은 이렇게 다른 방식으로 다루게 됐을까요.
오늘은 이 세 가지 곡물이 인간에게 건넨 서로 다른 대답, 그리고 인간이 그 대답에 어떻게 응답했는지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탐험을 시작합니다.
밀이 만드는 그물
먼저 밀입니다.
밀가루에는 글루테닌과 글리아딘이라는 두 가지 단백질이 들어 있습니다. 이 단백질들은 물을 만나면 서로 얽히기 시작합니다. 반죽을 치대는 행위는 이 얽힘을 더 촘촘하게 만드는 과정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탄력 있는 그물 구조를 우리는 글루텐이라고 부릅니다.
이 그물이 하는 일이 있습니다. 가스를 가두는 일입니다. 효모가 반죽 속의 당을 분해하면서 이산화탄소를 만들어내는데, 글루텐 그물이 이 기체를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붙잡습니다. 그 결과 반죽은 부풀어 오릅니다. 빵이 만들어지는 순간입니다.
이 그물의 능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얇게 밀면 납작한 빵이 되고, 길게 뽑으면 면이 되고, 얇게 늘려 속을 채우면 만두피가 되고, 겹겹이 접으면 페이스트리가 됩니다. 하나의 물성이 이렇게 많은 형태로 갈라질 수 있는 곡물은 흔치 않습니다. 밀이 세계 곳곳에서 그렇게 다양한 음식으로 퍼져나간 데는, 이 그물이 갖고 있는 조리의 자유도가 있었습니다.
밀이 인간의 손에 들어온 것은 아주 오래전 일입니다. 지금의 튀르키예 남동부에서 이라크, 이란에 걸친 이른바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사람들은 약 1만 년 전부터 야생 밀을 재배 작물로 길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지역은 건조하고 강수량이 일정치 않은 대신, 밀은 그런 환경에서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자라고 수확 후 저장이 쉬운 작물이었습니다. 이후 밀 재배는 지중해와 유럽 전역으로, 그리고 실크로드를 따라 중앙아시아와 동아시아로도 퍼져나갔습니다. 글루텐이라는 물성이 아무리 훌륭해도, 그 물성이 세계로 퍼지려면 먼저 그 낟알을 심고 옮기고 저장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져야 했습니다.
쌀이 하는 다른 게임
쌀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쌀에는 밀처럼 그물을 만드는 단백질 구조가 없습니다. 그래서 쌀가루에 물을 넣고 아무리 치대도 밀 반죽 같은 탄력은 생기지 않습니다. 쌀이 인간에게 내놓은 물성은 다른 종류였습니다. 바로 전분입니다.
쌀을 물과 함께 가열하면, 쌀알 속 전분 입자가 물을 흡수하며 팽창하고 구조가 무너집니다. 이 과정을 호화라고 부릅니다. 딱딱했던 낟알이 부드럽고 찰기 있는 밥이 되는 것은, 반죽이 아니라 이 전분의 변화 때문입니다.
인간은 여기서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찰기가 강한 찹쌀을 쪄서 떡을 만들고, 쌀을 갈아 죽을 쑤고, 쌀가루를 이용해 면과 전병을 만들었습니다. 밀 문명이 반죽을 만들고 그 안에 가스를 가두는 방향으로 갔다면, 쌀 문명은 물과 열로 전분의 성질을 바꾸는 방향으로 기술을 발전시켰습니다. 같은 탄수화물을 다루는 방식이 처음부터 서로 다른 길을 걸었던 셈입니다.
쌀의 재배화 역시 밀 못지않게 오래됐습니다. 중국 양쯔강 중하류 지역에서 사람들은 지금으로부터 약 9천 년에서 8천 년 전 무렵부터 야생 벼를 작물로 길들이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지역은 밀이 자라난 비옥한 초승달 지대와는 전혀 다른 환경이었습니다. 강수량이 많고 물을 가둘 수 있는 저지대가 많았습니다. 벼는 밭이 아니라 물속에서 더 잘 자라는 작물이었고, 이 조건이 이후 논이라는 독특한 농업 시설로 이어졌습니다. 재배화된 벼는 이후 한반도와 일본 열도, 동남아시아로 퍼져나가며 각 지역의 주식이 되었습니다.
옥수수의 협상, 닉스타말화
이제 옥수수입니다. 오늘 이야기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이기도 합니다.
옥수수는 밀처럼 반죽되지 않고, 쌀처럼 익힌다고 부드러워지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메소아메리카 사람들은 여기서 아주 오래전부터 독특한 방법을 씁니다. 옥수수를 물에 삶는 대신, 석회를 녹인 알칼리성 물에 삶고 담가두는 겁니다. 이 방법을 닉스타말화라고 부릅니다.
이 처리를 거치면 옥수수의 딱딱한 겉껍질이 물러지고, 알갱이를 갈아 반죽처럼 다룰 수 있게 됩니다. 이 반죽을 납작하게 눌러 구우면 토르티야가 됩니다.
그런데 닉스타말화가 하는 일은 조리법을 바꾸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옥수수에는 원래 니아신, 즉 비타민 B3가 몸에 흡수되지 못하는 결합 상태로 들어 있습니다. 알칼리 처리를 거치면 이 니아신이 몸에서 이용 가능한 형태로 풀려납니다. 니아신이 만성적으로 부족하면 펠라그라라는 병에 걸립니다. 피부염과 신경계 이상을 동반하고, 방치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는 병입니다.
메소아메리카 사람들이 이것을 영양학적으로 알았을 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처리를 거친 옥수수를 주식으로 삼은 사회에서는 펠라그라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반면 18세기 이후 옥수수가 유럽과 아메리카 남부로 퍼져나갈 때, 이 처리법은 함께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옥수수를 주식으로 삼되 닉스타말화를 거치지 않은 지역, 특히 남유럽과 미국 남부의 빈곤한 인구 사이에서 펠라그라가 널리 퍼졌습니다. 조리법 하나의 차이가 한 사회의 건강을 갈랐던 셈입니다.
옥수수의 재배화 자체도 밀이나 쌀 못지않게 오래된 일입니다. 지금의 멕시코 중남부 지역에서 사람들은 야생 식물인 테오신테를 길들여 오늘날의 옥수수로 바꿔나갔습니다. 이 과정은 대략 9천 년 전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옥수수는 이후 콩, 호박과 함께 재배되며 아메리카 대륙 여러 문명의 근간이 되는 작물로 자리 잡았습니다. 닉스타말화라는 기술은 이 오랜 재배의 역사 어느 지점에서, 맛과 질감을 더 낫게 만들려는 시도와 함께 발견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그 우연한 발견이 대륙 하나의 식생활을 지탱하는 기둥이 됐습니다.
식감을 부드럽게 하려고, 갈기 쉽게 하려고 시작했을 이 처리법이, 알고 보니 목숨을 지키는 기술이기도 했습니다.
성이 가능성을 열고, 환경이 선택했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유럽에 쌀 요리가 없고, 아시아에 밀 요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스페인에는 파에야가 있고, 이탈리아에는 리소토가 있습니다. 중국과 한국에는 오래전부터 국수와 만두가 있었습니다. 그러니 물성 하나가 문화를 전부 결정한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곡물의 물성은 가능한 선택지를 열어주고, 기후와 농업 조건이 그중 무엇을 중심에 둘지를 결정했습니다.
밀은 비교적 건조한 지역에서도 자랄 수 있고 저장이 상대적으로 수월합니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밭농업 중심의 체계가 이런 조건 위에서 발전했습니다. 반면 쌀농사, 특히 논농사는 물 관리에 훨씬 많은 노동력이 필요합니다. 논이라는 시설을 유지하려면 마을 단위의 협력과 수리 체계가 필요했고, 이것이 공동체의 조직 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옥수수는 아메리카 대륙의 기후와 토양에 적응하며 콩, 호박과 함께 재배되는 체계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밥과 빵의 차이는 부엌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밭에서 이미 갈라지고 있었던 겁니다.
이 갈림은 노동의 형태로도 이어졌습니다. 밀농사는 파종과 수확 시기에 노동이 집중되고, 그 사이 기간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편입니다. 반면 벼농사는 모내기부터 물 대기, 김매기, 수확까지 한 해 내내 지속적인 손길을 요구합니다. 이 차이가 각 지역의 촌락 구조와 협업 방식에도 흔적을 남겼다고 보는 연구자들이 있습니다. 곡물 하나의 재배 방식이 부엌을 넘어 마을의 형태까지 건드린 셈입니다.
인간은 재료를 다시 설계한다
인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자연이 준 곡물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그 물성 자체를 계속 조작해왔습니다.
밀을 곱게 갈아 밀가루를 만들고, 쌀을 도정해 잡티를 걷어내고, 옥수수를 알칼리 처리해 성질을 바꾸는 것까지는 오래된 기술입니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서면서 이 조작은 한 단계 더 나아갑니다. 전분을 곡물에서 따로 분리하고, 단백질을 추출하고, 식이섬유를 걸러낸 뒤 다시 원하는 비율로 조합합니다.
지금 우리가 마트에서 만나는 전분가루, 정제 밀가루, 분리 단백질 같은 재료들은, 자연 상태의 곡물과는 거리가 있는 가공된 형태입니다. 곡물의 물성을 이해하고 그 성질을 바꾸는 오래된 지혜가, 오늘날에는 산업의 규모로 이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화이면서 동시에 생물학인 것
우리는 흔히 음식의 차이를 문화로 설명합니다. 한국인은 밥을 먹고, 이탈리아인은 파스타를 먹고, 멕시코인은 토르티야를 먹는다고 말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 문화가 왜 하필 그 선택을 할 수 있었는지를 물으면, 답은 식물의 생물학까지 내려갑니다. 밀의 글루텐, 쌀의 전분, 옥수수의 구조. 이 물성들이 인간에게 서로 다른 조리의 가능성을 열어주었고, 인간은 그 가능성 위에 각자의 방식으로 문명을 쌓아 올렸습니다. 음식은 문화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화학과 생물학의 산물입니다.
그리고 이 관계는 한쪽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습니다. 식물은 인간에게 제한을 걸었고, 인간은 그 제한 안에서 머무르지 않고 계속 식물 쪽으로 되물었습니다. 이 곡물로 무엇을 더 만들 수 있는가, 이 물성을 어디까지 바꿀 수 있는가. 밀을 갈아 글루텐 함량이 다른 밀가루를 여러 종류로 나누고, 쌀의 품종을 개량해 찰기의 정도를 조절하고, 옥수수의 알칼리 처리 시간을 지역마다 다르게 조정해온 것도 이 되물음의 결과입니다. 재료가 인간에게 조건을 준 것처럼, 인간도 재료에게 계속 다른 조건을 요구해온 셈입니다.
다시 세 개의 부엌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유럽의 제빵사는 지금도 반죽을 치대며 글루텐이라는 그물을 짜고 있습니다. 동아시아의 부엌에서는 지금도 쌀이 물과 열을 만나 전분의 성질을 바꾸고 있습니다. 중앙아메리카의 마당에서는 지금도 옥수수가 잿물 속에서 다른 존재로 변하고 있습니다.
세 사람 모두 손에 쥔 곡물이 내놓은 첫 번째 대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밀은 인간에게 그물을 만들 여지를 주었고, 인간은 그 여지를 빵과 면과 만두피로 넓혔습니다. 쌀은 인간에게 전분의 변화를 내주었고, 인간은 그 변화를 밥과 떡과 국수로 넓혔습니다. 옥수수는 인간에게 좀처럼 곁을 내주지 않았고, 인간은 그 옥수수의 성질 자체를 바꾸는 기술로 답했습니다.
곡물의 물성은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음식의 범위를 정했고, 기후와 역사는 그 범위 안에서 각자의 식탁을 골랐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콩 이야기를 합니다. 같은 콩 한 알을 두고 어떤 문명은 갈아서 액체로 만들었고, 어떤 문명은 굳혀서 덩어리로 만들었고, 어떤 문명은 곰팡이를 입혀 전혀 다른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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